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제6장 적천수 입문/ 5. 천도(天道)를 담고 있는 십간(十干)

작성일
2017-01-0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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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 제6장 적천수(滴天髓) 입문


5. 천도(天道)를 담고 있는 십간(十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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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새로 배정을 받은 숙소가 맘에 들었다. 방의 기운도 좋은지 편안하게 숙면을 취할 수가 있었다. 푹 자고 난 새벽에 산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어제 공부했던 통신송을 조용히 읊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감칠맛은 가히 천하의 일미(一味)였다. 이보다 더 맛있는 것이 어디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문자삼매(文字三昧)의 경지를 즐기다가 고월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데리러 온 다음에서야 비로소 밥을 먹고는 고월의 방으로 갔다. 고월은 벌써 공부를 할 준비를 해 놓고 있었다.

“아, 내가 늦었네. 오늘 공부할 내용은 뭔가?”

“이번에 공부할 내용은 제목이 천간(天干)이로군.”

고월이 펼친 책을 보니까 또 시가 한 수 적혀 있었다.

“여기에도 시가 있군. 우선 이것부터 풀이하고 들어가야 하겠어.”

우창이 때가 묻어서 글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지면을 찬찬히 보면서 정확하게 읽었다. 자칫하면 다른 글자로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학자의 손길에서 머물러 있었던 것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을 정도였다.

 

五陽皆陽丙爲最(오양개양병위최)

五陰皆陰癸爲至(오음개음계위지)

 

다섯 양이 모두 양이지만 병이 으뜸이고

다섯 음이 모두 음이지만 계가 가장 지극하니라

 

우선 칠언절구(七言節句)로 되어있는 시를 앞의 두 구절을 읽은 우창이 천천히 뜻을 음미하면서 풀이를 했다.

“앞의 구절은 오양(五陽)과 오음(五陰)의 이야기인 것을 보면 오행과 음양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겠어. 이렇게 보는 것이 맞겠지?”

“오양(五陽)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

“그야 갑병무경임(甲丙戊庚壬)을 말하는 것이지 않겠나.”

“다섯 개의 천간이 양이라는 뜻이었구나.”

“맞아, 그 모두가 양간(陽干)이지만 양중양(陽中陽)이 병(丙)이라는 뜻으로 보면 되겠네. 오행(五行)으로 화(火)는 양인데, 그중에서도 양화(陽火)이니 당연히 가장 양기(陽氣)가 넘치는 천간으로 보라는 이야기네. 그러니까 양간(陽干)의 특성(特性)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군.”

“그렇게 해석해야 하는 구나. 그렇다면 오음(五陰)은 을정기신계(乙丁己辛癸)가 되는 것이겠지?”

“물론이네. 그중에서도 수(水)가 가장 음의 성향이 많은데 더구나 음수(陰水)인 계(癸)야말로 그보다 더 지극할 수가 없다는 뜻이니까 과연 정확한 핵심을 짚고 있다고 봐야 하겠네.”

어제의 고월이 아니었다. 어제의 고월은 설렁설렁 넘어가려는 모습이었다면 오늘의 고월은 발아래를 살피고 있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어제의 고월이 아닌 걸.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말이네. 하하~!”

“말도 말게, 우창과 헤어진 다음에도 얼마나 자책(自責)했는지 모른다네. 공부를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는 후회(後悔)이기도 했다네. 하하~!”

우창은 다음 구절로 눈이 갔다. 앞의 두 구절은 천간(天干)의 체상(體相)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으로 정리하면 되지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두 구절은 틀림없이 천간의 용법(用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五陽從氣不從勢(오양종기부종세)

五陰從勢無情義(오음종세무정의)

 

오양은 기운(氣運)을 따르고 세력은 좇지 않으나

오음은 세력(勢力)을 따르고 뜻에 정의가 없다.

 

“우창이 먼저 풀이를 해 보겠네. 역시 뒤의 구절도 음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군.”

“글의 뜻으로 봐서는 양간(陽干)은 정의(正義)롭고, 음간(陰干)은 추잡(醜雜)하다는 뜻으로도 보이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

글을 풀이한 우창이 언뜻 내용에 대한 뜻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월에게 물었다. 고월도 이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아서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도 미처 무슨 뜻인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네. 글자만 봐서는 그렇게 봐야 하겠는데 그 안에 포함된 내용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모르겠군. 우창의 생각은 어떤가?”

“그런가? 우창이 생각하기에는 양강(陽强)과 음유(陰柔)에 대한 비유(譬喩)가 아닌가 싶네. 양은 강하고 음은 부드러운 것에 대한 뜻으로 보인단 말이지.”

“그렇다면 ‘오음종세(五陰從勢)’까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정의(無情義)’가 붙어있다는 것이 아무래도 편견(偏見)이 아닐까? 정의감(正義感)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써놓을 수가 없을 것으로 생각이 되니까 말이야.”

“글자를 다시 살펴보세. 정의(情義)는 인정(人情)과 의리(義理)를 말하지 않는가? 원래 이 둘은 공존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의리를 중히 하면 인정을 따를 수가 없고, 인정을 중시하면 의리를 따를 수가 없다고 본다면 말이지.”

우창의 말에 고월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어쩌면 일관성(一貫性)에 대한 뜻일 수도 있겠네. 양(陽)은 곧고, 음(陰)은 굽는다는 속성을 말하는 것이란 뜻이지. 굽는다는 것은 마치 갈대가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면 바람의 세력에 적응하여 누웠다가 바람이 지나가면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 보이네.”

“오, 그렇다면 양간(陽干)은 거목(巨木)과 같아서 바람이 불어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본단 말인가?”

“맞아! 바로 그 뜻이로군. 그러니까 태생(胎生)부터가 이미 서로 판이(判異)한 것을 알고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로 보면 되겠어. 역시 십간의 본성(本性)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내용이었네.”

“정의(情義)가 없다는 것을 음간(陰干)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본성이 덩굴식물이나, 갈대나 바람이나 여인과 같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는 가르침이네.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하느라고 그렇게 나타낸 것이 분명하군.”

“여인도 음간과 닮았다고 보면 되나?”

“여인에게는 삼종지도(三從之道)가 있지. 지금 경도 스승님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서 설명한 것이 틀림없네.”

“삼종(三從)이라니 그게 뭔가?”

“아, 그런 말을 못 들어보셨구나. 재가종부(在家從父)가 일종이요, 적인종부(適人從夫)가 이종이요, 부사종자(夫死從子)가 삼종이라고 한다네.”

“그런 것이 있었나? 집에 있을 적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에 가서는 지아비를 따르고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을 따른다는 뜻인가 본데?”

“맞아. 그런 뜻이라네. 여인의 운명은 그렇게 삼종지도를 따른다고 한다면 음간(陰干)의 성향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 정확하게 부합되는 것으로 봐도 되지 않겠나?”

“틀림없군. 그래서 종세(從勢)라는 말이 나왔구나. 종부(從父), 종부(從夫), 종자(從子)의 뜻을 생각했다면 음간에게도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크게 어색하지 않겠네.”

“다시 생각해 보면, 음간의 속성(屬性)은 그와 같다고 보고, 양간과 가장 큰 차별을 두는 것으로 간지를 이해하라는 뜻이라고 보면 되겠어. 양간은 남성적이고 음간은 여성적이라는 의미로 정리해도 되겠지?”

“그렇겠네. 그만하면 충분히 의미를 파악했다고 봐도 되겠어.”

마무리 삼아서 고월이 덧붙여서 언급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네. 보통 명서에는 이렇게 구분을 한 것에 대해서는 본 적이 없거든. 과연 경도 스승님의 통찰력은 탁월(卓越)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군. 그런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양간(陽干)은 우등하고 음간(陰干)은 열등하다는 느낌도 살짝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당연히 ‘음간은 정의(情義)가 없다’는 것에서 그런 느낌이 들 수가 있겠어. 인정머리가 없단 말이잖아? 그러니까 실속을 중시하고 허세(虛勢)는 무시한다는 의미로 보는 것도 가능하겠군. 그렇지만 생존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느 것이 더 좋거나 나쁘다는 개념은 의미가 없을 것이네.”

그러자 고월이 다시 한 마디 보탰다.

“그야 저마다의 타고난 천성이 있을 것이고, 그 천성은 세상을 조화롭게 이루려는 신의 뜻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양강(陽强)한 성분도 필요하니 의리를 중시하는 것도 있어야 하고, 음유(陰柔)한 성분도 필요하니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는데 아마도 경도 스승님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에서 정의로운 사람은 적고, 탐관오리와 간신들이 득세하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을 시구(詩句)에 담은 것이었을 수도 있겠어.”

고월은 생각을 말하면서 권력에 눈이 멀어서 백성은 도탄에 빠지는 것을 쳐다보지도 않는 벼슬아치들의 못돼 먹은 행동들에 대해서 분개했다. 물론 자신이 과거를 준비하면서도 뇌물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부친이 역적으로 몰려서 참살당하고 전 재산을 몰수당한 다음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 것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이미 앞서 그러한 이야기를 들었던 우창도 그 마음을 이해하는지라 잠시 노기(怒氣)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면서 차를 끓였다. 마음이 격동하게 되면 차분하게 공부해야 할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고월은 잠시 헤어진 가족들이 그리워졌는지 밖으로 나가서 마당을 한 바퀴 휘~돌고 들어왔다. 이미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밝고 쾌활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을 보면서 차를 권하는 우창의 마음도 밝아졌다.

“양간과 음간에 대해서 이만하면 충분히 이해했네. 이제부터 천간의 각론(各論)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세.”

고월이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창도 다음 구절을

“자, 이제 천간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 볼까?”

“당연하지, 그럼 먼저 한 대목을 읽어보도록 하겠네.”

이렇게 말한 우창이 첫 구절을 들여다보니 모두가 사언절구(四言節句)의 8개 구절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선 전체적인 흐름을 잡기 위해서 전체를 읽어 본 다음에 풀이를 세세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봐서 천천히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