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제9장 천간(天干)의 소식(消息) / 11. 팔괘(八卦)와 십간(十干)
작성일
2017-02-01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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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제9장 천간(天干)의 소식(消息)
11. 팔괘(八卦)와 십간(十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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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다시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목의 음양에 대해서 이해가 되었다면, 이제는 화(火)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그렇잖아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화는 참으로 특이한 성분인 것으로 보여서 궁금한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알다시피 양화(陽火)는 병(丙)이 되고, 음화(陰火)는 정(丁)이 된다는 것으로 정리를 하면 되겠군.”
“그런데 그냥 양화라고 하면 될 것을 번거롭게 병(丙)이라는 별도의 글자를 만들었을까요?”
“아니, 오히려 ‘양화’라고 하는 것이 ‘병’이라고 하는 것보다 번거롭지 않을까?”
“아, 그렇게 되는군요. 맞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하게 표시하기 위해서 천간을 대표로 내 세운 것인가 봅니다.”
“맞아. 글자 하나를 쓰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리고, 또 죽간(竹簡)이 필요하게 되고, 그 죽간을 보관하려니까 공간이 필요해지므로 최대한으로 공간과 시간과 노력을 줄이려는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
“그래서, ‘화(火)의 양(陽)’을 표기하려면 ‘양화(陽火)’라고 써야 하는데. 글자를 두 개나 써야 한다는 것을 한 글자로 표시하게 되면 병(丙)이 되고, 이것은 병화(丙火)라고 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은 이미 병(丙)에서 병화의 의미도 있고, 양화의 의미도 포함되기 때문이지.”
“그렇겠습니다.”
“생각해 보시게. 기록해야 할 분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말이지.”
“아하~! 그러한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고인의 고심(苦心)이 이러한 것에까지 미쳤다는 것은 참으로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네요.”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화(火)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형님께서는 화가 불이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자연의 모습에서 비교적 가장 화의 오행에 가깝다고 본 것이 불이기 때문이라네.”
“주역의 팔괘에도 화가 있습니다. 그 화가 오행의 화랑 비교하면 완전히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서로 다른 것으로 봐야 합니까?”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도 좀 들어봤으면 합니다.”
“오행의 화에는 불도 있고, 다른 것도 있지만 팔괘의 화에는 불을 위주로 논한다고 이해를 하면 되네.”
“그렇다면 오행의 화가 좀 더 포괄적(包括的)으로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될까요?”
“당연하지~!”
“무엇으로 그것을 확신(確信)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행은 화를 둘로 나눠놓지 않았는가?”
“팔괘에서는 화가 하나뿐인가요?”
“팔괘에서 화는 삼리화(三離火) 하나뿐이지.”
“그렇습니다만 의미는 두 개가 되기도 합니다.”
“엇? 그것은 무슨 말인가?”
“사실은 우레도 화에 속한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번갯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 놀라운 관찰력이로군. 하하~!”
“그것은 화로 보지 않습니까?”
“물론 화로 볼 수도 있겠지. 다만 이미 진괘(震卦)는 양목(陽木)으로 정의(定義)가 되어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네.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서 안내를 해 주시네요.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 것이로군요.”
“당연하지. 분석적으로 나간다면 하나의 괘에서 어찌 두 가지의 의미만 찾을 수가 있겠는가? 다만 본질적으로 본다면 분명히 팔괘에서는 수화(水火)가 하나씩만 있고, 그래서 모두 합해서 열 개가 아닌 여덟 개가 된 것이지. 이것은 어느 누구라도 부정을 할 수가 없는 논리적인 현실이라네.”
“그래서 주역의 팔괘와 십간(十干)은 서로 같은 숫자로 존재할 수가 없었던 것인가요?”
“맞아, 팔괘는 팔방(八方)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십(十)을 사용할 수가 없었지.”
“불경에는 십방(十方)이 나오기도 합니다.”
“아, 그것은 동남서북(東南西北)과 사유상하(四維上下)를 포함해서 하늘과 땅을 넣었다고 봐야겠지. 이것은 공간개념에서 입체적(立體的)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그렇다면 주역은 상하의 개념이 없습니까?”
“왜 없겠는가? 다만 상하의 개념도 평면화 시켜버린 것이라네.”
“예? 무슨 뜻입니까?”
“보통은 상방(上方)을 천상(天上)이라고 하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팔괘에서는 그 천상인 하늘을 건방(乾方)에다가 넣었으니 하늘의 개념도 평면으로 만들었던 것이지.”
“아하, 그래서 아래의 개념인 땅은 곤방(坤方)에 배치했던 것이로군요.”
“맞아, 그래서 시방(十方)의 개념을 팔방으로 나타냈기 때문에 결국은 방위에 비중을 뒀다고 봐야지. 다시 말하면 역학(易學)은 공간(空間)의 학문(學問)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네.”
“그렇다면 명학(命學)은 시간(時間)의 학문(學問)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요?”
“왜 안 되겠는가? 사주팔자를 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는 아는가?”
“그야 태어난 생년월일시(生年月日時)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태어난 생년월일시는 시간인가? 아니면 공간인가?”
“그야 당연히 시간이지요.”
“이제 두 학문이 서로 태생(胎生)도 다르고 길도 다르다는 것을 알겠는가?”
“오호~! 이렇게 정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멋진 말씀이십니다.”
“이미 학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에 불과한 이야기라네. 하하~!”
“그렇다면 팔괘에서 수화를 하나씩만 넣게 되었던 것도 알고 보면 방위가 팔방(八方)인 까닭이었겠습니까?”
“참으로 고심을 많이 했다고 봐야지.”
“왜 그렇습니까?”
“당연히 오행은 음양으로 나눠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 두 가지는 하나씩 만들어야만 숫자 팔(八)이 나오기 때문이지.”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라고 봐야 하겠는데요?”
“당연히 기본적으로 틀을 만들어 놓고 설명을 해야 하니까 어쩔 수가 없었지. 그래서 고심을 한 끝에 수화(水火)를 하나씩만 배치하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네.”
“오호~! 참으로 놀라운 관찰력이십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화를 하나씩만 넣었다는 것이 맘에 걸리지 않았을까?”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팔방은 틀림없는 공간의 현실이니까요.”
“그래서 내 생각이긴 하네만, 진괘(震卦)와 태괘(兌卦)를 만들게 된 것이라네. 즉 수(水)는 태괘의 연못에다가 하나의 물을 만들고, 다시 화(火)는 진괘에다가 번갯불로 넣어서 아쉬움을 달랬던 것이라네.”
“정말요? 고인들의 고뇌한 흔적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역학은 방위의 개념이 되어서 기문둔갑과 천생연분이 되었던 것이지만 십간은 시간과 연관이 될 수밖에 없어서 서로는 그 길을 달리 한 것이었다네.”
“이제야 왜 진리는 하나인데 학문은 둘이 되었는지를 이해할 것 같습니다.”
“두 학문을 음양의 길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그렇다면 역학은 음이 되고, 명학은 양이 될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나?”
“공간(空間)은 음이고 시간(時間)은 음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렇게 봐도 말이 될 수가 있겠지.”
“음, 아무래도 형님의 반응을 봐서는 반대인 것으로 보입니다. 명학은 음이 되고 역학은 양이 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명학은 고정(固定)인가 변하는가?”
“타고난 팔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평생 동안 변하지 않으니 고정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음양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음이네요. 그래서 명학은 음이 되어야 하는 이치를 또 배웁니다.”
“물론 시간 속에도 공간이 있고, 공간 속에도 시간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면 말이지. 하하~!”
“팔괘에서 시간을 어떻게 나타냅니까?”
“구성(九星)~!”
“구성이라면 구궁수(九宮數)를 말합니까?”
“당연하지.”
“구궁수는 왜 시간입니까?”
“아우는 기문에 대한 기초가 좀 있으신가?”
“아주 조금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방진(魔方陣)은 알겠군?”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또 이둔삼원(二遁三元)도 알고?”
“이둔은 음둔(陰遁)과 양둔(陽遁)을 말하는 것이고, 삼원은 상원(上元), 중원(中元), 하원(下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그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궁수가 매년, 매월, 매일, 매시마다 계속해서 순환한다는 것도 알겠군.”
“겨우 그만큼만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인가? 공간인가?”
“당연히 시간이겠습니다.”
“팔괘의 공간에 구궁의 시간을 결합시켜 놓은 것이 기문이라네.”
“오호~! 그것이 그렇게 되는 것이었군요. 놀랍습니다.”
“아니, 아우도 그 방면에 관심이 있으셨나 보군?”
“당연하죠. 관심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우제를 지도하셨던 스승님도 병법(兵法)을 연구하고 계셨는걸요.”
“아, 그랬다면 당연하겠군. 병법은 십간보다 팔괘에서 구궁을 운행하는 것에서 길을 찾아야 하니까.”
“조금 더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시공(時空)에 대해서 말이지요.”
“팔괘의 공간에다가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화하는 시간을 읽으면서 길흉을 찾아서 추길피흉(趨吉避凶)하는 것이 기문둔갑이라고 보면 된다네. 그렇게 해서 완성이 된 것이지.”
“그래서 병법을 운용하는 것이로군요?”
“물론, 기문둔갑에서도 당연히 시간의 개념이 들어가다 보니까 십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
“아, 둔갑(遁甲)의 갑(甲)도 천간이었군요.”
“그렇다네. 이렇게 해서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학문으로 완성이 된 것이 바로 기문둔갑이라네. 그러니 공부를 하다가 보면 결국은 여기에서 만나게 되어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지.”
“그럴 수밖에 없겠습니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팔괘가 있는 이상 공간적인 개념에서 출발하고, 십간이 있는 이상 시간적인 개념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 그것은 어느 상황에서 쓰이는 것이 가장 적합한 것이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지.”
“저마다 특성과 존재의 목적이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래서 다시 이야기의 원점으로 가보면 십간의 화는 음양으로 구분이 되었더라는 이야기가 되는 거라네. 하하~!
“그렇게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확하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맞아. 어? 그런데 조 낭자가 졸고 있는걸. 하하하~!”
“이런, 제 이야기만 했나 봅니다. 하하~!”
옆에서 졸고 있던 조은령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에요. 졸기는 누가 졸았다고 그러세요~!”
“령아는 좀 어려운 이야기였나 보군. 하하~!”
“사실 조금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요. 꼭 공부해서 다 알아내고 말 거예요. 호호~!”
경순이 웃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이제 팔괘 이야기는 또 다음으로 미루고 십간 이야기나 해 볼까?”
그 말에 조은령이 반색을 한다.
“옙~! 기다리고 있었어요.”
“병(丙)은 광선(光線)이라고 하고, 정(丁)은 열(熱)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화의 음양이 되는 것이라네.”
“불을 생각해 보면, 불은 항상 빛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당연하지. 그래서 빛의 존재와 열의 존재를 구분해서 판단한 것이 바로 화의 음양이라네.”
“역학에서도 삼리화(三離火)는 열이고, 사진뢰(四震雷)는 빛이 아닙니까?”
“오호~! 그렇게도 대입할 수가 있겠군. 빨라~! 하하~!”
“빛에도 열이 나오고, 열에서도 빛이 나오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는 당연하지.”
“일반적으로는 당연하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의미입니까?”
그러자 갑자기 조은령이 입을 열었다.
“인체의 체온은 열만 있고 빛은 없잖아요?”
“오호~! 체온을 생각한 것만으로도 이미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로군.”
“따뜻하기는 하지만 빛은 나오지 않으니까요. 호호~!”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인체의 열기에도 빛은 있다고 봐야지.
그 말에 조은령이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그렇다면 몸의 열기에서도 빛은 있다는 의미입니까?”
“안광(眼光)이 있지 않은가?”
“눈빛이 열에서 나온 것이란 말이에요?”
“그럼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글쎄요. 정신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이 혼절하면 제일 먼저 의원이 뭘 하는지 아는가?”
“그야 눈꺼풀을 제일 먼저 열어 봐요.”
“왜 그러지?”
“당연히 정신이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죠.”
“물론 그것도 일리는 있겠지만, 심장이 뛰고 있는지를 보는 거라네.”
“예? 심장이 뛰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그러면 열기가 꺼진 것이고 빛도 나지 않겠지?”
“아항~!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뭐라고 한다고?”
그러자 우창이 자신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음양불이(陰陽不二)~!”
“하하~! 마치 선사(禪師)들이 선문답(禪問答)을 하는 것 같겠군.”
“그렇다면 형님. 팔괘에서의 수(水)도 좀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육감수(六坎水)는 음수(陰水)에 해당하고, 이태택(二兌澤)의 연못은 양수로 보면 어떨까요?”
“아니? 무슨 소린가?”
“삼리화(三離火)가 음이고, 사진뢰(四震雷)가 양이라면, 이에 대응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하하하~! 팔괘의 음양을 모른단 말인가?”
“아, 알지요. 이것은 또 팔괘로 봐야 하는군요. 에구~!”
“당연하지 않은가? 팔괘에서 리괘(離卦☲)는 음이고, 진괘(震卦☳)는 양이니까 음화 양화로 봐도 되지만, 감괘(坎卦☵)는 양이고, 태괘(兌卦☱)는 음이니 당연히 감(坎)을 양수(陽水)로, 태(兌)를 음수(陰水)로 대입해야 할 것이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음양의 동굴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겠습니다. 하하~!”
“싸부~! 령아도 얼른 그 음양굴에 좀 푹 빠져봤으면 좋겠어요~! 도통 말귀를 얼른얼른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죠~!”
그 말을 듣고 두 사람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령아도 참 하하하~!”
11. 팔괘(八卦)와 십간(十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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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다시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목의 음양에 대해서 이해가 되었다면, 이제는 화(火)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그렇잖아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화는 참으로 특이한 성분인 것으로 보여서 궁금한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알다시피 양화(陽火)는 병(丙)이 되고, 음화(陰火)는 정(丁)이 된다는 것으로 정리를 하면 되겠군.”
“그런데 그냥 양화라고 하면 될 것을 번거롭게 병(丙)이라는 별도의 글자를 만들었을까요?”
“아니, 오히려 ‘양화’라고 하는 것이 ‘병’이라고 하는 것보다 번거롭지 않을까?”
“아, 그렇게 되는군요. 맞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하게 표시하기 위해서 천간을 대표로 내 세운 것인가 봅니다.”
“맞아. 글자 하나를 쓰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리고, 또 죽간(竹簡)이 필요하게 되고, 그 죽간을 보관하려니까 공간이 필요해지므로 최대한으로 공간과 시간과 노력을 줄이려는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
“그래서, ‘화(火)의 양(陽)’을 표기하려면 ‘양화(陽火)’라고 써야 하는데. 글자를 두 개나 써야 한다는 것을 한 글자로 표시하게 되면 병(丙)이 되고, 이것은 병화(丙火)라고 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은 이미 병(丙)에서 병화의 의미도 있고, 양화의 의미도 포함되기 때문이지.”
“그렇겠습니다.”
“생각해 보시게. 기록해야 할 분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말이지.”
“아하~! 그러한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고인의 고심(苦心)이 이러한 것에까지 미쳤다는 것은 참으로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네요.”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화(火)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형님께서는 화가 불이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자연의 모습에서 비교적 가장 화의 오행에 가깝다고 본 것이 불이기 때문이라네.”
“주역의 팔괘에도 화가 있습니다. 그 화가 오행의 화랑 비교하면 완전히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서로 다른 것으로 봐야 합니까?”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도 좀 들어봤으면 합니다.”
“오행의 화에는 불도 있고, 다른 것도 있지만 팔괘의 화에는 불을 위주로 논한다고 이해를 하면 되네.”
“그렇다면 오행의 화가 좀 더 포괄적(包括的)으로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될까요?”
“당연하지~!”
“무엇으로 그것을 확신(確信)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행은 화를 둘로 나눠놓지 않았는가?”
“팔괘에서는 화가 하나뿐인가요?”
“팔괘에서 화는 삼리화(三離火) 하나뿐이지.”
“그렇습니다만 의미는 두 개가 되기도 합니다.”
“엇? 그것은 무슨 말인가?”
“사실은 우레도 화에 속한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번갯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 놀라운 관찰력이로군. 하하~!”
“그것은 화로 보지 않습니까?”
“물론 화로 볼 수도 있겠지. 다만 이미 진괘(震卦)는 양목(陽木)으로 정의(定義)가 되어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네.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서 안내를 해 주시네요.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 것이로군요.”
“당연하지. 분석적으로 나간다면 하나의 괘에서 어찌 두 가지의 의미만 찾을 수가 있겠는가? 다만 본질적으로 본다면 분명히 팔괘에서는 수화(水火)가 하나씩만 있고, 그래서 모두 합해서 열 개가 아닌 여덟 개가 된 것이지. 이것은 어느 누구라도 부정을 할 수가 없는 논리적인 현실이라네.”
“그래서 주역의 팔괘와 십간(十干)은 서로 같은 숫자로 존재할 수가 없었던 것인가요?”
“맞아, 팔괘는 팔방(八方)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십(十)을 사용할 수가 없었지.”
“불경에는 십방(十方)이 나오기도 합니다.”
“아, 그것은 동남서북(東南西北)과 사유상하(四維上下)를 포함해서 하늘과 땅을 넣었다고 봐야겠지. 이것은 공간개념에서 입체적(立體的)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그렇다면 주역은 상하의 개념이 없습니까?”
“왜 없겠는가? 다만 상하의 개념도 평면화 시켜버린 것이라네.”
“예? 무슨 뜻입니까?”
“보통은 상방(上方)을 천상(天上)이라고 하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팔괘에서는 그 천상인 하늘을 건방(乾方)에다가 넣었으니 하늘의 개념도 평면으로 만들었던 것이지.”
“아하, 그래서 아래의 개념인 땅은 곤방(坤方)에 배치했던 것이로군요.”
“맞아, 그래서 시방(十方)의 개념을 팔방으로 나타냈기 때문에 결국은 방위에 비중을 뒀다고 봐야지. 다시 말하면 역학(易學)은 공간(空間)의 학문(學問)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네.”
“그렇다면 명학(命學)은 시간(時間)의 학문(學問)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요?”
“왜 안 되겠는가? 사주팔자를 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는 아는가?”
“그야 태어난 생년월일시(生年月日時)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태어난 생년월일시는 시간인가? 아니면 공간인가?”
“그야 당연히 시간이지요.”
“이제 두 학문이 서로 태생(胎生)도 다르고 길도 다르다는 것을 알겠는가?”
“오호~! 이렇게 정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멋진 말씀이십니다.”
“이미 학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에 불과한 이야기라네. 하하~!”
“그렇다면 팔괘에서 수화를 하나씩만 넣게 되었던 것도 알고 보면 방위가 팔방(八方)인 까닭이었겠습니까?”
“참으로 고심을 많이 했다고 봐야지.”
“왜 그렇습니까?”
“당연히 오행은 음양으로 나눠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 두 가지는 하나씩 만들어야만 숫자 팔(八)이 나오기 때문이지.”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라고 봐야 하겠는데요?”
“당연히 기본적으로 틀을 만들어 놓고 설명을 해야 하니까 어쩔 수가 없었지. 그래서 고심을 한 끝에 수화(水火)를 하나씩만 배치하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네.”
“오호~! 참으로 놀라운 관찰력이십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화를 하나씩만 넣었다는 것이 맘에 걸리지 않았을까?”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팔방은 틀림없는 공간의 현실이니까요.”
“그래서 내 생각이긴 하네만, 진괘(震卦)와 태괘(兌卦)를 만들게 된 것이라네. 즉 수(水)는 태괘의 연못에다가 하나의 물을 만들고, 다시 화(火)는 진괘에다가 번갯불로 넣어서 아쉬움을 달랬던 것이라네.”
“정말요? 고인들의 고뇌한 흔적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역학은 방위의 개념이 되어서 기문둔갑과 천생연분이 되었던 것이지만 십간은 시간과 연관이 될 수밖에 없어서 서로는 그 길을 달리 한 것이었다네.”
“이제야 왜 진리는 하나인데 학문은 둘이 되었는지를 이해할 것 같습니다.”
“두 학문을 음양의 길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그렇다면 역학은 음이 되고, 명학은 양이 될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나?”
“공간(空間)은 음이고 시간(時間)은 음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렇게 봐도 말이 될 수가 있겠지.”
“음, 아무래도 형님의 반응을 봐서는 반대인 것으로 보입니다. 명학은 음이 되고 역학은 양이 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명학은 고정(固定)인가 변하는가?”
“타고난 팔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평생 동안 변하지 않으니 고정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음양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음이네요. 그래서 명학은 음이 되어야 하는 이치를 또 배웁니다.”
“물론 시간 속에도 공간이 있고, 공간 속에도 시간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면 말이지. 하하~!”
“팔괘에서 시간을 어떻게 나타냅니까?”
“구성(九星)~!”
“구성이라면 구궁수(九宮數)를 말합니까?”
“당연하지.”
“구궁수는 왜 시간입니까?”
“아우는 기문에 대한 기초가 좀 있으신가?”
“아주 조금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방진(魔方陣)은 알겠군?”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또 이둔삼원(二遁三元)도 알고?”
“이둔은 음둔(陰遁)과 양둔(陽遁)을 말하는 것이고, 삼원은 상원(上元), 중원(中元), 하원(下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그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궁수가 매년, 매월, 매일, 매시마다 계속해서 순환한다는 것도 알겠군.”
“겨우 그만큼만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인가? 공간인가?”
“당연히 시간이겠습니다.”
“팔괘의 공간에 구궁의 시간을 결합시켜 놓은 것이 기문이라네.”
“오호~! 그것이 그렇게 되는 것이었군요. 놀랍습니다.”
“아니, 아우도 그 방면에 관심이 있으셨나 보군?”
“당연하죠. 관심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우제를 지도하셨던 스승님도 병법(兵法)을 연구하고 계셨는걸요.”
“아, 그랬다면 당연하겠군. 병법은 십간보다 팔괘에서 구궁을 운행하는 것에서 길을 찾아야 하니까.”
“조금 더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시공(時空)에 대해서 말이지요.”
“팔괘의 공간에다가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화하는 시간을 읽으면서 길흉을 찾아서 추길피흉(趨吉避凶)하는 것이 기문둔갑이라고 보면 된다네. 그렇게 해서 완성이 된 것이지.”
“그래서 병법을 운용하는 것이로군요?”
“물론, 기문둔갑에서도 당연히 시간의 개념이 들어가다 보니까 십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
“아, 둔갑(遁甲)의 갑(甲)도 천간이었군요.”
“그렇다네. 이렇게 해서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학문으로 완성이 된 것이 바로 기문둔갑이라네. 그러니 공부를 하다가 보면 결국은 여기에서 만나게 되어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지.”
“그럴 수밖에 없겠습니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팔괘가 있는 이상 공간적인 개념에서 출발하고, 십간이 있는 이상 시간적인 개념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 그것은 어느 상황에서 쓰이는 것이 가장 적합한 것이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지.”
“저마다 특성과 존재의 목적이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래서 다시 이야기의 원점으로 가보면 십간의 화는 음양으로 구분이 되었더라는 이야기가 되는 거라네. 하하~!
“그렇게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확하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맞아. 어? 그런데 조 낭자가 졸고 있는걸. 하하하~!”
“이런, 제 이야기만 했나 봅니다. 하하~!”
옆에서 졸고 있던 조은령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에요. 졸기는 누가 졸았다고 그러세요~!”
“령아는 좀 어려운 이야기였나 보군. 하하~!”
“사실 조금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요. 꼭 공부해서 다 알아내고 말 거예요. 호호~!”
경순이 웃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이제 팔괘 이야기는 또 다음으로 미루고 십간 이야기나 해 볼까?”
그 말에 조은령이 반색을 한다.
“옙~! 기다리고 있었어요.”
“병(丙)은 광선(光線)이라고 하고, 정(丁)은 열(熱)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화의 음양이 되는 것이라네.”
“불을 생각해 보면, 불은 항상 빛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당연하지. 그래서 빛의 존재와 열의 존재를 구분해서 판단한 것이 바로 화의 음양이라네.”
“역학에서도 삼리화(三離火)는 열이고, 사진뢰(四震雷)는 빛이 아닙니까?”
“오호~! 그렇게도 대입할 수가 있겠군. 빨라~! 하하~!”
“빛에도 열이 나오고, 열에서도 빛이 나오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는 당연하지.”
“일반적으로는 당연하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의미입니까?”
그러자 갑자기 조은령이 입을 열었다.
“인체의 체온은 열만 있고 빛은 없잖아요?”
“오호~! 체온을 생각한 것만으로도 이미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로군.”
“따뜻하기는 하지만 빛은 나오지 않으니까요. 호호~!”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인체의 열기에도 빛은 있다고 봐야지.
그 말에 조은령이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그렇다면 몸의 열기에서도 빛은 있다는 의미입니까?”
“안광(眼光)이 있지 않은가?”
“눈빛이 열에서 나온 것이란 말이에요?”
“그럼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글쎄요. 정신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이 혼절하면 제일 먼저 의원이 뭘 하는지 아는가?”
“그야 눈꺼풀을 제일 먼저 열어 봐요.”
“왜 그러지?”
“당연히 정신이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죠.”
“물론 그것도 일리는 있겠지만, 심장이 뛰고 있는지를 보는 거라네.”
“예? 심장이 뛰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그러면 열기가 꺼진 것이고 빛도 나지 않겠지?”
“아항~!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뭐라고 한다고?”
그러자 우창이 자신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음양불이(陰陽不二)~!”
“하하~! 마치 선사(禪師)들이 선문답(禪問答)을 하는 것 같겠군.”
“그렇다면 형님. 팔괘에서의 수(水)도 좀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육감수(六坎水)는 음수(陰水)에 해당하고, 이태택(二兌澤)의 연못은 양수로 보면 어떨까요?”
“아니? 무슨 소린가?”
“삼리화(三離火)가 음이고, 사진뢰(四震雷)가 양이라면, 이에 대응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하하하~! 팔괘의 음양을 모른단 말인가?”
“아, 알지요. 이것은 또 팔괘로 봐야 하는군요. 에구~!”
“당연하지 않은가? 팔괘에서 리괘(離卦☲)는 음이고, 진괘(震卦☳)는 양이니까 음화 양화로 봐도 되지만, 감괘(坎卦☵)는 양이고, 태괘(兌卦☱)는 음이니 당연히 감(坎)을 양수(陽水)로, 태(兌)를 음수(陰水)로 대입해야 할 것이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음양의 동굴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겠습니다. 하하~!”
“싸부~! 령아도 얼른 그 음양굴에 좀 푹 빠져봤으면 좋겠어요~! 도통 말귀를 얼른얼른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죠~!”
그 말을 듣고 두 사람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령아도 참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