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 제8장 교학상장(敎學相長) / 9. 세상을 밝히는 불의 문명(文明)

작성일
2017-01-1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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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 제8장 교학상장(敎學相長) 


9. 세상을 밝히는 불의 문명(文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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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숙면(熟眠)을 이루고 난 다음의 맑은 정신으로 잠이 깼다. 이렇게 상쾌한 마음으로는 산책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연둣빛의 산천이 점차로 연녹색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봄의 기운도 점점 멀어져 가는 것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연의 모습에서 읽히는 오행과 음양에서 항상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마음이 산란한 것은 밖에 있는 원인과 안에 있는 본질이 조우(遭遇)함으로 생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원인이 밖에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에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부에서 변화에 반응을 보이게 되자 비로소 망상이 되고 집착이 되어서 불면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렇게 한 바퀴 늘 가던 산책길을 둘러보면서 운동 겸 생각을 정리하고 처소로 돌아오자, 이미 조은령이 와서 방을 청소하고, 찻물을 끓이고 있다가 반겨 맞는다.

“어? 벌써 왔어?”

“벌써라뇨~! 날이 새기를 기다리느라고 얼마나 지루했다고요~!”

“그러셨군. 공부가 그렇게도 재미있었던가 보지?”

향기로운 차를 앞에 놓고는 공부를 하려고 자리하는 조은령을 바라보니 초롱초롱한 눈빛이 상큼하게 느껴졌다.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눈빛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배우려는 마음과 누리려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눈빛은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과거의 스승님들도 우창의 눈에서 그러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눈빛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필시 오늘은 화(火)를 설명해야 할 조짐일 것으로 생각했다.

“전부 다요~!”

“전부 다라니?”

“공부도 하고 싶고요. 싸부도 보고 싶고요. 차도 마시고 싶고요. 뭐든 다 하고 싶었다고요~! 호호~!”

“그랬군. 그렇다면 이제 보고 싶은 사람도 봤으니, 질문이 있으면 먼저 하고~!”

“사실 오행의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 몰랐어요. 늘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반응하던 제 머리가 어느 순간에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했지 뭐예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령아는 지금 우주의 기운을 담뿍 받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마치 전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배가 고프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달콤한 과자의 비가 쏟아지는 것 같이요.”

“과자 비? 하하하~!”

우창이 폭소를 터뜨렸다. 생각하는 것이 참 소녀답다는 느낌이 상큼한 풀 내음 같았다. 차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질문은 없단 이야기지?”

“질문이 다 뭐예요. 어제 배운 것에 대해서도 정리가 채 되지 않았는걸요. 질문도 뭘 알아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냥 물으라고 하면 불쑥불쑥 생각이 나는 대로 묻곤 했는데 그것이 아니란 것은 이제 알아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래도 답이 보이지 않을 적에 질문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어때요 싸부? 령아가 기특하죠?”

“대단하군. 이제야 생각을 하는 철인(哲人)의 모습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흔적일세. 나날이 변화하는 자신이 되겠어. 미리 축하하네. 예쁜 제자님. 하하~!”

우창은 흐뭇했다. 자신의 어쭙잖은 지식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지혜의 씨앗을 심을 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로소 고인에게 배운 지혜의 가르침에 대한 글 값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화(火)에 대해서 공부를 해 볼까?”

“좋아요. 그렇잖아도 많이 궁금했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예? 뭐가요? 밑도 끝도 없이 다행이라뇨?”

“아, 뭐든지 알고 싶을 적에 가르쳐줘야 공부가 되니까 하는 말이지 뭘. 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봐야지? 어디, 불을 살려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봐.”

“우선, 나무가 불을 살려준다는 이야기는 퇴짜를 맞았으니까 안 되겠어요. 대신에 바람이 불을 살려준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니 그것을 목생화(木生火)의 기준으로 삼을래요.”

“아주 좋아~! 전혀 결함이 없는걸. 이유는?”

“그야, 바람이 있으면 불이 잘 타니까요. 근데 화를 불로 보는 것에는 문제가 없나요?”

“무슨 문제가 있겠어? 그대로 하면 돼.”

“그런데 바람이 있는 불을 잘 타게 할 수는 있지만 없는 불을 낳지는 못하잖아요? 이것이 맘에 걸려요.”

“그야 나무가 어떻게 불을 낳을 수가 있어? 원숭이가 사람을 낳는다는 것이 가능하다면 또 몰라도.”

“오호호호~! 그렇게 말이 안 되는 거였어요?”

“거봐 우습지? 목생화라고 해서 나무가 불을 낳는 것이 아니고, 수생목(水生木)이라고 해서 물이 나무를 낳는 것은 아니야. 착각이지.”

“그러니까 불은 불이 낳을 수 있고 나무는 나무가 낳을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가 그대로 유효한 것이로군요. 그쵸?”

“이를 말인 둥~!”

“근데 왜 그러한 말이 생겨났을까요?”

“그야 글자에 대한 오해로 인해서지. 낳는 의미도 있지만 살려주는 의미도 있거든. 가령 생환(生還)이라고 하면 낳았다는 거야, 살았다는 거야?”

“그야 당연히 살아서 돌아왔단 거잖아요?”

“글자의 해석에 의한 오류가 늘 발생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에 속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늘 생각을 해 봐야 하는 거야. 그러니 학자는 용의주도하지 않으면 늘 위험에 빠지게 되지. 왜냐면 이러한 것이 관념적이고 이론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무사(武士)들이 현장에서 생사를 다투는 경험으로 얻어진 것과는 다르니까.”

“명확하게 알겠어요. 목생화(木生火)란 바람이 불을 잘 살아나게 해 주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연료인 나무는 무엇일까요?”

“그야 밥이지.”

“예? 밥이라고 하면 어떻게 이해를 해요?”

“밥은 힘을 얻기 위한 방법이지 그것은 생존의 문제이니 약육강식과도 같은 것으로 필수불가결의 대상인 것이지 오행의 진리는 아니라고 보는 거야.”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거예요?”

“이쯤에서 화(火)는 불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하겠지?”

“맞아요. 나무의 불의 관계는 자꾸만 목생화(木生火)로 생각이 나서 혼란스럽네요.”

“왜? 설명이 미흡한가? 엄마가 아기를 낳는 것과 아기가 밥을 먹는 것은 달라.”

“그렇다면 나무는 불의 밥은 되지만 목생화의 이치는 아니란 것이지요? 언뜻 생각하면 같은 것으로도 느껴져서 약간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맞아, 나물을 뜯어 먹는 것은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이지 자연의 이치를 논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지.”

“이제 조금 정리가 되네요.”

“다행이네. 하하~!”

“뭐가요?”

“또 엉뚱한 소리를 해서 이 변변치 못한 사부를 골탕 먹일까 봐서 내심 겁이 난다는 거지. 하하~!”

“제가 그렇게 나쁜 제자예요?”

“아니, 매우 훌륭한 제자이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변변치 못한 제자는 스승의 말을 받아 적기만 하고, 중간의 제자는 스승의 말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데, 훌륭한 제자는 스승의 말 중에서 미진한 것을 찾아내고는 파고들어서 스승을 땀나게 하니까.”

“오호~! 정말 멋진 말씀이네요. 그건 령아도 반드시 기억했다가 제자를 만나면 써먹을래요. 호호~!”

“수생화(水生火)는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

“호호~! 헛된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요? 알았어요. 수는 추위잖아요? 겨울이라고 하니까요. 그렇게 되면 추위로 인해서 불을 피우게 되니 그것이 바로 수생화가 되는 거죠.”

“엇, 그것도 말이 되는걸.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석연치 않은 감이 있네. 인체에서 논하면 어떨까?”

“아, 인체의 화는 심화(心火)잖아요? 그러면 인체의 수는 원기(元氣)라고 하고 또 정기(精氣)라고도 해요. 수에 해당하는 원기가 왕성하면 화에 해당하는 심기가 충만 되어서 활동하는 힘을 얻게 되는 거잖아요? 반대로 정기가 부족하면 비리비리해서 활발한 힘도 얻지 못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거니까 틀림없네요. 싸부의 귀띔이 적재적소(適材適所)예요.”

“정기(精氣)는 어디에서 나오지?”

“정기는 머리에서 나오죠. 그래서 머리가 총명하기 위해서는 운동과 음식을 적절하게 잘 섭생(攝生)해야 한다는 것은 알아요.”

“단전(丹田)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던데?”

“그건 내공(內功)이죠. 호호~!”

“아, 내가 헛갈렸군.”

“밤에 잠을 푹 자면 정기가 충만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면 빈약해지죠. 충만한 정기는 활기(活氣)가 넘치니 이것은 화력(火力)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부실한 정기는 활기도 없으니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는 거죠.”

“몸에 대해서는 확실히 나보다 한 수 위로군. 인정~!”

“어머~! 령아가 싸부보다 더 잘 아는 것도 있단 것을 인정해 주시는 거예요? 고마워요~! 호호호~!”

“어떻게 그 방면으로 아는 것이 많지?”

“원래 하북원은 양생술(養生術)을 위주로 수행하는 도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맨날 듣는 이야기가 몸에 대한 것이고, 오래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뿐이에요. 그래서 지긋지긋해요.”

“아, 그럴 수도 있겠군.”

“그니까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살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오래만 살면 된다는 주의잖아요. 그게 무슨 삶이라고 할 수가 있겠어요. 불사(不死)일 뿐이죠.”

“오호~! 불사(不死)라.... 의미심장한 말인 걸.”

“죽지 않은 상태만 되면 삶의 질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잖아요? 모두 죽음에 대한 공포증의 환자들 같아요. 그래서 생기발랄한 느낌이 없고 모두가 칙칙한 모습들이에요.”

“그렇겠네.”

“그러다 보니까 몸의 연구는 정말 많이들 해요. 그래서 주워들은 것들이 조금 있는 것뿐이에요. 그나마도 싸부께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죠. 호호~!”

조은령의 신명이 나서 수다를 떠는 것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다 보니 적당한 선에서 끊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공부의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

“두한족열(頭寒足熱)은 무슨 뜻이지?”

“머리는 수(水)에 해당하기 때문에 차가워야 하고, 발은 화(火)에 해당하니까 따뜻해야 한다는 말이잖아요? 그렇지만 정확히는 단열(丹熱)이라고 해야 할 거예요. 왜냐면 단전은 따뜻해야 하니까요. 아랫배가 차가우면 이것은 탈이 난 것이죠.”

“아랫배가 차갑다는 것은?”

“배탈이 난 거죠. 단전이 허해도 그렇게 돼요. 그러니까 아랫배가 차갑다면 머리는 필시 뜨거워지는 거예요. 수승화강(水升火降)이 되어야 하는데, 반대로 수강화승(水降火昇)이 되어버리면 신체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니까 이때는 수극화(水剋火)가 되나요?”

“아하, 그래서 머리는 수(水)가 되어야 불이 마음대로 타올라서 폭발하는 것을 막아준다는 뜻이었구나. 그런데 화는 심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맞아요. 다만 그것은 체로 보는 것이랍니다. 체로 본다면 심장은 화가 되고 생식기능은 수가 되죠. 이것이 작용을 하게 되면 생식기능은 머리로 가서 수가 되고, 심장의 열기는 아래로 내려가서 단전에 모이죠. 그래서 수승화강(水升火降)인 거예요.”

“아하~! 오늘 내가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는군.”

“쌍방이익이죠 뭐. 호호~!”

“그럼 수생화는 잘 이해가 된 거야?”

“몸으로 설명하니까 바로 이해가 되었어요. 그렇다면 화극수(火剋水)는 뭘까요? 생을 배웠으면 극도 배워야 하잖아요?”

“당연하지. 어디 생각해 봐. 화극수는 뭘까?”

“인체에서 찾아도 될까요?”

“물론이지. 어디에서 찾으면 어때?”

“몸에 이상이 생기면 열이 올라요. 그러면 신기가 말라버리고 정기도 말라버려서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되죠. 이런 병을 열병(熱病)이라고 하는데 그 이치를 보면 화극수에 해당한다고 볼 수가 있겠네요. 맞아요?”

“매우 적절한 대입이로군. 그렇게 정리하면 되겠네.”

“아, 생각났다. 열병에는 사랑의 열병도 있어요. 그것을 상사병(相思病)이라고 하죠. 상사병에 걸리면 공부하던 학동도 공부가 되지 않는 병이죠. 그것도 화극수라고 할 수가 있겠네요. 그런데 공부를 수(水)로 볼 수도 있을까요?”

“물론~!”

“어떻게요?”

“그건 수를 이해하면서 생각해 보자꾸나.”

“예, 알았어요. 그럼 화의 입장에서 살펴보는 수에 대한 생각은 이해가 되었어요. 물론 또 다음에 깨달을 것이 있겠지만 우선은 이 정도로도 만족하겠어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다음은 토생화(土生火)를 설명해 봐.”

“아, 토가 화를 생하는 이치네요? 음.... 토는 인체에서 비위(脾胃)에 해당해요. 비위는 외부에서 들어온 음식을 흡수해서 소화를 시킨 다음에 몸에서 사용할 수가 있는 연료로 변환시켜주는 작용을 하죠. 그러니까 심장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비위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해요.”

“그래? 내가 모른다고 막 던지는 건 아니겠지?”

“호호~! 불안하세요? 그럼 공부하세요. 공부요~!”

“당연하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거잖아.”

“눈에 보이는 비위가 하는 일은 그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비위도 있어요. 그것을 토기(土氣)라고 해요.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정리의 역할이죠. 심장이 벌떡벌떡 뛰다가 멈추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럼 죽음이 찾아오겠지?”

“그런데 빨리도 뛰다가 천천히도 뛰다가 하면 또 어떻게 되겠어요?”

“엉? 그런 경우가 어디 있어~!”

“에구, 모르시는구나. 물론 건강한 사람의 토기가 제대로 움직일 적에는 그런 일이 없어요. 그런데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부정맥(不整脈)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름까지 있는 것을 보니 실재(實在)하는 증세이긴 한 모양이구나. 그렇게 된다면 기혈(氣血)의 운행이 순조롭지 못하니 정상적으로 생활을 할 수가 있을까?”

“당연히 어렵죠. 느리게 뛰어도 안 되고 빨리 뛰어도 안 되는 것이 토의 작용이래요. 그래서 균형(均衡)과 중화(中和)를 유지하는 것으로 인해서 심장도 정확하게 일평생을 어김없이 뛴다는 거예요. 이것도 토생화(土生火)라고 보는 것은 심장이 화(火)이기 때문이죠.”

“오호라~! 참 귀한 가르침이네.”

이렇게 말하면서 포권(包拳)을 하고 경의를 표했다. 우창은 누구라도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거나 몰랐던 것을 알려주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그는 내 스승이라는 생각으로 임하는 까닭에 자연스럽게 감사를 표한 것이다.

“근데 무림인도 아닌 싸부가 포권을 하시니까 좀 이상한걸요? 호호~!”

“그래?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안 이상할까?”

“차라리 합장(合掌)은 어때요? 화상들은 싸우지 않으므로 합장을 하잖아요? 아, 물론 소림화상들은 제외하고요. 호호~!”

“아냐, 포권은 원래 도인들의 예법이었어.”

“그래요? 어떻게요? 궁금해요~!”

“오른 주먹을 쥐고 왼 손바닥 안쪽에 붙이는 거잖아? 주먹은 양이고 손 바은 음이거든. 이것은 자연의 진리인 음양의 이치를 나타낸 거야.”

“우와~! 첨 들어봐요.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가위, 바위, 보는 알지?”

“에구,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럼 그 뜻도 알겠네? 어디 이야기 해봐.”

“가위[剪刀]는 보[布]를 이기고, 보는 주먹[石頭]을 이기고, 주먹은 다시 가위를 이기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을 말이죠.”

“그래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어른도 그것까지만 알지. 하하~!”

“아니, 그것 말고도 또 알아야 할 것이 있단 말이에요?”

“당연하지.”

“그게 뭐예요? 어서 말씀해 봐요. 괜히 엉뚱한 이야기로 제를 속이시면 안 돼요~!”

“주먹은 땅을 의미하고 보는 하늘을 의미하지. 그리고 가위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유식하게 표현하면 천지인(天地人)이 되는 거지.”

“천지인이라고요? 누구나 재미있게 놀이하는 규칙에 불과한 것이 천지인이라뇨? 그거 믿어도 되는 거예요?”

“아니, 이 사부가 어린 제자를 데리고 농담 따먹기를 하겠어?”

“그건 아니지만 첨 듣는 이야기라서 그래요. 아무리 그래도 농담 따먹기가 뭐예요. 호호~!”

우창도 미소를 머금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원래 도인들은 아이들이 놀면서도 이렇게 천지인의 삼명(三命)에 대한 이치를 생각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인데 어리석은 인간들이 의미는 잊어버리고 놀이의 껍질만 갖고서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있는 거야.”

“오호~! 멋져요. 싸부~!”

“땅은 하늘을 이길 수가 없고, 하늘은 인간을 이길 수가 없고, 인간은 땅을 이길 수가 없는 이치가 그 안에 들어있는 깊은 뜻이야.”

“그건 좀 이상한데요? 하늘을 땅이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하늘이 인간을 이길 수가 없다니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되세요?”

“왜 안 돼?”

“겨울이 되면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두 추위에 꽁꽁 얼어서 꼼짝 못 하고, 여름이 되면 또 마찬가지로 더워서 숨을 헐떡이는데 어떻게 하늘을 이긴다고 하는 거예요?”

“동물은 겨울이 되면 추위를 이기지 못해서 동굴을 찾아서 겨울잠을 자지만, 인간은 두꺼운 털옷을 입고 활동하잖아? 이것은 하늘을 이기는 것이 아니고 뭘까? 또 여름이 되면 개는 더워서 혀를 한 발이나 늘어뜨리고 힘들어할 때에 인간은 부채질을 하면서 시원한 수박을 먹잖아? 이것도 자연을 이기는 거야. 그래서 더위를 이기자고 하고, 추위를 이기자고 하는 거잖아.”

“거 참.... 싸부의 말은 첨에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도, 자꾸 듣다가 보면 묘하게 설득을 당한단 말이에요. 정말 요설변재(樂說辯才)예요. 호호~!”

“그야 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이치가 맞으니까 그런 거지. 내가 무슨 말을 잘한다고 그래.”

“알았어요. 여하튼 그래서요? 인간은 왜 땅을 이기지 못하는지도 설명을 해 주셔야죠.”

조은령은 처음 듣는 가위바위보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이렇게도 간단한 놀이에서 천지인이 나오고 그것의 규칙이 자연의 이치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에 대해서 감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