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 제8장 교학상장(敎學相長) / 2. 옥녀즉상봉(玉女卽相逢)하니 삼춘곡우래(三春穀雨來)니라

작성일
2017-01-06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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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6] 제8장 교학상장(敎學相長)


2. 옥녀즉상봉(玉女卽相逢)하니 삼춘곡우래(三春穀雨來)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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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

“어?”

“뭔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사람이 말을 해도 못 듣고서 말이에요.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어서 이야기해 줘봐요. 점괘를 해석하고 계셨던 것이 맞지요?”

자신도 모르게 점괘의 내용을 읽어 주려다가 또 뭔 소리를 들을지 몰라서 그냥 덤덤하게 둘러댔다.

“아, 령아의 점괘 해석이 너무나 명쾌해서. 하하~!”

“그거 어떻게 하는 건지 저도 좀 알려 줘요. 그런 것을 배우는 게 참 재미있는데 하북원에서는 방문객들 접대만 하느라고 정작 재미있는 공부는 하나도 못했지 뭐예요. 쳇~! 못된 도사들 같으니.”

“그런데, 노산에는 어떻게 온 거야?”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사이에 우창의 마음도 긴장이 풀려서 자연스럽게 친근한 말투가 되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동생처럼 느껴져서 풋풋한 마음이 상큼했다. 물론 붙임성이 좋은 조은령의 태도가 그 시간을 앞당긴 것은 분명했다.

“말도 말아요~!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도관(道觀)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자하도장께서 부르신다고 둘러대고는 바람 쐬러 나온 거예요. 작년에도 왔었거든요. 해마다 봄이 되면 노산의 아름다운 풍광이 그리워서 다시 오고 싶어져요.”

“말도 참 잘하시는군. 그래서 노산에 왔다가 아까는 그 봉변을 당했구나. 하하~!”

“봉변이라뇨~! 봉변은 그 멍청한 사내가 당한 거지요. 호호호~!”

“하긴, 그렇게 되네. 하하하~!”

유쾌해진 우창은 공부에 대한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조은령의 하는 것만 보면서 마냥 즐거웠다. 과연 강남의 제비가 봄기운을 받고 추녀 끝으로 날아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단시점 말이에요!”

“아, 간단해. 근데 뭐 그런 것을 배우려고. 하하~!”

“재미있잖아요. 제비라니요. 어쩜 그렇게 신통할 수가 있어요? 딱 령아의 마음이잖아요. 가르쳐 주세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파고드는 것을 보니까 그냥 대충해서는 물러날 자세가 아니었다. 우창은 이미 백발에게 가르쳐 준 것도 있고 해서 그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구결(口訣)을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한 시간 정도를 설명하니까 총명한 조은령은 이미 다 터득을 해 버렸다.

“이렇게 간단한 것도 몰랐네요. 고마워요. 오라버니 덕분에 궁금한 것에 대해서 해결을 할 수가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오라버니가 공부한다는 명학은 어려운 거예요?”

“말도 말아. 너무 어려워서 아직도 캄캄한 동굴 속을 헤매고 있는 중이니까.”

“동굴요? 령아는 동굴도 참 좋아하는데. 그것도 오라버니랑 같이 가면. 호호~!”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잖아? 자하도장께서 보살펴 주신다면 천진으로 가지 않아도 되겠군.”

“엄마야~! 오라버니는 벌써 도망가지 못하게 저를 관리하는 거예요?”

우창은 순간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두근거렸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입이 제멋대로 말을 뱉어낸 모양인데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 되었다.

“당연하지~! 하하하~!”

“오라버니가 공부를 가르쳐 준다면 당연히 천진에는 안 갈래요. 이제는 제가 원하면 속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공부해도 될 단계의 급수는 되었거든요.”

“공부하는데도 급수가 있어?”

우창은 처음 듣는다는 말이어서 무슨 말인가 싶었다.

“당연하죠. 5년이 지나지 않으면 절대로 공부를 할 기회를 주지 않잖아요. 오라버니는 그런 것도 모르고 도관 생활을 하신단 말이에요? 도대체 무슨 배려를 받으신 거예요?”

“배려라고?”

그 말에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스승님께서 써 주신 서신으로 인해서 자신은 수습 기간도 거치지 않고 바로 학당으로 배정을 받았었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된 것이다. 여태 그것도 모르고 편하게 공부만 했었다는 생각이 들자, 새삼스럽게 스승님의 배려에 고마움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문창성군(文昌星君)의 배려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특혜를 받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어찌 생각이나 할 수가 있었겠어요?”

“그랬나 보다. 하하~!”

“잘 되었어요. 령아도 이제부터 오라버니에게 명학을 배울래요. 자상하게 잘 알려 주실 거죠?”

“그야 뭐.... 몰라서 물으면 아는 거야 얼마든지 도와줄 수가 있지. 그렇지만 나도 공부가 얕아서 별로 가르쳐 줄 것이 없을 것 같은걸.”

“오라버니가 아는 만큼만 알려주면 되잖아요? 령아가 없는 것을 가르쳐 달라는 것도 아닌데요, 뭘.”

“그래 알았어. 오늘은 이만 헤어지고 다음에 또 봐.”

우창의 이 말에 조은령은 눈을 흘기면서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아마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라는 생각을 한 우창이 얼른 말을 바꿨다.

“아니.... 난 그저.... 더 이야기 나누면야 좋지~!”

“그런 거죠? 그럼 공부 시작해도 돼요? 궁금해요. 뭘 알아야 하는 거예요?”

“글쎄... 음양?”

“음양요? 그야 알죠~! 밤은 음, 낮은 양이잖아요? 잘 알죠?”

“그렇구나. 그럼 나무와 바위가 있으면 음양은 어떻게 될까?”

“그야 나무가 양, 바위가 음이잖아요.”

“왜?”

“당연하잖아요? 나무는 밝고 화창한데 바위는 칙칙하니까 그렇죠.”

“거 참... 희한한 음양론이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로군. 하하~!”

우창은 이렇게 부담 없는 음양론이 맘에 들었다.

“그럼 오라버니가 생각하기에는 음양이 어떻게 되는데요?”

“보기 나름이지 뭐. 령아가 한 말도 맞아. 다만 일반적인 기준을 적용한다면 나무는 바위를 못 이기고 바위는 나무를 이긴다는 의미에서 보통은 바위는 강하고 나무는 부드러운 것으로 대입을 하지.”

“그럼 바위가 양이고 나무는 음이란 거예요?”

“맞아. 보통은 그렇게 본다는 이야기야.”

“그러니까 관점(觀點)이 중요하다는 거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음양이 달라지는 것이고 고정된 것은 아니라는 거잖아요?”

“맞아~!”

“남녀는 어때요?”

“뭐가?”

“음양이 어떻게 되느냐고요.”

“그야 남양여음이지 뭘.”

“왜요?”

“어허~! ‘왜요’라고 묻지 말고 이래서 그렇게 보느냐고 해야 학생의 태도이지. 너무 당돌하잖아?”

어느 사이에 두 사람은 사제지간(師弟之間)의 궤(軌)를 동행(同行)하고 있었다. 묻고 답하는 것이 영락없는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이, 죄송요. 싸부~!”

“싸부는 뭘. 하하~!”

좀 멋쩍긴 했지만 싫지 않은 호칭이었다. 오라버니보다 싸부가 훨씬 나아 보이기도 했다. 오라버니라고 하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이라서인지 여간 생소한 느낌이 아니어서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싸부’라고 불러주니 오히려 친근감이 들어서 좋았다.

“남자는 힘이 세고, 여자는 힘이 약해서지요?”

“아닐걸.”

“왜요?”

“아까 싸울 적에 보니까 엄청나게 강하던걸? 그럼 령아는 남자였단 말이야?”

“무슨 말씀이 그래요~!”

그러면서 조은령은 조그만 주먹으로 우창의 가슴을 쳤다. 그 순간 여인의 향취가 코를 자극하였고 순간 아찔한 느낌이 들어서 잠시 혼미하기조차 했다. 그래서 조금 떨어져 앉았다.

“당연히 그 답은 틀렸단 말이지 뭐야.”

“틀렸다고요? 음, 보통 그렇게들 말하지 않나요?”

“보통이야 말을 하거나 말거나 정확한 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지 수준이 보통 사람들과 같아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또 몰라도.”

“그건 원하는 바가 아니에요~! 나도 제대로 잘 알고 싶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답을 잘해야지. 다시 해봐.”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인은 안에서 아기를 낳아요.”

“오, 그건 일리가 있어. 그렇지만 여인도 밖에서 일하기도 하니 정확한 답이라고 하긴 어렵겠는걸. 하하~!”

“정말요? 아, 음양이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네... 모르겠어요. 알려 주세요. 싸부~!”

“그것은 수컷과 암컷의 차이로 인해서 음양이 결정되는 거야.”

“어머? 그래요? 민망하게 낭자 앞에서 수컷과 암컷을 말하다니요~!”

조은령은 이렇게 말하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순간 우창은 후회했다. 그냥 조금 전의 조은령 답으로 해결을 볼 것을 괜히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너무 멀리 와버린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달리 쓸어 담을 수도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수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낭자였어? 난 제자인 줄 알았는데? 낭자가 왜 외간 남자에게 음양을 묻고 그래?”

“아코! 령아가 실언을 했어요.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해가 되었으면 잘 알았다고 하고 덜 되었으면 다시 물어야지.”

“에구~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싸부님~!”

“음양을 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줄게. 낮과 밤처럼 밝고 어두운 것으로 보기도 하고, 크고 작은 것처럼 외형의 크기로 구분하기도 하고, 빠르고 느린 것처럼 속도로 음양을 보기도 하고, 차갑고 뜨거운 것처럼 온도로 구분을 하니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을 거야.”

“아, 정말이네요. 음양을 알면 세상의 절반을 알게 된다는 늙다리 도사들의 말이 떠올라요. 그 할배들의 말이 맞긴 했었나 보네요. 호호호~!”

“말본새하고는~! 하하~!”

“알았어요. 오늘은 싸부님을 그만 괴롭히고 물러갈게요. 대신 내일은 궁금증을 포대화상(布袋和尙) 보따리만큼 큰 것으로 들고 올 테니까 각오하셔야 해요. 오늘 뵙고 소중한 가르침 주셔서 고마워요. 편히 쉬세요~!”

“그래, 령아도 잘 쉬어~!”

그렇게 조은령을 보내고 나니 갑자기 가슴속에서 바람이 슝~하고 빠져나가 버린 것 같은 공허감이 들었다. 아까만 해도 매우 안정적인 방이었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변화가 벌어진 건지 모를 일이었다. 역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더니만 여인 하나가 나비처럼, 아니 제비처럼 날아 들어와서는 사내의 마음을 휘젓고 다니다가는 또 휭~하니 날아가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아직 저녁밥을 먹을 시간은 되지 않은지라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폭포 앞에까지 걸었다. 주변에는 녹음방초(綠陰芳草)가 아름다워서 이내 마음은 평온해졌고 적천수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을목수유(乙木雖柔)’를 떠올리자 다시 조은령의 모습이 겹쳤다. 이제 앞으로도 두고두고 한동안은 을목만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되지 싶다는 생각으로 미소를 지었다. 왠지 싫지 않은 얼굴이다. 내일은 또 무엇을 물을지 모르지만 무엇에 대해서 물어도 모두 답을 해 주고 싶고, 답을 하지 못할 것이 있다면 누군가에게라도 물어서 답을 주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제비괘에서 설명해 놓은 구절이 생각났다.

 

옥녀즉상봉(玉女卽相逢)하니

삼춘곡우래(三春穀雨來)니라

 

어제까지 생각에 골몰했던 곡우(穀雨)가 그 속에서 튀어나올 줄이야. 어쩌면 조은령과 만나서 곡우를 맞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망상도 일어났다. 삼춘(三春)은 세 번째의 봄이란 말이니 진월(辰月)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무조건 외웠을 적에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외웠는데 이렇게 다른 지식이 추가됨으로 인해서 다시 그 글귀들이 되살아나면서 뜻도 달라지니 학문의 힘은 외우는 것에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절기도 진월은 청명(淸明)과 곡우(穀雨)라는 것을 알고 보니 이 따스한 봄에 옥같이 고운 여인을 만나서 설렘이 가슴에 진동을 남긴다. 마침 울리는 저녁식사의 종소리를 듣고는 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