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제10장 간지의 세계/ 18. 공기(空氣)와 같은 존재(存在)
작성일
2017-02-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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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제10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18. 공기(空氣)와 같은 존재(存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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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은 꼬박 3일을 책을 보지 않고 쉬었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가슴이 울렁거리고 책을 펴면 우창의 얼굴이 아른거려서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흔들리는 연심(戀心)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서야 비로소 숨이 가쁘게 공부했던 것들을 뒤돌아보면서 복습(復習)을 했다. 우창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가 또 엄군평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고 나면 심통(心痛)을 어떻게 다스릴 수가 없다는 것을 겪어 본 자원에게는 이대로 말없이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 지금은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기회인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방황하다가는 ‘게도 놓치고, 망태도 잃는 일’은 겪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러한 마음이 통했는지 얼씬도 하지 않던 우창이 아침의 상쾌한 기운과 함께 나타났다. 반가웠다.
“자원~!”
“네, 오라버니 오셨어요~!”
“하도 안 보여서 어디 아픈가 했지. 멀쩡하군. 하하~!”
“멀쩡하지 않으면요. 호호~! 공부하자고 데리러 오셨군요. 고마워요. 그렇잖아요. 오늘은 공부하자고 졸라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그럴 줄 알고 잘 찾아왔군. 그런데 이렇게 밖에다가 세워 놓을 참인가?”
“아, 내 정신~! 호호~! 들어오세요. 차를 드려야죠.”
“고맙군. 그럼 한 잔 얻어먹고 공부하러 갈까.”
“오늘은 모과차를 드릴게요.”
“그것도 좋지.”
잠시 후, 찻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자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라버니는 뭐 하고 지내셨어요?”
“뭘 하긴, 눈 뜨면 자원을 생각하고, 눈 감으면 또 자원을 생각하면서 지냈지. 하하~!”
“정말요~?”
“농담(弄談)일세. 농담 못하나. 하하~!”
자원은 그 마음을 이해하고, 눈을 곱게 흘기고는 농담 아닌 농담을 그냥 흘려버리고는 적천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임(壬)을 공부할 거죠?”
“그런가? 뭘 배웠는지도 잊어버렸군.”
“저번에 고량주가 너무 독했던가 봐요. 다 잊어버린 것을 보면 말이죠. 호호~!”
“그랬나? 참으로 몹쓸 술이로군. 하하~!”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을 미처 몰랐어요.”
“다행이네. 재미가 있어야 계속할 수가 있지.”
“검술을 배울 적에도 막혔던 것이 하나씩 뚫릴 때마다 쾌감이 두 배나 증가했는데, 글을 배우는 것에서도 그러한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그래서 책벌레가 되는 거야. 하하~!”
“그걸 이해할 수 있겠어요. 예전에는 글을 배운다고 하는 사내들을 보면, 겁 많고 소심한 사람들이 칼을 잡는 것을 두려워해서 책만 잡고 있는 것인 줄로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생각이 변하면 세상도 달리 보이는 법이지.”
“특히 재미있는 것은요.”
“그래. 재미있는 것이 뭐지?”
“예전에는 글의 뜻만 찾느라고 바빴거든요.”
“그런데?”
“요즘 두 싸부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글을 쓴 사람의 마음까지도 훤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호호~!”
“이제 조금 더 지나면 글 쓴 사람의 착각(錯覺)까지도 알아보게 될 거네. 하하~!”
“언제쯤이나 그렇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호호~!”
“암, 그렇게 되고말고.”
“더 재미있는 것은 경도 스승님과 하충 선생의 천간에 대한 관점을 이해한다는 것이에요. 또 다른 선생들의 마음은 어떨까도 궁금하고요.”
“궁금한 것이 많아야 발전을 하지. 그렇게 해서 열 분의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천간을 이해한다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지 않을까?”
“정말 재미있어요. 부자가 돈이 많다고 해도, 그 마음의 행복은 자원보다 더 나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봐요.”
“나날이 의식이 확장되고 있나 보군.”
“그럼요.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요. 호호~!”
“어찌 부자뿐이겠어? 권력을 가진 사람도 권력의 노예가 되는 거야.”
“그럼 진정한 자유인은 뭘까요?”
“그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지. 하하~!”
“꼭 옛날의 누구처럼 말씀하시네요.”
“엉? 옛날의 누구?”
“차 다 드셨으면 공부하러 가요~!”
“그래 가자~!”
그렇게 두 사람은 나란히 정원을 지나 고월의 처소에 다다랐다.
고월은 뭘 적느라고 벼루 앞에 앉아서 글을 쓰다가 고개를 돌려서 방문자를 맞는다.
“어서 오시게들. 오랜만에 보니 더 반갑군~!”
“오늘은 또 한 수 배우려고 왔지. 잘 계셨지?”
“나야 뭐 항상 잘 지내지. 자원도 반갑네.”
“임싸부~ 자원이 인사 드려요~!”
“그래 공부가 잘되어 가시는지 얼굴에 도티가 팍팍 나는군. 하하~!”
“모두가 임싸부 덕분이옵니다~! 호호~!”
하던 일을 뒤로 밀쳐놓고 공부할 자리를 마련하는 고월에게 우창이 물었다.
“그런데, 뭘 그리 열심히 적고 계신 건가?”
“아, 이거?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이 있어서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 보는 것이라네.”
“그게 뭔지 좀 들어봐도 되겠나?”
“궁금하겠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시게. 아직은 시험적인 발상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좀 더 궁리를 해 봐야 하겠기 때문이라네. 하하~!”
“알았네. 더 독촉하지 않을 테니 적천수나 설명해 주시게. 하하~!”
“오늘은 임(壬)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순서인가 본데?”
“맞아, 우선 내가 먼저 읽어보도록 하지.”
우창이 그렇게 말을 하고는 책을 펼쳐서 임수장(壬水章)을 읽었다.
임수(壬水)는 은하(銀河)에 통하고
능히 금기(金氣)를 설(洩)하니
강강(剛强)한 가운데 공덕(功德)이며
두루 흘러 막힘이 없다.
뿌리에 통하고 계수(癸水)가 투출(透出)하면
하늘과 땅을 휩쓸고 다닌다.
변화(變化)하면 유정(有情)하고
순종(順從)하면 상제(相濟)한다.
“원문을 보니 또 만만치 않아 보이는걸.”
“만만하면 경도 스승님이 아니지. 하하~! 어디 하나씩 풀어 보세나.”
우창이 원문을 보면서 풀이를 시작했다.
“처음에 나오는 글은, ‘임수통하’라고 했네. 임(壬)은 하(河)와 통(通)한다는데 이 하는 뭘 의하는 것일까?”
그 말을 듣자, 자원이 나섰다.
“황하(黃河)가 하(河)잖아요?”
그 말을 듣고 우창이 말했다.
“황하도 하이기는 하지, 강하(江河)라고 할 적에 강(江)은 장강(長江)을 말하고, 하(河)는 황하(黃河)를 말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경도 스승님이 말씀하려는 것이 과연 그 말일까?”
고월이 곰곰 생각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닐 것이라는 표현이기도 했다.
“고월의 생각으로는 지상(地上)의 물을 논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되네.”
“지상이 아니고서도 물이 있단 말인가?”
우창의 물음에 고월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하(天河)가 있지 않은가?”
“천하라고? 은하수(銀河水)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지.”
“오호~! 그것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긴 걸. 설명을 해 줘보시게.”
“지상(地上)과 은하수(銀河水)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고월은 뭐가 있다고 생각하나?”
“기체(氣體)가 있다고 봐야 하겠지?”
“기체라고? 그것은 임수의 본질이라고 하충 선생이 말했던 것이 아닌가? 오호, 기가 막힌 접근이로군. 더 설명을 해 주셔봐.”
“나도 전에는 떠오르는 것이 황하뿐이었거든. 그런데 하충 선생의 천간론을 접하고 나서는 ‘임수통하’의 의미를 달리 보게 되었던 것이지.”
“하여튼, 고월의 통찰력과 응용력은 타의 추종(追從)을 불허하는군.”
“칭찬을 해 주니 고맙군. 하하~!”
“그런데 너무 멀리 나간 것은 아닐까?”
“왜 안 되나? 태양도 우주인데, 태양을 병(丙)이라고 인용(引用)하면서 임(壬)으로 은하수를 대입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고 봤네. 구태여 사유(思惟)의 영역(領域)을 제한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군. 그렇다면 경도 스승님은 임(壬)이 공기와 같은 기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어쩌면 하충 선생이 경도 스승님의 의도를 알고서 확대해석을 했을 수도 있겠지. 여하튼 두 분 선생의 이야기는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이치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오호~! 재미있는걸. 다음 구절로 넘어가 보겠네.”
“그러지.”
“다음은, ‘능설금기’라고 했네. 능히 금기(金氣)를 배설(排泄)한다는 뜻인데 무슨 의미인지도 설명을 부탁하네.”
그러자 자원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야 당연히 금생수(金生水)라는 뜻이죠~!”
“오, 그것도 맞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지. 그렇지만 고월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은걸. 뭔가 조금은 더 깊은 뜻을 찾아낼 것 같단 말이지. 하하~!”
“임싸부, 무슨 뜻이 있는지 어서 설명해주셔 봐요~!”
“일차적으로는 금생수도 맞는다고 봐야 할 것이네. 다만, 금기(金氣)라고 하면 경(庚)이겠나? 아니면 신(辛)이겠나?”
“그야 양기음질(陽氣陰質)의 논리로 본다면 당연히 경(庚)을 말하는 것으로 봐야 하겠는데요. 맞죠?”
“맞아, 경(庚)의 기운을 빼어나게 해 준다는 의미로 본단 뜻이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죠?”
“경(庚)의 완고한 주체를 슬기롭게 만들어 주는 것은 지능적(知能的)으로 발전을 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겠지?”
“그건 맞는 말이에요.”
“기통기(氣通氣)하고, 질통질(質通質)한다는 논리로 대입을 한다면, 당연히 임(壬)은 경(庚)과 소통이 이뤄진단 말이거든.”
“가능하겠는걸요. 그래서요?”
호기심이 잔뜩 동한 자원이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렇다면 ‘능설금기’는 고체(固體)와 같은 경(庚)의 주체를 연마시켜서 세련(洗鍊)되게 해 준다는 뜻이 된다는 이야기이지.”
“그렇담, 임(壬)의 궁리(窮理)하는 성분이 여기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봐도 될까요?”
“왜 안 되겠어? 그것도 가능하다고 보겠네.”
“아무래도, 설(泄)자를 보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느껴진단 말이네.”
“그렇죠. 배탈이 나면, 설사(泄瀉)를 한다고 사용하기도 하잖아요. 호호호~!”
“아래로 빼어내는 것은 설사지만, 위로 빼어내는 것은 설기(洩氣)라고 하는 것이라네. 총명(聰明)하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
“아하~! 소녀의 비유가 적절하지 못했사옵니다. 임싸부~! 호호~!”
“웃자고 한 말이 아니었나?”
“예~! 맞사옵니다. 웃자고 한 말이었사옵니다~! 호호~!”
“설(泄)을 이해하려면, 설기정영(洩其精英)이라는 글귀를 이해하면 좋을 것 같군.”
“그런데 설(洩)과 설(泄)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져요?”
“설(洩)은 새어나간다는 뜻이고, 설(泄)도 새어나간다는 뜻이니 기본적인 의미는 같다고 봐야지. 그래서 구분이 없이 사용하기도 하지.”
“만약에 나눠서 대입한다면 어느 글자를 여기에다 사용하고 싶으세요?”
“느낌으로 말한다면, 설(洩)이 더 매력적이라고 할까?”
“왜 그렇죠?”
“설(洩)은 수(氵)예 예(曳)를 더한 것이고, 설(泄)은 수(氵)에 세(世)를 더한 것인데, 예(曳)는 왈(曰)이 있으니 말을 한다는 의미가 되고, 설(泄)은 세(世)가 세상을 의미하니까 말이지.”
“그렇다면 설(洩)은 진리를 남에게 말로 내보이고자 할 경우에 사용한다는 말씀이네요?”
“특별히 구별할 필요는 없지만, 은밀(隱密)한 이치를 몰래 보인다는 느낌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라네. 다만 실제로 사용할 적에는 구분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러한 것을 선비의 유희(遊戱)라고 말한다네. 하하~!”
“선비의 유희라뇨?”
“글자나 좀 배웠다는 인사들이 저희들만 아는 놀이를 하는 것이지 뭐겠는가. 하하~!”
“아, 그런 뜻이었군요. 호호~!”
“사실, 글자 놀이를 하기로 든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다 소모해도 부족할 지경이지. 하하~!”
“다음에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본과(本科)보다 별과(別科)가 더 재미있잖아요. 호호~!”
같이 한바탕 웃음을 나눈 다음에 또 우창이 다음 구절을 읽었다.
18. 공기(空氣)와 같은 존재(存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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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은 꼬박 3일을 책을 보지 않고 쉬었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가슴이 울렁거리고 책을 펴면 우창의 얼굴이 아른거려서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흔들리는 연심(戀心)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서야 비로소 숨이 가쁘게 공부했던 것들을 뒤돌아보면서 복습(復習)을 했다. 우창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가 또 엄군평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고 나면 심통(心痛)을 어떻게 다스릴 수가 없다는 것을 겪어 본 자원에게는 이대로 말없이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 지금은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기회인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방황하다가는 ‘게도 놓치고, 망태도 잃는 일’은 겪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러한 마음이 통했는지 얼씬도 하지 않던 우창이 아침의 상쾌한 기운과 함께 나타났다. 반가웠다.
“자원~!”
“네, 오라버니 오셨어요~!”
“하도 안 보여서 어디 아픈가 했지. 멀쩡하군. 하하~!”
“멀쩡하지 않으면요. 호호~! 공부하자고 데리러 오셨군요. 고마워요. 그렇잖아요. 오늘은 공부하자고 졸라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그럴 줄 알고 잘 찾아왔군. 그런데 이렇게 밖에다가 세워 놓을 참인가?”
“아, 내 정신~! 호호~! 들어오세요. 차를 드려야죠.”
“고맙군. 그럼 한 잔 얻어먹고 공부하러 갈까.”
“오늘은 모과차를 드릴게요.”
“그것도 좋지.”
잠시 후, 찻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자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라버니는 뭐 하고 지내셨어요?”
“뭘 하긴, 눈 뜨면 자원을 생각하고, 눈 감으면 또 자원을 생각하면서 지냈지. 하하~!”
“정말요~?”
“농담(弄談)일세. 농담 못하나. 하하~!”
자원은 그 마음을 이해하고, 눈을 곱게 흘기고는 농담 아닌 농담을 그냥 흘려버리고는 적천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임(壬)을 공부할 거죠?”
“그런가? 뭘 배웠는지도 잊어버렸군.”
“저번에 고량주가 너무 독했던가 봐요. 다 잊어버린 것을 보면 말이죠. 호호~!”
“그랬나? 참으로 몹쓸 술이로군. 하하~!”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을 미처 몰랐어요.”
“다행이네. 재미가 있어야 계속할 수가 있지.”
“검술을 배울 적에도 막혔던 것이 하나씩 뚫릴 때마다 쾌감이 두 배나 증가했는데, 글을 배우는 것에서도 그러한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그래서 책벌레가 되는 거야. 하하~!”
“그걸 이해할 수 있겠어요. 예전에는 글을 배운다고 하는 사내들을 보면, 겁 많고 소심한 사람들이 칼을 잡는 것을 두려워해서 책만 잡고 있는 것인 줄로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생각이 변하면 세상도 달리 보이는 법이지.”
“특히 재미있는 것은요.”
“그래. 재미있는 것이 뭐지?”
“예전에는 글의 뜻만 찾느라고 바빴거든요.”
“그런데?”
“요즘 두 싸부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글을 쓴 사람의 마음까지도 훤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호호~!”
“이제 조금 더 지나면 글 쓴 사람의 착각(錯覺)까지도 알아보게 될 거네. 하하~!”
“언제쯤이나 그렇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호호~!”
“암, 그렇게 되고말고.”
“더 재미있는 것은 경도 스승님과 하충 선생의 천간에 대한 관점을 이해한다는 것이에요. 또 다른 선생들의 마음은 어떨까도 궁금하고요.”
“궁금한 것이 많아야 발전을 하지. 그렇게 해서 열 분의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천간을 이해한다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지 않을까?”
“정말 재미있어요. 부자가 돈이 많다고 해도, 그 마음의 행복은 자원보다 더 나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봐요.”
“나날이 의식이 확장되고 있나 보군.”
“그럼요.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요. 호호~!”
“어찌 부자뿐이겠어? 권력을 가진 사람도 권력의 노예가 되는 거야.”
“그럼 진정한 자유인은 뭘까요?”
“그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지. 하하~!”
“꼭 옛날의 누구처럼 말씀하시네요.”
“엉? 옛날의 누구?”
“차 다 드셨으면 공부하러 가요~!”
“그래 가자~!”
그렇게 두 사람은 나란히 정원을 지나 고월의 처소에 다다랐다.
고월은 뭘 적느라고 벼루 앞에 앉아서 글을 쓰다가 고개를 돌려서 방문자를 맞는다.
“어서 오시게들. 오랜만에 보니 더 반갑군~!”
“오늘은 또 한 수 배우려고 왔지. 잘 계셨지?”
“나야 뭐 항상 잘 지내지. 자원도 반갑네.”
“임싸부~ 자원이 인사 드려요~!”
“그래 공부가 잘되어 가시는지 얼굴에 도티가 팍팍 나는군. 하하~!”
“모두가 임싸부 덕분이옵니다~! 호호~!”
하던 일을 뒤로 밀쳐놓고 공부할 자리를 마련하는 고월에게 우창이 물었다.
“그런데, 뭘 그리 열심히 적고 계신 건가?”
“아, 이거?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이 있어서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 보는 것이라네.”
“그게 뭔지 좀 들어봐도 되겠나?”
“궁금하겠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시게. 아직은 시험적인 발상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좀 더 궁리를 해 봐야 하겠기 때문이라네. 하하~!”
“알았네. 더 독촉하지 않을 테니 적천수나 설명해 주시게. 하하~!”
“오늘은 임(壬)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순서인가 본데?”
“맞아, 우선 내가 먼저 읽어보도록 하지.”
우창이 그렇게 말을 하고는 책을 펼쳐서 임수장(壬水章)을 읽었다.
임수통하 능설금기(壬水通河 能泄金氣)
강중지덕 주류불체(剛中之德 周流不滯)
통근투계 충천분지(通根透癸 沖天奔地)
화즉유정 종즉상제(化則有情 從則相濟)
임수(壬水)는 은하(銀河)에 통하고
능히 금기(金氣)를 설(洩)하니
강강(剛强)한 가운데 공덕(功德)이며
두루 흘러 막힘이 없다.
뿌리에 통하고 계수(癸水)가 투출(透出)하면
하늘과 땅을 휩쓸고 다닌다.
변화(變化)하면 유정(有情)하고
순종(順從)하면 상제(相濟)한다.
“원문을 보니 또 만만치 않아 보이는걸.”
“만만하면 경도 스승님이 아니지. 하하~! 어디 하나씩 풀어 보세나.”
우창이 원문을 보면서 풀이를 시작했다.
“처음에 나오는 글은, ‘임수통하’라고 했네. 임(壬)은 하(河)와 통(通)한다는데 이 하는 뭘 의하는 것일까?”
그 말을 듣자, 자원이 나섰다.
“황하(黃河)가 하(河)잖아요?”
그 말을 듣고 우창이 말했다.
“황하도 하이기는 하지, 강하(江河)라고 할 적에 강(江)은 장강(長江)을 말하고, 하(河)는 황하(黃河)를 말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경도 스승님이 말씀하려는 것이 과연 그 말일까?”
고월이 곰곰 생각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닐 것이라는 표현이기도 했다.
“고월의 생각으로는 지상(地上)의 물을 논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되네.”
“지상이 아니고서도 물이 있단 말인가?”
우창의 물음에 고월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하(天河)가 있지 않은가?”
“천하라고? 은하수(銀河水)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지.”
“오호~! 그것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긴 걸. 설명을 해 줘보시게.”
“지상(地上)과 은하수(銀河水)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고월은 뭐가 있다고 생각하나?”
“기체(氣體)가 있다고 봐야 하겠지?”
“기체라고? 그것은 임수의 본질이라고 하충 선생이 말했던 것이 아닌가? 오호, 기가 막힌 접근이로군. 더 설명을 해 주셔봐.”
“나도 전에는 떠오르는 것이 황하뿐이었거든. 그런데 하충 선생의 천간론을 접하고 나서는 ‘임수통하’의 의미를 달리 보게 되었던 것이지.”
“하여튼, 고월의 통찰력과 응용력은 타의 추종(追從)을 불허하는군.”
“칭찬을 해 주니 고맙군. 하하~!”
“그런데 너무 멀리 나간 것은 아닐까?”
“왜 안 되나? 태양도 우주인데, 태양을 병(丙)이라고 인용(引用)하면서 임(壬)으로 은하수를 대입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고 봤네. 구태여 사유(思惟)의 영역(領域)을 제한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군. 그렇다면 경도 스승님은 임(壬)이 공기와 같은 기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어쩌면 하충 선생이 경도 스승님의 의도를 알고서 확대해석을 했을 수도 있겠지. 여하튼 두 분 선생의 이야기는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이치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오호~! 재미있는걸. 다음 구절로 넘어가 보겠네.”
“그러지.”
“다음은, ‘능설금기’라고 했네. 능히 금기(金氣)를 배설(排泄)한다는 뜻인데 무슨 의미인지도 설명을 부탁하네.”
그러자 자원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야 당연히 금생수(金生水)라는 뜻이죠~!”
“오, 그것도 맞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지. 그렇지만 고월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은걸. 뭔가 조금은 더 깊은 뜻을 찾아낼 것 같단 말이지. 하하~!”
“임싸부, 무슨 뜻이 있는지 어서 설명해주셔 봐요~!”
“일차적으로는 금생수도 맞는다고 봐야 할 것이네. 다만, 금기(金氣)라고 하면 경(庚)이겠나? 아니면 신(辛)이겠나?”
“그야 양기음질(陽氣陰質)의 논리로 본다면 당연히 경(庚)을 말하는 것으로 봐야 하겠는데요. 맞죠?”
“맞아, 경(庚)의 기운을 빼어나게 해 준다는 의미로 본단 뜻이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죠?”
“경(庚)의 완고한 주체를 슬기롭게 만들어 주는 것은 지능적(知能的)으로 발전을 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겠지?”
“그건 맞는 말이에요.”
“기통기(氣通氣)하고, 질통질(質通質)한다는 논리로 대입을 한다면, 당연히 임(壬)은 경(庚)과 소통이 이뤄진단 말이거든.”
“가능하겠는걸요. 그래서요?”
호기심이 잔뜩 동한 자원이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렇다면 ‘능설금기’는 고체(固體)와 같은 경(庚)의 주체를 연마시켜서 세련(洗鍊)되게 해 준다는 뜻이 된다는 이야기이지.”
“그렇담, 임(壬)의 궁리(窮理)하는 성분이 여기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봐도 될까요?”
“왜 안 되겠어? 그것도 가능하다고 보겠네.”
“아무래도, 설(泄)자를 보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느껴진단 말이네.”
“그렇죠. 배탈이 나면, 설사(泄瀉)를 한다고 사용하기도 하잖아요. 호호호~!”
“아래로 빼어내는 것은 설사지만, 위로 빼어내는 것은 설기(洩氣)라고 하는 것이라네. 총명(聰明)하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
“아하~! 소녀의 비유가 적절하지 못했사옵니다. 임싸부~! 호호~!”
“웃자고 한 말이 아니었나?”
“예~! 맞사옵니다. 웃자고 한 말이었사옵니다~! 호호~!”
“설(泄)을 이해하려면, 설기정영(洩其精英)이라는 글귀를 이해하면 좋을 것 같군.”
“그런데 설(洩)과 설(泄)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져요?”
“설(洩)은 새어나간다는 뜻이고, 설(泄)도 새어나간다는 뜻이니 기본적인 의미는 같다고 봐야지. 그래서 구분이 없이 사용하기도 하지.”
“만약에 나눠서 대입한다면 어느 글자를 여기에다 사용하고 싶으세요?”
“느낌으로 말한다면, 설(洩)이 더 매력적이라고 할까?”
“왜 그렇죠?”
“설(洩)은 수(氵)예 예(曳)를 더한 것이고, 설(泄)은 수(氵)에 세(世)를 더한 것인데, 예(曳)는 왈(曰)이 있으니 말을 한다는 의미가 되고, 설(泄)은 세(世)가 세상을 의미하니까 말이지.”
“그렇다면 설(洩)은 진리를 남에게 말로 내보이고자 할 경우에 사용한다는 말씀이네요?”
“특별히 구별할 필요는 없지만, 은밀(隱密)한 이치를 몰래 보인다는 느낌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라네. 다만 실제로 사용할 적에는 구분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러한 것을 선비의 유희(遊戱)라고 말한다네. 하하~!”
“선비의 유희라뇨?”
“글자나 좀 배웠다는 인사들이 저희들만 아는 놀이를 하는 것이지 뭐겠는가. 하하~!”
“아, 그런 뜻이었군요. 호호~!”
“사실, 글자 놀이를 하기로 든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다 소모해도 부족할 지경이지. 하하~!”
“다음에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본과(本科)보다 별과(別科)가 더 재미있잖아요. 호호~!”
같이 한바탕 웃음을 나눈 다음에 또 우창이 다음 구절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