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 [078] 제8장 교학상장(敎學相長) / 4. 끝없는 질문, 끝 있는 답변

작성일
2017-01-08 15:31
조회
2238

[078] 제8장 교학상장(敎學相長) 


4. 끝없는 질문, 끝 있는 답변 


=======================

차를 따르는 고월에게 우창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어제는 을목(乙木)이 나를 찾아왔었어.”

“응? 을목이라니? 무슨 말인가? 공부가 잘되었다는 이야기야?”

“아, 그 있잖은가. 마당에서 다투던 여인 말이네. 하하~!”

“오호~! 어인 일로?

“처소가 이웃이라는 이유로 통성명이나 하자고 찾아왔던 모양이야.”

“그래서 통성명을 했나? 이름이 뭐라던가?”

“이름은 조은령이라고 했네. 그런데 내 얼굴을 좀 봐줘.”

“뭘?”

“여난의 기색이 혹 발현(發顯)되진 않았는지가 궁금해서.”

“오호~! 꽤 맘에 들었던가 보군. 어디…….”

“잘 살펴봐야 하네.”

“음, 괜찮은데.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어. 황윤(黃潤)의 색이 광택을 발하는 것으로 봐서 좋은 인연이 될 모양이군. 축하하네.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군. 은근히 걱정했거든. 하하~!”

아침으로는 항상 죽을 먹었다. 그렇게 쌀죽이나 옥수수죽을 먹은 다음에 상쾌하게 마시는 차의 향은 늘 특별했다. 은은한 향이 심신을 맑혀주는 느낌이 좋아서였다.

“자,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를 드시게나.”

“고맙네.”

차를 후루룩 대면서 마시던 고월이 입을 열었다.

“실은 내가 며칠 외출을 하려던 참이었네. 어디 다녀올 데가 있어서 말이네. 그러니 내가 없는 동안은 혼자서 복습을 할 겸 궁리를 했다가 내가 돌아오면 많이 알려 줘.”

“알려 줄게 뭐가 있겠나. 그렇다면 나도 배웠던 것이나 단단히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도록 하겠네. 다녀오면 또 적천수를 궁리하세. 그래, 몸 성히 잘 다녀오게나.”

차를 마시자마자, 서둘러서 채비하고 떠나는 고월을 전송하고서는 처소로 돌아왔다. 며칠 동안 급하게 배우느라고 정신이 없었던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는데 밖에서 소리가 났다.

“싸부님~! 조반은 많이 드셨어요?”

문을 여니까 조은령이 쟁반에 깎은 과일을 들고 웃으면서 들어온다. 그 사이에 아침을 먹고는 부지런히 과일을 준비해서 찾아온 모양이다.

“그럼 잘 먹었지, 어서 와. 바쁘셨구나!”

“간단하게 과일이라도 드시라고 가져왔어요.”

과일을 먹고 있는 우창에서 질문하기에 여념이 없는 조은령이었다. 무엇이라도 물어서, 하나라도 얻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서 우창도 싫지 않았다. 마침 고월도 외출을 나갔으니 적천수의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초짜 제자에게 집중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학문의 상달(上達)에 가장 좋은 방법은 남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들은 적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것을 짐작했다. 그것을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고 했는데,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함께 향상(向上)한다는 의미였다. 우창이 문득 그 생각을 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또 무엇을 모르는지를 정리하는데 가르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제 배운 점괘로 오늘 점을 쳤어요. 가서괘(家鼠卦)가 나왔어요. 근데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가 난감해요. 어제 연괘(燕卦)는 아주 쉬웠는데 말이죠. 집쥐가 어쨌다는 거예요?”

“어떻게 뽑은 점괘인지부터 이야기를 해 봐.”

“경자(庚子)생의 자(子)는 언제나 9가 되니까 같잖아요? 그리고 오늘 일진이 기미(己未)니까 기(己)는 9가 되고, 지금 시간이 진시(辰時)이니까 진(辰)은 5라고 하셨죠? 그래서 셋을 합하니 23이 되었고, 그것은 집쥐괘가 되었단 말이에요. 잘했죠?”

“그렇군. 그런데 알고 싶은 것이 뭐지?”

“그야 ‘오늘 싸부님께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지요. 뭐가 있겠어요. 호호~!”

“마음만 가득하지 막상 실속은 적겠다고 나오는 해석인걸. 하하~!”

“아니, 왜요? 그럼 나쁜 점괘잖아요?”

“생각을 해 봐. 늦은 봄날에 집에는 곡식 창고가 쌓여 있을까? 아니면 비어있을까?”

“그야 당연히 지난가을에 저장해 놓은 곡식은 다 떨어졌죠. 이미 춘곤기(春困期)에 접어들었잖아요. 그래서 아낙네들은 들로 나가서 나물이라도 뜯어다가 죽을 끓여서 가족에게 먹이려고 봄볕에 새카맣게 그을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걸요. 그러니 쥐도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하겠네요. 더구나 쥐는 풀은 안 먹고 곡식만 먹잖아요?”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난걸. 그만하면 조금만 더 배워도 점쟁이 해도 되겠다. 하하~!”

“그렇담, 싸부에게 해야 할 공부가 모두 허탕이라는 거예요? 그것은 싸부님이 맘먹기에 달린 것이잖아요? 괜히 점괘 탓을 하고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을 요량이신 거죠? 집쥐에게 밥을 마련해 줄 사람은 싸부님이 될 테니까요.”

“내가 어제 점괘를 알려주면서 이것도 알려줬어야 하는데 그것을 말해주지 않은 것은 나의 잘못이니까 나를 탓해야지. 나도 누구를 가르쳐보지 못해서 그러한 것이니 너무 탓하지 마시게.”

“아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심 이 제자가 너무 송구하옵니다. 앞으로 아무 때나 점괘를 뽑지 않을 테니 그만 노여움을 푸시와요~!”

“그러니까 점괘를 자꾸 뽑지 말란 말이야. 그리고 처음에 공부 삼아서 뽑는 것은, 맞고 말고에 마음을 두지 말고 그냥 그렇게 나온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면 되는 거야.”

“맞아요. 처음에 집쥐가 나온 것을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거든요. 이제 방법은 알았으니까 필요할 적에만 뽑도록 해야겠어요. 호호~!”

“잘 생각했군.”

“그럼 점괘와 상관없이 공부를 시켜 주실 거죠?”

동작으로 하는 짓이나, 말투가 귀여워서 뭘 알려달라고 해도 모두 주고 싶은 우창이었다. 혼자 지내던 방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화기애애(和氣靄靄)하게 바뀌었다. 사람 하나가 들고 나는 것에 따라서 이렇게도 달라진다는 것도 참으로 신기했다. 어쩌면 이러한 것도 모두 마음의 장난이겠거니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 뭘 가르쳐 줄까?”

“음양~! 그것을 알아야만 무엇이든 이해를 할 수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급한 마음을 억누르고 우선 음양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럼 물어봐.”

“음양이 뭐예요?”

“쳇, 겨우 묻는다는 것이 그거야?”

“왜요? 맞잖아요? 음양에 대해서 알려 달라는 질문인걸요. 호호~!”

“상대적(相對的)~!”

“옙? 그게 다예요?”

“그래도 내가 한 글자 더 손해 본 걸.”

“무슨 말씀이세요?”

“령아는 두 글자만 물었는데 난 세 글자를 말해줬으니 한 글자는 손해를 본 것이잖누.”

“무슨 싸부가 그래요. 참 내~!”

“또 뭐가 궁금한지 물어.”

“아직도 음양이 궁금해요.”

“음양은 상대적이야.”

“같은 말씀으로만 땜질하실 건가요? 정말 오늘은 집쥐괘가 맞나 보네요. 슬퍼요, 흑흑~!”

조은령은 눈물을 흘리는 시늉을 하더니만 정색을 하고 다시 묻는다.

“근데 상대적이란 말은 무슨 뜻이지요? 언뜻 알고 있는 거 같기는 한데, 왜 음양을 물었는데 상대적이라고 하시는 건지 얼른 이해가 안 돼요.”

“상대는 무슨 뜻이지?”

“그야 령아 앞에 있는 사람이 상대잖아요.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니깐요. 맞죠?”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네.”

“그래요? 맞는 것은 뭣이고, 틀린 것은 뭐예요?”

“맞는 것은 마주 앉아있는 상대방도 음양이라고 할 수가 있지, 그리고 틀린 것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서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음양이라는 것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지.”

“그래요? 그렇담 령아가 하나의 단어를 말하면 싸부님이 그에 상응하는 대상을 답해 보세요.”

“아니, 이건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된 것 같잖아? 어떻게 제자가 문제를 내고 스승이 맞혀야 하나, 당연히 스승이 묻고 제자가 답을 해야지.”

“누가 그걸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자가 너무나 어린 까닭에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단 말이에요. 엄마는 어린 아기가 물어보면 그렇게 원칙만 따지고 있다가는 아기는 바보가 되고 말거예요. 없는 질문은 만들어 가면서 대답해 주고, 아기가 ‘옹알오알’하면 엄마는 ‘웅얼우얼’하면서 말을 가르친다는 것도 모른단 말이에요?”

“참 내, 말로는 못 당하겠군. 그래 알았으니 어디 시작을 해 봐.”

“그럼 시작해요~! 쌀.”

“보리.”

“물~!”

“불.”

“산~!”

“바다.”

“아기~!”

“엄마.”

“엄마~!”

“아버지.”

“땡~!”

갑자기 조은령이 큰 소리로 외쳤다. 우창이 의아해서 물었다.

“엉? 왜?”

“엄마라고 했으면 아기라고 하셔야죠.”

“그건 이미 알고 있잖아. 그래서 다른 것을 가르쳐 주려는 싸부의 지혜가 담긴 배려인 거야. 것도 알지 못하고 땡이라니. 참~!”

“그런가요? 알았어요.”

“또?”

“하늘~!”

“땅.”

“태양~!”

“달.”

“머리~!”

“발.”

“손~!”

“발.”

“손바닥~!”

“발바닥.”

조은령이 말을 하다가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지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창은 두꺼비가 파리를 주워 먹듯이 답만 하면 되는데 질문을 하는 조은령의 입장에서는 질문함과 동시에 답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머리가 훨씬 복잡해졌던 것이다. 처음에는 질문은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밑천이 떨어져가면서 생각의 재료가 궁색(窮塞)해지기 시작했다.

“음.... 음.... 눈~!”

“귀.”

“뭐라고요? 왜 눈의 상대가 귀가 되는 거예요?”

“눈은 보는 것이고 귀는 듣는 것이니깐.”

“그게 말이 되는 거예요? 어린 제자가 뭘 모른다고 마구마구 던지시는 건 아니시죠?”

“당연하지. 그런 불량 스승이 어디 있겠어. 하하~!”

“그럼 설명해 보셔봐요. 참으로 음양의 이치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요. 왜 보는 것과 듣는 것은 상대가 되는 거예요?”

“보는 것은 안에서 밖으로 인가? 아니면 밖에서 안으로 인가?”

“그야 안에서 밖을 보는 것이잖아요?”

“귀는?”

“귀는 밖에서 나는 소리를 안에서 듣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야~! 기가 막힌 상대네요. 싸부님~! 멋져요~!”

조은령이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우창도 마음이 즐거웠다. 이렇게 가르치면 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면서 점차로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대한 차이를 깨닫기도 했다. 배우는 것만 힘을 썼는데 이제 보니 가르치는 것에도 배우는 것 못지않은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은 두 개인데요?”

“귀도 두 개이니까 짝이 되지.”

“또 짝이 되는 이유가 있나요?”

“눈은 닫혀있고, 귀는 열려있지.”

“눈이 닫혀있다고요? 눈은 뜨고 있는 거잖아요?”

“눈을 항상 뜨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눈이 멀겠죠? 어느 부처님 제자가 졸다가 혼나서 눈을 감지 않았다가 장님이 되었다고 했어요. 예전에 공부한다고 앉아 있다가 잠깐 졸음이 오는 바람에 얼마나 구박을 하면서 말씀을 해 주시던지 그것은 기억이 나네요. 고단한 허드렛일을 하다가 보면 졸음이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인데 참 인정머리 없는 도사~!”

“책상머리에서 제자가 졸았으면 스스로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스승을 탓하다니 그건 옳지 않은 생각일세.”

“물론 알죠. 다만 어린 소녀가 하루 종일 청소에 음식에 설거지까지 정신없이 허둥대다가 경전을 외우라고 하는 바람에 앉아있으니 졸음이 쏟아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잖아요?”

“그런 사정 저런 사정 다 봐주고 언제 공부하누. 쯧쯧~!”

“에구~ 그런 때는 옛날 그 인정머리 없는 도사랑 똑같애~!”

“그런가? 가르치는 마음은 다 같은가 보다. 하하~!”

“눈은 음이고 귀는 양이 되나요?”

“물론.”

“눈은 닫히는데 귀는 왜 열려있죠?”

“음양이니까.”

“아니, 그것 말고요.”

“눈은 화기(火氣)가 통하기 때문에 필요한 때만 열어두고 사용하지 않을 적에는 닫아둬야 모두 소진(消盡)되어버리는 불상사를 방지하고, 귀는 수기(水氣)가 통하기 때문에 항상 열어둬야 하는 것은 물은 흐르지 못하면 썩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네.”

“뭐예요? 그건 너무 심오하네요. 좀 쉽게 설명해 줘야 연약한 제자의 소화 흡수에 장애가 발생하지 않죠. 우둔한 제자를 어여삐 여기시와 다시 부탁 드려요.”

“눈은 수평으로 누워있으니 음(一)이 되고, 귀는 수직으로 서있으니 양(丨)이 된다네.”

“예? 와우~! 그건 기발한데요~! 여태 그런 생각을 왜 못했을까요? 호호~!”

“이제 이해가 되었으니 다행이군.”

“그럼 코는 입이랑 짝인가요?”

“그렇지.”

“어머? 왜요?”

“코는 세로이고 입은 가로이니까.”

“아니, 그건 귀와 눈의 관계와 같은 이치네요. 또 다른 이유도 있나요?”

“코는 구멍이 항상 열려있고, 입은 필요한 때만 열리는 것이 상대적이지.”

“그렇다면 코가 양이에요? 아니면 입이 양이에요? 음양은 어떻게 돼요?”

“그야 코가 양이고 입이 음이지.”

“어머, 왜요?”

“코는 항상 움직이고, 입은 필요한 때만 움직이니까.”

“그렇다면 서로 닮은 것도 있어요?”

“코는 천기(天氣)인 공기를 먹고, 입은 지기(地氣)인 음식을 먹지. 천기를 먹는 것은 양이라고 하고, 지기를 먹는 것은 음이라고 하지. 그래서 먹는다는 것에서 본다면 둘은 서로 같은 것이므로 상대가 되는 거야. 마찬가지로 눈과 코는 상대가 될 수 없는 것도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이라네.”

“어? 듣고 보니 말이 되네요? 오호~! 기막혀라~!”

“또? 코는 구멍이 두 개이고 입은 하나이니 홀짝으로 본다면 입이 양이고 코는 음이 되기도 하지.”

“음양이 마구 뒤바뀌어도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듣는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궤변(詭辯)처럼 생각이 될 수도 있잖아요?”

“음양의 본질은 변화(變化)니까.”

“그래요? 그래서 음양이 어렵다고 하는 건가요?”

“이제 뭔가 눈치를 챈 모양이군.”

“그런데, 눈과 입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코와 귀는 항상 열려있는 것도 뭔가 의미를 붙이면 말이 될 것 같잖아요? 이런 것은 어떻게 설명해 주실 거예요?”

“오호~! 생각지도 못한 관찰력인 걸? 싹수가 보이네. 하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하늘로 붕붕 나는 것 같으니 어떡해요, 호호~!”

조은령의 호들갑은 짐짓 모른 채했다.

“눈과 입은 필요할 적에만 열어야 하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 둘을 짝을 할 수는 없을까요?”

“왜 안 되겠어? 어디 짝을 만들어서 설명해 봐.”

“음.... 눈은 빛을 보는 것이니까, 양이 되고, 입은 말만 하니까 음이에요?”

“빛을 보는 것이 양이라는 것은 그럴싸하지만 말만 하는 것으로 인해서 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이지?”

“왜요? 말이 안 되나요? 그냥 생각이 나지 않아서 대충 때려 맞춘 건데 그만 밑천이 거덜 났잖아요. 설명해 주세요.”

“눈은 몇 개지?”

“그야 두 개죠.”

“입은?”

“하나요.”

“하나는 기수(奇數)가 되어서 양이라고 하고 둘은 우수(偶數)이니 음이라고 하지.”

“아하~! 홀수는 양인가요? 짝수는 음이고요? 그건 왜 그렇죠?”

조은령의 끝없는 질문은 우창을 능가했다. 그래서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다시 실감이 났다. 자꾸 물어대니까 우창도 슬그머니 장난기가 동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남녀의 인체에 있는 구멍에서 답을 찾아볼까?”

“그야 똑같죠.”

“목 위에 있는 구멍은 같지. 2목(目), 2비(鼻), 2이(耳), 1구(口)이니 7개에 전음(前陰)과 후음(後陰)을 합해서 구규(九竅)가 되지.”

“그니깐요. 그게 어떻게 음양이 된단 거예요?”

“여인에겐 자녀를 출산하는 일규(一竅)가 더 있다는 것을 모르진 않겠지?”

“옙? 그.... 아하~! 그러면 여자는 십(十)이고 남자는 구(九)네요? 오! 홀짝의 이치를 인체에서 보여주는 것이 맞네요. 인정~! 호호~!”

조은령이 비로소 홀수와 짝수에도 음양의 이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