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12. 다섯 갈래의 이치

작성일
2017-01-0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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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12. 다섯 갈래의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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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치고 낙안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우창은 혼란에 빠져드는 것 같아서 멍했다. 비로소 명학(命學)의 핵심(核心)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점점 궁금한 것들이 쌓여가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하나를 이해했나 싶으면 또 그 자리에서 두 가지의 의문이 발생하는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동안 공부를 했던 음양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오행의 음양이 등장하는 것에 의해서 범위수의 혼란만큼이나 정리가 필요한 이야기였다.

이러한 것을 표정으로 읽은 낙안은 우창을 위해서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역학은 자연주의(自然主義)라고 할 수가 있다면 명학은 인본주의(人本主義)라고 할 수가 있겠네. 자연을 바탕으로 삼고 연구하는 것도 있고 인간을 바탕으로 삼고 연구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 거지. 그러니까 당연히 지금은 혼란스럽겠지만 서로는 전혀 다른 길이면서 또 목적지는 하나라는 것을 곧 정리하게 될 것이네.”

“형님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바로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지금은 부지런히 배워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범위수를 듣고서 혼란에 빠졌다가 또 두 가지의 음양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서는 더욱 혼란에 빠져버렸지 뭡니까. 그렇지만 마음은 즐겁기만 합니다. 이것은 마치 아직은 소화력이 부족한 아이지만 앞에 차려진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보면서 행복해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럼 되었네. 이제 오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군. 그래도 기초적인 훈련이 있었기 때문에 머지않아서 간단하게 정리가 될 것이니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그냥 이끄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될 것이네.”

“왜 아니겠습니까. 형님만 믿고 직진하겠습니다. 마음의 귀를 활짝 열고 모두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오행(五行)이라는 글자의 뜻에 대해서부터 풀어볼까? 아우가 생각하기에 무슨 뜻인 것 같은가?”

“오행이라면……. 다섯 가지의 다니는 것이란 말입니까?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존재가 돌아다닌다는 의미로 이해를 하면 되지 싶습니다.”

“틀림이 없겠군. 다섯 가지란 금목수화토가 될 것이고 그것이 고정적으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다닌다는 의미로군.”

“그런데 좀 전에 말씀으로는 고정된 주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주체가 돌아다닌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슨 의미가 되는지요?”

“그야 아우가 식당에도 갔다가 강당에도 갔다가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닌다고 해서 아우의 주체가 달라지는가?”

“아,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네요. 알겠습니다. 다섯 개의 주체가 돌아다닌다는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돌아다닌다는 것은 일정한 길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입니까? 만약 제멋대로 돌아다닌다고 할 경우라면 그것을 가늠할 수가 없으니 인명(人命)에 대해서 판단하고 궁리하는데 여간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로(行路)가 있다고 하면 되겠는가? 오행로(五行路)라고 생각하면 되네. 오행은 저마다 일정한 운동의 영역이 있으므로 그것을 공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네.”

“그나마 다행입니다. 일정한 틀이 있다면 그것을 공부하는 것은 노력으로 해결을 볼 수가 있겠습니다. 우선 오행이 무엇인지부터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왜 금목수화토라고 하는 것입니까? 보통은 목화토금수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서로 다른 오행의 순서에서도 뭔가 생각을 해야 할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금목수화토라고 하는 것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네만 그렇게 묻는 것은 또 무슨 심사인가? 참으로 특이한 사람일세. 하하~!”

“예!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여쭈면 안 됩니까?”

“안 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만, 보통은 오행으로 어떻게 사람의 길흉을 볼 수가 있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 보통인데 아우는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오행의 순서에 대해서 묻고 있으니 말이네. 하하~!”

“아, 그렇습니까? 길흉이야 이치를 알고 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인데 지금부터 그러한 것에 대해서 궁금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가 뭔가 특이한 놈인가 봅니다.”

“우선, 오행과 방위(方位)에 대해서 연결을 시켜 보세나.”

“뭐든 좋습니다. 방위라면 대략 짐작이 됩니다. 수(水)는 북방일 것이고, 화(火)는 남방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가 뜨는 동방은 목(木)이 되고, 해가 지는 서방은 금(金)이 될 것이니 토는 사방에 자리가 없는 고로 중앙(中央)에 자리하면 되지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대단하군. 틀림이 없네. 그렇게 이해를 하면 된다네. 그렇다면 금목수화토는 어떻게 이해를 하면 될까?”

“서동북남중입니다. 그런데 방위의 순서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동남서북중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나?”

“목금화수토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네. 또한 오행의 순서일 뿐이지.”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데 왜 금목수화토라고 했을까……. 싶습니다.”

“참으로 못 말릴 아우네. 하하하~!”

“뭔가 그 속에 비밀이 있는 것이 확실하군요? 형님의 표정을 보니 분명히 해 주실 말씀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하~!”

“비밀이랄 것까지야 있겠는가만 그냥 내가 해본 생각이라네.”

“듣고 싶습니다.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해결이 안 되면 또 잠을 못 이루지 싶습니다.”

“왜 금이 맨 앞에 나오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된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이라고 하든 고금동서라고 하든 동서라고 하지 서동이라고 하는 법은 없다는 것에서 의구심(疑懼心)이 생겼던 것이라네.”

“맞습니다. 그래서 어떤 결론을 얻으셨다는 것이지요?”

“사실은 그뿐만이 아니라네. 그것을 생각하다가 오행의 순서에 따라서 표현하는 의미는 사뭇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네. 선천수(先天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지?”

“선천수라면 1, 6은 수, 2, 7은 화, 3, 8은 목, 4, 9는 금, 5, 10은 토를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그야 수학의 기초에서 배운 것이 아닙니까? 근데 왜 그 말씀을 하시는지요?”

“숫자는 빼고 오행만 나열해 보시게.”

“음……. 수화목금토가 되네요. 어? 이건 또 다른 배열이 되는걸요.”

“그러니까 말이네, 오행의 배열이 오로지 금목수화토로만 되어있는 것이 아니더라는 이야기네.”

“무심코 그런가 보다 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새롭게 다가옵니다. 수화목금토라고 배열을 한다면 선천수의 오행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또 목화토금수라고 할 수도 있다네.”

“그야 오행의 상생법(相生法)이 아닙니까?”

“또 물어 볼까? 한 해의 계절을 오행으로 배열할 수도 있겠지?”

“음... 목화금수토로 배열하면 되겠습니까?”

“당연하다네. 어떤가? 단순히 다섯 가지의 오행이지만 의미하는 바에 따라서 배열도 달라지고 그에 따라서 느낌도 달라지지 않는가?”

“이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형님의 식견은 놀라울 뿐입니다. 형님 곁에만 딱 붙어 있으면 학문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금목수화토는 계절도 아니고, 선천수도 아니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지? 그냥 방위(方位)라고 생각하게.”

“방위라면 동서남북을 말한다는 의미이지요? 그런데 목금화수라고 하지 않고 금목인지가 풀리지 않습니다.”

우창의 말에 이해를 돕기 위해서 붓으로 간단하게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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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붓이 흘러가고 멈추는 방향대로 배열해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네. 금에서 시작하여 목에서 끝나고, 수에서 시작하여 화에서 끝나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알겠습니다. 공부가 되어가면서 앞에서 배운 것들이 풀리는 것을 이미 경험했습니다. 그렇다면 오행의 순서에 대해서는 그 정도만 알아도 다양한 순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족감이 적지 않습니다.”

“공자님이 안연(顔淵)을 사랑했던 것은 그가 호학(好學)을 해서였다네. 그런데 아우를 보니 안연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네. 과연 앞으로 그대의 학문이 세상을 뒤덮게 될 것이 틀림없겠군.”

“감히 어디에다 누추한 우창을 견주십니까. 그래도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형님의 발꿈치를 따르기도 벅찬 것을 보면 언제쯤 자연의 이치를 손바닥 보듯 할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루하루가 중요하네. 오늘 의문을 풀어가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정상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네. 나 또한 그렇게 알고 공부하고 있는 것이라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만 바라보다가는 지레 지쳐버릴 것 같습니다. 하하~!”

“오행은 본질이라고 했네. 그래서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했지. 이것에 대해서는 잘 이해한 거지?”

“당연하지요. 세상에는 변하는 이치가 있고 변하지 않는 이치가 있다는 것이잖습니까? 변하는 이치를 궁리하는 것은 역학이고 변하지 않는 이치를 궁리하는 것은 명학이라고까지는 이해를 했습니다.”

“거창하게 역학이니 명학이니 할 필요도 없다네. 변하는 것은 음양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오행이라고 하세. 너무 넓게 잡으면 허공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아서 뭘 했는지도 모르게 될 수도 있으니깐 말이지.”

“말씀을 들으니 바로 정리가 됩니다.”

“그럴 것이네 다행이군. 하하~!”

“형님은 병법(兵法)에 관심이 많으시잖습니까? 칼을 늘 생각하시지 싶은데 아니십니까?”

“병법과 검법(劍法)이 같을까?”

“그게 그것이 아닙니까?”

“아닐세. 병법은 군사를 살리는 방법이지만 검법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니 어찌 같겠는가?”

“아하~! 과연 이 멍충이는 언제나 정신이 들려는지 갈 길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전혀 같지 않습니다. 이제 칼이라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검객(劍客)은 활인검(活人劍)을 사용해야 한다네. 칼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을 하라고 만든 것이니까. 그런데 어리석은 무인(武人)들이 칼은 피를 봐야 한다고 하지.”

“저도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칼에도 활인(活人)과 살인(殺人)이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책임이 칼에 있을까? 사람에 있을까?”

“칼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겠지요. 그래서 검을 배우기 전에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 있는가 봅니다.”

“그렇다네. 만약에 다리에 독을 맞아서 썩게 되었다면 칼을 뽑아서 다리를 잘라주는 것은 활인이네.”

“그렇습니다. 느낌이 확~ 옵니다.”

“그러나 강호에는 활인검을 쓰는 무림인은 적고 살육(殺戮)을 일삼는 흑도(黑道)의 무리들이 횡행하고 있으니 세상은 어지럽고 백성은 도탄에 빠진다네.”

“그러한 것을 바로잡으려고 형님은 병법을 연구하시는군요.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칼은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그야 쇠가 아닙니까?”

“오행으로는?”

“금이지요.”

“그래서 금에는 살기(殺氣)가 있다고도 했다네.”

“알겠습니다. 금의 속성을 말씀하신 거지요?”

“그렇다고 해서 또 그것만을 외운다면 반쪽짜리 공부에 불과하다는 것도 겸해서 알아 둬야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살기는 검에 있을까? 사람에게 있을까?”

“그야 사람에게 있겠습니다. 벽에 걸어 놓은 검은 그냥 검에 불과하니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설검(舌劍)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예? 혀로 만든 검이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도 못 들어봤겠군.”

“당연히 들어봤지요. 한 치의 혀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잖아요. 무예의 달인이 되면 그것도 가능하다는 의미로 이해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런 뜻뿐일까?”

“그럼 또 다른 뜻이 있다는 의미군요. 음…….”

우창은 다시 그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