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제10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 4. 맹렬(猛烈)한 병화(丙火)

작성일
2017-02-09 05:54
조회
2068
[110] 제10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4. 맹렬(猛烈)한 병화(丙火)

=======================

상쾌한 아침의 산책길은 생각을 가다듬는데 최상이었다. 하루의 계획도 좋고, 어제 궁리한 연구의 정리도 좋다. 이렇게 조용히 숲길을 거닐면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자연의 맑은 공기를 가득 받아들인 우창은 상쾌한 마음으로 처소에서 조은령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간밤에 푹 쉬었는지 상큼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녀를 보니 공부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얼굴에는 호기심으로 넘쳐나는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여~! 오늘은 더욱 곱군.”

“그래요? 정말 싸부는 뭘 보실 줄 안단 말이에요. 호호~!”

“어서 가자.”

“근데, 고월선생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요?”

“아, 그것도 생각해 봐야 하는구나.”

“그냥 싸부라고 할까요? 두 분이 령아에게 공부를 시켜 주실 거니까요.”

“뭐 안 될 것도 없지. 그럼 임사부라고 할까? 이름이 임원보니까.”

“그렇다면 싸부는 진싸부로 할까요?”

“그럼 되겠네. 아무래도 호칭이 잘 되어야 편안하게 질문하기도 좋지.”

“그럼 그렇게 결정할게요. 호호~!”

“좋겠네.”

“그럼요~! 싸부가 많은 것이 최고의 행복이죠~!”

애교가 섞인 조은령의 표정을 보면서 꽃이 생각났다.

“참, 어제 꽃을 갖다 놨던데 가고 난 다음에서야 봤어. 고마워.”

“뭘요~! 령아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더 있겠어요? 좋으셨으면 그걸로 행복해요. 호호~!”

“그럼, 좋고말고~! 그래도 수고스러우니까 하지 않아도 돼.”

“그냥 좋아서 하는 거예요~!”

“아, 그래 알았어. 하하~!”

그렇게 웃고 이야기 나누면서 고월의 처소에 다다랐다. 마침 고월은 손님이 올 것을 준비하느라고 방을 치우고 있었다.

“잘 쉬셨는가?”

“어서 오게나, 우창~!”

“여기 동행한 신입 제자이네. 인사드려 조 낭자~!”

고월은 조은령을 바라보면서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시오. 낭자. 누추한 곳을 찾아주니 침침하던 방이 밝은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소이다.”

“처음 뵈어요. 소녀 조은령이에요. 앞으로 많이 귀찮게 할 거예요. 미리 감사드립니다~!”

“잘 오셨소. 조 낭자~!”

자리에 앉아서 준비한 찻잔을 하나씩 잡았다.

“어머, 제가 좋아하는 오룡차(烏龍茶)예요~! 잘 마실게요.”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소이다. 이번에 나들이 길에 문득 눈에 띄기에 조금 구해 왔소이다.”

고월은 이 여인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를 판단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 같아서 우창이 웃으면서 교통정리를 했다.

“여보게 고월.”

“아, 왜 그러나?”

“조 낭자는 우리의 제자가 되기로 했으니 말은 낮춰서 하면 되네.”

“맞아요~! 싸부님으로 호칭할 테니 그냥 령아라고 해 주시겠어요?”

“아니, 사부는 무슨…….”

“그게 아닐세, 내 생각에도 그게 좋을 것 같네. 그러니 앞으로 령아는 내게는 진사부, 고월에겐 임사부라고 호칭을 하면 되겠네. 알았지?”

“옙~! 여부가 있습니까요. 진싸부, 임싸부 잘 부탁드려요~!”

무슨 말을 할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호칭이 정리되었다. 우창의 말에 고월도 편안한지 바로 화답(和答)을 했다.

“그렇잖아도 어떻게 말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했는데 그렇게 한 방에 정리를 해 주니 참 편안하군. 하하하~!”

“아~! 오룡이 향은 진하고 색은 맑은 것이 복건오룡(福建烏龍)의 맛이 나요. 참 오랜만에 마셔 봐요.”

“오호~! 령아의 감상이 놀라운 걸~! 맞아. 복건에서 나온 오룡을 좋아해서 구했던 것인데 그렇게 알아주니 보람이 있군.”

그 말을 듣고 녹차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우창이 거들었다.

“그런가? 녹차랑 별반 차이점을 모르겠는데?”

“아이참~! 그렇게 둔하면 어떻게 해요~! 오룡은 두고두고 마셔도 되지만 녹차는 한 해가 지나면 이내 맛이 변한단 말이에요.”

“그래? 난 그냥 마실 뿐이라서. 하하~!”

“사람도 녹차 같은 사람도 있고, 오룡차 같은 사람도 있어요.”

“오호~! 그렇다면 령아의 차 강의를 좀 들어볼까?”

“뭐, 원하신다면야 뭐가 어렵겠어요. 호호~!”

“원하옵나니 녹차와 오룡차에 대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쳇~! 그렇게까지 정색을 하시면 나오려던 말도 도로 들어가 버리죠~!”

조은령의 자태와 말하는 것이 귀여웠던지 고월도 연신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나도 차에 대해선 별로 아는 바가 없으니 어디 설명을 좀 해 줘봐.”

“령아도 아는 것은 별로 없어요. 다만 녹차를 조금 더 숙성(熟成)시켜서 오래 보관할 수가 있도록 만들어서 일명 청차(靑茶)라고도 하죠.”

“숙성이라면 발효(醱酵)와는 다른 건가?”

“비슷하다고 해도 되고요. 다만, 발효가 되려면 보이차(普洱茶) 정도는 되어야죠.”

“보이차? 그건 또 무슨 차지?”

“운남(雲南)에서 나오는 차예요. 대엽종(大葉種)으로 만들어서 깊은 맛과 발효된 맛은 오래오래 사귄 벗과 같죠.”

“차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구나.”

“다음 기회가 되면 조금 더 이야기를 들려 드릴 게요. 오늘은 공부해야죠. 아무래도 차에 대한 이야기는 취미(趣味)이니까요. 호호~!”

“그런데, 청차라면 녹차와 색이 좀 다르다는 이야긴가?”

그러자 조은령은 차호를 열고 찻잎을 하나 꺼내어서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보세요. 찻잎이 녹색이면서도 맑은 청기를 띄고 있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그런 것도 같은걸.”

“쳇~! 알았어요. 먹고 마시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진싸부예요.”

우창은 맛을 보고서 그러한 것을 구별하는 것이 신기했다.

“근데 복건의 오룡차인 줄은 어떻게 알지?”

“맛에도 두께가 있어요. 두터우면 남방차고 얇으면 북방차죠.”

“맛에 두께가 있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지?”

“후미(厚味)라고 말을 할 수가 있죠. 가벼운 것을 맹물로 생각하면 돼요.”

“아, 맹물을 기준으로 삼는단 말이지?”

“맞아요. 녹차는 조금 두껍고 오룡차는 또 좀 더 두껍죠.”

“들으니까 그런가보다 하지 잘 모르겠어.”

“괜찮아요. 사람마다 민감한 기관은 서로 다르니까요.”

“오, 그것참 재미있는 말인걸.”

“소리에 민감한 사람도 있어요. 아마도 진싸부는 소리에 민감하시죠?”

“어떻게 알았어? 맞아~!”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맛에 민감한 사람, 향에 민감한 사람, 소리에 민감한 사람, 촉감에 민감한 사람이 있는 것이거든요.”

“그렇구나.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온갖 허풍을 떠는데 괜히 하는 수다인 줄만 알았더니 참으로 그렇게 민감한 사람이 있나 보군.”

“당연하죠. 령아는 맛에 민감하고, 진싸부는 소리에 민감하고, 아마 모르긴 해도 임싸부는 색에 민감하실 것 같아요. 어때요?”

그러면서 고월을 바라보는 조은령. 고월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대단하네~! 맞아, 나는 색에 대해서 민감하고 빛에 대해서도 민감해서 밤에 불빛이 밝으면 잠도 못 잔다니까. 하하~!”

“이러한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전오식(前五識)’이란 것이 있어요.”

그 말에 고월의 눈이 커지면서 물었다.

“아니, 령아는 불교학에 대해서도 조예(造詣)가 있으시구나.”

“조예랄 것은 없고요. 전오식이 불교의 용어인 줄 알아보는 임싸부의 조예가 깊으신 거예요. 호호~!”

엊그제 들었던 경순의 심리학 강의를 바로 써먹는데 우창은 모른 체할 수밖에 없었다. 령아는 한쪽 눈을 우창에게 찡긋하고는 계속 능청을 떨었다.

“제가 천진의 하북원에 있으면서 도사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주워들은 풍월(風月)이니 깊이는 없어요. 다만 인체의 작용에 대해서 조금 이해한 것이 전부에요.”

“그래서? 사람을 보면 그러한 것을 안단 말인가?”

고월이 신기해하면서 관심을 보이자 조은령도 신명이 났다.

“사람은 육근(六根)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발달한 부분이 있어요. 안근(眼根)이 발달한 사람은 빛과 색에 민감하죠.”

조은령의 이야기에 고월이 더 적극적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어떻게 알아보느냔 말이야~!”

“오늘 처음 뵙지만 임싸부의 눈빛이 맑잖아요. 이것은 안식(眼識)이 발달했다는 것을 의미하죠.”

우창도 나섰다.

“그럼 나는?”

“진싸부는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하시거든요. 멀리 일리(一理:400m) 밖에서 나는 동물의 발자국소리도 들리실 거예요.”

“맞아, 잠을 자다가도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는 민감하거든.”

“그래서 저마다 잘할 수가 있도록 발달된 부분을 살린다면 오히려 세상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볼 수도 있죠. 호호~!”

듣고 있던 우창이 궁금한 마음이 생겨서 물었다.

“그렇다면 령아는 어느 기관이 발달한 거지?”

“아니, 여태 말씀드렸잖아요? 맛에 민감하단 말이죠. 주방에서 요리하는 사람은 제 입맛을 맞출 수가 없어서 ‘까탈스럽다’고 하겠죠? 호호~!”

“재미있는 이야기로군. 그래서 맛을 모르는 나는 차면 다 차로 느껴지고 밥이면 다 밥으로 느껴지는 모양이군.”

“사실 입맛은 둔할수록 경제적으로 유리함이 많죠.”

“그건 또 무슨 까닭이지?”

“아, 생각해 봐요.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보다 맛있는 것을 민감하게 찾는 사람은 고급의 재료로 만든 음식에 마음이 갈 것이잖아요.”

“아, 그 말이군. 그렇다면 소리도 마찬가지겠네?”

“그건 왜죠?”

“귀가 예민하면 소리도 고급스러운 소리만 들으려고 할 것 아냐? 악사(樂士)가 연주하더라도 시시한 것은 귀에 차지 않을 테니까 말이지. 하하~!”

우창의 말에 조은령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뭐든 적당한 것이 좋아요. 그렇지만 녹차와 오룡차 정도는 구분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호호~!”

“그건 그렇겠네. 애써서 좋은 차를 만들어 줘도 그것이 좋은 줄을 모른다면 주인은 서운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지.”

이렇게 말을 하면서 우창이 고월을 바라보자 고월도 웃었다.

“딴은~!”

“덕분에 향기로운 차의 이야기와 함께 잘 마셨네. 그렇담 이제 또 공부를 해 볼까? 오늘은 뭘 가르쳐 줄 건가?”

“아, 그래 오늘은 병화(丙火)에 대해서 살펴볼 순서이지 싶네.”

그러면서 고월이 적천수를 펼쳤다. 그리고는 우창에게 내밀었다. 읽으라는 신호였다.

“그럼 어디 읽어 볼까~! 오랜만에 봐서 잘 보이기나 하려나 모르겠군.”

 

丙火猛烈 欺霜侮雪(병화맹렬 기상모설)

能煅庚金 逢辛反怯(능단경금 봉신반겁)

土衆成慈 水猖顯節(토중성자 수창현절)

虎馬犬鄕 甲來成滅(호마견향 갑래성멸)

 

병화(丙火)는 맹열(猛烈)하여

서리를 속이고 눈을 업신여긴다.

 

경금(庚金)능히 단련(煅煉)시키지만

신금(辛金)을 만나면 도리어 두려워한다.

 

토(土)가 무리를 이뤄도 자애심(自愛心)으로 이뤄주고

수(水)가 창궐(猖獗)해도 절개(節槪)가 있다.

 

인오술(寅午戌)이 모여 있을 적에

갑(甲)이 오면 소멸(燒滅)하게 된다.

 

다 읽고 나서는 다시 고월을 바라다봤다.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지 들려달라는 눈짓이었다.

“병화(丙火)는 맹렬(猛烈)하다는 말이로군. 그래서 난폭하다는 말도 나온단 이야기도 되는 거야.”

“병화는 양화이니까 빛과 같다고 봐도 되겠는데, 빛이 맹렬하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하면 좋을까?”

그 말을 듣더니 조은령이 까르르 웃었다.

“아니, 봄날에 햇볕에 나가면 얼굴이 까맣게 된단 말이에요. 그보다 더 난폭한 것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병화가 맹렬하다는 말에 정말 동감이에요.”

그 말에 고월도 받았다.

“그렇군, 원래 시어머니가 봄밭에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밭에는 딸을 내보낸다는 속언(俗言)도 있지. 하하~!”

“그렇다면 여자들은 볕을 정말 싫어하는 모양인걸.”

“당연하죠. 볕을 좋아하는 여인네는 아마도 세상에 없을 거예요.”

“그럼 모두 합의를 본 것으로 하면 되겠군. 다음에는 기상모설(欺霜侮雪)이군.”

고월이 원문을 읽자 우창이 받았다.

“기상은 서리를 속인다는 이야기이고, 모설은 눈을 업신여긴다는 뜻으로 보면 되겠지? 왜 그런지는 설명이 필요하겠는걸.”

“아, 서리는 가을 하늘의 냉기(冷氣)를 말하고, 눈은 겨울날의 추위를 포함하고 있는 뜻이라네. 그래서 볕이 약한 가을이나 겨울의 병화라도 약하다고 하면 안 된다는 의미라네.”

“오, 그렇군. 보통은 겨울이면 추위를 느끼고 볕이 약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잖은가?”

그 말에 다시 고월이 주석을 달았다.

“난 좀 생각이 달라. 아무래도 경도 스승님은 병화숭배자였던 것으로 보인단 말이야. 왜냐면 병화를 너무 과대평가(過大評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거든.”

“그건 무슨 말인가?”

“생각을 해 보게. 빛도 약하면 어둠에게 묻혀버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그래서 밤이 되면 빛은 사라지고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지 않느냔 말이지. 그런데 유독 병화는 아무리 환경이 열악해도 버틴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아?”

우창이 그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정말 듣고 보니 고월의 말이 일리가 있는걸. 아무리 그래도 진리를 깨달은 경도 선생이 편견을 갖고 글을 썼단 말인가? 그건 이해를 할 수가 없는걸.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세 사람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조은령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이고, 우창은 과연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가 편견(偏見)으로 글을 남겼겠느냐는 의혹이 생겨서이고, 고월은 상식이 진리라면 이것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