[127] 제10장 간지의 세계/ 21. 수화(水火)의 체용변화(體用變化)

작성일
2017-02-26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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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제10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21. 수화(水火)의 체용변화(體用變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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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월이 오해가 있다는 말을 하자 우창이 다시 물었다.

“예를 들면 어떤 오해 말인가?”

“계(癸)의 지약(至弱)이 항상 병(病)이 된 거지.”

“왜?”

“지약(至弱)을 무능하고 무기력한 것으로만 받아들였단 말이지.”

“아, 그래서 자력(自力)으로 할 수가 있는 것이 별로 없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당연히 화토를 논하지 말라는 말은 너무나 무력해서 생존을 논할 수도 없고, 경신도 논하지 말라고 하니까, 생을 해줘도 힘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하고, 무계합을 말하니까 아예 토(土)의 세력을 따라서 종(從)을 하거나 화(火)를 따라서 화화(化火) 하는 것으로 몰아가게 된단 말이지.”

“그러한 병폐(病弊)는 오로지 지약(至弱)이라는 한마디의 말에 의해서 일어났단 말이로군.”

“반드시 그렇게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볼 가능성은 다분하다고 해야 하겠지.”

“듣고 보니 그렇겠네. 과연 고월의 통찰력은 정확하다고 봐야 하겠네. 하하~!”

“어떤가? 천간(天干)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봐도 될까?”

“어느 정도가 뭔가. 확실하게 감을 잡은 것 같네.”

“저도요. 대단한 천간의 풀이였어요. 이렇게만 알고 있으면 다시는 누가 뭐라고 해도 혼란스러울 일이 없겠어요.”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명학(命學)에서 천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워낙 막중(莫重)해서 경도 스승님도 이렇게 상세하게 구결(口訣)로 암기하라고 사언절구(四言節句)로 쓴 것이라고 생각되네.”

“그것만으로도 명학의 깊이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계셨던 분인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군. 멋진 책을 만난 것에도 감사하게 되고.”

“그래서, 스승을 만나는 것은 최상의 행복이지만, 좋은 책을 만나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행운이라고 해야 하겠지.”

“더구나 우리에겐 고월과 같은 철학자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하하~!”

“맞아요~! 자원도 완전히 동의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호호~!”

자연을 배경으로 수학(修學)하는 세 사람의 마음에는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듯싶었다. 이제 시작이지만 마음은 이미 8할이나 완성시킨 것 같은 여유로움이 넘쳐났다.

자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천간(天干)의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지지(地支)도 그럴 것인지 모르겠어요. 어서 설명을 듣고 싶어요.”

우창도 천간편이 마무리 되어서 지지편을 보게 된 것에 대해서 새로운 기대감이 생겨서 내용을 살펴보면서 읽었다.

 

陽支動且強 速達顯災祥(양지동차강 속달현재상)


陰支靜且專 否泰每經年(음지정차전 비태매경년)


 

양지(陽支)는 활동(活動)적이며 강하니

재앙(災殃)과 길상(吉祥)이 신속(迅速)히 나타난다.

 

음지(陰支)는 안정(安靜)적이고 오롯하니

좋고 나쁜 것이 나타남에 매양 시간이 걸린다.

 

“양지(陽支)라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인가. 고월?”

“양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네.”

“우창이 알고 있는 이론 외에 또 다른 이론이 있단 말이지?”

“양간(陽干)이나 음간(陰干)에 대해서는 정확히 정리하셨는가?”

“그야 갑병무경임(甲丙戊庚壬)이 양간이고, 을정기신계(乙丁己辛癸)가 음간인 것이 맞지?”

“맞았네. 그리고 그 외에 다른 이론은 없단 말이네.”

“오오~! 그렇다면 지지(地支)는 그렇지가 않단 말인가?”

“그게 자칫하면 초학자(初學者)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네.”

“오호~! 그런 줄은 전혀 몰랐는걸.”

“그렇다면 우창이 알고 있는 양지(陽支)란 무엇인가?”

“그야 당연히 자인진오신술(子寅辰午申戌)이지 않은가?”

“잘 알고 있군.”

“그런데, 또 다른 양지(陽支)가 있단 말인가?”

“사실, 명학(命學)에서 보는 양지(陽支)가 또 있다고 해야 하겠군.”

“명학이라고 해서 전혀 다른 이치를 사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이것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체(體)를 중시하는 학문과, 용(用)을 중시하는 학문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그렇다면 다른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는데 왜 다른 이치가 생긴단 말인가?”

“사용법(使用法)에 따른 차이라네.”

“하긴, 사용하는 방법은 다르다고 봐야 하겠지?”

“물론이네. 그래서 약간의 혼란이 생길 수가 있다는 것이라네.”

“그렇다면 명학에서의 양지(陽支)는 무엇인가?”

“명학에서는 체(體)보다 용(用)을 중시한다네.”

“오호~! 형체(形體)보다 사용(使用)에 비중을 둔다?”

“그것이야말로 명학의 핵심적(核心的)인 명제(命題)라네.”

“그렇다면 용법(用法)의 지지(地支)가 되겠군.”

“맞아. 그것이 바로 명학에서의 양지(陽支)와 음지(陰支)라네.”

“그렇다면 양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인신사해진술(寅申巳亥辰戌)이지.”

“자인진오신술과 비교하면 자오(子午)대신에 사해(巳亥)가 포함되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자오묘유축미(子午卯酉丑未)가 음지(陰支)겠군.”

“맞는 말이네.”

“체(體)로 보는 것과 용(用)으로 보는 것의 차이는 사오(巳午)와 자해(子亥)라고 할 수가 있겠군.”

“결국은 수화(水火)의 체용변화(體用變化)라고 할 수가 있다네.”

“아, 수화(水火)의 지지(地支)는 체용이 변한다는 것으로 정리를 할 수가 있겠단 이야기지 않은가?”

“바로 그 점만 이해한다면 정리는 의외로 간단하다네.”

“난 또, 두 가지라고 해서 전혀 다른 용법(用法)이 있는가 했는데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정리할 수가 있겠군.”

“단지, 네 글자의 지지에 대해서만 이해를 하면 되는 거니까. 하하~!”

“자, 정리하세. 그러니까 양지란, 인신사해진술을 말하는 것이지?”

“틀림없는 이야기네.”

“알았네. 그렇다면 ‘양지동차강’이란 말은 ‘양지는 요동(搖動)을 치는 것이면서도 또 강력(强力)하다.’는 뜻으로 볼까?”

“제대로 해석을 하셨네. 동(動)하고 강(强)한 것이 핵심이군.”

“그래서, ‘속달현재상’이라고 했으니, ‘좋고 나쁜 것이 신속(迅速)하게 드러난다.’는 이야기로 보면 되겠지?”

“양지의 속성을 제대로 드러냈다고 생각이 되는걸.”

“이해가 되셨으면 음지(陰支)에 대한 부분도 읽어보지.”

“‘음지정차전’이라 했군. 음지는 자오묘유축미를 말한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 같네만?”

“그래, 잘 이해했어.”

“다음 구절은 ‘안정적(安定的)이고 또 오롯하다’는 의미로군. 이것은 확실하게 음적(陰的)인 요소(要素)를 설명한 것이 분명하군.”

“맞는 이야기네.”

“그래서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비태매경년’이라고 했군. 그러니까 ‘좋고 나쁜 것이 매양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가 되나?”

“이것은 음양(陰陽)의 작용에 대한 성질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고 봐서 특별할 것은 없다고 봐도 되겠네.”

“단지, 양지와 음지를 구분하는 의미로만 봐도 충분하겠지? 그런데 비태(否泰)라는 것은 특수한 용어가 아닌가?”

“아, 그것은 64괘의 이름을 일반적으로 사용한 것이라네.”

“무슨 뜻인지 설명을 좀 해 주시게.”

“비(否)는 원래 일반적으로는 부(否)라고도 읽지만, 유독 주역의 64괘에서만 비(否)라고 읽는다는 것도 알아두시라고.”

“아, 그런 경우가 있겠네. 그래서 글자는 부(否)지만, 부태라고 하지 않고 비태라고 한다는 것을 모르면 무식하다는 소릴 들을 수도 있겠군. 하하~!”

“다음으로 비(否)는 천지비(天地否䷋)의 줄임말이라네.”

“건위천(乾爲天)과 곤위지(坤爲地)가 겹쳐서 이뤄진 괘란 말이지?”

“맞아~!”

“그런데 비괘(否卦)의 의미는 나쁘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그런가?”

“제대로 이해를 했네.”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군. 왜 천지비(天地否)가 나쁜 의미가 되는지에 대해서 조금만 설명을 해 줘봐. 언뜻 생각하기에는 위에 하늘이 있고, 아래에 땅이 있으면 지극히 편안한 모습이 연상되는데 말이네.”

“이것은 명학(命學)과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서 자원에게는 좀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 살짝 되는데?”

“아, 임싸부~!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중에 배우게 되면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니까 미리 매를 맞는 마음으로 경청할게요. 호호~!”

“그렇다면 이해가 되도록 설명을 해 보도록 하겠네. 위에 하늘이 있고 아래에 땅이 있다면 변화(變化)가 생긴다고 할 수가 있을까? 어디 자원이 생각을 말해보게.”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모습이잖아요?”

“그 점에 대해서는 우창도 자원의 생각과 같네. 지극히 당연한 것이 어째서 나쁜 조짐이라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걸.”

“이것이 명학(命學)과 역학(易學)의 관점(觀點)에 대한 차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하하~!”

“왜, 같은 자연인데 길흉을 보는 관점이 다를까? 그래서야 어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 것인지를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이야말로 음양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문제는 뿌리에서부터 서로 다른 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느냔 말이지.”

“그야 기준이 있지 않은가?”

“무슨 기준이지?”

“음양~!”

“좀 쉽게 말을 해 주셔보게. 너무 현학적(玄學的)이지 않은가?”

“음적(陰的)인 곳에는 명학(命學)을 대입하고, 양적(陽的)인 곳에는 역학(易學)을 대입하라고 고인이 피땀으로 만든 결정체(結晶體)라네.”

“오호~! 듣고 보니 이치는 그럴싸하네만. 어떤 것이 음적이고 어떤 것이 양적인지를 어떻게, 누가 구분한단 말인가?”

“철학자(哲學者)~!”

“철학자라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

“세상의 이치를 관통(貫通)하고, 인간과 자연에 대해서 사유(思惟)하는 것에서 깨달음이 있는 사람이라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군.”

“그러니까 우창과 자원은 이미 철학자라네. 하하~!”

“자원은 아직 아니에요~! 희망사항이긴 하지만요. 호호~!”

“현재의 철학자나 미래의 철학자나 모두가 철학자라네. 왜냐면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니까 언젠가는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지. 하하~!”

“희망을 주셔서 고마워요. 임싸부~!”

“역학의 관점에서 천지비는 왜 나쁜 조짐이 되는 거지?”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이라네.”

“거 참 이상한 논리로군.”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 그런 것이 이상하게 들리는 사람은 명학(命學)에 소질이 있는 사람으로 봐도 될 것이네.”

“아무리 그렇더라도 자연스러운 것이 나쁜 조짐이라니 뭔가 모순(矛盾)이 된 말이라고 들린단 말이지.”

“당연히 모순이지. 명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럼 역학의 관점에서는 모순이 아니란 말인가?”

“물론이네.”

“왜 그렇지?”

“변화(變化)가 일어나지 않으니까. 좋은 조짐이라고 볼 수가 없는 것이라네.”

“아니,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서 나쁜 조짐이라니 그건 또 무슨 해괴(駭怪)한 논리인가?”

“역학의 논리~!”

“참 내~!”

“명학은 안정(安定)을 추구하고, 역학은 변화를 추구하니 그렇게 태생부터가 서로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해하면 된다네.”

“여하튼 역학의 논리는 참으로 난해(難解)하달 밖에.”

“그럴 것이네. 하하~!”

“그런데, 고월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을 하는군?”

“역학의 관점을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런 것이라네.”

“과연 두 학문을 모두 배우기는 해야 할까 싶군.”

“그렇게 되면 편견(偏見)에 빠지는 오류(誤謬)를 막을 수가 있겠지.”

“편견이라고?”

“당연하지. 하하~!”

“한쪽에서 바라보게 되면 편견이 생기기 마련이거든.”

“하긴…….”

“그것을 ‘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고 한다네.”

“그 말은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다.’는 말인가?”

“서로 자신의 관점에서만 말을 한다는 이야기라네.”

“오호~!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로군. 인정하네. 하하~!”

“그래서 명학을 배운 사람은 역학을 이해해야 하고, 역학을 공부한 사람은 명학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라네.”

“이제야 이해가 제대로 되었네. 그러니까 명학의 관점에서 역학을 바라보는 것이나, 역학의 관점에서 명학을 바라보는 것은 오류(誤謬)가 생길 수밖에 없단 말이지?”

“틀림없이 제대로 이해를 했군. 그래서 선입견(先入見)에 대한 검증(檢證)도 필요하다는 것을 학자는 늘 주의하고 경계한다네.”

“멋진 말이군. 꼭 기억해 두겠네.”

“그렇다면 태괘(泰卦)에 대해서는 이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 풀이를 해 보려나?”

“아, 비태에 대해서 논하고 있었지? 깜빡했군. 하하~!”

“지천태(地天泰䷊)라고 한다네. 의미를 설명해 보시게.”

고월의 말에 우창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자신이 이해한 것을 설명했다.

“천지비(天地否)의 반대(反對)가 되는 현상이잖은가?”

“그렇다네.”

“하늘이 아래에 있고, 땅이 위에 있으니 매우 불안한 모습인걸.”

“그렇다면 땅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땅은 아래에 있어야 편안하니까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네.”

“하늘은?”

“하늘도 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아래에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위로 가려고 하겠지?”

“그렇다면 서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 노력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되네.”

“그것을 역학에서는 변화(變化)라고 한다네.”

“아, 그래서 변화를 추구하는 역학의 관점으로는 길상(吉祥)이라고 한단 말인가?”

“당연하지~!”

“역학의 본질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보니까 무슨 의미인지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은걸.”

“알고 나면 이해를 하지 못할 일은 세상에 없다네. 비록 처녀가 아기를 낳았다고 하더라도 말이지. 하하~!”

“오호~! 과연 멋진 말이야~!”

“이제야 우창이 제대로 이해를 한 것 같군. 하하~!”

“맞아, 고월의 친절하고 자상한 설명이 필요했던 부분이었네. 이제 두 학문의 관점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했네. 그러니까 나쁜 것[否]이든 좋은 것[泰]이든 그 결과가 나타나는 데는 매양 시간이 걸려서 더디게 나타난다는 뜻이란 말이지?”

“맞아. 양지(陽支)는 결과도 빠르게 나타나고, 음지(陰支)는 결과도 더디게 나타난다는 의미로 보면 틀림없지.”

“자원도 잘 알았어요. 지지에서는 길흉에 대한 이야기가 나타난다는 것이 신기해요. 천간에서는 그런 뜻이 없었잖아요?”

“아마도 간지유별(干支有別)의 뜻을 지지의 첫머리에서 잘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로 보면 되겠어.”

고월이 정리를 하자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음 구절로 눈길을 옮겼다.

 

天戰猶自可 地戰急如火(천전유자가 지전급여화)


合有宜不宜 合多不爲奇(합유의불의 합다불위기)


 

천간(天干)의 전투(戰鬪)는 오히려 괜찮지만

지지(地支)의 전쟁(戰爭)은 불같이 급하다.

 

합(合)에도 옳음이 있고 그렇지 않음이 있으며

합(合)이 많은 것은 기특(奇特)하지 않다.

 

우창의 물음이 이어졌다.

“천전은 천간의 극을 말하는것이겠지? 갑(甲)이 경(庚)을 만나거나 병(丙)이 임(壬)을 만나면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실은 전쟁은 어울리지 않지. 공격을 받는다고 한다면 또 몰라도.”

“그건 무슨 뜻인가? 전쟁과 공격은 비슷하지 않은가?”

“전쟁은 상대방과 싸우는 것이고, 공격은 일방적(一方的)으로 침범(侵犯)을 당하는 것인데 그건 전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

“아하, 그렇군. 간지(干支)에서 갈등이 생기면 해결책은 오행의 생극에서 찾으면 된다는 뜻인가?”

그 말을 듣고 자원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자원의 생각에는 분위기를 만드느라고 그렇게 쓰신 것으로 보여요. 이어서 나오는 내용이 지전이잖아요? 그러니까 지전은 조심해야 하지만 천전은 그에 비해서 긴박하지 않다는 의미로 보여요. 그러니까 천전은 간극(干剋)의 의미를 강조해서 쓴 것으로 봐도 되겠는걸요.”

자원의 말에 고월이 동조했다.

“맞아, 합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는데 이것 또한 지지의 합(合)을 말하는 것일 테니 아마도 삼합(三合), 방합(方合), 육합(六合) 등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으니까 별로 신경 쓰지 말라는 뜻으로 요약한 것이 아닌가 싶군.”

“아하~! 이미 합의 중요성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봐도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도 합이 중요하다고들 말하는데 경도 스승님은 이미 지지의 충돌에 대해서는 주의하는 것이 좋겠지만 합은 그렇게 깊이 다룰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 타당하다는 것인가?”

“아마도 그렇게 보면 되겠네. 실로 중요했던 앞의 내용에 비한다면 없어도 되는 부분이기도 했겠어.”

“다음 대목으로 넘어가도 되겠어요. 다 우려먹어서 맛이 없어졌어요. 호호~!”

자원의 말에 두 사람도 웃음으로 대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