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제5장 노산(嶗山)의 인연(因緣)/ 4. 새로운 도반(道伴)을 만나다

작성일
2017-01-0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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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 제5장 노산(嶗山)의 인연(因緣) 


4. 새로운 도반(道伴)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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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고향이 어딘가? 말투로 봐서는 북방인 듯싶네만.”

“맞네, 산서(山西)에서 태어났지. 태항산(太行山)이 바라보이는 마을이었다네. 고월은 어디에서?”

“나는 절강(浙江)이 고향이라네. 그렇지만 어려서 고향을 떠나는 바람에 그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어.”

“서로 태어난 곳은 달라도 이렇게 만난 것은 인연이겠지?”

“여부가 있나. 우창은 어쩌다가 도문(道門)에 들게 되었나?”

여러 도사를 만났으나 내력을 묻는 사람은 없었는데 고월은 이러한 것에 관심이 있는지 살아온 삶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하는 바람에 서로 함께하지 못한 과거를 공유하는 기분이 들어서 거리감이 더욱 좁혀졌다. 우창도 고월이 묻는 대로 숨김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난 농사일을 하는 것이 싫었어. 첫새벽부터 어둠이 내릴 때까지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소처럼 일만 해야 하는 삶은 의미가 없어 보였거든. 그러다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마자 고향에 더 머무를 의미가 없었다네.”

“하긴, 우창의 관상을 보면 땅을 팔 사람이 아니라 글을 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맘에 맞을 리가 없겠지. 하하~!”

“그런가? 하하~!”

“공부를 찾아서 심곡으로 갔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야. 돈을 벌어야 공부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스무 살쯤에 고향을 떠나서 성시(城市)로 갔지.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 가야 공부할 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장안을 향해서 가다가 화음(華陰)이라는 마을에 다다랐는데 여비가 떨어졌지 뭔가.”

“집을 나서면 당장 필요한 것이 금전이니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에게 할 일이라고는 대장간에서 풀무질하는 것이 제격이더군. 그래서 그때부터 그 일을 했지.”

“그거 재미있군. 대장간에서 도검을 잘 만들면 명성을 얻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만 칼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네. 오직 책을 읽어서 출세를 하겠다는 마음만으로 얻어걸린 일이었을 뿐이야.”

“돈을 벌어서 공부를 시작했겠군.”

“몇 달을 그렇게 야장(冶匠)의 일을 배우고 있는데 한 무림인이 찾아왔었지. 물론 무림인은 연일 찾아와서 검(劍), 도(刀), 철퇴(鐵槌) 등의 무기를 사기도 하고 수리하기도 했는데 그날 무인(武人)을 만난 것은 인연이었어.”

“맞아, 살아가다 보면 인연도 만나게 되지.”

고월이 자신의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자 우창은 잠시 그 시절을 회상해 봤다. 기왕이면 이 친구에게 제대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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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하나 구하러 왔소~!”

따뜻한 봄날에 마침 일이 없어서 졸고 있던 진하경(陳河鏡)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어서 화들짝 놀랐다. 그의 앞에는 거구의 사내가 남루한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차림새를 봐서는 무림인인지 농부인지 구별도 되지 않는 모습이어서 일순간 혼란이 왔다. 그렇지만 잠결에 들었던 말은 분명히 검을 구하러 왔다고 했던 것 같았다. 농부는 칼을 찾고 무림인은 검을 찾는 것인데 아무래도 무림인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찾으시는 것이 있는지요?”

원래 화산파(華山派)의 본부가 있는 화산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인지라 무림인들의 왕래가 잦았다.

“검을 하나 구하려고 하니 좀 보여주시오 젊은 친구.”

“예, 이쪽으로 전시된 것을 보시고 맘에 드는 것이 있으신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품질은 화음에서는 가장 좋기로 소문이 난 최상품입니다.”

진하경의 그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찬찬히 살펴보더니 누런빛의 물소 가죽으로 칼집을 장식한 검을 집어 들었다. 그 검은 주인이 말하기를 절대로 300냥 이하로는 팔지 말라는 최고로 비싼 것이었다. 그만큼 정성을 들여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당시의 쌀 한 가마니에 한 냥이면 최상품을 구입할 정도였으니 300냥은 백미 300가마 가격인 것이다. 보통의 검은 50냥이면 충분했기 때문에 주인 어르신의 자부심이 깃든 검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자기 자랑을 하던 생각이 났다.

워낙 비싸게 가격을 정해 뒀기 때문에 모두 와서는 바라만 보고 가던 검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을 척 집어 드는 품세를 보니 눈썰미는 상당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신기하게 동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람이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스르릉~

칼집에서 반짝이는 빛을 뿜으면서 검이 나타났다. 그는 한 번 쓱 훑어보고는 손가락으로 검신(劍身)을 튕겼다.

“띵~”

맑고 청아한 소리가 여운을 남기고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도로 집어넣고는 다시 하경을 바라봤다.

“이 검으로 하겠네. 얼마인가?”

“예, 참으로 물건을 보는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그 검은 하도 비싸서 다들 바라만 보고 가는 것인데 말이지요. 주인장께서 500냥 이하로는 절대로 팔지 말라는 검입니다. 그런데 하도 임자가 없어서 누군가 나타나면 400냥에 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음.... 400냥이라....”

진하경은 순간 마음이 몹시 켕겼다. 주인이 300냥을 받으라고 했지만 400냥을 받게 되면 100냥은 여비로 쓱싹한 다음에 바로 장안으로 길을 떠날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을 들키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말을 하고는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좋아, 내가 사지~!”

“부디 검신(劍神)의 가호가 있으시기를 빕니다.”

너무 기뻐서 희색이 만면한 진하경이 자기도 모르고 검신의 축복을 빌었다. 그 말을 듣고는 흠칫하던 모습을 보인 그 사람이 다시 진하경을 자세히 보는 것이었다.

‘이크~ 들켰나 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했던가? 속내를 들킨 것만 같아서 가슴이 통통 튀었다.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오더니 물끄러미 진하경을 바라보다가는 고개를 가로흔들었다. 아무래도 오늘 장사는 틀렸는가 보다 싶던 차.

“그런데, 젊은 친구는 대장장이의 관상이 아닌데 왜 여기에 이러고 있나?”

“아니,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화들짝 놀란 진하경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검술을 배우면 사람을 보는 눈도 같이 배우는가 싶은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래서야 어디 무인들을 상대하겠나. 문사(文士)의 상은 하다못해 서방(書房)이나 문방(文房)을 해야지.”

“그렇잖아도 여비만 마련되면 공부하러 갈 요량입니다.”

“오호~! 그래서 내게 여비를 보태라고 했군.”

“옛? 그걸.....”

“으하하~! 그리 놀랄 것 없다네. 이름이 뭔가?”

“진하경입니다만... 그건 어찌....?”

“솔직하게 말하게 주인이 받으라는 검 값은 얼마인가?”

“저.... 그게.... 300..... 냥...”

점점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하자, 그는 두말없이 품에서 황금 한 덩이를 내어놓고서는 말을 이었다.

“자, 주인장에게 전하고 오게.”

“예? 검을 가져가시면... 되지... 전하라니요...”

“오늘부터 그대는 이 집에서 더 살 필요가 없는 까닭이지.”

“아무리 거짓말을 좀 했기로 그렇게까지 하셔야 하겠습니까?”

“왜? 내가 뭘 어쨌기에?”

“주인장에게 일러서 저를 내쫓아 버리라고 하실 참이지 않습니까?”

“엉? 으하하하~!”

“여비만 마련되면 더 있으라고 잡고 늘어져도 갈 겁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쫓겨나는 수모는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당한 기개는 좋군. 그러나 그렇게 선량해서 강호를 어찌 살아갈꼬.”

“방해만 하지 않으시면 나름 잘 살아갑니다.”

“그게 아니라네. 존귀한 선생을 소개해 주려는 것이니 오해 말게.”

“예?”

진하경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선생이라고요?”

“그렇다네. 아마도 지금 내 제안을 거부한다면 자네는 일생을 두고 후회를 하게 될 것이네. 다만 선택은 그대의 맘대로 하게.”

진하경은 혼란이 생겼다. 낯선 무인을 따라나선다는 것이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기회는 항상 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을 할 시간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따라나서도 좋겠다는 마음이 바닥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따르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그럼 주인에게 하직을 고하고 오게.”

그렇게 해서 이 낯선 무림인과 인연이 되었던 진하경은 그길로 대장간을 나와서 동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침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는지라 주점을 찾은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저, 어르신의 존함이라도...”

“아, 난 오혜량(吳慧樑)이라고 하네. 앞으로는 참회검이라고 부르겠지만.”

“옛? 그럼 이전에는 어떤 명호로 부르셨는지요?”

“자오검(子午劍).”

“옛? 자, 자오검이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그대도 들어본 이름인가? 아는 체를 하니 말이지.”

“들어보다 마다입니까? 천하제일의 자오검을 모르면서 칼 장사를 할 수는 없지요.”

“강호인들은 뭐라던가?”

“갑자기 자오검이 실종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누군가 암살을 했을 것이라는 말도 있고, 병이 발작을 해서 자살했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으하하하~! 듣기는 잘 들었군.”

“그렇게 유명한 분이 제 앞이 있다니 믿어지질 않습니다.”

“실은 화산에서 도를 좀 닦느라고 강호를 떠났었다네.”

“천하제일의 고수가 무슨 도를 닦습니까?”

“참회수도(懺悔修道)라네.”

“참회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수없이 많은 무림의 인물들의 시체를 딛고 올라가서 얻은 천하제일검이 아니겠나. 그러니 그 원혼들이 밤마다 나타나서 어찌나 울고불고 하는지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화산에 처박혀서 도를 닦았다네.”

“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제서야 수도를 마치고 하산하는 길에 검을 새로 구입해야 할 일이 생겨서 마땅한 곳을 찾고 있었던 것이지.”

“아, 그러셨습니까? 아까는 그것도 모르고.....”

“그래서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네. 마침 내가 수도하던 곳에 사람이 하나 필요했거든.”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저에게 수도하러 가란 말씀이십니까? 행여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이래봬도 공부를 하는 것이 목적이지 수도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 뭐 마다하면 난들 강제로 보낼 마음은 없네. 그러나 그곳에는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있는 도인이 계시는데, 뭐 맘대로 하게나.”

“도인이요? 그건 또 어떤 사람입니까?”

“가서 만나보면 안다네. 내가 자네에게 거짓을 말할 것으로 보이는가?”

“그렇게 보이진 않습니다. 그런데 보통 무림의 검객들은 눈빛이 형형(炯炯)한데 검객님은 그냥 평민처럼 보입니다.”

“오호~! 과연 자오검이 맞느냐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나도 작년까지는 그랬었지. 그런데 그 도인께 공부하고서는 마음속의 명성에 대한 허욕을 지워버렸다네. 그리고는 다시 새로운 자오검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지.”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 말씀을 듣고 나니 그 도인이라는 분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집니다. 일단 헛일 삼아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진하경은 오혜량이 알려준 대로 사흘을 걸어서 화산의 석실에 가게 되었고, 혜암도인을 만났던 것이다. 인연이란 이렇게 우연처럼 다가온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스승님께서 가르침을 주시는 바람에 세상의 공부는 뒷전이고 역학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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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하게 긴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월이 탄성을 질렀다.

“혜암도인이라고? 아니, 전생에 무슨 공덕을 쌓으면 그런 기인을 만난단 말인가?”

“나도 천복(天福)이라고 생각하지.”

“그런데 왜 헤어졌는가?”

“그것은 무극자님 때문이었어. 그 어른이 심곡으로 보내는 것을 권하자 두 말도 없으시고 바로 동의하셨거든.”

“친구의 살아온 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이미 갈 길이 정해졌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런데 고월은 아무리 봐도 글공부를 하는 서생 같진 않아 보인단 말이야. 내가 아직도 보는 눈은 형편없다는 것을 절감(切感)하네.”

“하하~! 그렇게 자책하지 않아도 되네. 우창이 본 것이 맞을 것이니까.”

“그래? 그건 무슨 말인가? 그럼 인연에도 없는 도학(道學)을 배우고 있단 말인가?”

“공부에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 이런 사람도 배우고, 저런 사람도 배우는 것이 도가 아닌가? 하하하~!”

우창은 이 알쏭달쏭한 고월의 살아온 날이 궁금했다. 그렇잖아도 그 이야기를 해 주려는지 잠시 생각에 잠긴 고월의 옆모습을 넌지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