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제10장 간지의 세계/ 14. 신체와 정신의 호칭

작성일
2017-02-19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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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제10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14. 신체(身體)와 정신(精神)의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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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온 조은령은 일찍이 맛보지 못했던 학문의 열정에 대한 열기를 맛보았다. 천진의 하북원에서는 인체에 대해서 공부하고 무공을 연마하는 것으로 기쁨으로 삼았었다. 그런데 정신세계에 대한 첫발을 들이고 보니 이것은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가 없을 만큼 짜릿함이 있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몸에 대해서는 웬만큼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심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이 없었던 자신이 전혀 다른 세상에 발을 들어놓은 지금의 마음은 그야말로 환희(歡喜)의 세계(世界)를 만난 느낌이었다.

인체를 공부할 적에도 간지(干支)에 대해서 공부는 했지만, 이렇게 천지자연의 이치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의식은 물질세계에서 정신세계의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겨간 것 같은 즐거움은 무엇과도 비길 수가 없었던 것이기도 했다.

공부의 세계에서 느끼게 된 마음에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상(仔詳)한 우창과, 우직(愚直)한 고월의 두 싸부가 전달해 주는 가르침도 참으로 소중하고 해박(該博)한 경순의 핵심을 짚어주는 가르침에서는 전율(戰慄)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다들 호를 사용하는데 자기는 아직 변변한 호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그것부터 하나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공부의 길로 들어섰으니 몸에 부여된 이름보다는 정신에 붙일 이름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해 봐도, 정신에 이름을 붙여줘야 참다운 학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늦게야 겨우 잠이 들었다.

문득, 종소리에 잠이 깨니 벌써 날이 환히 밝았고, 아침식사의 종이었다. 그래서 입맛이 없어서 간단히 죽을 한 그릇 먹고는 잠시 명상에 잠겼다. 마음을 정돈하고 어제 공부한 것에 대해서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음양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더 깊이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세상의 삼라만상이 모두 음양과 오행의 울타리 안에서 돌아가는 조화(調和)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궁리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도 즐거운 일이었다.

이렇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밖에서 우창의 소리가 들렸다.

“령아는 일어났어?”

그 소리가 오늘따라 무척이나 정겹게 느껴졌다. 얼른 대답하고 문을 열었다. 우창이 웃으면서 서 있었다.

“어쩐 일이세요? 진싸부~!”

“음. 내가 반갑기는 한 게군. 하하~!”

“그럼요~! 반갑고말고요~! 어서 들어오세요. 호호~!”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서 물었다.

“무엇을 가르쳐 주시려고 이렇게 일찌감치 나들이하셨어요?”

“가르치긴 뭘 가르쳐. 그냥 밤사이에 잘 지내셨나 궁금해서 와 봤지. 하하~!”

“참, 진싸부.”

“어? 웬 정색을?”

“이제 저도 아호(雅號)를 하나 만들어 주세요. 다들 호를 사용하시는데 저만 없어서 이젠 하나 갖고 싶어졌어요.”

“그래? 그럼 하나 만들면 되지.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아호는 령아의 정신에게 붙여주는 이름이잖아요.”

“오호~! 그거 참 멋진 말이군. 그래서 뭘 사용하고 싶어?”

“그야 제가 어떻게 알아요. 하나 지어 주세요. 첫 싸부시잖아요. 호호~!”

“호는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을 생각해서 짓는 것도 좋거든.”

“그런데 진싸부는 왜 우창(友暢)이죠?”

“그것은, 벗들과 함께 세상의 이치를 밝혀서 창달(暢達)하고자 한다는 뜻으로 스승님이 지어주신거야.”

“좋으시겠어요. 훌륭하신 스승님께 호를 받으시고요.”

“아무렴~!”

“참 좋은 뜻이네요. 그래서 좋은 도반을 만나시나 봐요.”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승님이 아셨던 게지.”

“그럼 임싸부의 고월(古越)은 무슨 뜻일까요?”

“그야 고월에게 물어봐야지. 아마도 옛날의 월나라에서 태어났다는 뜻이 아닐까 싶은 짐작만 해 봤지. 하하~!”

“그럼 저는 어떤 호를 사용해요?”

“그렇게 우는 아이가 젖 달라고 보채듯 하면 어떡하누. 참 내~!”

“뭐가 어려워요? 그냥 문득 진싸부가 생각나는 거 하나 척 던져주시면 되죠.”

“그러게 갑자기 ‘자(慈)’라는 글자가 떠오르네. 이런 거 맘에 들어?”

“자(慈)라고요?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이잖아요. 좋고 말고죠. 감히 그러한 뜻을 감당할 수가 있을지가 걱정이죠. 호호~!”

“그렇다면 뒤의 글자는 원(園)으로 할까?”

“동산이라는 뜻이에요? 그렇담 어떻게 해석이 되죠?”

“자애(慈愛)로운 동산이라는 뜻이 되는걸.”

“엄머머~! 너무 멋져요~! 진싸부 감사해요~!”

“그런데 우리끼리 있을 적에는 진싸부 말고 그냥 싸부라고 하면 안 될까?”

“왜요?”

“조금 더 멀어진 것 같잖아?”

“에구 참~! 오라버니도. 호호호~!”

“오라버니 그거 참 좋다. 하하하~!”

“알았어요~! 그럼 둘이 있을 적엔 오라버니로 불러 드릴게요. 그럼 되었죠?”

우창이 싱글거리고 좋아하는 것을 보자 조은령도 마음이 기뻤다. 아무리 공부를 한다고 해도 마음은 결국 남녀인 까닭이다.

“그럼 자원(慈園)이 정신의 주체인 경금(庚金)에게 붙여주는 이름인 거예요? 오라버니께서 멋지게 풀이를 해 주세요~!”

“자원우창(慈園友暢)이라~!”

“엄머~! 오라버니 호랑 같이 붙여버리는 거예요?”

 

심중자장탐원리(心中慈藏探源理)


소요자재지혜원(逍遙自在智慧園)


 

“시도 한 수 붙여주시니 더욱 멋져요~!”

“해석이나 해 보셔봐.”

 

자애로움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진리의 근원을 탐구하나니

아무런 걸림도 없이 자유자재로

밝은 지혜의 동산에서 소요하네

 

“이렇게 해석하면 될까요? 너무 제멋대로 해석한 것 같죠?”

“오호~! 제법인걸. 시적(詩的)인 감각이 있는 줄은 몰랐는걸.”

“너무 멋져요~! 고마워요. 오라버니싸부~!”

“에구, 하나만 하셔~! 오라버니를 하든가, 사부를 하든가. 하하~!”

“큭큭~! 그냥 좋아서 아무렇게나 마구마구 떠들고 싶어져요.”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자원으로 불러줄게.”

“그런데 칠언절구가 반밖에 없잖아요? 나머지도 채워주시면 안 돼요?”

“그걸로 똑떨어지는데 뭘 더 채워?”

“자원우창이라매요~!”

“어? 내가 그랬나?”

“어서 마무리를 해 줘봐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호호~!”

“그래 볼까?”

자원이 잔뜩 기대하고 있는 모습에서 대충 얼버무리는 우창.

 

왕래도우여한담(往來道友與閑談)


의기화창도화경(義氣和暢桃花景)


 

우창이 글을 쓰자 자원이 보면서 풀이를 했다.

 

오가는 도반들과 어우러져

함께 여유롭게 나누는 이야기들

그 뜻에 마음이 조화롭게 펼쳐지니

이곳이야말로 진정 신선의 풍경일세

 

“제법이네~! 하하하~!”

“멋져요~! 나중에 돌에다가 새겨서 평생 짊어지고 다닐 거예요. 호호호~!”

“그러지 말아. 그냥 맘에 담으면 만고에 가벼운 것을. 하하~!”

“오라버니께 자원이 감사드려요~! 열심히 공부할게요.”

진심으로 좋아하는 자원을 보니 흐뭇한 우창이었다.

“자원은 어제 잘 잤어?”

“잘 자는 게 뭐예요.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어요. 왜요?”

“나도 통 잠이 들지 않아서 정리를 하느라고 대략 뜬눈으로 밤을 새웠거든.”

“그러셨구나. 어째요~!”

“뭘, 아침에 쾌활한 자원을 보니까 밤새 쌓인 피로가 말끔히 날아가는걸. 하하~!”

“어쩜~! 저도, 아니 자원도 그래요. 지금은 날아갈 것 같은걸요. 호호~!”

“그렇다면 산책이나 갈까?”

“좋아요~!”

두 사람은 가벼운 차림으로 후원을 지나서 수렴동(水簾洞)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백화(百花)가 흐드러지게 핀 정원을 지나니 이내 호젓한 산길이 나왔다. 새롭게 돋아난 잎사귀들의 연둣빛이 점차로 짙어지고 있는 자연의 풍경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다.

“오라버니는 명학 공부가 재미있으세요?”

“당연하지. 이렇게 재미가 있는 공부를 하게 된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를 정도인걸.”

“저도요~!”

“그런 것 같았어. 재미있어하고 알고 싶어 하는 표정을 보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 하하~!”

“정말요~?”

“그럼~!”

“자원도 오라버니가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알려 주려고 애쓰시는 것을 보면 감동의 물결이 가슴속에서 파도(波濤)를 치거든요. 적천수를 다 배우고 나면 뭔가 대단한 자원으로 변해 있을 것만 같아요. 그런 설렘이 마음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것이 참 신기해요.”

“열심히 공부하다가 보면 생각은 수십 번도 더 바뀔 거야. 그렇게 점점 깊어지는 학문 속에서 지혜는 무럭무럭 자라겠지.”

“참으로 신기해요. 진즉에 몰랐다는 생각이 아쉽기조차 하다니까요. 호호~!”

“항상 중요한 것은 지금이야. ‘이 순간’에 뭘 하느냐가 중요할 뿐이거든. 그래서 과거나 미래에는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게 되는 것이기도 한 거야.”

“맞아요. 마음이 상쾌해요. 또 공부하러 가요. 오라버니.”

“그래. 적천수를 또 봐야지.”

“오늘은 무슨 가르침을 배우게 될지 궁금해요.”

산책을 마치고는 각자의 처소에서 공부에 대한 준비를 한 다음에 다시 고월의 처소로 모였다.

“고월, 잘 쉬셨는가~!”

“여, 어서 오시게.”

방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은 다음에 우창이 말을 꺼냈다.

“령아는 자원이라는 호를 지었다네. 앞으로 그렇게 불러 주시게. 하하~!”

“오, 자원. 좋군. 자비의 동산이라, 가르침이 도장(道場)으로 멋진 주인 노릇을 하시겠는걸. 우창이 지어줬구나.”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임싸부?”

“그냥 넘겨짚었지 뭐. 하하~!”

멋쩍어진 우창이 적천수를 펼치면서 말했다.

“어제는 경(庚)에 대해서 배웠으니 오늘은 신(辛)을 풀어봐야지?”

“자원도 기대돼요. 그 속에는 또 무슨 이치가 들어있을까 싶어서요.”

그러자 고월이 자원에게 물었다.

“아, 자원은 신(辛)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뭐지?”

“그야 반짝이는 보석이죠~!”

“왜?”

“왜는 뭘 왜예요? 여인에게 왜냐고 물으시면 그냥 방그레 웃지요. 호호~!”

“하하하~! 그렇게 되나?”

“아이, 농담도 못해요~! 사실 인간의 탐욕이 떠오르죠.”

그 말에 우창도 한마디 했다.

“하충 선생이 말했다는 흑체(黑體)의 이야기를 몰랐다면 아직도 신(辛)은 보석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지 않았겠나 싶어.”

고월이 그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 그 보석은 탐욕의 결정체(結晶體)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니까 비로소 인간의 욕망(慾望)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깨닫게 되는 것 같더군.”

“이렇게도 간단한 천간의 열 글자로부터 자연의 모습과 인간의 심리를 모두 읽고 생각할 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단 말이지.”

고월의 그 말에 우창도 같은 생각이었다.

“사실 두 싸부님 덕택에 자원은 그야말로 건성으로 따라가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곰곰 생각을 해 보면 그중에서도 자신이 필요한 만큼은 깨닫고 있다는 것을 알겠어요.”

“당연하지. 그릇만큼 담을 수가 있으니까. 하하~!”

“그릇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임싸부.”

“그릇은 수용성(受容性)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또 수용성(受容性)은 이해력(理解力)을 바탕으로 존재하게 되니 결국은 이해하는 정도가 바로 그릇의 크기라고 보면 되겠군.”

“아하~! 이해력이었군요. 그러니까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릇에 담을 수가 없는 큰 물건이란 뜻이겠네요? 그래서 그릇을 자꾸만 키워야 해요. 호호~!”

우창이 자원의 기발한 말에 웃으면서 화답을 했다.

“어? 그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군. 말이 되는걸. 하하~!”

고월이 좀 더 거들었다.

“큰 물건도 되고 많은 물건도 되겠지. 큰 물건이라면 큰 그릇에 담으면 제대로 담기는 것이고, 작은 그릇에는 아예 담을 수가 없겠지. 그러나 많은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마치 콩을 그릇에 담는 것과 같아서 그릇의 크기만큼만 담기고 나머지는 흘러넘친다고 이해를 할 수가 있겠는걸.”

“역시 임싸부의 말씀은 항상 명료하군요. 고마워요. 아마도 공부의 이치를 논한다면 큰 물건보다는 콩의 비유가 더 적절하지 싶어요. 왜냐면 물을 담는 것과 같은 의미이니까요.”

그 말에 우창도 장단을 쳤다.

“그렇다면 많은 물을 담지 못해서 그냥 흘려버린다면 얼마나 아깝겠냐는 생각이 절로 들겠는걸. 우창도 열심히 그릇을 키워야 하겠네. 하하~!”

“그럼 또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 공부를 해 볼까?”

“옙~! 기대하고 있어요.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