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25. 창해(蒼海)에 솟아오르는 태양(太陽)

작성일
2017-01-0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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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25. 창해(蒼海)에 솟아오르는 태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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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을 나선지도 거의 한 달이 되어서야 청도(靑島)의 입구에 들어선 낙안은 만나기로 한 운산(雲山)을 찾아서 도사들의 거처인 노산(崂山)을 향했다. 노산은 태산과 마찬가지로 도사들의 집단수행처이다. 노산으로 가는 길은 대해(大海)를 끼고 나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바다를 본 우창은 탄성을 질렀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것이 바다였군요.”

“아, 아우는 바다를 처음 보는구나.”

“그렇습니다. 어쩌면 말로야 들었습니다만 이렇게도 드넓은 세상이 있을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

긴 여행에서 쌓인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짙푸른 바다의 빛에 취하여 그렇게 또 걸었다. 중간에서 맛있는 해산물도 맛을 봤다. 과연 천하(天下)의 진미(珍味)였다. 말로만 듣던 방해(螃蟹)의 단단한 껍질 속에 들어있는 부드러운 살의 맛은 계곡에서 나는 민물 게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으니 낙안도 긴장이 다소 풀리는지 고량주(高梁酒)도 주문해서 모처럼 거나하게 취했다. 우창은 술을 별로 마셔보지 못했지만 독한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갈 적에 느껴지는 불이 붙는 듯한 감각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먹고 마시는 사이에 거나하게 취한 두 사람.

“형님, 술이란 이런 것입니까? 마실 때와 그다음의 기분이 전혀 다른 것이 참으로 오묘합니다. 마치 불줄기가 목을 타고 넘어갈 적에는 불타는 것과 같더니 잠시 후에는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하~! 아우의 혀가 살짝 꼬인 것을 느끼겠는가?”

“그게.... 왜 맘대로 안 됩니까....?

“술을 마시면 그리된다네. 기분은 구름을 탄 것 같지 않은가?”

“맞습니다. 형님 바닷게와 홍고량의 진미에 제가 마치 신선(神仙)이 된 것 같습니다. 신선이 되면 이런 기분일 거라는 착각도 생기고요. 하하~!”

“신선의 경지야 모르겠지만 이백(李白)의 술타령은 천하일품이지 않은가. 하하~!”

“어디 형님께서 한 수 읊어 주시렵니까?”

우창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초롱초롱하던 눈빛도 긴장이 풀리면서 몽롱해져 갔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낙안은 아예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다. 더 움직이는 것이 위험하기도 하려니와 자신도 묵은 피로를 풀고 내일 맑은 기운으로 노산에 오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낙안은 반쯤 취한 우창을 위해서도 휴식이 좋겠다고 판단하고 점원을 불러서 하루 묵을 방을 치워달라고 한 다음에 편안하게 아예 여장을 풀고 자리를 잡고는 다시 고량주를 비웠다. 예로부터 물이 맑은 노산에서 빚은 고량주는 특별히 명주(名酒)로 소문이 자자하던 터였다. 살짝 매콤한 맛까지 느껴지는 그 맛을 오랜만에 보게 된 낙안도 취기가 슬슬 올라왔다.

“그대가 묻는가, 왜 산에 사느냐고.”

“좋습니다~!”

“뭔 말이 필요해, 그냥 빙그레~!”

“좋습니다~!”

“복숭아꽃 물길 따라 아득히.”

“더 좋습니다!”

“별유천지(別有天地)구나 신선만 산다는 곳~!”

“무슨 시가 그리도 멋집니까?”

시에 취해서 듣고 있다가 장단을 친 우창이 문득 물었다. 낙안이 빙그레 웃으며 말해 준다.

“「산중문답(山中問答)」이 아닌가. 하하~!”

“형님께서 시인이셨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멋지십니다. 하하~!”

“내가 아니라 시성(詩聖) 이백(李白)의 걸작일세. 그는 늘 산중 생활을 그리워하면서 술을 마시면 달을 보고 노래했다지 않은가.”

“아, 그렇습니까? 시는 공부를 한 바가 없어서 잘 몰랐습니다. 앞으로는 도학만 배울 것이 아니라 시학도 좀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러시게. 그나저나 이제 푹 쉴까?”

“아닙니다. 이렇게 좋은 절경에서 맛있는 음식과 술까지 있는데 잠만 퍼질러 잔다면 자연에 대한 모독입니다. 모독!”

반쯤 풀린 눈을 보니 이미 취기가 제한선을 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쉬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낙안은 적당한 말로 유도하면서 숙소로 올라가서 침상에 눕혔다. 등이 바닥에 닿자마자 곯아떨어지는 우창을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다음 날. 여명(黎明)을 보면서 낙안은 우창을 깨웠다. 초저녁부터 푹 자고 난 우창은 눈을 반짝 뜨고 일어났다.

“형님, 벌써 기침하셨습니까?”

“그래 아우도 잘 쉬셨지?”

“그런데.... 어제 형님과 술을 마셨지 않습니까? 언제 여기에서 자고 있었습니까?”

“아, 실컷 마시고 먹고는 와서 잤다네. 머리가 조금 띵하지 않은가?”

“예, 속도 조금은 불편합니다. 술 때문입니까?”

“그렇다네 하하!”

낙안은 따끈하게 끓인 차를 잔에 가득 따라서 내밀었다.

“자, 차부터 한 잔 들이키게. 속이 편안할 것이네.”

“고맙습니다 형님, 그렇잖아도 차를 마시고 싶었습니다.”

단숨에 쭉 들이켜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온 우창이 창밖을 내다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와~! 바깥 풍경이 정말 멋집니다. 붉은 하늘을 해변에서 보니 그 풍경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게. 천하의 장관(壯觀)이 펼쳐질 테니.”

담담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낙안을 보면서 갈증이 나는지 우창은 또 연거푸 차를 두 잔이나 들이켰다.

“이제 정신이 좀 돌아오지?”

“예, 형님 형님의 시 읊는 것은 기억이 납니다만.....”

“그 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가?”

“예, 이상합니다. 혹 무슨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요?”

“아니네. 그냥 좋아서 즐거워하다가 고단해서 잠에 빠져들었으니 아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하하~!”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 우창은 점점 밝아져 오는 창밖의 풍경에 빠져들었다.

“형님 밖으로 나가 보십시다. 좁은 창으로 드넓은 풍경을 보기에는 너무 좁게 느껴집니다.”

“그럴까?”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동쪽으로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곳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이 없는 새벽하늘에 서서히 빛을 뿌리면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마음은 저절로 경건해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태양을 향해서 기원하게 되어있음이다.

“형님 낮의 해와 떠오르는 해는 왜 다르게 느껴집니까?”

“그게 다 사람의 마음 아니겠는가?”

“마치 태양이 새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야 아우가 새로 태어났기 때문이지.”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밤새 죽어 있다가 새벽이 되면 살아나는 것이 인간 아닌가?”

“아, 그 말씀이셨습니까?”

“그런데 다시 살아나서 새로 떠오르는 수평선의 태양을 보게 되니 어제 본 태양이 아닌 거지. 그래서 새로 태어난 감격의 경건한 마음이 되는 것이라네. 아마도 누구나 같을 것이네.”

“그럼 형님께서도 지금 저와 같은 마음이십니까?”

“당연하지.”

“문득 학문의 길이 순탄하기를 빌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말이지요.”

“하하~! 나도 그랬다네. 우린 같은 마음이었군.”

그렇게 말없이 풍경에 취해 있는데 아침을 준비했다고 점원이 데리러 왔다. 해는 이미 솟아올라서 한 발이나 높이 떠 있었다.

아침은 어죽(魚粥)이었다. 배가 부르도록 먹고 나서야 두 사람은 여장(旅裝)을 챙겨서 다시 길을 나섰다. 밤사이에 푹 쉬어서인지 몸도 마음도 상쾌하여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길은 계속해서 바다와 벼랑을 끼고 이어지는 절경이었다. 묵묵히 풍경에 취해서 뒤따르던 우창이 궁금한 것이 생겼는지 낙안을 불렀다.

“형님, 술은 오행이 어떻게 됩니까?”

“벌써 공부가 시작되셨는가? 하하~!”

“액체인 것으로 봐서는 수(水)인데, 먹고 나면 후끈후끈한 것은 화(火)인가 싶어서 헛갈립니다.”

“그럼 수화(水火)로 보면 되지 뭘 어렵게 생각하나?”

“옛? 수화라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안 될 것은 또 무엇인가?”

“아니, 오행이 겹치기도 한단 말씀이지요?”

“그렇다네. 사실 알고 보면 술은 오행을 다 갖추고 있는 신의 선물이라고 할 수가 있지.”

“수화만 있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저는 겨우 수화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형님께선 다른 것도 생각하셨단 말씀이시군요. 또 설명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아우가 말한 액체와 열기는 더 말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습니다. 그것은 이미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은 무엇입니까?”

“술에서의 목은 용기(勇氣)라네. 한 잔이 몸에 들어가면 없는 용기가 저절로 솟아오르니 이것이야말로 목기(木氣)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맞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천진난만(天眞爛漫)해 지는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말이지요. 그렇다면 목이 맞네요.”

“또, 술이 들어가면 금(金)의 기운이 생겨서 중심이 강화된다네. 그래서 평소에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도 술을 마시면 주관이 강해져서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밝힌다네.”

“그렇겠습니다. 공감됩니다. 그렇다면 술에서의 토는 어디에서 찾습니까? 아무리 봐도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역시 어려운 것은 토인가? 원래 토는 안 보이는 것이라네. 하하~!”

“땅에서 생산한 곡물(穀物)로 만든 것이라서 토인가요?”

“아니네.”

“그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토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야 하도 많이 말씀해 주셔서 어느 것을 답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그래도 가장 핵심이라면 중화(中和)일까요? 치우친 것은 바로잡고 부족한 것은 도와준다는 계절에서의 토가 맡은 역할이 떠올랐습니다.”

“거의 다 왔네. 조금만 정리해 보시게.”

“음..... 술과 중화라.....”

“과유불급(過猶不及)!”

“예? 과유불급이라니요?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 아하~!”

“이제 깨달았는가? 그게 술의 오행이라네. 하하~!”

“어제는 제가 토의 중화를 벗어났었다는 것을 이렇게 가르쳐 주시는군요. 과연 맞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술의 오행입니다. 하하~!”

“자연이든 도든 다 같다네.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지.”

“그런데 술이 들어가니까 그게 잘 안됩니다. 자꾸 마시게 되더란 말씀이지요.”

“그래서 술을 마셔보면 그 사람의 오행이 어떤지를 알 수가 있다네.”

“아, 그런 것인가요? 무엇이든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자신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네. 그래서 항상 마음가짐을 정결하게 하라고 하는 것이라네.”

“맞습니다. 이렇게 또 술을 통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오행의 이치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될 것이네. 마음에 오행을 담고 있으면 무엇이든 적당하게 즐길 줄도 알게 되는 것이지. 자신의 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신다면 아직도 수행이 부족하다고 할밖에. 하하~!”

“형님~! 안 그러셔도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하~!”

“하하하~!”

이렇게 웃으면서 길을 걷다가 보니 어느 사이에 태청궁(太淸宮) 앞이었다. 긴 여정의 끝이 나타난 것이다. 웅장한 도관(道觀)의 풍모에 감탄을 하고 있는 우창을 그냥 두고 낙안은 찾아오는 객을 맞는 도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