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7. 점기(占幾)와 조짐(兆朕)에 관하여

작성일
2017-01-0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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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7. 점기(占幾)와 조짐(兆朕)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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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광으로부터 화풍정(火風鼎)에 대한 오묘한 이야기를 듣고 난 우창은 감동과 놀라움과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여하튼 이렇게 심오한 학문의 문턱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자신이 참으로 행운(幸運)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광 선생께 궁금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예, 우창 선생은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지금 너무나 신기한 이야기를 듣고 경외심(敬畏心)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런데 한편 생각을 해보면,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 점괘가 있다면 전혀 엉뚱한 해석을 할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과연 백발백중(百發百中)으로 모두가 정확한 답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느냐는 의문이 슬며시 들어서입니다. 다른 뜻은 아니고 세상의 모든 이치에는 음양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여쭙습니다.”

“아, 과연 예리하시군요. 당연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류를 줄이려는 노력하는 것이 공부가 되는 것이고, 오류를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서도 하나씩 줄여가는 노력이 또한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호~! 그렇군요. 정말이지 역경의 오묘(奧妙)한 이치에 대한 믿음이 확고(確固)해지려고 합니다. 비록 정확하진 않을지라도, 그것조차도 자연의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점점 정확한 관찰력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 공부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하~”

현광은 우창의 신기해하는 표정을 보면서 마음도 유쾌해져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렇다면 그 오류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아직은 공부에도 시간이 부족하지만 고명하신 선생을 뵌 김에 진작부터 궁금했던 점에 대해서 여쭙고 싶었습니다. 실은 옛적에 스승님과 동행하면서도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점괘가 빗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문득 우창은 장안에서의 얼굴이 화끈거렸던 장면이 또 생각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얼굴에는 자식의 도움이 큰데도 자식 문제로 고통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았었던 것이다.

“점괘가 빗나간다면 가장 큰 이유는 공부가 부족한 까닭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왜냐면 이치에 밝은 사람의 관점으로는 정답이 보이는데도 공부가 부족하면 그것이 보이지 않으니 짧은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모르는 사람에게는 손에 쥐여줘도 알 수가 없다는 말이 있기도 합니다.”

“그야 당연하겠습니다. 단시점에서도 뱀괘가 국수도 되고 수제비도 되는 것을 경험해 봤습니다. 점괘를 풀이하는 자의 안목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었지요.”

“맞습니다. 공자님과 제자들의 화풍정괘에 대한 해석이 같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초학자는 단순히 점괘만 보지만 숙련된 학자는 점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점괘의 주변에 대해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지요.”

“아,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군요. 이해가 됩니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어린아이는 아무리 여인들이 많이 모여 있어도 자기 엄마만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길 건너에 엄마가 보이면 마구 내달리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지나가는 마차에 다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엄마만 보고 달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아,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 엄마도 보이지만 주변의 상황도 함께 보기 때문에 불상사(不祥事)를 방지할 수가 있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군요.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이 됩니다. 완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공부가 다 된 사람은 오류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물론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여전히 빗나갈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 말을 들은 자휴와 현광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그렇긴 합니다만 또 맘대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그러한 의혹은 말끔히 사라질 수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하하~!”

“그 까닭이 궁금합니다. 공부를 많이 해도 빗나갈 수가 있다는 것은 도대체 왜 그럴까요?”

“아니, 우창 선생도 생각을 해보시지요. 공자님의 제자들이 공부를 게을리해서 점괘를 잘 해석하지 못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공부의 게으름과는 별개로 다른 문제도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작용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공부가 깊이 이뤄진 다음에도 마음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비밀이 따로 있는 것일까요?”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점(問占)자가 얼마나 간절하게 해답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냐는 점입니다. 간절하지 않으면 천지(天地)도 감응하지 않는 법이거든요. 그래서 점괘를 얻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냐는 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러한 점이 중요하다는 것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배워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로군요.”

“점기(占幾)가 발생하는 원인은 해답을 알고자 하는 사람으로 인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간절하지 않다면 점기도 미미하게 발동이 될 것이므로 해석을 해도 신통치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그래서 ‘유능한 점쟁이는 함부로 점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 것이지요.”

“그런 말이 있지요. 왜 그런 말이 생긴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해를 못 했습니다. 유능한 점쟁이는 더 많은 점을 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하신 말씀을 들어보면, 간절하지 않으면 점하지 않는다는 뜻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누가 질문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점괘를 뽑고서는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것은 하수(下手)인 것입니다. 고수는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에 상식과 사유(思惟)를 통해서 해답이 나오는 것은 점괘를 뽑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경우에만 점괘를 얻기 때문에 일반 사람이 봤을 적에는 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랍니다.”

 

“이제야 그 의미가 이해됩니다. 그러한 것도 모르면서 점괘를 얻는다는 것이 빗나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창의 마음에 남아있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공부가 부족했던 자신의 짧은 생각으로 스승님의 가르침도 수용하지 못했던 것은 자신의 탓이었지만 그로 인해서 그 노인장은 또 마음에 분노를 일으켰으니 그것이 새삼 죄송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현광의 설명은 이어졌다.

“가령 지금 내가 주사위를 던지면 숫자가 무엇이 나오겠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면 점쟁이는 어떻게 할까요?”

이번에는 자휴가 끼어들었다.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서 우창은 생각에 잠겼다. 아무도 서둘러서 답을 하라고 채근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주사위를 던지는 것은 놀이다. 놀이에서 주사위를 던져서 무엇이 나올 것인지가 궁금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의 해답을 위해서 점괘를 얻는다면 이것은 점괘도 또한 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점을 할 것이 아니라 그냥 던지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놀이로 귀중한 점기(占幾)를 낭비하는 것은 희롱(戲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장난삼아서 그냥 던졌을 뿐이니 이러한 일로 점괘를 논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그렇지요. 그런데 처음 점술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신기한 경험을 몇 차례 하다가 보면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내게 물으면 내가 모조리 답을 해 줄 수 있다.’고 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랍니다. 하하하~”

유쾌하게 웃는 두 사람을 보면서 우창도 덩달아 웃었다. 그들이 웃는 의미를 알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점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점을 하지 않아야 옳은 것인지 대해서도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만 조심하면 정확한 답을 얻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점만 주의한다면 점괘는 놀랍도록 신묘(神妙)한 경지를 보여 주겠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현광이 두 손을 내저었다.

“천만에요. 아직도 알아야 할 것이 더 있답니다. 알고 싶은 것이 아무리 간절하다고 해도 모든 점괘가 다 맞는 것도 아니란 것을 알 정도면 실력은 중급(中級)의 수준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공자님의 제자들이 간절하지 않아서 답을 해석하지 못한 것이 아니듯이 말이지요.”

“그럼 또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더 이상 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가르침을 바랍니다.”

“간절하면 대부분 점기(占幾)가 동합니다만 때론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영매자(靈媒者)는 그러한 경우에 ‘신령님이 잠을 자고 계셔서 지금은 점괘가 안 나온다.’고 합니다만 역술(易術)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없으니 그냥 보이는 대로 풀이를 합니다만 실은 이미 빗나갈 수밖에 없는 결과를 미리 안고 있는 것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것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또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점신(占神)이 존재한다면 점신도 예측이 가능한 범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점괘도 알 수가 없는 것이지요. 가령 ‘내가 몇 월, 며칠, 몇 시에 죽겠는지를 묻는다면 그것을 점신이라고 해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하늘만이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렇기도 하겠습니다. 다만 하늘과 점신의 존재는 서로 다른 것이라고 봐야 합니까? 가끔 소름이 끼치게 놀라울 적에는 하늘이 곧 점신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물론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있어서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점괘가 고개를 가로젓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지요. 가령 글을 읽던 선비가 벼슬길을 물었다고 할 적에 점괘에 벼슬에 대한 암시가 나와 있다면 해석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해석할 수가 없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과연 그렇겠습니다. 그렇게 묻는 선비도 간절하게 물었을 텐데 왜 그런 점괘가 나왔을까요?”

“세상의 이치를 모두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 현광인들 일일이 답을 드릴 수는 없지요. 하하~”

“아, 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무슨 뜻인지 압니다. 하하~!”

“그래도 궁금한 것을 여쭐 곳이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아마도 점괘에 암시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준비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벼슬은 하고 싶지만 공부가 아직 어림도 없이 부족하다면 점괘는 보여줄 필요조차도 없다고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당연합니다. 아하~!”

“예, 그렇다면 점괘에서는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된다고 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아예 답을 백지(白紙)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해석할 수가 없도록 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선생은 지금 질문을 잘못하셨구려~!’라는 해석을 점괘가 대신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점괘에도 인격(人格)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점괘가 생각할 수가 있습니까? 그냥 조짐(兆朕)에 의해서 얻어진 암시일 뿐인데도 그러한 생각이 있는 것처럼 생각이 되니 말이지요.”

“맞습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얻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점괘가 언제부터인가는 필연(必然)의 조짐을 하늘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 자리를 잡게 되었네요.”

“말씀을 들으니 과연 무슨 마음으로 점에 대해서 공부해야 할 것인지도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됩니다. 오늘의 가르침은 정말이지 평생의 잠언(箴言)으로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감읍(感泣)입니다.”

“비록 현광의 이야기가 아니라도 머지않아서 깨닫게 되셨을 것이니 너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만 식당으로 가시지요.”

“아, 이야기에 취해서 시간이 가는 것도 잊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렇게 작별을 고합니다. 다음에 또 나들이하겠습니다.”

두 사람을 작별하고 나오는 우창의 표정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역학의 세계가 이렇게도 무궁무진(無窮無盡)하고 변화무쌍(變化無雙)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순간이었으며 이러한 공부에 인연이 된 것에 대한 감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