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제5장 노산(嶗山)의 인연(因緣)/ 5. 어둠에 잠긴 노산(嶗山)

작성일
2017-01-0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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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8] 제5장 노산(嶗山)의 인연(因緣) 


5. 어둠에 잠긴 노산(嶗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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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 해가 저물었다. 모두 모여서 식당에서 먹는 저녁을 맛있게 해결하고는 다시 고월의 처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고월도 자신이 살아온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은 이미 어두워져서 노산은 적막에 빠져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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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월은 강소성(江蘇省)의 관가(官家)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주목(州牧)이었고, 그로 인해서 인근에서는 제왕에 못지않은 세력을 누리고 있었으니 어려서부터 부유하게 자란 고월이었다.

훈장도 독선생(獨先生)으로 들여서 공부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육도삼략(六韜三略)까지 두루 섭렵할 수가 있었고, 그로 인해서 꽤 일찍부터 출세에 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으며 부친의 주목에 머무르지 않고 더 높은 지위까지도 바라보면서 향시(鄕試)를 거쳐서 진사(進士)를 바라보고 과거를 준비했다. 그래야만 도성(都城)에서 활약할 수가 있는 초석이 되는 까닭이다.

따지고 보면 부친은 주목을 돈으로 산 셈이다. 세상은 혼란스럽고 질서는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황인지라 돈줄만 잘 연결하면 왕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다 가능한 시대였으니 그런 기회에 돈을 벌었던 부친이 주목을 탐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투자한 만큼 수익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미리 간파한 까닭이다.

그러한 집안에서 태어난 까닭인지 공부를 하기는 열심히 했으나 중앙으로 진출할 과거에는 번번이 고배(苦杯)를 마시게 되자 처음에 품었던 패기(覇氣)는 점차로 자신감을 잃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실의에 잠겨있을 적에 멀지 않은 인근에 용한 도사가 있다는 소문이 풍문을 타고 들려왔다.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싶기도 했고, 그렇게 잘난 사람이 왜 이러한 곳에서 빈천하게 살고 있겠느냐는 생각도 들어서 코웃음을 쳤지만, 그 소문이 잠시 지나가는 것이 아니었던지라 급기야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궁금한 점을 물어볼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도사님 계십니까?”

급기야 다음 과거가 두어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한 마음에 위로라도 받으려고 헛일 삼아서 도사로 소문난 집을 찾았다.

중년의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한다. 도사라고만 해서 남자일 줄로 생각했는데 여인이었던가? 다소 의아한 마음으로 쭈뼛거리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럼 그렇지 여자라는 말은 못 들어봤기 때문이다.

“도사님의 명성을 듣고 궁금한 마음에 방문했습니다.”

“잘 왔어.”

첫마디가 혀 짧은 말이다. 일단 기분이 별로였다. 그래도 아쉬워서 찾아갔으니 없는 인내심을 발휘하느라고 잠자코 앉았다.

“헛일은 집어치워~!”

두 번째의 말이 나왔다. 갈수록 가관이었다. 자기가 뭘 하려고 하며, 무엇을 물으려는지 다 알고 있다는 것일까? 임원보의 상식으로는 무엇이 궁금한지를 물어보고 그 이야기에 따라서 답을 해주는 것이려니 했는데 이건 뭐 아예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예? 뭘 말입니까?”

“아, 과거 보러 갈 참이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그대 관상을 보니 벼슬길은 그대의 몫이 아니야~!”

“그럼 제 몫은 무엇입니까?”

문득 반발심이 생긴 임원보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닌데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고 보니 심사가 편치 않은 것은 당연할 터였다.

부모형제여부운(父母兄弟如浮雲)이요,
속세인연개음영(俗世因緣皆陰影)이라.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는 반은 알고 반은 모를 뜻이어서 아리송했다. 그래서 기왕 내친걸음이니 이야기는 더 나눠봐야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부모는 있어 봐야 무정(無情)하고, 형제는 뜬구름이란 말이여.”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말 볼 줄을 모르시는군요.”

임원보는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도사였다.

“벼슬길은 그림자와 같고 속세 인연도 마찬가진데 뭔 벼슬을 하겠다고 허둥대느냔 말이야!”

이렇게 버럭 한마디를 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비록 맘에 드는 이야기는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더 물어봐야 할 말도 없어서 복채만 내고서는 후다닥 나와 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 일도 잊어버릴 즈음에서 다시 과거 길에 나섰다.

그런데 하루도 가지 않아서 집에서 파발(擺撥)이 뒤를 쫓아와서 급보를 전달한다.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어서 피신하셔야 하겠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

“나리 마님께서 역적 누명을 쓰시고 흠차대신(欽差大臣)의 문초(問招)를 받으러 묶여 갔습니다. 그러니 도련님은 다시는 귀가하지 말고 몸을 숨기셔야 화를 면하실 거라는 나리 마님의 분부를 받잡고 이렇게 내달아 왔습니다. 그럼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시라는 말을 전하고 이만 급히 돌아갑니다.”

이렇게 뜬금없는 비보(悲報)를 전하고는 휑하니 돌아가 버리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전에 만난 도사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우선 생각나는 것이 그 도사였다. 낮은 피하고 밤을 이용해서 다시 도사의 집을 찾았던 것은 어쩌면 숙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사님.”

나직이 불렀다.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저, 도사님!”

그제야 인기척을 들었는지 문이 열리고 예의 그 여인이 나왔다. 얼마 전에 왔던 도령이라는 것을 알아보고서는 잠시 안에다 대고 뭐라고 한마디 한 다음에 들어오라고 했다.

“도사님께 여쭐 말씀이 있어서 밤늦은 시간에 실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넙죽 절을 했다. 도사는 잠을 자려고 누워있었는지 옷을 주워 입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멀리 떠나야 할 일이 생겼지?”

마치 손바닥처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이 거북스럽지가 않고 오히려 반가웠다.

“맞습니다. 일을 겪고 보니 참으로 용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여쭙고자 합니다.”

“그대는 북방에 인연처가 있네. 여기에서 어정거리다가는 자기 명(命)도 제대로 간수하기 어려워.”

“북방이요?”

“산동(山東)의 노산(嶗山)으로 가봐. 죽지 않으면 살길이 나오겠지.”

“노산은 무엇 하러 갑니까?”

“그럼 말던가.”

“아니, 그게 아니오라....”

“가서 상청궁의 운산선생을 찾아.”

“그분은 뭘 하시는 분....”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사래를 쳤다. 다 귀찮으니 어서 나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서 더 이상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왔지만 참으로 막막했다.

산수경계(山水境界)가 아름답다는 절강을 두고 북방으로 노산을 찾아가라니, 참으로 생각지도 못한 도사의 한 마디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것을 묻고 따질 형편도 되지 않았다. 여하튼 이 밤이 밝기 전에 최대한 멀리 벗어나야만 할 일이 화급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둘러서 북으로 북으로 하염없이 걸어서 노산에 다다랐고, 목숨은 끈질겨서 죽을 고비도 몇 차례 넘기고, 도적들에게 얼마간의 여비도 다 털리고는 유리걸식(遊離乞食)을 하면서 도달한 노산의 상청궁은 결국 도사들의 거주지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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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다 듣고 나자, 그 기구함의 운명에 대해서 기가 막혔던지 우창은 한숨을 쉬었다. 안타까움과 처절함이 느껴진 것은 너무도 와닿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운산선생님을 만나셨군?”

“맞아, 처음에는 뭐라고 할 말이 있어야지. 그렇다고 ‘어느 도사가 찾아가라고 해서 왔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지. 하하~!”

“어떻게 했나?”

“뭐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냥 ‘오갈 곳이 없는 중생입니다. 넓은 아량으로 거둬주십시오.’ 했지 뭐.”

“참, 싱겁긴.”

“그날부터 곁에서 글을 쓰실 저에는 먹을 갈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수발을 들었지. 언제 그런 일을 해 봤겠는가. 그냥 말씀하시는 대로만 했어.”

“그래도 쫓아내진 않으셨던가 보네. 다행이지 뭔가. 하하~!”

“그렇게 1년이 지나자 비로소 이것저것 물으시면서 이야기를 나눠 주셨네. 참 어지간한 양반이시지.”

“그래서 고월도 병법을 많이 배웠겠지?”

“처음에는 가르쳐 주시는 대로 열심히 공부했지. 그런데 아무리 해도 진척이 없는 거야. 애초에 천성이 우둔했던 거지.”

“글도 읽을 만큼 읽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읽은 글과 운산스승님의 가르침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지.”

“배우는 것이 무엇이었기에 그랬나.”

“말도 말게. 하루 종일 숫자판을 적어놓고 그 숫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데 나중에는 눈알이 빙글빙글 돌아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니까.”

그 말을 듣고는 하마터면 폭소가 나올 뻔했다. 봐하니 기문둔갑과 구궁팔괘를 앞에 놓고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는 그림이 대충 그려졌기 때문이다. 자신도 처음에는, 아니 지금도 그 문제들은 여간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소를 지었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스승님께서는 1년을 다시 인내심으로 가르치시더니만 포기를 하시더라고. 더 이상 그것을 가르치지 않으시는 거야.”

“그럼 포기하신 건가?”

“그럴 리가. 병법가로 성공을 할 자질이 없다고 판단하신 것이지.”

“그럼 파문(破門)하는 것이 보통 아닌가? 어떻게 쫓겨나지 않고 있었는지가 궁금하군.”

“병법 대신에 명학(命學)을 배우라고 하시더군.”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전쟁터에서 군사를 다스리는 일보다는 개인의 운명에 인연이 있다는 걸 아셨던 것이지. 사실 부친의 일이나, 도사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거든. 그래서 거창한 병법을 써서 세상을 다스리는 것보다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길흉이 더 궁금했던 것이지.”

“내 맘이 바로 그 맘이라네. 완전히 동감일세.”

그로부터 호를 고월(古越)이라고 지어 준 운산은 명학을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옛날의 월나라’라는 뜻으로 이것은 임원보의 고향이기도 했던 것을 따서 붙여 준 것이다. 월나라 사람으로 멋지게 살아 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서 명학에 대해서는 많은 진전이 있었겠네. 나도 그것에 대해서 좀 배우고 싶었다네.”

“물론 명학의 이치가 어디 그리 간단한가. 겨우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셨던지 얼마 전에 명서(命書)를 한 권 던져 주시고는 연구해 보라고 하셨다네.”

“명서라니 구미가 확 당기는걸.”

“이것이네.”

이렇게 말하면서 책상에 놓여 있던 책을 보여줬다.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표지는 이미 때에 절어서 새까맣게 변색되어 있어서 이름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열심히 읽었으면 책이 이렇게 생겼나? 위편삼절(韋編三絶)은 공자님만의 말은 아닌 게로군.”

“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스승님께서 주실 적부터 너덜너덜했다네. 그래서 우선 이것부터 보수한 것이라네.”

“그렇다면 운산선생님께서도 명학에 대해서 조예(造詣)가 있으셨단 말인가? 병서만 논하시기에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나도 적잖게 놀랐다네. 그런데 결국 공부란 것은 안으로도 익히고 밖으로도 익히는 것이란 걸 나중에 알게 되었지.”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생각을 해보게. 사람을 쓰려면 개개인을 알아야 하므로 명서의 공부가 필요하고, 많은 사람으로 군사를 부리려면 병서(兵書)가 필요한 것이니 이 둘은 수레바퀴와 같아서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단 말이지.”

“아하,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군. 오늘 새롭게 안목을 틔우네.”

“그렇담 또한 다행이지. 하하~!”

깊어가는 밤도 잊은 채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어져 갔다. 삼경의 쇳소리를 듣고서야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