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제10장 간지의 세계/ 15. 신금에게 주어진 사명

작성일
2017-02-20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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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제10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15. 신금(辛金)에게 주어진 사명(使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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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월(古越)과 자원(慈園)의 재촉을 받은 우창(友暢)이 적천수를 펼치고는 신금(辛金)을 읽었다.

 

신금연약 온윤이청(辛金軟弱 溫潤而清)

외토지첩 요수지영(畏土之疊 樂水之盈)

능부사직 능구생령(能扶社稷 能救生靈)

열즉희모 한즉희정(熱則喜母 寒則喜丁)

 

신금(辛金)은 연약(軟弱)하지만

따뜻하고 윤택(潤澤)하면 맑아진다.

 

토(土)가 많이 쌓이는 것은 두려워하고

수(水)는 넘치는 것을 좋아한다.

 

능히 농사(農事)의 신(神)을 도와서

백성의 생명(生命)을 구원(救援)한다.

 

더우면 어머니를 기뻐하고

추우면 정화(丁火)를 기뻐한다.

 

다 읽고 난 우창이 이어서 풀이로 들어갔다.

“그럼 풀이를 해 보겠네. ‘신금연약’이라, 신금은 연약(軟弱)하다고 했는걸? 이것은 ‘경금대살’과는 현격(懸隔)한 차이가 난다고 봐야 하겠지?”

자원도 한마디 거들었다.

“신금이 연약하다니 탐욕과도 거리감이 느껴지는걸요.”

“아마도, 신금이 연약하다는 것은 음간(陰干)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군. 이것은 ‘을목수유’나 ‘정화유중’이나 ‘기토비습’과 같은 맥락으로 쓰였다는 것으로 알 수가 있지 않을까?”

고월의 풀이에 대해서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우창이 다시 자기 생각을 피력했다.

“사실, 유(柔)와 연(軟)은 뿌리가 같은 곳에서 출발한 글자라고 봐도 되지 싶은걸. ‘유연(柔軟)’으로 같이 사용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말이지.”

“그렇겠군. 그렇다면 음금(陰金)의 별명 정도로만 이해해도 되겠네. 다음 구절로 넘어가 보세.”

“다음은, ‘온윤이청’이라고 했네. ‘따뜻하게 하고 윤택하게 되면 맑다’는 뜻인데 역시 수화(水火)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보이지 않나?”

우창의 말을 듣고 고월이 말했다.

“맞아, 경(庚)의 ‘득수이청’과 같은 의미로 윤(潤)을 사용했고, ‘득화이예’와 같은 의미로 온(溫)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네. 다만 경(庚)이 화를 얻어 예리해지는 것은 논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네.”

“생각해 보면, 예리(銳利)하다는 것은 양(陽)의 특성이라서 중요하게 논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일까? 다음의 구절도 살펴보고 또 생각해 보면 좋겠어.”

“다음은, ‘외토지첩’인데 ‘토가 중첩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뜻이 아닌가?”

우창의 말에 고월이 설명했다.

“그 말은 오행전도론에 나온, ‘토생금(土生金)이나 토다금매(土多金埋)니라.’에 대한 구절을 인용(引用)한 것으로 보이는군.”

“아, 경(庚)에서 ‘토건즉취’에서는 조열한 토를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그러한 의미보다는 그야말로 조건 없이 토가 많으면 두려워한다는 것이 명백하다고 하겠네.”

고월도 우창의 설명에 동조했다. 그리고는 다시 생각을 말했다.

“병(丙)의 빛과 신(辛)의 관계로 함께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는걸. 우창의 생각은 어떤가?”

“토를 토양(土壤)으로 본다면, 신(辛)이 병(丙)의 빛을 흡수(吸收)하는데 중간에 흙에 덮여 있으면 빛은 그것을 뚫을 수가 없으니까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 말이지.”

“타당한 논리인걸.”

“다음으로 넘어가 보겠네. ‘요수지영’이라고 했으니 물이 넘치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걸. 고월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이 구절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도 난해(難解)한 걸. 여기에 대해서는 후일에 경순형님께 다시 여쭤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러게 말이네. 신(辛)은 토(土)가 많은 것을 싫어하지만, 수(水)가 많은 것은 좋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신(辛)의 특성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알 수가 없는걸.”

그러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원이 의견을 말했다.

“두 싸부님들의 열띤 토론에 빠져들어서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으시네요.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그 말에 고월이 반색을 한다.

“의견이라면 당연히 환영이네. 무슨 말이지?”

“이 구절에서의 수(水)는 신(辛)이 탐욕스럽게 모아놓은 결과(結果)라고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탐욕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보니까 금생수(金生水)의 이치로 마치 벌이 꿀을 집에다가 차곡차곡 쌓아놓고서 흐뭇해하는 모습이 떠올랐거든요. 물론 말이 안 되겠죠?”

우창과 고월이 서로 얼굴을 보고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다시 자원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월이 말했다.

“아니, 자원의 생각이 이렇게 놀라운 영감을 발휘할 줄은 생각지 못했어. 그냥 경순형님께 물어봐야 하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옆에다가 해답의 보물덩어리를 두고서 경솔했어. 멋진 말이야. 짝짝짝~!”

우창도 같이 박수쳤다. 그리고는 자원의 의견에 보충 삼아 이야기했다.

“오호~! 멋진 말이야~!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었군. 자원의 말에 깨달음을 얻었네. 고맙게도 말이지. 원래 여인은 자기 자식들이 배불리 밥을 먹는 것은 그렇게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아마도 같은 관점으로 경도 스승님이 이 글귀를 지은 것으로 봐도 되겠어.”

“어느 어머니가 자식들이 배불리 먹는 것을 싫어하겠어요? 다만 보통의 엄마는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균등하게 바라본다고 한다면, 신(辛)의 마음에는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기의 자식들에 대해서만 챙기면 된다는 것이죠? 맞는 말씀 같아요.”

우창이 그 말에 다시 동조하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경도 스승님은 이미 신(辛)의 탐욕을 파악하고 계셨다는 말인가? 참으로 대단한 선견지명(先見之明)이셨구나.”

“그렇다면 이것이 해결되었으니 다음 구절로 넘어가 봐도 되겠네. 다음은 뭐라고 되어있지?”

“다음은, ‘능부사직’이라고 했네. 풀이를 해 보면, 농사의 신을 돕는다는 말이 되는데, 이것은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지 모르겠는걸.”

“아, 사직(社稷)은 농사의 신이란 말인가?”

“그렇지. 보통 종묘사직(宗廟社稷)이라고 말들을 하지 않는가. 종묘는 왕의 조상들을 모셔놓은 사당이고, 사직은 농사의 신을 모셔놓은 것이니 농업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직업이라고 하는 말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들었네.”

“그런데, 신(辛)이 어떻게 농사의 신을 돕는다는 말인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는걸.”

“글쎄 쉽지 않은 의미로군. 농사와 신(辛)의 관계를 어떻게 연결해야 할 것인지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모르겠네.”

두 사람은 문득 말을 하다가 말고 다시 자원을 바라봤다. 혹 여기에 대해서도 무슨 의견이 있으면 말을 해 보라는 도움의 눈길이었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자원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인 있는데, 사실 말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빛을 흡수하는 것이 신(辛)의 본질이라는 이야기를 연결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자원이 이렇게 말을 하자 고월이 흥미를 보이면서 재촉했다.

“그래서?”

“농작물(農作物)이 결실을 거두려면 태양의 열기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신(辛)의 힘이 그러한 일을 해 준다고 보면 결국은 농작물을 결실로 이끌어 주는 것이 농사의 신인 사직(社稷)을 돕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하자면, 곡식이 익기 위해서는 볕을 받아야 하는데 그 일을 신(辛)이 대신해서 도움을 준단 말인가?”

“그렇죠. 빛을 흡수해서 결실에 도움을 준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죠.”

“오, 그것도 말이 되는걸. 우창은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전적으로 동감하네. ‘곡식의 신을 돕는다.’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 과연 자원의 직관력은 상당하군.”

“맞아, 그보다 더 정확한 풀이는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렇다면 다음 구절도 살펴보세.”

“다음은 ‘능구생령’이네. ‘능히 살아있는 영혼을 구제(救濟)한다.’는 뜻으로 풀이가 되네. 한데, 살아있는 영혼이란 것이 도대체 뭘까?”

“살아있는 영혼이라면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을 살아있는 영혼이라고 말한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아, 육신에서 분리되면 귀(鬼)라고 하지 않나?”

“그렇지.”

“그런데 육신에 붙어 있다고 해서 영적(靈的)인 존재라고 할 수가 없을까?”

“당연히 영적인 존재가 맞지.”

“이렇게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도 영혼이란 말이네. 그러다가 정신이 나가버리게 되면 넋을 잃었다고 하고 정신이 나갔다고도 하지.”

그 말에 우창은 비로소 이해가 되는 듯했다.

“그러니까 고월의 말을 들어봐서는 인간을 구제하는 것도 신(辛)이란 말이 아닌가?”

“오호~! 이렇게 되면 앞의 구절과 잘 맞아 떨어지는걸.”

“어디 설명을 들어보세.”

“그러니까 간단하지 않은가? 햇볕을 받아들여서 결실에 이르게 하려는 사직(社稷)의 노력을 도와서 결실을 이루게 만들고, 그 곡식은 다시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라고 생각이 되네.”

“오, 기가 막힌 풀이로군. 그보다 더 정확한 해석은 없을 것으로 생각이 되네. 언뜻 신(辛)은 탐욕스러운 존재로만 인식이 될 뻔했는데 이 구절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음양의 작용에서 양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겠군.”

“맞아~! 경도 스승님의 용의주도(用意周到)함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어.”

“따지고 보면, 앞에서 언급한 네 구절은 그냥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군. 오히려 이 한 구절을 핵심(核心)의 의미가 된다는 것을 명료(明瞭)하게 알겠네.”

“과연~! 이러한 생각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이미 신(辛)의 탐욕과 병신합(丙辛合)의 관계에 대해서 정통(精通)하고 있었다는 말이로군.”

병신합이 나오자 자원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병신합이 작용한다는 것이죠? 조금 더 풀어서 설명을 해 주셔야 이해가 되겠어요.”

“병(丙)은 빛이라고 했고, 신(辛)은 빛을 빨아들이는 것이라고 했으니 두 천간이 합을 하면 일방적으로 빛은 신에게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고, 이것은 병(丙)의 ‘봉신반겁’에서도 짐작이 될 만한 내용이기도 하네. 그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이러한 관계를 고려했다고 보는 것이지.”

“그래서 더욱 신뢰감(信賴感)이 드는 적천수이기도 하지. 고월의 설명으로 이러한 것이 모두 정리되는 것을 알 수가 있겠네.”

“그래, 점점 명료해지는 이야기들로 인해서 신명이 나는군. 다음의 구절도 풀어봐야지?”

“알았네. 다음은 ‘열즉희모’라, ‘뜨거우면 어머니를 기뻐한다.’라고 했는데, 아마도 화(火)의 공격을 너무 많이 받게 되면 마음대로 자기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을까?”

“글 중에서 열(熱)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하겠는걸.”

“왜? 무슨 뜻이지?”

“열(熱)은 정(丁)이고, 광(光)은 병(丙)인데, 병은 좋아하지만 열은 두려워한다는 것으로 이해를 할 수가 있겠단 말이지.”

“오호~! 멋진 해석인걸.”

“그런데 마지막 구절에서는 뭐라고 했지?”

“마지막 구절은, ‘한즉희정’이라고 했는걸. 이번에는 오히려 정(丁)을 좋아한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니까 추울 적에는 정(丁)이 좋다는 말이니까 앞에서 한 ‘열즉희모’는 지나치게 많은 정(丁)은 싫어하고, 오히려 냉기가 많으면 도리어 정(丁)을 좋아한다는 말이로군.”

“잘 이해하셨네. 생각해 보면 정(丁)은 원칙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분의 심리라고 본다면 신(辛)은 탐욕스러운 것이므로 원칙을 싫어한다는 말도 되지 않겠느냔 말이지.”

“그렇겠군. 자신이 욕망에 거슬리게 되면 싫어한단 말도 되겠는걸.”

“그러다가 또 너무 많은 탐심을 발휘하게 될 적에는 법률(法律)의 통제를 받게 될 수도 있으므로 마음대로 못하게 될 테니 자기를 보호하려는 마음도 있단 말이 된다면 참으로 완벽한 신(辛)이라고 하겠어. 하하~!”

“이러한 것을 찾아내느라고 경도 스승님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명상으로 보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네. 정말 훌륭한 선학(先學)이시란 것을 알고 나니 더욱 머리가 숙여지는걸.”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신금(辛金)에 대한 풀이를 마치고는 다들 피로감이 느껴졌다. 우창이 먼저 말했다.

“그것참 이상하군. 신금에 대해서 공부만 했는데도 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그러자 고월도 그 말을 받아서 말했다.

“우창도 그렇게 느껴졌나? 뭔가 알지 못할 존재들에게 기운을 빼앗긴 느낌이 들었거든.”

자원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호호~! 두 싸부님들의 지혜의 힘을 병신합(丙辛合)으로 흡수해버렸나 봐요. 글자만 논하는데도 기운은 그것을 감지하고 흡수(吸收)한단 말인가요? 참 오묘한 이치네요.”

그 말에 우창도 웃으면서 말했다.

“문자(文字)에도 기운이 있는 것이 아닐까? ‘고량진미(膏粱珍味)’라는 네 글자를 보면 왠지 모르게 맛있어 보이지 않는가? 하하~!”

“오호~! 그렇다면 서신(書神)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그야 무엇엔들 신이 없겠는가. 당연하다고 봐도 되겠네.”

“그러니까 글자를 써도 좋은 뜻으로 이치에 맞게 써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말이 되네. 여하튼 까닭 모르게 피로하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쉬도록 하세. 다음에 또 하면 되지.

그래서 다음 공부는 좀 쉬었다가 하자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각자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