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제8장 교학상장(敎學相長) / 3. 말괄량이 제자(弟子)

작성일
2017-01-07 08:49
조회
2218

[077] 제8장 교학상장(敎學相長) 


3. 말괄량이 제자(弟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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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상쾌하게 일어나니 아직도 주위는 어둠에 잠긴 인시(寅時)였다. 오경(五更)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깼다. 늦봄의 짧은 밤이 서서히 물러가려고 먼동이 희뿌옇게 물들어가는 것을 누각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도관에서 수련 중인 도사들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둠이 사라지는 하늘에서 별빛들이 마지막 빛을 내뿜는다. 북극성(北極星)을 바라보고 있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일곱 별도 영롱한 빛을 뿌리고 있고, 남쪽 하늘에서는 은하수(銀河水)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직녀성(織女星)이 영롱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문득 직녀성(織女星)이 눈에 들어온 것은 어쩌면 어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던 조은령의 출현으로 인해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어깨를 툭 치는 이가 있었다. 생각에 빠져있다가 기척에 돌아다보니 조은령이 어느 사이에 다가와서 방글방글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은령이 우창에게 눈짓했다.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앞서서 설렁설렁 걸어가는 조은령을 따르면서 괜히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의식이 되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묵묵히 뒤를 따랐다. 그녀가 도달한 곳은 자기 처소였다. 문 앞에 등불을 밝혀놓고 깨끗하게 정돈이 된 방으로 안내를 했다.

“싸부님~! 편히 쉬셨어요?”

“그래 누이도 잘 쉬셨지?”

“누이라뇨. 령아라고 부르라고 어제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그걸 잊어버리면 어째요~!”

핀잔인지 구박인지 투정인지 모를 말에 괜히 머쓱해져서 다시 말을 해야 했다.

“령아도 잘 쉬었지?”

그 말을 듣고는 또 무엇이 그리 좋은지 까르르대면서 웃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참 성격도 명랑하고 쾌활한 여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차를 끓이려고 화로에 얹어놓은 물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본 조은령은 차를 끓서 한 잔 권한다.

“국화차예요. 새벽에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꽃차가 좋아서 마시는 거예요. 어서 드셔 봐요.”

“음.... 향기롭군. 이런 차는 또 처음 마셔보는걸.”

“앞으로 자주 해드릴게요. 공부만 열심히 가르쳐주세용~! 호호~!”

콧소리를 섞어서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천진난만한 느낌도 함께 풍겼다. 책상 위에는 서책은 보이지 않고 여인의 휴대품으로 보이는 자질구레한 것들이 질서 있게 놓여있는 것이 생소했다. 여태까지 남자들의 살아가는 모습들만 봐서이기도 할 것이다.

“령아는 일찍 일어나는가 보네?”

“그럼요~! 일어나자마자 싸부님도 일어나셨나 하고 가 본걸요.”

“그러셨어?”

“그런데 안 계셔서 일찍 어딜 가셨나 했죠. 하늘도 보시고 동녘도 보시는 것이 멋있어서 한참을 그렇게 멀찍이서 지켜봤잖아요. 호호~!”

“그랬구나.”

“뭘 생각하셨어요?”

“그게 궁금한가?”

“그럼요. 뭐든 궁금해요. 지금도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도 궁금하고요.”

“예전에 태산에 있으면서 스승님께 별자리 이야기를 조금 들었던 것이 생각나서 하늘을 봤어. 하늘이 맑아서인지 별빛이 잘 보이더군.”

“천문학도 공부하셨어요? 대단하세요. 그 어려운 것도 공부하시고.”

“아니, 공부가 아니라 그냥 해 주시는 말씀을 조금 들었을 뿐이야. 그냥 밤에 길을 잃었을 적에는 북극성을 찾아서 기준을 잡으면 곤란한 지경에서도 빠져나올 수가 있다면서 알려 주신 거야.”

“그럼 령아에게도 알려주세요. 저도 위험한 곳에 처하게 되면 안 되잖아요. 호호~!”

“그러지. 하하~!”

가르쳐 달라는 것이 많은 사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좋은 우창이었다. 적어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정신세계를 상승시킬 수가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예쁜 여인이 가르쳐 달라니 더욱 반가울 따름이다.

“그래, 음양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봤어?”

“그럼요~! 생각해 봤죠. 그런데 어렵긴 해요. 어디부터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그래서 날이 밝아오기만 기다리기로 했어요. 모르면 묻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배웠거든요.”

“그건 맞는 말이지. 그래 뭘 알고 싶어?”

“싸부님이 알고 있는 것 모두 다요.”

“정말 알고 싶은 것이 있기는 한 거야?”

“사실은 알고 싶은 것이라기보다는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도사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음양오행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시던데 어제 싸부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음양도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닌 것을 보면, 오행도 아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러한 것을 누구에게 물어야 가르쳐 주려나 싶었거든요.”

“아니, 하북원에는 그런 것을 가르쳐 줄 스승이 안 계신건가?”

“계시죠. 그런데 어찌나 거만하게 구는지 물어보려다가도 저를 대하는 것을 보면 물어보려던 마음도 바로 삼켜버리고 자리를 뜨고 싶은 것이 일상인걸요. 호호~!”

“어떻게 물었기에 그랬을까?”

우창은 질문을 하는데 있어서 거만하게 군다는 스승을 본 적이 없어서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백발이 떠올랐다. 그 친구 같으면 가르쳐 주고 싶어도 아는 것이 없으니까 거만을 떨어서 질문하려는 마음을 아예 내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령아가 생각하기에는 그 도사들은 주는 밥만 축내는 식충(食蟲)들 같았어요. 하는 이야기도 모두가 음담패설(淫談悖說)이나 일삼고요. 어린 제자들이 배울 이야기는 거의 없걸랑요.”

“그럴 수도 있겠다.”

우창도 조은령의 푸념에 대해서 동의를 해 줬다. 어찌나 분개(憤慨)하는지 동의하지 않으면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어제 싸부님을 뵙고는 이제야 공부를 할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어요. 많이 알려주시면 열심히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공부할 거예요.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싶거든요.”

대략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우창은 흐뭇해졌다. 행여라도 여인이 귀찮게 하고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공부를 핑계로 애를 먹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지금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참으로 공부에 목이 말랐던 것이란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무예는 언제 그렇게 익힌 거야?”

“무예요? 아, 어제 그 불한당 같은 놈과 다투는 것을 보셨다고 했죠? 호호~! 그냥 운동하는 것은 좋아해서 어깨너머로 무술하는 도사들을 보면서 익혔고요. 혼자서 자꾸 하다가 보면 약간의 기술이 생기긴 해요.”

“약간의 기술이 아니던데? 여하튼 좋은 기술을 배웠으니 언제 나도 좀 가르쳐 줘. 자기 몸을 산짐승들에게서 지킬 만큼은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봤었거든. 하하~!”

“잘 되었네요. 령아는 무술을 가르쳐 드리고, 싸부님은 학문을 가르쳐 주시면 서로 공평하겠어요. 그쵸?”

“맞네. 하하~!”

“그렇다면 지금은 제가 먼저 배울 거예요. 음양을 가르쳐 주세요. 어떻게 해야 빨리 음양을 알 수가 있을까요?”

“뭐라? 빨리라고? 그런 마음이면 아예 공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는걸. 일평생을 공부한다고 생각해야지 빨리 후딱 밥 먹듯이 해치우겠다는 마음이라면 나도 가르칠 수가 없지.”

“아이참, 뭘 그렇게 정색을 하고 그러세요. 싸부~!”

“공부에 대해서는 장난으로 하면 안 되거든.”

“누가 장난이래요. 그냥 너무 좋아서 까분 걸 갖고 심하게 나무라시면 어째요. 앞으로 그런 말은 안 쓸게요~!”

“알았어. 내가 좀 고지식하니까 너무 심하게 장난하면 화를 낼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알아둬야 할 거야.”

“옙~!”

“도(道)가 뭐야?”

“지금 령아에게 도가 무엇인지를 물으신 거예요?”

“당연하지. 가르치려면 제자가 뭘 얼마나 알고 있는지부터 파악을 해야 하니까 핵심부터 확인하는 거야.”

“쳇, 너무 하시네요. 여태까지 령아의 본전을 다 보여드렸는데 또 뭘 내어놓으라는 거예요?”

“말이 참 많군. 다시 묻는다. 도가 뭐지?”

“어……. 도는.... 길이요.”

“왜?”

“도로(道路)잖아요.”

“아, 그것도 도네. 하하하~!”

“오라~! 싸부님 표정을 보니 답을 잘한 거 맞죠?”

“그게 아니라 기가 막혀서 웃는 거야. 에구~!”

“그렇게 형편없는 답인 줄은 몰랐어요.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고 멋진 답이라고 판단을 해서 말씀드린 거란 말이에요.”

“알았어. 도로에는 음양이 있나?”

“도로에 음양이 있느냐고요? 도로에 음양이 있을 턱이 없죠. 그냥 사람도 다니고 말도 다니고 소도 다니는 도로에 무슨 음양이 있겠어요.”

“자, 령아가 길을 가고 있다고 상상을 해봐. 혼자 길을 가고 있는데 앞서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 거야. 어떻게 하지?”

“그야 서로 빗겨서 가면 되잖아요?”

“그렇다면 그게 바로 음양인거야.”

“뭔 말씀이세요?”

“오는 것은 양이고, 가는 것은 음이다. 이것을 거래법(去來法)이라고 하는 거야.”

“왜 오는 것만 양이에요? 가는 것이 양이 될 수도 있잖아요?”

“아이구 따지는 건 선수인걸. 하하하~!”

“그럼요. 그걸로라도 버텨야죠~! 호호~!”

“가는 사람은 나 자신이잖아. 내가 움직이는 것 같아. 아니면 마주 오는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같아?”

“그야 마주 오는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죠. 그래서 다가온다고 하잖아요? 그것도 질문인 거예요?”

“그래서 다가오는 사람은 동(動)이 되고, 나는 주체가 되어서 정(靜)이 되는 거야.”

“아하~! 그 생각은 정말 못했어요. 싸부님 대단하세요~!”

“그래서 동은 양과 통하고 정은 음과 통해서 음양이 되는 것이라네.”

“정말 멋진 가르침이세요. 도로에서도 음양이 있었군요. 근데 령아가 도를 물으실 적에 도로라고 했는데 왜 웃으셨어요?”

“아, 그것은 묻는 높이와 답하는 높이가 서로 달라서 웃었던 거야.”

“아~! 그러니까 령아의 수준이 형편없어서 비웃으신 거군요? 맞죠?”

“여태 도에 대해서 생각도 해보고 질문도 해봤지만 그렇게 답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 그러나 틀린 답은 아니야. 이렇게 도로에서도 멋진 음양을 찾을 수가 있으니까 말이지. 하하~!”

“그렇담, 도는 어디나 있는 것일까요?”

“정답~!”

“에구머니나~!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한 마리 잡았나 봐요?”

“무소부재(無所不在)~!”

“없는 곳이 없단 말씀이에요? 그런데도 보지 못하는 것은 눈이 나빠서겠네요. 마음의 눈 말이에요.”

“그렇지.”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밝은 혜안(慧眼)으로 음양의 거래법(去來法)에 통달할 거예요. 많이 가르쳐 주세요!”

“그래라. 허허허~!”

“에구 징그럽게 웬 늙은 영감 흉내를 내시래요? 호호호~!”

그러는 사이에 식사의 종이 울렸다. 다음에 또 이야기 나누기로 하고 서둘러서 각자의 식당으로 향했다. 남녀가 식사하는 공간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식당에서는 모두 조용하게. 아침으로 제공되는 죽을 제각기 양에 맞춰서 먹고 있었다. 불가(佛家)나 도가(道家)에서의 생활의 모습은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삭발이냐 아니냐의 차이만 제외한다면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형태로 수행을 하는 것은 그것이 최상의 방법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시장기를 느낀 우창은 죽을 가득 담아다 놓고 막 먹으려고 하는데 고월이 옆에 앉는다.

“여~! 잘 쉬셨는가? 안색이 좋아 보이는 걸. 좋은 꿈이라도 꾸셨나 보군.”

“어서 오게. 고월~!”

간단히 안부 인사만 나누고는 조용히 조반(朝飯)을 들었다. 원래 음식을 먹을 적에는 입을 열지 않는 것이 규칙인 까닭이다. 그렇게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서 두 사람은 고월의 처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