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제9장 천간(天干)의 소식(消息) / 13. 높은 산과 중력(重力)의 차이

작성일
2017-02-03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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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제9장 천간(天干)의 소식(消息)

13. 높은 산과 중력(重力)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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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과 조은령이 화(火)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이뤄진 것으로 판단을 한 경순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토(土)를 이야기해 볼까?”

“옙~! 이미 귀한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었어요. 선생님.”

조은령이 재빠르게 대답을 했다. 경순이 조은령을 보고 미소를 지은 다음에 다시 설명했다.

“양토(陽土)는 무(戊)가 되고 음토(陰土)는 기(己)가 되는 것은 알지?”

“우제는 알고 있습니다만, 령아는 이제부터 배워야 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이야기 속에서 배워가면서 공부하면 되지.”

“모르긴 해도 무(戊)는 감정적이고, 기(己)는 이성적이겠습니다.”

“당연하다네.”

토의 이야기가 나오자 조은령이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는지 한마디 거든다.

“보통 무(戊)는 산(山)이라고 하고, 기(己)는 농토(農土)라고 하잖아요?”

“그렇게들 말하지.”

“그건 일리가 있는 건가요?”

“생각해 볼까? 보통 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산은 높죠~!”

“그렇다면 고인들이 무토의 의미에 대해서는 ‘높다’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던가 보군.”

“그렇죠?”

“아마도 그랬을 것으로 생각해 보는 거지.”

“그럼 다른 속뜻이 있었던 걸까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느낌에서 그건 본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걸요.”

“눈치를 챘나? 하하~!”

“그럼요~! 선생님도 마음을 얼굴에서 숨기지는 못하신단 말이에요. 호호~!”

“사실 무(戊)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높다는 것이고, 산보다 더 높은 것이 있다면 비유의 대상은 또 바뀔 수가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산보다 더 높은 것이 있어요?”

“천상(天上)~!”

“아, 하늘의 위를 말한다고요?”

“그렇다네. 팔괘에서 건(乾)은 십간에서 무(戊)와 같다고 보면 될 것이네.”

“산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하늘이라뇨~! 의외(意外)예요.”

“모든 것이 다 처음 듣게 되면 의외가 되지. 하하~!”

“그럼 기(己)는요?”

“기는 팔괘의 곤(坤)과 같다고 보면 되지.”

“그렇다면 그것은 서로 같다고 봐도 되겠네요.”

“그런데 기(己)는 몸이라는 뜻도 있지.”

“맞아요. 그것은 또 무슨 뜻이에요?”

“이 몸은 땅에서 나온 것이라는 뜻이지.”

“을(乙)이 몸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아, 그건 하충 선생의 주장이지. 물론 하충 선생은 기(己)를 몸이라고 하진 않았어. 다만, 일반적으로는 몸기(己)라고 하니까 그것을 말하는 것이야.”

그 말을 듣고 있는 우창이 말했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기(己)와 땅과 사람을 동일시(同一視)했단 말이군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그리고 사람의 눈으로 위를 바라보니 가장 높은 곳에 보이는 것이 산이 있으니까 무는 높은 산이라는 개념을 갖고서 양토(陽土)를 높은 산이라고 한 것이지.”

“그런데 형님. 팔괘의 간(艮☶)이 양토이고 산을 의미하잖아요? 그렇다면 무(戊)는 간(艮)과 같이 보면 안 될까요?”

“아마도 옛날에는 그렇게 봤는지 모르겠고, 지금도 강호의 술사(術士)들은 또한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그러나 하충 선생의 비결을 얻어서 알게 된 다음부터는 절대로 그렇게 볼 수가 없게 되어버렸지 뭔가. 하하~!”

“글자는 그냥 있는데 그것을 해독(解讀)하는 관점이 변화하는 것이로군요.”

“맞아~! 그것을 학문의 발전이라고 하지.”

“형님께서는 하충 선생의 주장을 십분(十分) 신뢰(信賴)하시는가 봅니다.”

“물론이지. 특별히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수정을 하면 되지.”

“알겠습니다. 자연의 이해가 깊으신 형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우제도 그리 알고 열심히 따르겠습니다.”

“아마도 당분간은 후회가 없을 것이네.”

“그렇다면 천상(天上)이란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늘이라고는 해도 하늘 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고인들은 천상에는 옥황상제(玉皇上帝)가 계시는 신들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지.”

“그렇다면 무(戊)는 신계(神界)란 말입니까?”

“언뜻 들으면 그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런 것은 인정할 수가 없다네.”

“신계를 부정하시는 겁니까?”

“부정(否定)이 아니라 미확정(未確定)이라고 해야 하겠지.”

“그건 무슨 뜻이지요?”

“아직 확정하지 못한다는 말이지 않은가. 왜냐면 내가 보거나 느끼거나 만지거나 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천상이라는 말을 하시는 것도 무리잖습니까?”

“물론 달리 특별한 말이 없어서 빌려 온 것이라네.”

“그렇다면 뜻을 이해해야 하겠네요. 설명해 주세요.”

“하늘에서 인간을 지켜주는 보호막(保護膜)이 있다는 거야. 물론 그것은 기체로 이뤄졌기 때문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

조은령이 눈빛을 발하면서 물었다.

“아, 그런 것이 있단 말이군요. 마치 무공의 절정(絶頂)에 달하면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몸을 감싸서 금강불괴신(金剛不壞身)이 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맞아~! 아주 적절한 비유로군. 강기(罡氣)를 말하는 것이잖은가?”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땅의 강기(罡氣)가 무(戊)라는 말씀인 거지요?”

“오~! 무예를 하는 조 낭자는 바로 알아듣는구나. 맞아.”

“강기로 몸을 감싸게 되면 만검불침(萬劍不侵)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땅이나 사람이나 모두 같은 이치라는 말씀이네요. 와~ 신기해요~!”

“그것의 보호를 받는 영역을 대기권(大氣圈)이라고 한다네.”

“오, 대기권이요? 처음 들어요.”

“말하자면 하늘의 구름도 그 보호막 아래에서 떠다니다가 비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

우창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그런데 형님?”

“왜?”

“무예에서 강기니 뭐니 하는 것은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지 않습니까? 일상적인 모습에서 적절한 비유는 없을까요?”

“오호~! 자연은 일상적이어야 한단 말인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 계란(鷄卵)을 아는가?”

“닭이 낳은 알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알다 뿐이겠습니까? 하하~!”

“그 알을 삶아서 절반을 자르면 어떻게 되어있나?”

“그야 껍질의 안쪽으로 흰자가 있고, 그 안에 노른자가 들어있죠.”

“바로 그와 같다고 보면 된단 이야기야.”

“예?”

“계란을 삶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면 어떻게 될까?”

“그야 맑은 액체에 둘러싸인 노른자가 되겠지요.”

“하충 선생의 『심리추명(心理推命)』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지.”

“어떻게 되어있습니까?”

“가만……. 오 맞아~!”

 

천상유막여란청(天上有膜如卵淸)

무토본질대기권(戊土本質大氣圈)

 

“이렇게 되어 있다네. 처음에는 무슨 뜻인가 싶어서 여러 날을 골몰(汨沒)했는데 비로소 그 이치를 알게 되었다네.”

“무슨 뜻이지요?”

우창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묻자. 쉽게 설명했다.

 

하늘 위에 막(膜)이 있으니 달걀의 흰자위 같네

무토의 본질이란 대기의 거대한 울타리라네.

 

“아, 그런 뜻이었군요. 그러니까 이 땅은 계란의 노른자와 같고, 대기권은 흰자위와 같다는 뜻인데 보이지는 않는 맑은 것이지만 분명히 하늘에 존재한다는 의미로군요.”

“맞아, 정확히 이해했네. 하하~!”

“듣고 보니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야 우형이 적절한 비유를 들었기 때문이겠지? 하하~!”

“이제야 무(戊)를 산이라고 한 것과 대기권이라고 한 것의 차이가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역시 하충 선생의 혜안(慧眼)이 놀랍습니다.”

“그것 보게. 일단 한 번 이해하고 나면 다시는 무를 산이라고 할 마음은 생기지 않는단 말이 이해가 되지?”

“그렇습니다. 과연 안목은 중요합니다.”

“기본적인 개념이 이해가 되었다면 다행이네.”

“당연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애써 주신 결과입니다. 하하~!”

그러자 조은령이 선뜻 나서서 말했다.

“그럼 이제 무기토(戊己土)의 마음을 들려주세요.”

“아, 그럴까? 무(戊)는 고독(孤獨)한 마음이라고 한다네.”

“왜 고독입니까?”

“높은 곳에 있으면 고독하지 않겠는가?”

“그렇겠습니다. 산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고독할 텐데 더 높은 곳이 살고 있다면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높고, 이상도 높은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땅이므로 이러한 성분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고독한 마음이 되기 쉽다고도 하지.”

“말씀을 들어봐서는 흡사 부처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아, 세상의 생로병사(生老病死)에 대해서 통찰을 하고 고독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지?”

“물론입니다. 그래서 대각(大覺)을 이루셨지만, 그 출발선에서는 무(戊)의 작용이 있었다고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맞았네. 대체로 산중에서 수행하는 사람들. 세상에서 적응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성분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하겠네.”

이렇게 말을 하자 조은령이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무(戊)가 없으면 고독하지 않을까요?”

“사주에 없더라도 당연히 고독할 수가 있지.”

“왜 그렇죠?”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상 누구나 십간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누구나 고독할 수가 있지만 무(戊)가 있는 사람은 더 쉽게 고독에 빠질 수가 있다는 뜻이죠?”

“맞아~!”

“그렇다면 제대로 이해를 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사실 천진의 도관에서 보고 느낀 것인데, 수행한다는 도사들의 대부분은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불평분자(不平分子)들이거나 비관론자(悲觀論者)들이 많거든요.”

“아마도 어떤 연관이 있을 거야.”

갑자기 조은령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아~! 알았다~!”

“뭘?”

“무(戊)를 왜 산이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았어요.”

그 말에 우창이 물었다.

“어떻게 해서라고 생각한 거지?”

“생각해 봐요. 고독을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잖아요.”

“그렇겠지.”

“그럼 어디로 가겠어요? 절해고도(絶海孤島)로 가거나 심산유곡(深山幽谷)으로 갈 수밖에 없잖아요?”

“오호! 그건 말이 되는걸.”

“그래서 무를 산이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단 말이죠. 호호~!”

“오호~! 령아가 제대로 한 소식을 얻었군. 축하해~!”

“고마워요. 호호호~!”

미소를 머금은 다시 경순이 말을 이었다.

“기(己)의 마음에 대해서는 안 궁금한가?”

“에구, 그럴 리가요. 어서 말씀해주셔야죠~!”

“기(己)는 토양(土壤)과 같아서 모든 것을 받아주고 덮어주고 받쳐주고 보듬어 주는 마음을 갖고 있다네.”

“어머니같이 말이죠?”

“맞아. 이것은 순전히 팔괘의 곤괘(坤卦☷)와 일치한다고 봐도 될 것 같군.”

“어머니의 마음이 기(己)라고 하시니 바로 이해가 되었어요. 더 긴 설명은 하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호호~!”

“도와주니 고맙군. 하하~!”

그러자 우창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기(己)는 계란의 노른자이고 무(戊)는 흰자위와 같다면 인간은 노른자와 흰자의 사이에서 붙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하면 될까요?”

“맞는 말이네. 기생충(寄生蟲)이라고 하지.”

조은령이 되받았다.

“예? 기생충이라고요?”

“그렇다네. 이 땅에서 태어나서 땅을 파먹고 살다가 땅으로 돌아가는 기생충이라고 할 수가 있지. 하하~!”

“그건 너무 지나친 것 같아요. 언제는 또 만물의 영장이라고도 하잖아요?”

“아, 만물의 영장인 것은 정신력(精神力)을 말하는 것이지.”

“그럼 육신은 기생충이고 정신은 만물지령(萬物之靈)인가요?”

“틀림없는 이야기네. 하하~!”

“몸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란 말이 그 뜻이네요.”

“그래서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수도(修道)이고, 수행(修行)이라고 하는 것이라네. 닦고 또 닦아야지. 하하~!”

“오늘의 가르침은 두고두고 보석이 되도록 연마하겠습니다. 형님~!”

“왜, 가시려고?”

“예, 오늘은 이만 물러가고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고단하실 텐데 편히 쉬십시오.”

“하하~! 그래 잡지 않겠네.”

“선생님 오늘 너무 많은 것을 배웠어요. 다음에도 부탁드려요~!”

“나도 조 낭자랑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서 즐거웠다오. 잘 가요.”

석양(夕陽)의 긴 그림자가 두 사람을 따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