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10. 오행(五行)으로 통하는 간지의 세계

작성일
2017-01-0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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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10. 오행(五行)으로 통하는 간지(干支)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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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의 기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甲己子午는 숫자로 9가 된다는 것이 전부인 우창에게 천천히 간지를 설명하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기조차 하다. 초학자들에게 수백 번도 더 넘게 같은 설명을 했을 테지만 그러한 기색은 전혀 없이 처음 사람을 만나서 설명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간지(干支)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조합이라는 뜻은 알고 있는가?”

“그것은 알지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는 천간이라고 하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는 지지라고 한다는 정도는 겨우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도 막무가내로 외워야 한다고 해서 외운 것이긴 합니다만. 하하~!”

“그동안 배운 주역(周易)은 상괘(上卦)와 하괘(下卦)가 겹쳐서 64괘를 이룬다는 것은 알지 않는가?”

“당연하지요. 상괘가 리괘(離卦)이고, 하괘가 손괘(巽卦)면 화풍정(火風鼎)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하~!”

“그렇군. 참 대단하구먼. 하하하~!”

“그렇다고 놀리실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형님. 하하~!”

“그런데 간지는 천간과 지지가 서로 겹쳐서 60간지가 된다네.”

“60과 64는 간발의 차이로군요. 그것 참 신기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간지나 팔괘나 모두 위아래가 겹쳐서 결과적인 괘를 나타낸다는 것이라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해석하는 방법도 비슷하겠군요?”

“그럴 리가 있는가? 처음에 뭐랬나.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예, 그러셨습니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영역으로 사용이 된다는 뜻인가 봅니다.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이렇게 두 학문은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이라네. 그리고 많은 고금(古今)의 학자들은 이 둘을 겹쳐서 하나로 만들어 보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네.”

“왜 그랬을까요? 그냥 각자 생긴 대로 활용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이치로 본다면 그렇지만 그보다 더 높은 곳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는 까닭이라네.”

“그것은 또 무엇입니까?”

“바로 만법귀일(萬法歸一)이지.”

“모든 법은 하나로 돌아간다?”

“그로 인해서 음양과 간지가 하나로 돌아갈 것이라는 가설(假說)을 세워놓고는 연결되는 점을 찾기 위해서 줄기차게 연구를 하게 되었다네.”

“그렇다면 범위수에서 갑임(甲壬)과 건(乾)의 관계도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맞아~! 역시 아우는 하나를 가르치면 둘 셋을 깨우친단 말이지. 하하~!”

“모두가 핵심(核心)을 짚어주는 형님의 가르침 덕분인 줄을 이 아우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항상 감동이지요.”

“되었네. 그만하고.”

“팔괘는 음양을 근본(根本)으로 삼는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랬지.”

“그렇다면 간지는 무엇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까? 그냥 간지를 근본으로 삼는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뭐, 그렇게 한다고 해도 문제는 없네. 그렇지만 간지는 오행(五行)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네.”

“오행이요? 그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의 오행 말입니까?”

“맞아. 그 오행을 뿌리로 삼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네.”

“오행은 그냥 오행으로 존재하는가 했는데 오행에서 간지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인가요? 점점 복잡해집니다. 형님.”

“그래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고 하면 핵심의 철학을 망라(網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네.”

“그렇다면, 음양오행이라는 말은, 음양을 대표하는 팔괘와 오행을 대표하는 간지를 말한다고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그러니 음양만 알고 오행을 모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되면 반쪽짜리의 학문이 될 가능성이 많겠습니다.”

“학자들이 왜 그렇게도 간지와 팔괘의 결합에 대해서 매달리는지를 알겠는가?”

“아하~! 이제야 그 의미를 확연히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주역에서 말하는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으로 나뉘었다고 말을 할 적에 오행은 어디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까?”

“그 자리에는 오행이 없네. 왜냐면 음양은 음양의 구조로 된 세계가 있는 까닭이지.”

“그렇다면 어느 지점에서 서로 만나게 됩니까?”

“사상(四象)에서는 비슷하게나마 만날 수가 있겠지.”

“사상이라면 태양(太陽), 태음(太陰), 소음(少陰), 소양(少陽)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그것과 오행이 어떻게 만나는 것이 가능합니까? 숫자가 서로 맞지 않는데요?”

“역시 수학을 배우는 사람이라 숫자에 민감하시군.”

“그야 당연하지요. 하하~!”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았나? ‘비슷하다’고 말이지.”

“아, 그러셨지요. 너무 급하게 덜렁대는 것이 저의 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행과 사상을 서로 짝지어 보시게. 그런데 오행의 기본적인 개념은 알고 있는가?”

“그야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아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어디 말을 해 보게나.”

“에이~! 형님도 너무 하십니다. 그걸 또 말하라고 하시다니요. 그래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목(木)은 나무, 화(火)는 불, 토(土)는 흙, 금(金)은 쇠, 수(水)는 물입니다. 이외에 또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까?”

“참 기특하시네. 그걸 다 알고 있다니 하하~!”

“그런데, 이것을 사상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좀 어렵습니다. 전혀 와 닿는 것이 없는데요.”

“그런가? 서두를 것 없네. 천천히 하시게 평생 공부해야 할 것인데 조급하게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네.”

“태양은 화(火)랑 연결이 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아, 벌써 궁리에 들어가신 건가? 그렇다면 태음은?”

“태음은 수(水)와 연결이 되면 어떨까 싶습니다만, 그 나머지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대입을 합니까?”

“자, 계절(季節)에 대해서 이해를 해 보세. 계절은 어떻게 나눠지나?”

“그야 사계절 아닙니까? 춘하추동(春夏秋冬)이지요. 사계절은 사상과 연결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지 해 보시게.”

“여름은 태양, 겨울은 태음, 봄은 소음, 가을은 소양으로 대입하면 되겠습니다.”

“왜 봄을 소음에 대입시킨 것인가?”

“그야, 체(體)는 양(陽)이면서 용(用)은 음(陰)이기 때문에 춘하(春夏)는 하절기로 보고 추동은 동절기로 보는 까닭이지요. 틀렸습니까?”

“틀림없네.”

“그 정도는 머리가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계절을 오행으로 보는 방법도 있습니까?”

“당연하지. 여름은 화, 겨울은 수, 봄은 목, 가을은 금으로 대입을 한다네. 그렇게 되면 오행과 사상의 비슷한 점이 뭔지를 이해할 수 있겠지?”

“너무 쉽습니다. 태양은 화, 태음은 수, 소음은 목, 소양은 금이 됩니다. 그런데 토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서 토만 빼고 나면 사상과 오행의 대입은 완벽하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라네. 문제는 그 토라는 것이지. 하하~!”

“토는 왜 집어넣었답니까? 애초에 토가 없었다면 따로 오행에 대해서 배우지 않아도 될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자연의 모습이니 난들 어쩌겠는가?”

“그런데 듣자니 서역(西域)에서도 네 가지의 근본 요소로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네.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서역의 철학도 함께 따라오게 되었으니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들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야기를 한다네.”

“그렇다면 이것과 사상도 대입할 수가 있겠습니까? 점점 흥미가 확장되면서, 머리는 복잡하지만 재미도 그만큼 배가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대입을 해 보시게.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수(水)는 태음, 화(火)는 태양인 것은 알겠습니다. 풍(風)은 바람인데 무엇으로 대입하면 적당하겠습니까? 그리고 지(地)에 대해서도 대입을 할 방법이 묘연합니다. 뭔가 적당하지 않은 배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오행과 연결을 시켜 보겠는가?”

“오행으로는 어떻게 됩니까? 지(地)는 토, 수(水)는 수, 화(火)는 화, 풍(風)은……? 이것은 오행의 무엇과 연결을 시켜야 합니까?”

“목(木)과 연결을 시킨다네.”

“그렇다면 풍(風)은 목, 그런데 금(金)에 대한 배당(配當)이 없습니다. 당연하겠습니다만 이것도 뭔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잖아도 그 부분에 대해서 예전에 소림의 화상을 만났을 적에 서역에서 말하는 사대(四大)라는 것의 의미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네.”

“정말 대단하십니다. 궁금한 것은 어떻게라도 물어서 확인하셔야만 속이 시원하신 형님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요?”

“그 화상에게 물었지. 서역에서는 세상의 근본을 지수화풍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을 해 달라고 했지 않았겠나.”

“그랬더니 뭐라고 하던가요?”

“물론 사상보다는 오행으로 대입하는 것이 조금 더 가깝다는 것을 이해했네. 그래서 오행과 연결할 방법에 대해 물어봤지.”

“저도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답을 얻으셨습니까?”

우창은 이미 낙안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사상에 대해서 공부하고 주역팔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줄로 알았는데 이제 다시 공부가 조금 더 깊어지니 그것만이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는 이치를 알게 됨은 물론이고, 서역의 철학까지도 이해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 흥분이 되기조차 했던 것이다.

“그 화상이 말하기를, ‘사람이 죽으면 사대(四大)의 원소(元素)로 흩어집니다. 침, 땀, 피, 가래는 수(水)로 돌아가고, 온기는 화(火)로 돌아가고, 맥박은 풍(風)으로 돌아가고, 뼈와 살과 피부는 지(地)로 돌아가게 됩니다.’라고 하지 뭔가.”

“그렇다면 금(金)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셈이잖습니까?”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가만히 그 이야기를 분석해 보니까 토(土)에 금도 포함되어 있었던 거야. 원래 오행으로 볼 적에 살은 토(土)가 되고, 뼈는 금(金)이 된다고 했거든. 그것을 묶어놓았다는 것을 이해하고는 동서의 생각이 매우 비슷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아, 듣고 보니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서역의 사상과 우리의 사상은 오행으로 만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리셨군요. 그렇다면 사상이 그에 못 미치는 학문이라는 뜻입니까?”

“아니, 무슨 학자의 생각이 그리 유치하단 말인가. 하하~!”

“그게 그렇지 않습니까? 서역의 사상은 오행의 편에 섰다면 주역의 사상은 의문의 패배를 한 것처럼 생각이 되지 않습니까?”

“지수화풍의 사대(四大)는 원소라고 하지 않았는가? 사상의 주역에는 원소라는 말이 없다네. 그러니 서로 용도가 달랐던 것이고 생각도 달랐던 것이라네. 그러니까 오행은 원소가 되고 사상은 원소가 아니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네.”

“말씀을 듣고 보니 더욱 그러한 생각이 짙어집니다. 삼라만상(森羅萬象)에는 원소가 핵심일 텐데 사상은 원소와는 무관하게 작용한다면 근본 없는 떠돌이와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 어찌 같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우는 전통(傳統)이 중요한가? 지금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가?”

“그야 전통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것이 당연히 중요하다고 해야 하겠지요.”

“말을 그렇게 한다면 한 번 더 물어야 하겠군. 때론 전통에 해당하는 오행이 중요하고, 또 때로는 지금의 살아가는 현실이 더 중요하기도 하다는 말을 한다면 이해가 되겠는가? 그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음……. 듣고 보니 과연 서로는 그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오행과 음양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한마디로 말을 한다면, 오행은 체(體)가 되고, 음양은 용(用)이 된다고 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네.”

“그렇게 된다면 다툴 일이 전혀 없겠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여태까지 용, 즉 사용법을 배웠는데 이제는 그 본질(本質)의 실체(實體)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겠네요?”

“그렇겠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또 다음에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세. 벌써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잖은가. 하하~!”

“형님과 밤새도록 이러한 이야기만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시고 또 불원간(不遠間)에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낙안과 작별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길을 걷는 우창의 가슴도 시원함을 느꼈다. 자연의 모습에서 얻어진 이치일 텐데 그 이치를 바탕으로 삼고 역(逆)으로 다시 자연을 관조(觀照)하는 공부가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잠을 청했지만 진지하게 열변을 토하는 낙안의 모습이 겹치면서 학문의 세계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 겹치면서 흥분이 되어서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한 채로 뜬 눈으로 새벽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