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제7장 명학(命學)의 기초공사/ 1. 간지(干支)의 상식을 높여라

작성일
2017-01-0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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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 제7장 명학(命學)의 기초공사


1. 간지(干支)의 상식을 높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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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낭랑(朗朗)한 음성으로 천간편의 갑목(甲木)을 읽었다.

 

甲木參天 脫胎要火(갑목참천 탈태요화)

春不容金 秋不容土(춘불용금 추불용토)

火熾乘龍 水蕩騎虎(화치승룡 수탕기호)

地潤天和 植立千古(지윤천화 식립천고)

 

갑목(甲木)은 하늘로 향해 솟아나니

태반(胎盤)을 벗어날 때는 화(火)가 필요하다.

 

춘절(春節)에는 금(金)을 수용(受容)하지 않고,

추절(秋節)에는 토(土)를 용납(容納)하지 않는다.

 

화세(火勢)가 치열(熾烈)하면 용(龍)을 타고,

수세(水勢)가 넘칠 때는 호랑이를 탄다.

 

땅은 윤택(潤澤)하고 하늘은 온화(溫和)하면,

곧게 심어져서 천년(千年)을 자란다.

 

갑목편의 원문을 다 읽고 나서는 다시 고월에게 의문이 가는 부분에 대하여 물었다.

“갑목(甲木)은 참천(參天)이라니 이게 뭔 말인가?”

“그렇지. 우선 해석에 들어가기 전에 자네의 기본적인 상식부터 정리해야 하겠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문제가 속을 썩이지 싶어서 말이야.”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답답하지? 알았어. 어떻게 하면 될까? 설명해 줘보시게.”

“우선 오행은 잘 알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일세. 갑을목(甲乙木), 병정화(丙丁火), 무기토(戊己土), 경신금(庚辛金), 임계수(壬癸水)라고만 외우면 된다네. 앞의 천간은 양간(陽干)이고 뒤의 천간은 음간(陰干)이니 간단히 정리될 것이네.”

“간지에 오행을 추가하니 훨씬 부드럽군.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겠어. 그러니까 갑은 양목(陽木)이라는 뜻이란 말이지?”

“원래 주역은 음양의 이치를 헤아리면 되는데, 명학은 오행의 이치를 바탕에 깔고 다시 음양의 변화를 덧씌워야 하니까, 처음에는 주역을 이해하기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어. 그래서 많은 명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포기하고는 주역으로 갈아타기도 한다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으로 주역의 기본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되겠네. 나 같은 사람을 포함해서 말이지. 하하~!”

우창이 다소 미안한 듯이 머리를 긁으면서 답했다.

“아마도 우창의 수준이 일반적인 기준이라고 보면 될 거야.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역학(易學)은 높게 여기고 명학은 낮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공부하기로 들면 훨씬 어렵고도 난해한데도 말이지. 왜 그럴까? 우창은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아직도 배움이 미천하여 무엇을 왈가왈부하겠는가만 역학이든 명학이든 그 가치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닐까? 벼를 기르는 일이 마차를 만드는 일보다 가치가 낮다거나 높다고 말하는 것이 가당치 않은 것처럼 말이네.”

“참으로 비유 한 번 적절하게 잘도 둘러다 붙이는군. 탄복(歎服)이네. 자네의 순발력은 나도 배우고 싶어.”

“고맙네. 칭찬인 거지? 하하~!”

“당연하지.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구수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둘러 붙이는 것을 보면, 그것은 아마도 타고나야 할 거 같아.”

“쓸데없는 빈말 공덕은 그만하면 되었고, 왜 학인들이 주역을 명학보다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존재하느냐고 한다면. 아마도 쓰임새의 폭에 대해서 선입견이 있는 까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 볼 수도 있지 싶군.”

“아, 그러니까 명학은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길흉화복을 논하나, 역학은 천하만사(天下萬事)를 모두 거론할 수가 있다는 이야기로군. 물론 인간의 길흉에 대해서도 역학이 판단할 수가 있는 것을 보면 범위가 넓은 것은 틀림이 없다고 하겠네. 맞는 말이야.”

“그렇다면 역학에 비해서 명학의 장점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무래도 견식(見識)이 많은 고월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줘 보게.”

우창을 한 번 바라보고는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명학의 장점은 오행에서 찾으면 되겠지. 오행은 고정불변(固定不變)이고 음양은 변화무쌍(變化無雙)이지 않은가. 어찌 이 둘의 가치를 우열(優劣)로 구분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겠지. 이제야 명학과 역학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해가 되는 것 같아. 정리를 해 줘서 고맙네. 그러니까 세상의 이치는 역학이고 인간의 이치는 명학인데 이 둘은 서로를 견제하면서 발전하는 관계라고 보면 될 것 같은걸.”

“그렇다면 다시 갑목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고.”

우창은 학문의 영역을 잘 정리해 준 고월이 고마웠다. 큰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갑목 이야기에 눈길을 돌렸다. 우창이 물었다.

“갑목(甲木)은 참천(參天)이라고 한다면 참(參)은 섞이거나 간여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이게 무슨 말이지? 하늘에 섞이는 것은 무엇이고 또 하늘에 간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늘에 섞이는 것이 맞을 거야. 왜냐하면 양목(陽木)은 바람과 같은 것이거든. 바람은 하늘에 섞이지 않는가? 그래서 참천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

“내가 전에 듣기에는 갑목은 거목(巨木)을 의미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인가?”

“뭐, 잘못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자칫하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달로 볼 수도 있음을 경계하는 거지.”

“그러니까 거목이라는 것은 갑목을 비유하는 하나의 형용사인데,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것에 갇혀서 실제적인 갑목을 이해하는데 오류가 생길 수가 있단 말인가?”

“맞는 말이네. 그래서 거목도 안 될 것은 없지만 바람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지.”

“왜 갑목이 바람인가? 나는 오히려 그게 더 납득(納得)되지 않는걸.”

“갑목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영아(嬰兒)와 같거든. 그렇게 활발한 움직임은 바로 갑목의 기운을 가장 많이 받아서 그렇다고 보는 것이지. 글자를 보게 얼마나 머리가 큰가. 그것은 마치 어린 아기의 형상과도 흡사하지 않은가?”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 그런데 어린아이라는 비유가 적절한가? 목(木)은 나무이거나 봄을 의미하는데 무슨 연관이 있을까?”

“아니, 목은 성장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모른단 말인가?”

“바로 그 의미였구나. 이제 기억났네. 목이 움직이는 것은 봄에 농부가 농사를 지으려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다는 말과 비슷하겠지?”

“맞아, 그래서 갑목의 특징은 바람으로 보고, 바람은 하늘에 섞이는 것이라고 본다면 갑목참천에 대한 의미는 이해가 되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이해가 되었네. 나무가 자라서 하늘을 찌른다고 하는 것보다 훨씬 품격이 있군. 하하~!”

“이해가 되었다니 다행이군. 그렇다면 다음의 구절은 어디 해석을 해 봐. 아무래도 나보다는 비유의 달인인 우창이 하는 것이 재미있거든. 하하~!”

고월의 권유에 사양하지 않고 다음 구절을 살펴봤다.

“다음은, 탈태요화(脫胎要火)라는군. 모태(母胎)를 벗어날 적에는 화(火)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없지 싶은데 웬 모태가 등장하는지를 모르겠는데?”

“모태는 처음에 움직이고자 할 적에는 아기가 모태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는 비유로 보면 될 거야. 처음에 뭔가 움직이려면 필요한 것이 뭘까? 그건 바로 움직이고자 하는 열정이 되는 거지. 우창이 앉아 있다가 움직이려면 어떻게 하는지 생각해 보면 알겠군.”

“처음 움직이고자 할 적에는 움직이고 있는 상태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이 되네. 그러니까 갑목이 바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할 경우에도 당연히 처음에 움직이려면 무엇인가로부터 충동을 받아야 할 것이고 그것을 강력한 힘으로 봐서 화(火)라고 했을 수도 있단 말이지?”

“잘 이해했군. 그 이야기야. 그런데 바람이라고 했지만 모든 움직이는 것은 다 갑목이라고 해도 되는 거지. 특히 유아라고 해도 좋아. 처음에 움직이기 위해서는 열심히 모유를 먹고 힘을 기른 다음에 때가 되면 비로소 힘차게 일어서는 것과 같으니까.”

“오호~! 그건 말이 그럴싸한걸. 그런데 나무로 본다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네. 두 가지의 경우를 모두 만족할 이치가 있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보자는 거지. 혹 누군가는 갑목은 절대로 나무, 그것도 거목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만났으면 그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하려면 이러한 것도 알아둬야 하지 않겠는가?”

“참 걱정도 많은 친구로군. 그야 맘대로 하시렴. 나무라면 씨앗에서 싹이 나오고자 할 경우를 생각할 수가 있겠군. 호두를 알지? 그 단단한 껍질에서 어떻게 싹이 나올까?”

“아마도 따뜻한 봄볕이 쪼여주면 자연스럽게 입이 열리면서 그 안에서 싹이 나오지 않을까? 그것을 억지로 누군가 벌려준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은걸.”

“맞아, 그러한 경우에 필요한 것도 화(火)가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말하게 되지? 그러한 것도 나무의 관점에서 탈태요화라고 할 수가 있지. 이제 고집스러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나?”

“당연하지~! 참으로 진리의 탐구는 그 재미를 무엇과도 비길 수가 없는 것 같단 말이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지.”

“그렇다면 탈태요화는 이해가 되었군. 다음은 또 뭔가 해석해 봐.”

“다음은, 춘불용금(春不容金)이네. 이건 뭔가 이해가 될 것 같군. 금은 가을이 제철이고 모든 것을 닫고 죽이는 성질이 있으니 봄에는 이러한 성분이 있으면 어린 싹들이 모두 얼어 죽을 테니 어찌 용납할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 맞는가?”

“제대로 짚었어. 틀림없으니 다음 구절로 넘어가도 되겠어.”

“다행이군. 다음은 추불용토(秋不容土)인데 이것은 조금 어렵군. 가을에는 토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뭐지?”

“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야 조화(調和)와 중용(中庸)이 아닌가?”

“맞아, 가을에는 목은 죽거나 휴식에 취해야 하는데 중용을 주장해서 될 일이 아니지 않을까? 그냥 무조건 금의 분부에 따라서 일년초는 씨앗을 남기고 죽어야 할 것이고, 다년초는 가사(假死)의 상태에서 겨울을 준비해야 하니까 토의 작용은 의미가 없다는 거야.”

“일리가 있군. 또 나무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렇게 이해를 하겠지만 바람으로 본다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참 어지간히도 머릿속이 복잡한 우창이로군. 그런 경우에는 목의 기운이 가을에는 뻗어 나갈 수가 없으니까 멈춰야 한단 말이지. 바람이 멈추는 것은 죽음이나 같다는 거야.”

“그런데 실제로 바람은 가을에 더 많이 불지 않은가?”

“뭔 말이야? 바람은 일 년 내내 밤낮없이 불어대지. 그렇지만 오행으로 계절을 논한다면 훈풍(薰風)에 해당하는 바람은 멈춘다는 거지. 목의 본질을 잊지 말란 말이야.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도 함께 생각을 해 주면 좋겠는걸.”

“아, 또 깜빡했네. 하하~! 가을에는 나무의 기운이 뿌리로 내려가기 때문에 토양도 허약해진다는 관점은 어떨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왜 그런가?”

“토양이 얼마나 깊고 거대한데 그깟 나무뿌리가 조금 강해진다고 해서 허하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일반의 평민이거나 농부라면 혹 모르겠네만, 자연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경도 스승님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면 적천수를 썼을 까닭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팍팍 드는군. 알겠네. 그렇게 정리함세. 다음 구절로 넘어가네.”

“그래 다음엔 뭐지?”

“다음은 화치승룡(火熾乘龍)이라고 했는걸. 불이 치열하게 타오르면 용을 타라는 말인가? 이건 또 뭔가?”

“아니, 자네는 띠에 대해서 알고는 있나?”

“띠라면 태세(太歲)에 따라서 매년 정해지는 열두 동물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왜 갑자기 튀어나오는 건가?”

“경도 스승님이 설명의 편법으로 그렇게 동물을 거론했으니 공부하는 후학이야 달리 방법이 있겠어? 그냥 그대로 수용하면 되는 것이지.”

고월은 우창이 혹시라도 지지와 동물의 연관을 잘 모를까 싶어서 헛일 삼아 일일이 짝을 지어서 설명해 줬다. 자(子)-쥐, 축(丑)-소, 인(寅)-호랑이, 묘(卯)-토끼, 진(辰)-용, 사(巳)-뱀, 오(午)-말, 미(未)-양, 신(申)-원숭이, 유(酉)-닭, 술(戌)-개, 해(亥)-돼지를 설명해 주니까 어렴풋이나마 알았던 것을 정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느껴졌다. 간단히 설명을 해 주고서는 말을 이었다.

"이것은 천지가 개벽이 되기 전에는 바뀌지 않을 것이니 한 번만 익혀두면 그만일 걸세. 지지도 어차피 배워야 할 테니까 오행까지도 겸해서 익혀 놓도록 하게. 그나저나 이것을 내가 설명하게 될 거리고는 생각 못 했네. 참 재미있군. 하하~!”

“그래서 뭐든지 알아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때가 온다지 않은가? 내가 자네가 수고롭게 배운 것을 써먹게 해 줬으니 고마운 줄이나 알게. 하하~!”

“암, 고맙고말고. 앞으로도 계속 고맙게 해 주기 바람세.”

“그렇다면, 용을 타라는 말은 진(辰)이 필요 하단 뜻이겠군. 용을 탄다는 것은 좋은 조짐이 아닌가? 원래 벼슬길에 오르는 것을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하지 않는가?”

“에구, 참으로 가야 할 길이 멀긴 멀구나. 후유~!”

“또 뭔가 형편없는 질문을 했나 보군. 이거 다행스러워서 어쩌나. 또 자네의 언제 써먹을지 모르는 지식을 꺼내어서 바람 쏘이게 생겼으니 말이네. 하하~!”

“괜찮네, 괜찮아! 이러면서 나도 복습하는 셈이니 과히 미안할 것은 없지 뭐. 여하튼 간단하게나마 지지의 속성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으면 다음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으니 주의해서 들어봐.”

“당연하지. 설명해 주셔봐.”

“천간(天干)은 몇 글자인가?”

“그야 열 글자 아닌가. 십간(十干)이니까.”

“그렇다면 지지(地支)는 몇 글자인가?”

“질문이 그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답을 하겠는걸. 열두 글자이지 뭔가. 십이지(十二支)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천간은 열 글자인데 지지는 열두 글자인 것에는 지지에는 토(土)가 천간에 비해서 두 글자가 더 많기 때문이라네. 천간에는 무기토(戊己土)가 있지만, 지지에는 진술축미토(辰戌丑未土)가 있기 때문이라네.”

“정말 많기는 많군.”

“그렇게 감탄을 하라는 뜻은 아닐세. 토가 네 종류나 있다는 것은 땅이 서로 다른 성질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네.”

“당연하겠지. 마른 땅, 습한 땅, 높은 땅, 낮은 땅, 깊은 땅, 얕은 땅 등등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을 텐데 그것을 넷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참 대단한 기술이라고 생각이 되는걸.”

“그렇게 많은 것을 일일이 다 공식(公式)으로 만들기에는 불가능할뿐더러 그렇게 만든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하려면 또 그만큼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지.”

“주역에서는 팔괘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다 담아 놨듯이 지지에서는 네 개의 토로써 땅에 대한 현상을 담도록 배려를 한 것이지.”

“그것 참 다행이네. 그래서 어떻게 구분이 되나?”

“습기가 있는 촉촉한 토양은 전부 진토(辰土)로 모으고, 물이 있어서 질퍽한 상태의 토양은 축토(丑土)로 구분했지. 그리고 건조한 초원의 토양과 같은 것은 미토(未土)에다 배당을 하고 마지막으로 사막과 같은 매우 열기가 높은 토양은 술토(戌土)에 연결을 시켜서 나머지도 이에 준하여 적당히 가까운 것으로 모으도록 했지.”

“그 정도면 대략 모두를 포함한 것 같은걸.”

“자, 이제 묻겠네. 불이 치열하게 많으면 온도가 높겠지?”

“당연하지. 그렇다면 그러한 나무의 뿌리는 술토(戌土)나 미토(未土)가 아닌 축토(丑土)나 진토가 좋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소를 타도되고 용을 타도된다는 말이 나오는군. 어떤가, 제대로 가르침에 보답을 한 것인가?”

이렇게 당당히 말하는 우창을 바라보면서 고월은 기가 막힌 지 이마를 쳤다. 그렇게 또 서로는 마주 보면서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렸다.

“난 고월이 왜 웃는지는 몰라도 내가 참으로 기초적인 내공이 형편없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어. 여하튼 내가 자네를 웃게 했다는 것으로 만족을 하려네. 다 웃었으면 내가 뭘 모르고 있는지 알려 주게.”

“아무래도 적천수 공부보다는 기본적인 상식부터 해야 할 모양이네. 그렇지 않고서는 무리가 되지 싶군. 오행과 음양에 대한 상식만으로는 글을 풀어 가는데도 한계가 있으니까 잠시 바쁜 마음을 접고 둘러서 가야 하겠단 말이지. 그렇지만 둘러 가는 길이 지름길이 될 수도 있으니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게. 하하~!”

“아쉬워하긴, 그럴 리가 있는가? 뭐든 배우면 다 공부인 것을 그렇다면 왜 간지에 동물이 등장하는지부터 설명을 해 줘봐. 난 아까부터 그게 궁금하더란 말이야.”

“맞아.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우창의 수준이라고 봐야지. 하하~!”

“알았네. 그만하고~!”

“그 이야기에는 아주 오랜 전설과 그리 오래지 않은 전설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들어볼 텐가?”

“우선 오래된 이야기부터 듣겠네. 그런 것이 항상 재미있더란 말이지. 하하~!”

“알았어. 옛날에 문수보살(文殊菩薩)이 계셨는데 산중에 살던 동물들이 찾아왔다네. 자기들도 산중을 다스리는 지도자를 뽑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조언해 달라는 거였어.”

“오호~! 동물들과 소통을 하려면 문수보살쯤은 되셔야지. 그래서?”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던 문수보살이 기발한 생각을 하신 거야. 봐하니 호랑이는 힘으로 정하자고 할 것이고, 곰은 무게로 정하자고 하기로 든다면 강한 동물들이 산중을 휘어잡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되면 세상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셨지.”

“과연 보살다우시군.”

“그래서 동물들에게 일단 자신이 내린 결론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미리 약속했지. 다들 문수보살의 신통력을 알고 있는지라 모두 말을 잘 들었다네.”

“그래서?”

“3일 후 새벽에 이 자리에서 모인 다음에, 해가 뜨는 순간 달리기를 시작하여 순서를 정하는데 12등까지만 지도자로 뽑아서 한 해씩 산중을 지배하는 것으로 권력을 정한 다음에 여기에 대해서 모두 약속을 하라는 거였지. 도착할 곳은 산에서 해가 질 때까지 가는 것으로 정했다네. 그러니까 서쪽으로 하루를 달리는 시합이 된 거지.”

“그래도 힘이 센 동물들이 유리하겠군.”

“과연 그럴까? 3일 후 새벽에 모인 수백의 동물들이 해가 뜨자마자 달리기 시작했지. 그렇게 해서 하루 종일 달려서 해가 지는 곳에 다다른 순서대로 12등까지만 지도자가 되기로 했던 거지.”

“다들 정신없이 달렸겠군. 결국은 순서가 정해졌겠지?”

“그렇다네. 해가 지는 시간에 도착한 동물의 순서대로 번호를 정했다네. 1-쥐, 2-소, 3-호랑이, 4-토끼, 5-용, 6-뱀, 7-말, 8-양, 9-원숭이, 10-닭, 11-개, 12-돼지의 순서로 정해지게 된 것이지.”

“뭐야? 생각했던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걸. 달리는 것이라면 천하제일인 말이 7등이고, 가장 작은 쥐가 1등이라니 말이 되나?”

“그래서 오래된 전설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난들 봤겠나. 그랬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하하하~!”

“에이~! 어쩐지 자네에게 속은 것 같군. 그렇다면 얼마 안 된 이야기를 들려줘봐. 괜히 기대했다가 귀만 버렸네. 쯧쯧~!”

“그럴까? 아무래도 그게 낫겠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그걸 말이라고 한다는 것이 부끄럽군. 하하~!”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더 재미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띠에 대한 유아판(乳兒版)인 거지. 아이가 물어보면 뭐라고 할 텐가?”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 그것도 알아두면 언젠가 써먹을 수가 있겠네. 참으로 버릴 것은 하나도 없단 말이 맞아. 그렇다면 이제는 성인판을 부탁하네.”

“그래? 자네가 원하는 것이 성인판인가? 학자판인가?”

“아, 그런 것도 구분해야 하는 거야? 그렇다면 학자판을 듣겠네. 하하~!”

“당연하지, 성인판은 운우지정(雲雨之情)을 포함한 이야기란 말이야. 술자리에서 한 잔 거나하게 마시면서 나눌 이야기라는 이야기지. 하하~!”

“에구, 알았네. 그렇다면 성인판은 나중에 술을 마시면서 들어보도록 하겠네.”

“학자판이 아마도 입맛에 맞을 걸세.”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우선 서생원(鼠生員)에 대해서부터 설명을 할까?”

“쥐에게 생원(生員)이라는 벼슬의 이름을 붙여준단 거야?”

“선비가 글을 읽을 적에 쥐도 천장에서 밤새도록 찍찍거리고 글을 읽으니까 점잖은 선비가 기특해서 붙여준 이름이라더군.”

“참 여유로운 학자셨나 보네. 화가 나서 천장을 두드려 대기가 십상인데 말이지.”

“쥐는 자수(子水)를 상징하네. 자(子)는 음수(陰水)가 되니 자손창성(子孫昌盛)의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지.”

“쥐의 번식력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니 틀림없군.

“특히 겨울에 더욱더 번식을 하는 바람에. 동짓달을 아예 쥐의 달로 정했다네.”

“동지(冬至)라면, 대설(大雪)부터 소한(小寒)까지의 30일을 말하는 것이지?”

“맞아, 그리고 동지(冬至)가 한 해의 시작이 되기 때문에 쥐가 제일 먼저 등장을 한 것이기도 하네.”

“왜 갑자기 동물을 이야기한다면서 동짓달이 나오는 거야?”

“어허, 1년은 몇 달이지?”

“그야 12개월이 아닌가? 그것하고 뭔 상관이 있단 말이지?”

“왜 동물이 열두 마리인지, 왜 한 해가 열두 달인지 꼭 설명을 해 줘야 안단 말인가?”

“아, 알았네. 그러니까 열두 동물은 매달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용도라는 것이군. 맞나?”

“우창이 이해라도 빠르니 내가 이야기를 하기가 수월하군.”

“그런데 왜 하필 동짓달을 쥐의 달로 정했단 말인가? 거기에도 무슨 이유가 있는가?”

“당연하지, 학자판에 이유 없는 이야기가 끼어든다면 그것은 짝퉁 학자판이랄 밖에.”

“그렇다면 이유가 있단 말이군. 그게 뭐지?”

“간단하네. 쥐에게 가장 풍요로운 계절은 언제이겠는가?”

“쥐에게도 풍요로운 계절이 있을까? 그게 자월(子月)이란 말인가?”

“당연하지!”

“왜?”

“곳간에 곡식이 가득 채워져 있는 때가 언제인지만 생각하면 알 일인데 농사를 해 보지 않았으니 그걸 알 턱이 없지?”

“그야 농사를 짓지 않아도 알지. 아하~! 그래서 동짓달에는 쥐의 달이라는 말이군.”

“추수한 곡식이 가득한 달이니 마음 놓고 번식을 하면서 배부르게 먹고 살 수가 있으니 쥐에게는 이때야말로 번식의 적기라고 할 만하겠지?”

“실제로 확인을 해 봤다던가? 보통 동물은 봄에 번식하는데 말이지.”

“그것도 선입견이라네. 1년에 한 번 번식하는 동물도 있지만 여러 번 새끼를 낳는 동물도 있으니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도 오류라네.”

“오~! 과연 고월의 상식은 쓸 만한 걸. 또 하나 배우네. 하하~!”

“그렇게 해서 번식을 잘하는 쥐와 자수(子水)의 번식에 대한 의미를 묶어서 동짓달을 자월(子月)이라고 하게 된 것이라네.”

“그렇다면 자수(子水)는 번식을 의미한단 말인가? 물인데 무슨 번식을 한단 거지?”

“자수(子水)가 물만을 의미한다고 누가 그러던가?”

“그렇구나, 물만이 아니지. 자손(子孫), 아들에 모두 자(子)가 붙어있는 것도 같은 의미란 거지?”

“당연하지. 자네가 무극자를 뵈었다고 했던가?”

“그랬지.”

“무극자(無極子)의 자도 여기에서 왔다는 것은 모를 테지?”

“그야 선생님이라는 뜻이잖은가?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말은 잘하네.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자(子)가 종자를 번식한다는 의미는 모른단 말이야?”

“선생님이 종자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런 억지를 쓰나?”

“선생님이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야 공부를 하러 온 제자가 되겠지 누구긴 누구야?”

“그 제자는 정신세계에서의 자식인 거야. 그래서 무극자나 공자님은 씨앗이 되고 그것을 번식하는 제자들은 자손이 되는 거지.”

“이런, 이렇게도 간단한 이치를 몰랐단 말인가?”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은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그것을 보면서 고월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지금은 자네가 내 제자인 셈이지. 그럼 나는 임원보(林元甫)이니 임자(任子)가 되는 셈이고, 내가 자네에게 공부할 적에는 자네가 진하경(陳河鏡)이니 진자(陳子)가 되는 것이라네. 그래서 우리는 스승이기도 하고 제자이기도 한 거지.”

“참으로 멋지고 의미심장한 말이네. 그럼 소자님 계속해 주시옵소서.”

“어험~! 어험~! 그럼 계속할 터이니 잘 듣도록 하여라~!”

“예, 싸부님~! 하하하~!”

“자(子)에 포함된 상징으로는 씨앗, 알갱이, 종자, 지식, 겨울, 혹독한 추위, 시작, 선생, 자식, 책 등이 포함된다고 이해하면 된다네.”

“다 알겠는데 책도 자인가?”

“책을 책자(冊子)라고 하다는 것도 모르나?”

“아, 그게 그 말이었나? 과연 자네의 지식은 놀랍군. 그런데 왜 책을 책자라고 하지.”

“아니, 아직도 모르겠나? 이 적천수는 선생인가 아닌가?”

“그야 당연히 선생이지 경도선생 아니신가?”

“그렇다면 책자라고 해도 되지 않겠어?”

“아, 그래서 책선생이란 말이 나온 것이구나. 이제야 명료하게 알겠어. 과연 공부는 많이 해야 해. 책도 많이 보면서 말이지.”

“서가(書架)에 책을 쌓아놓은 사람은 당연히 선생인거야. 왜냐하면 책자(冊子) 속에서 항상 선생을 만나서 공부하는 것이니까.”

“정말 멋진 말이야. 책선생이라~!”

“책 대신 돈을 많이 쌓아놓은 사람은 뭐라고 하는지 아나?”

“그야 부자(富者)라고 하지 않는가?”

“뭔가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아, ‘선생’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이라는 뜻이잖은가?”

“그렇지, 그래서 돈은 아무리 많아도 선생이 되지 못하는 법이거든. 그래서 학자는 책을 탐하고 부자는 돈을 탐하지.”

“자네의 말을 들으니 공부하는 것이 왠지 돈 많이 버는 것보다 조금은 있어 보이는걸. 하하~!”

“당연하지, 이것이 물질(物質)과 정신(精神)의 차이인거야. 선생에게는 ‘님’자를 붙이지만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놈’자를 붙이는 것만 봐도 왜 모르겠어. 하하하~!”

“음, 참으로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뜻이군.”

“하천(下賤)한 사람과 고상(高尙)한 사람을 가름하는 경계선이 그 자리에 있다네. 그러니 재물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스승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법이라네.”

“그런데, 돈이 많다고 천(賤)한 것은 아니잖은가? 벼슬도 살 수가 있고, 그 돈으로 좋은 일도 할 수가 있으니 말이야.”

“모두 천해~!”

“무슨 말이 그런가? 괜히 자네가 돈이 없으니까 가진 자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닌가?”

“돈이 많아도 존귀(尊貴)한 사람이 있지. 그런 사람은 부귀(富貴)하다고 하는 거야. 그러나 단순하게 돈만 많은 사람은 졸부(猝富)라고 한다네. 그것은 바로 돈은 많으나 정신세계는 황폐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과연 일리가 있군. 자(子)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위대해 보이는걸. 식견을 넓혀주니 고맙네.”

“그렇다면 쥐에 대해서는 이해가 잘 되었다고 해도 되겠는가? 앞으로 쥐에 대해서는 말을 할 겨를이 없을 테니 그 정도라면 더 궁금하지 않아도 되겠지?”

“쥐와 자의 관계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네.”

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창은 언젠가는 정리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머릿속으로 잊지 않도록 다시 반복하면서 유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