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제10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 5. 정신단련(精神鍛鍊)의 교관(敎官)

작성일
2017-02-10 05:54
조회
2225
[111] 제10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5. 정신단련(精神鍛鍊)의 교관(敎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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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우창이 입을 열었다.

“고월, 이렇게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어떻게 말인가?”

“경순형님께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서 말이지.”

“무슨 이야기?”

“병화(丙火)는 난폭(亂暴)하다고 했거든.”

“그러셨지. 그래서?”

“병화를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경금(庚金)이 아니겠나?”

“그야 당연한 이야기로군.”

“경금은 주체(主體)인데 그 자존감(自尊感)으로 뭉쳐진 경금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난폭한 자를 만났을 때란 말이지.”

“음…….”

“난폭하다는 것은 굴복(屈伏)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굴복한다는 것이 또 자존감에서는 상처가 난단 말이야.”

“오~! 그렇겠는걸. 그래서?”

“그래서는 뭘 그래서인가. 그러니까 가장 두렵다는 의미이지.”

“난, 난폭한 것과 서리와 눈이 무슨 관계가 되는지가 이해되지 않네.”

“그것은 역경(逆境)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어떨까? 병화는 칼을 든 무사가 팔이나 다리를 잘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틴다고 보면 어떨까?”

“음…….”

“아, 앞에서도 나왔지 않은가? ‘오양개양병위최’라고 말이지.”

“그랬지. 오양(五陽)이 모두 양이지만 병(丙)이 그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이 정도의 병이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된다고 해서 굴복을 하겠느냐는 의미로 해석을 해 볼 수가 있지 않겠느냔 말이지.”

“글쎄 말이야. 그게 아무래도 과장(誇張)된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아, 령아에게 물어볼까? 서리와 눈은 오행이 뭘까?”

“엄머~! 진싸부~ 저에게도 관심을 주셔서 고마워요. 두 싸부들끼리만 이야기를 나누셔서 외로울 뻔했단 말이에요. 호호~!”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서리와 눈은 오행이 수(水)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수극화(水剋火)이치로 보면 안 되겠군. 양화(陽火)는 수의 공격을 받아도 꿋꿋하게 버틴다는 의미로 말이지. 그러니까, 수극화이지만 임수(壬水)는 병화(丙火)를 극하지 못한다고.”

그렇게 해석을 했는데도 여전히 고월은 선뜻 동의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도 그러한 생각까지도 해 봤는데 여하튼 경도 스승님의 병화 사랑은 약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리 병화라도 수의 극을 받으면 수그러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냔 생각을 주체할 수가 없단 말이네. 하하~!”

“그렇다면 ‘기상모설’의 부분은 그대로 두고 넘어가지. 경도 스승님도 사람이니까. 하하~!”

“양중지양(陽中之陽)이라는 것에 의한 존중이라고 보면 되지 싶군.”

“알았네. 그렇다면 다음 구절을 설명해 주게나.”

“다음은 ‘능단경금’이로군. 능히 경금(庚金)을 단련(鍛鍊)한다는 뜻이니까 언뜻 생각하면 매우 쉬운 것 같지?”

“고월의 말투로 봐서는 여기에도 속뜻이 있단 말이로군?”

“맞았네! 어디, 무슨 뜻이 숨어있는지 한 번 찾아봐.”

“경(庚)은 양금(陽金)이니 양대양(陽對陽)으로 화극금(火剋金)을 하므로 꼼짝을 못 한다는 의미인 것은 알겠는데 말이지.”

“여기에서 하충 선생이 말했다는 그 이치가 빛을 발휘하게 되지.”

그 말에 우창은 경순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하충 선생? 경(庚)은 자존감이라고 하셨는데? 자존감은 아무에게도 굴복을 하지 않는 것이잖은가?”

“당연하지, 그래서 자신이 아닌 남에게는 굴복하지 않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고 하셨지. 그러나 병화에게는 다르다는 이야기라네.”

다시 우창이 생각에 잠겼다. 조은령은 무슨 말이 나올 것인지를 궁금해서 다음 말을 기대했다. 두 사람이 말이 없자 고월이 말을 이어 갔다.

“내 생각에는, 경금이 다른 천간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는데 병화에게만은 단련을 받을 이치가 무엇이겠는가?”

“모르지. 화극금의 이치가 분명한데도 꿋꿋한 자존감으로 버틴다면 병화의 공격에서도 끄떡없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만 드네.”

우창이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듯이 답했다.

“하충 선생이 병화(丙火)를 빛으로 본다는 것에서 암시를 얻었다네.”

“빛이라…….”

“세상에서 제일 밝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야 빛이 아닌가?”

“빛은 밝은 것이지?”

“당연하지.”

“밝은 것을 불교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혹 아는가?”

“불교라고? 불교에서 그 암시가 있단 말인가?”

“내 생각에는 지혜(智慧)가 병(丙)으로 차용(借用)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네.”

우창이 그 말을 듣자 문득 느낌이 왔다.

“오,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네.”

조은령도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귀를 기울였다. 그만큼 고월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뜻이었다. 우창은 말이 이어갔다.

“불교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오직 마음이라고 했네. 유심론(唯心論)도 그렇고 유식론(唯識論)도 마찬가지라네. 여기에서 말하는 주체는 자아(自我)가 되는 것으로 보는 것에 무리가 없을 것이네.”

“그것은 나도 동의하겠어.”

“그 자아는 바로 경(庚)이라는 것이 경순형님의 풀이였는데 또한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되거든.”

“나도~!”

“저도요~!”

“수행하는 자아(自我)에 해당하는 경(庚)이 아직 도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는, 제팔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과 같은 것으로 본다면 도를 깨달은 밝은 스승으로부터 지혜의 빛을 받아야만 깨달음에 도달한단 말이야.”

“그렇지. 맞는 이야기네~!”

“그래서 불교의 수행자들은 어둠을 나타내는 번뇌(煩惱)나 무명(無明)을 가장 싫어하고, 그 반대에 해당하는 깨달음, 대각(大覺), 빛과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단 말이네.”

“맞아, 원래 도를 얻은 사람을 ‘밝은 사람’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능단경금’은 어리석은 주체에게 깨달음의 자극을 줘서 단련시킨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라네.

“오호~! 앞뒤가 척척 들어맞는 이야긴걸.”

“멋져요 진싸부~!”

그 말에 신명이 난 우창이 계속 이야기를 풀어 갔다.

“그냥 단순히 화극금(火剋金)으로만 본다고 해도 안 될 것은 없겠지만, 유심론으로 봤을 적에는 무명의 어리석은 주체자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병화의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빛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느냔 말이지. 그러한 경금이기에 병화의 단련 받기를 절실하게 희망하겠느냔 말이지.”

“정말. 우창은 천부적(天賦的)인 소질을 갖고 태어난 학자로군. 하하~!”

“괜한 말은 하지 말게나. 하하~!”

“맞아요! 진싸부의 말씀에 령아도 전적으로 공감이에요~!”

극찬(極讚)을 듣고 보니 괜히 멋쩍어진 우창이 화제(話題)를 전환했다.

“그건 그렇고, 다음 구절은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까?”

“아, ‘봉신반겁’말인가? 신(辛)을 만나면 도리어 두려워서 겁낸단 말이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서도 우창의 고견을 듣고 싶은걸.”

“신(辛)은 어둠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빛은 어둠을 두려워한다고 이해를 하면 어떨까?”

“어둠이라기보다는 흑체(黑體)라고 했다면서? 흑체는 어둠보다 더 깜깜한 존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는걸.”

“어둠보다 더 깜깜하다는 것이 있을 수가 있나?”

“어둠은 빛을 받으면 사라지지만 흑체는 아무리 빛을 받아도 여전히 흑체이기 때문이지.”

“오호~! 흑체가 원래 그런 의미였단 말인가?”

“그냥 ‘암흑(暗黑)’이라고 했으면 어둠으로 봐도 무방하지만, ‘검은 물체’라고 했으면 이건 좀 다른 의미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네.

“그렇다면 자아(自我)에 해당하는 경금은 병화를 만나서 빛을 받아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지만, 바탕 자체가 완전히 깜깜한 신금은 병의 빛도 무력화시켜버린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는데.”

우창의 말을 받아서 고월이 신금에 대한 의견을 내어놓자 다시 생각에 잠긴 우창이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사실 사람의 마음에서 가장 검은 것은 탐욕(貪慾)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신금의 속성(屬性)에는 그러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면, 탐욕의 본질은 끝이 없다고 봐야 하겠지. 모든 것을 다 삼켜버리는 탐욕은 밝은 지혜도 무색(無色)케 한단 말이 되겠네.”

그때, 고월이 색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혹, 병신합(丙辛合)에 대한 이야기일 수는 없을까?”

“병신합(丙辛合)이라면?”

“간합(干合)에 대해서 못 들어 봤는가?”

“자세히 모르겠는걸. 무슨 의미이지?”

“그래? 그렇다면 설명을 해 주겠네. 우선 구결(口訣)부터 들어보게.”

 

갑기합(甲己合) 화토(化土)

을경합(乙庚合) 화금(化金)

병신합(丙辛合) 화수(化水)

정임합(丁壬合) 화목(化木)

무계합(戊癸合) 화화(化火)

 

“이렇게 되어있는 것이 합화론(合化論)에 대한 구결이라네.”

가만히 구결에 대해서 듣고 있던 우창이 물었다.

“그러니까, 갑(甲)과 기(己)가 합(合)을 한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토(土)가 된다는 뜻인가 본데?”

“그렇다네. 간합론(干合論)이라고도 하고 합화론(合化論)이라고도 한다네.”

“말인즉, 갑이 기와 만나면 합하여 토가 된단 것이잖은가?”

“맞아.”

“그럼 갑은 양토인 무(戊)가 되나? 아니면 음토인 기(己)가 되나? 그것도 아니면 제삼(第三)의 전혀 다른 또 하나의 토가 되는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상세한 해석은 없다네.”

“우선 듣기에는 상당한 모순을 갖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이야기만 듣고 있던 오은령이 반색을 하고 나섰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가 나와서 반갑다는 표정이다.

“아하~! 간합(干合)에 대한 이야기는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비롯한 것이고, 이것은 나중에 오운육기(五運六氣)라는 이론으로 진화를 한 것이에요.”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동시에 말했다.

“그래?”

“그래?”

“황제내경의 소문(素問)에 보면, 「오운행대론(五運行大論)」에 그에 대한 구절이 있어요.”

성급한 고월이 바짝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어떤 구절이 있단 말이지?”

“워낙 긴 말이라서 생략하고 해당 부분만 말씀드리면요. 황제(黃帝)가 귀유구(鬼臾區)에게 물었대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귀유구가 말하기를 ‘토주갑기(土主甲己),금주을경(金主乙庚),수주병신(水主丙辛),목주정임(木主丁壬),화주무계(火主戊癸)’라는 구절이 있어요. 아마도 글의 배치는 달라도 뜻은 같은 말 같아서 문득 생각이 났어요. 호호~!”

그 말을 듣고 우창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우와~! 이제 보니 령아의 의학에 대한 지식이 상식을 넘어가서 있었군. 놀라워. 앞으로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하겠는걸.”

“뭘요. 호호~!”

칭찬의 말이 싫지는 않았는지 웃으면서 좋아한다. 우창은 고월을 보고 말했다.

“여보게 고월. 그렇다면 천도(天道)에 있는 이치를 논하고 있단 말이지 않은가?”

그 말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만 잠겨있던 고월이 다시 조은령에게 물었다.

“령아, 그렇다면 그러한 이론은 어떻게 전개된다고 되어있는지 조금만 더 설명을 해 주실 수가 있겠나?”

“그야 뭐 어렵지 않아요. 갑기년에는 토운(土運)이 천지를 장악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갑년(甲年)에는 토기가 태과(太過)하고, 기년(己年)에는 토기가 부족(不足)하다는 거죠. 그로 인해서 태과하면 태과한 것으로 인해서 병이 생기고, 부족하면 부족한 것으로 인해서 또 병이 생긴다는 이야기예요.”

조은령의 설명을 듣고 잠시 생각하던 고월이 입을 열었다.

“그런 논리라면, 병신(丙辛)년에는 수운(水運)이 장악하게 되어서 병화의 화 기운이 없어지기 때문에 두려워한다는 말로 해석을 할 수가 있겠나?”

“맞아요, 임싸부~!”

“그렇다면 그것은 잘못 유입(流入)된 이론으로 봐야 하겠는걸.”

그 말을 듣고 우창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었다.

“아니, 무슨 생각을 하신 거지?”

“생각해 봐. 의학에서 논하는 천지의 기운을 인간의 심성을 논하는 병화에 끌어다 붙여서 어쩌겠다는 거냔 말이지. 이것은 괜한 확대해석(擴大解釋)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드네.”

“그렇다면 경도 스승님도 황제내경을 공부했단 말인가?”

“그럴 수야 있겠지만, 적어도 병신이 합하여 수(水)가 되기 때문에 두려워한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단 말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이 되네. 그렇다면 탐욕과 지혜의 만남에서 밝은 지혜도 지독한 탐욕에서는 아무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으로 정리하면 되지 않을까?”

“동의(同意)~! 마치 거대한 문어가 게를 잡아서는 다리로 감싸버려서 보이지 않듯이 말이지.”

“저도 동의해요~!”

그러자, 고월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생각지도 못한 령아의 상식으로 인해서 우리 적천수 공부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어서 너무 좋구먼. 고마워~!”

“아니에요. 저도 작은 도움이나마 된다면 기쁜 일이죠~! 호호~!”

유쾌하게 웃는 웃음소리가 뜨락을 지나 마당의 끝까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