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24. 목화금수(木火金水) 그리고 토(土)
작성일
2017-01-0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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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24. 목화금수(木火金水) 그리고 토(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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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목화금수(木火金水)와 토(土)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말씀이지요? 오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네. 금목수화토의 상생으로 말을 할 적에 토에 대한 관점은 오분지일(五分之一)의 토를 말하지. 물론 상극으로 말하는 것도 같은 의미가 된다네. 그러니까 그것은 활용의 차원에서 논할 적에 관하는 점이라는 것이지. 이렇게 본질을 논할 적에는 전혀 다른 토의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토에 대해서는 맨 나중에 설명하신 것입니까?”
“사실 토는 좀 어려운 면도 있네. 경우에 따라서 그 관계가 사행(四行)에 비해서 천양지차(天壤之差)가 되는 까닭이지. 그래서 기본적으로 사행에 대해서 이해를 한 다음에 비로소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지.”
“단지 다섯뿐인 오행이 이렇게도 다양하고 깊은 사유(思惟)를 포함하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공부를 했음에도 여전히 미지(未知)의 세계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언제나 확연하게 깨달을 수가 있으려나 싶습니다.”
“너무 서두르지만 않는다면 10년을 한정하고 공부하면 될 거네. 다만 서두르게 되면 중간에 지쳐서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 두게나. 하하~!”
“정말이지 공부는 인내심으로 하는 것인가 싶습니다.”
“이미 그것만 깨달았더라도 절반의 공부는 한 것이나 진배없네. 하하~!”
“애정 어린 가르침 덕분입니다. 이건 또 무슨 은혜인지 모르겠습니다. 형님.”
“아마도 내가 전생에 아우에게 가르침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네. 하하~!”
“그럴까요?”
“왜냐면 세상에 우연은 없으니까.”
“잘 알겠습니다. 열심히 또 궁리하겠습니다.”
“계절(季節)이라는 뜻은 무엇인가?”
“그야 사계절(四季節)의 계절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또 다른 의미도 있습니까?”
“끝계(季)를 떠올려 보면 뭔가 다른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이네만.”
“앗, 그 글자에서도 도가 보입니다. 목(木)도 보이고 씨앗[子]도 보입니다. 또 벼[禾]도 보이네요. 이러한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벼화(禾)는 하나의 마무리를 의미하는 것이고, 씨앗자(子)는 다시 다음으로 이어주는 연결점(連結點)을 말한다네.”
“그렇다면 결실을 한 해에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네 번을 한다는 것입니까? 그러한 뜻이 된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찌 결실을 한 해에 한 번만 하겠는가. 하루의 결실은 없을까?”
“그야 해가 뜨면 하루가 시작되고 해가 기울면 하루의 결실이 이뤄집니다. 그렇다면 하루도 결실이 있을 정도이니 한 계절의 결실은 당연히 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바로 그렇다네. 그러한 결실에 간여하는 것이 바로 토가 된다네. 다른 오행들은 자기 생긴 대로 살아가는 까닭에 절대로 해결을 할 수 없는 것이라네.”
“금은 결실하지 않습니까?”
“그야 가을의 담당이 그렇다는 것이지 금도 결실만 하면 되겠는가? 그것을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할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결실만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겠습니다. 무심코 가을에는 결실한다는 것만 생각했지 가을의 결실을 또 다른 토가 결실한다는 의미는 금시초문입니다. 과연 놀랍습니다.”
“아우가 말귀를 잘도 알아들으니 이야기를 하는 나도 즐겁군.”
“그렇다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계절을 목화토금수의 순환으로 대입할 수는 없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었거든요. 그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전에 어느 의서(醫書)에서인가, 늦여름을 장하(長夏)라고 하면서 이것을 토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오류라네.”
“왜 그렇습니까?”
“오행의 상생론(相生論)을 계절에 집어넣고 억지를 쓰는 것에 불과한 까닭이라네.”
“아, 그런 것이었군요. 형님께서 설명해 주신 계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이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왜?”
“그야, 가을에서 겨울은 금생수(金生水)가 되고, 겨울에서 봄은 수생목(水生木)이 되며, 봄에서 여름은 목생화(木生火)가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도 하지.”
“그러니까 여름에서 가을만 유독 화극금(火剋金)으로 작용하는 것이 뭔가 어색했거든요. 그래서 그 중간에 토를 집어넣으면 아름다운 오행의 계절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하하~! 일리는 있네. 그러나 말은 되지 않는다네. 하하~!”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손사래를 치는 낙안을 보면서도 일말의 의혹은 가시지 않은 우창이었다.
“그렇게 단정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무나 간단하지 않은가? 일 년은 사계절이라는 것을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알고 있음이니 남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군. 하하~!”
“그렇지만 오행의 생극에 대해서 알고 보니까 이러한 생각이 뒤를 이어서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계절마다 마무리하는 작용이 있다고. 장하도 의학에서는 뭐라고 하던 자연에서는 그냥 하나의 통과되는 계절일 뿐이라네.”
“그렇다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과정은 부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왜?”
“화극금으로 가을이 온다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왜 화극금만 생각하는가? 화생금(火生金)은 모르는가?”
“에구~ 형님도 참. 그런 것이 있다면 왜 이러한 일로 고민하겠습니까?”
“그런가? 하하하~!”
“뭔가 이 아우에게 말씀하지 않은 것이 있으신 거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즐거워하실 형님이 아니십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래, 지금 공부가 오행의 기본인가 오행의 생극인가?”
“그야 기본..... 아, 그러니까 기본을 확실하게 배운 다음에 생극에 대한 이치를 설명해 주실 때가 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지. 원래 엄마는 아기가 아무리 엿을 많이 달라고 떼를 써도 딱 한 덩이만 주고 나머지는 깊은 벽장 속에 감춰둔다네. 왜 그런지 아는가?”
“그야 단 것을 지나치게 먹으면 몸에 안 좋기 때문이 아닙니까?”
“마찬가지라네. 아우의 소화력이 오행의 기본에 머물러 있는데 복잡한 이야기를 끌러 놓는다면 아마도 오행체증(五行滯症)이 생겨서 의원을 찾아도 약도 없다네. 하하하~!”
“그래서 야금야금 흘려주시는 것이로군요.”
“맞아. 나도 다 설명해 주고 싶으나 아우의 도량(度量)이 차차로 커지는 것을 봐가면서 적당히 주느라고 힘들다네. 하하~!”
“아우는 그것도 모르고 자꾸 보채기만 했습니다. 철딱서니 없는 어린 아기의 행동을 저도 모르게 한 셈이네요. 하하~!”
“달라고 한다고 해서 마구 주는 엄마는 어리석은 엄마이고, 아무리 울고불고 떼를 써도 딱 필요한 만큼만 주는 엄마는 현명한 엄마라네. 앞으로 후학을 지도할 적에도 반드시 명심하시게.”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탁월한 지도를 받으면서 성장하고 있으니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치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하하~!”
“이제야 오행의 본질에 대해서 겨우 이해를 한 것이니 입문(入門)이라고 할 수도 없는 단계라네. 입장(入場)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군.”
“입장이라면, 겨우 마당에 들어온 것입니까?”
“그렇지 이제 마당에 서서 집을 바라보고 있는 단계인 것을 문에 들어가는 단계인 입문(入門)이라고 착각하면 될 일인가? 아직 방문의 문고리도 잡지 못한 단계이니 얼마나 알고 싶은 것이 많겠는가. 그 방에 들어가면 세상의 진귀한 것이 다 있는데 아직 문고리도 잡지 못했단 말이지. 하하~!”
“참으로 갈 길은 멀고 세월은 흐르니 안타까움에 조바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또 공부가 순일(純一)할 적에는 욕심이 생겨서 며칠 밤을 잠도 잊은 채로 책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그것을 일러서 ‘순마(順魔)’라고 한다네.”
“악마(惡魔)라면 몰라도 순마라니요?”
“공부가 되지 않는 것도 장애이기는 하지만 마치 천지신명이 돕기라도 하는 것처럼 갑자기 풀려나갈 적에도 주의해야 하는 것이라네. 이것이 바로 토(土)의 위대함이기도 하지.”
“토의 위대함이라니요?”
“토에는 중용(中庸)의 도가 있다네. 불가(佛家)에서는 중도(中道)라고 하네. 이것은 어느 한곳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경계의 가르침이라네. 게으름만 나쁜 줄 알지만 실은 너무 과속을 내는 것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네.”
“그런가요?”
“그렇게 과속(過速)하다가 생기는 병의 이름이 뭔지 아는가?”
“글쎄요. 공부가 잘되는 것이 병이란 말도 처음 들으니 그것에 대한 병명이야 어찌 생각인들 해 봤겠습니까?”
“주화입마(走火入魔)~!”
“옛? 그 말은 들어 봤습니다. 전에도 말씀해 주셨지 않습니까?”
“그렇다네. 공부가 조금 되고 나면 그것이 가장 무서운 병이라네. 차라리 게으름을 부릴지언정 과속은 하지 말라는 말을 스승들이 한결같이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네.”
“그에 대한 적절한 말은 생각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아닙니까?”
“맞아, 그러니까 행여라도 밤을 며칠씩 세워가면서 공부하는 일은 저지르지 말게.”
“그런데 그것이 그리도 위험하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공감이 되지는 않습니다.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이 위험하다니요?”
“우둔한 사람은 주화입마도 없다네. 총명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병이라고 해야지.”
“그럴 수는 있겠습니다만.....”
“어허~! 아직도 내 말이 미덥지 않은 게로군?”
“예, 말씀은 믿습니다. 당연히 믿고 말고요. 그러나 뜻이 좀....”
“무예(武藝)를 익히거나, 학문을 익히거나 과정은 모두가 같은 것이라네. 주화입마는 무예를 하다가 서두르는 병에 걸려서 몸을 망치게 되는 것이지만 학문에서도 당연히 그러한 현상이 생긴단 말이야.”
“그렇군요....”
“어허,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군.”
“죄송합니다. 그게 좀....”
“예전에 함께 수학(修學)을 하던 벗이 있었다네. 참으로 총명절정(聰明絶頂)이었지. 그 친구가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독서에 매진하였다네.”
“당연히 그런 때가 올 것 같습니다.”
“한동안은 참으로 놀라운 깨달음의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우리는 그를 부러워할 지경이었다네. 가히 일문천오(一聞千悟)였다네.”
“그랬겠습니다. 얼마나 부럽겠습니다. 일문천오라니요. 저도 그러한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던 친구가 얼마 후에는 미쳐버렸다네. 학문도 다 집어치우고 스스로 부처라고 횡설수설하다가 결국은 절벽에서 떨어져서 삶을 하직하고 말았다네.”
“그렇다면 스승님께서는 그것을 미리 막지 않으셨단 겁니까?”
“물론 스승께서는 그의 천재적인 능력에 대해서 칭찬만 했지 그것을 경계할 줄은 모르셨던가 보네. 그래서 나도 충격을 받아서 그 스승님과 하직하고 심곡문에 입산을 한 것이었다네.”
“모골이 송연합니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이제 내가 왜 이렇게도 간곡히 말하는지 알겠는가?”
“예 형님~!”
“그럼 되었네. 하하~! 아우도 고집이 너무 세서 지도하기도 힘들다네.”
“어리석은 조바심으로 고집부려서 미안합니다. 그래서 귀엽게 여기시고 안내를 해주시지 않습니까? 그것만 믿고 마구 나대고 있습니다. 하하~!
“그나저나 오늘은 또 어디에서 하루를 묵어야 할까?”
어느 사이에 기우는 태양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앞세우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가는 행인들도 분주히 제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