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23. 아름답고 위대한 토(土)

작성일
2017-01-0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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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23. 아름답고 위대한 토(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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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으로 들어가자 점원이 반겨 맞는다.

“어서 옵쇼 도사나리들~!”

뚱뚱한 몸집을 흔들면서 중년의 주인이 손님을 맞는다. 손님이 하나도 없이 조용한 가운데 유일하게 우창과 낙안만 있었다. 그래서 더욱 반가운 인사를 한 모양이다.

“여기 먹을 것 좀 갖다 주시오.”

낙안은 주문을 하고는 창밖의 풍경으로 눈길을 돌렸다. 잔잔한 호수의 풍광이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우창도 낙안의 눈길을 쫓다가 문득 버드나무 아래에서 눈길이 멈췄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앉아있었는데 분위기가 소풍을 나온 사람으로 보이질 않아서였다.

“형님, 저 여인은 왜 저기에 앉아 있을까요? 뭔가 분위기로 봐서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아우도 그것을 보고 있었군.”

“그런데 언뜻 봐서는 여행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만 자세히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지 않습니까?”

“아마도 세상의 인연을 끊으려고 나온 것이겠지.”

“예? 그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점괘를 돌려보니 가망이 없다고 나오는군.”

“그건 무슨 점괘입니까?”

우창의 물음에는 답변을 하지 않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 아우는 모르겠군. 아마도 남자에게 너무 큰 상처를 입어서 세상을 하직하려고 나온 것이 아닌가 싶군.”

“그렇다면 얼른 가서 구해줘야 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일은 안다고 해서 모두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라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활인검(活人劍)을 논하신 것이 형님 아니셨습니까? 점술을 배워서 죽을 사람을 만났다면 그것을 막고 살려줘야 하는 것이 활인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우창은 지금 낙안의 표정이 의아했다. 사람이 죽을 것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저렇게 태연자약(泰然自若)할 수가 있을까 싶어서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요리가 나왔다. 느긋하게 음식을 먹는 낙안과 달리 우창은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한 숟가락을 떠 넣고는 다시 밖을 내다보면서 여인을 지켜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낙안은 느긋하게 식사를 마쳤다. 차도 마시면서 여행의 피로를 달래고 있었다.

“형님 제가 저 여인을 좀 만나보면 안 되겠습니까?”

“아서~!”

“만나서 이야기라도 들어보고 도움을 줄 수가 있으면 줘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우린 우리의 갈 길이 있고, 그는 또 그의 갈 길이 있으니 괜한 일에 간섭하지 말게. 그것도 자연의 이치라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냥 안 본 것으로 하고 우리 길이나 재촉하세. 아직도 갈 길은 많이 남았는데 괜한 일로 목적을 그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죽을 점괘라면서요? 그것을 아신다면 살아날 방법도 알고 계실 것이 아닙니까?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없네.”

“무슨 사연이기에 살아날 방법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도 있는데요.”

“그런 말도 있지만, 죽을 사람은 부처가 와도 안 된다는 말도 있음을 기억하게나.”

그 말을 듣고서야 낙안이 괜히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냥 돌아서는 것은 뭔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것만 같아서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참으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우창을 한 번 바라보던 낙안이 잠시 벽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없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우창이 조바심이 나서 다시 물었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뭔가 방법이 있기는 한 것이지요?”

“아우가 그 일에 연루되면 대신 자신의 생명을 내어놔야 한다는 말을 내가 차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네.”

“예?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까?”

“말이 되건 말건 내가 얻은 점괘는 그렇게 나타나 있으니 말을 해주는 것이라네. 내가 허투루 말을 하는 것이라도 본 적이 있던가?”

“그래서 더 의아합니다. 그런 형님께서 왜 이렇게도 냉담하신가 싶어서 말입니다.”

“그동안 아우의 얼굴에 여난지상(女難之象)이 있기에 왜 그런가 싶어서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그 해답이 나타났네.”

“거참 신기합니다. 그러니까 아침에 나타난 얼굴의 조짐이 낮에 저 여인의 점괘에서 나타났다는 말씀 아닙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왜 내가 허언(虛言)이라도 할 것 같은가?”

“그게 아니라…….”

“그러니 두 말도 말고 어서 요기(療飢)했으면 가던 길이나 재촉하세. 더 머물러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길하니까.”

낙안이 이렇게 정색을 하고 말하자 더 이상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어서 묵묵히 뒤를 따르면서도 자꾸만 호숫가의 여인에게로 눈길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잠시 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서야 문득 궁금한 마음이 일어났다. 왜냐면 무극자와 만났을 적에 여난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때 스승님은 피할 수가 없다고 했고 무극자는 피할 수가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것이 그것이란 말인가? 지금 여난은 피한 것이 아닌가? 물론 낙안이 아니었더라면 필시 그 일에 개입했을 것이고 그 결과로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낙안의 표정으로 봐서는 생명과 연관된 일이 전개되었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하면서 소름이 돋았다.

잘만 쫓아오던 우창이 자꾸만 뒤로 쳐지자 앞서가던 낙안이 걸음을 멈추고는 가까이 따라오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가? 아까 일이 아직도 머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 기이한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래서 문득 생각에 잠겼던가 봅니다.”

“무슨 생각?”

“예전에 심곡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무극자를 잠시 뵈었었거든요. 그때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뭐라 하셨기에?”

“여난을 만나겠지만 무사히 피할 것이라고요.”

“그랬어? 참으로 대단한 어른이시군.”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산에 간다고 해서 피할 수가 있느냐고 하셨거든요. 혹 그 이야기가 이 이야기일까요?”

“어디..... 흠...”

낙안은 우창의 얼굴을 살피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맞네.”

“예? 맞다고요?”

“아우의 천이궁(遷移宮)에 끼여있는 붉은 기운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군. 아마도 그 일이 맞지 싶네. 축하하네.”

“그렇다면 무극자은 제가 형님을 만나서 여난을 피하게 될 것이란 것을 알았단 말입니까?”

“그랬을 수도 있지.”

“그런데 오늘 형님을 따라서 길을 나서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 아닙니까?”

“그랬겠지.”

“그럼 잘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형님을 따라나서는 바람에 그 일과 맞부딪친 것입니까?”

“그랬을 수도 있지. 여하튼 화색(禍色)이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봐서 뭔가 나쁜 액운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군.”

“왜 이러한 일은 반드시 겪고 넘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운명이니까 그렇겠지.”

“형님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 여인의 사연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그 여인에게 제가 개입했으면 어떤 일이 전개되었을지도 참으로 궁금합니다.”

“궁금해 하지 말게.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주화입마(走火入魔)가 발생하게 되면 복구하는데도 얼마나 많은 공력(功力)이 필요하게 되는지 모른다네. 심하면 공부가 그 자리에서 끝이 날 수도 있거든.”

“그랬군요.....”

“어서 길을 재촉하세. 이렇게 가다가는 한 달 안에 도착하기 힘들겠군.”

“예, 그런데 그 여인의 점괘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된 점괘이길래 구할 수도 없고 그것을 구하다가는 오히려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까? 만약 이렇게 대처를 한다면 액운(厄運)을 만나도 방지할 수가 있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 아닙니까?”

“아, 아직은 이야기를 해 줘도 모를 걸세. 공부가 더 되거든 또 설명할 날이 오지 않겠는가 싶군. 그러니 길이나 재촉하세.”

우창은 궁금한 것이 안개처럼 피어올랐지만 더 이상 묻지도 못하고 부지런히 길을 걸었다. 이미 지난 일에 집착하는 것도 도학(道學)을 배우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망상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러자 다시 토(土)의 이야기를 못 나눴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형님, 잘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그렇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이제 토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지요.”

“아 그럴까?”

이렇게 말하는 낙안의 얼굴이 밝아졌다. 내심(內心)으로는 우창이 다시 여인에게 되돌아간다고 할까 봐 조바심을 내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자꾸만 재앙의 근원지에서 멀어지려고 서둘렀는데 얼른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 기뻤다.

“무엇이든 묻게나.”

“춘하추동과 목화금수를 배웠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토의 계절은 없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계절의 순환에 살면서 오행을 적용시킨다는 것이 아무래도 군더더기가 하나 붙어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하하~!”

“왜 웃으십니까? 너무 형편없는 질문이었나 봅니다.”

“아닐세. 그게 아니라 내가 예전에 품었던 궁금증을 아우의 입으로 듣게 되니 참으로 신기하단 생각이 들어서 말이네. 하하~!”

“그러셨습니까?”

“나도 처음에는 도대체 이것이 무슨 소식일까 싶었다네. 그런데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 뜻을 알게 되었다네. 그리고는 혼자서 통쾌하게 웃었던 기억이 나는군.”

“그게 무슨 소식입니까? 궁금합니다.”

“이 땅덩어리를 뭐라고 생각하나?”

“예? 땅덩어리라면....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산천과 초목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을 세상(世上)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세상은 천상(天上)과 대비해서 하는 말이라네. 즉 땅 위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을 세상이라고 하지.”

“그렇다면 그 땅에 대해서 물으시는 겁니까? 당연한 말씀을 물으셔서 또 무슨 심오한 뜻이라도 있는가 싶었습니다.”

“땅은 토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합의를 볼 수가 있겠는가?”

“당연한 말씀이 아닙니까? 새삼스럽게 무슨 말씀을요. 하하~!”

“아무리 당연해도 거듭거듭 확인하면서 공부하는 것이라네.”

정색하고 말하는 낙안에게 괜히 무안했다. 그래서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땅이 주체가 될까? 사계절이 주체가 될까?”

“그야 당연히 땅이지요.”

“그래도 모르겠나?”

“예? 무슨.....?”

“땅이 주체이고 그 땅이 토라는 것에 합의를 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다시 또 계절에서 토가 나와야 할 이유가 있느냔 말이네.”

“아하~!”

우창은 그제야 눈앞이 환하게 밝아짐을 느꼈다. 이것을 말하려고 그렇게도 다짐을 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목화금수와 토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닙니까?”

“누가 같다고 하던가? 난 그렇게 말을 한 적이 없다네.”

“아, 그랬군요. 이제 왜 고인들이 오행의 나열을 금목수화토라고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토는 중간에 섞여 있을 성질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었네요.”

“이제 그 의미를 알았는가?”

“예, 실은 급한 마음에 학당 옆의 서재에서 오행에 대한 책을 찾아보다가 설명한 자료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가면서 공부하는 것이라네. 그래서 뭘 알았는가?”

“오행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와 목토수화금(木土水火金)에 대해서 알게 되었더란 말이로군.”

“예, 그래서 왜 금목수화토인가에 대해서 다시 궁금해 하던 참이었습니다.”

“이제 오행의 기초공사가 잘 마무리되었나 보군. 생극을 묻는 것으로 봐서 말이지. 기초는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한다면 터를 닦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네. 양지바른 자리를 찾는 것은, 자신의 삶을 소중히 하겠다는 의지가 되겠고, 터를 고르는 것은 오행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군.”

“그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는가?”

“물론이지요. 어느 누군들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서 함부로 하겠습니까? 그래서 양지바른 곳에 터를 닦는 것은 누구나 같다고 생각이 됩니다.”

낙안이 우창의 얼굴을 한번 보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우창은 또 말을 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은 우창의 말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맞지 않은지를 말씀해 주셔야지요.”

“그게 아니라, 아우의 심성이 착해서 다시 바라봤다네. 어쩌면 그렇게 선한 생각으로 가득할 수가 있을까 싶어서 말이네. 하하~!”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떤 사람은 재물을 위해서 영혼을 팔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죽이기도 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냔 말일세. 하하하~!”

“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욕망을 위해서 터를 닦는 사람은 양지바른 땅에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이지. 구렁텅이 입구에 터를 잡기도 하고, 저승사자의 목구멍에 터를 잡기도 한다네. 그래놓고는 끊임없는 번뇌와 망상 속에서 일생을 헛되이 살다가 뜬구름처럼 허망하게 삶을 끝내는 사람도 부지기수(不知其數)가 아니겠는가?”

“과연, 듣고 보니 형님의 말씀이 타당합니다. 그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제야 형님께서 학문에 뜻을 두는 것은 양지바른 땅을 고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 옳다는 것에 동의하겠습니다. 또 깨우침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창은 또 저마다의 삶이 출발점부터 같지 않음을 깨달았다. 누구나 같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도 현실적으로는 옳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이해했다. 그래서 낙안의 말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