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6. 팔괘점(八卦占)의 일화(逸話)

작성일
2017-01-04 15:21
조회
2041

[034]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6. 팔괘점(八卦占)의 일화(逸話) 


=======================

우창이 며칠간 후천팔괘(後天八卦)를 궁리하는 중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자연의 모습을 단지 여덟 가지의 현상으로 풀이를 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疑懼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통해서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있는 고인들의 지혜로움이 번득인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비교적 여유로운 오후에 자휴(子休)가 보고 싶어서 방문했다. 그가 머무는 곳은 맨 위쪽의 학사(學舍)였는데 도학(道學)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기거는 특별히 별채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특별대우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공부에는 상하가 없겠지만 그 공부의 결과에 의한 고저(高低)는 분명한 것으로 봐서일까 싶기도 했다.

두어 번 놀러 가서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중에 그의 소탈한 성품이 끌려서 문득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에는 떠오르는 얼굴이기도 했다. 자휴의 처소에 다다라서 헛기침을 하자 반갑게 들어오라는 자휴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오, 우창 선생이 귀한 걸음을 하셨네요. 어서 오시지요.”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편안하셨는지요?”

“덕분에 이리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낯선 선생이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불청객(不請客)을 맞이한다. 잠시 미안한 감이 들었지만 혹 어떤 공부를 하시는 분인지도 궁금한 마음이 생겨서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자, 서로 초면이겠군요. 이쪽은 혜암도인 인연으로 입산을 하신 우창 선생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현광(賢廣)선생이십니다. 서로 좋은 도반의 인연이 되시리라고 봅니다. 하하~”

“우창이 선배님을 뵙습니다. 많은 아낌없는 지도편달(指導鞭撻)을 부탁드립니다.”

“원,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혜암도인을 흠모하고 있던 차인데 직전(直傳) 제자를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앞으로 귀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우창이 살펴보니 강경해 보이는 성품이 꼬장꼬장한 느낌을 주었으나 학문으로 연마한 안광(眼光)은 반짝이고 있어서 범상치 않음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현광이 물었다.

“우창 선생은 어느 학당에서 수학하시는지요? 현광은 천학(天學)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만.”

“천학이면 천문(天文)과 우주의 이치를 궁리하는 분야가 아닙니까? 참으로 대단하신 공부를 익히시는군요. 궁금하기는 합니다만 아직도 기초가 부족하여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우창은 지금 수리학당에서 기초적인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보조스승님은 낙안 선생이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아, 송무 선생의 안내를 받고 계시는군요. 매우 학문이 깊은 선생입니다. 현광도 수리학당에 있을 적에 많은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학문에는 기초가 가장 중요합니다. 매우 소중한 순간들이니 잘 익히시기 바랍니다.”

“그럼 현광 선생께서는 이미 수학은 마치셨군요. 부럽습니다. 그 어려운 공부를 마치시고 또 다른 공부를 하고 계시니 말이지요.”

“별것 아닙니다. 이름만 다를 뿐이지 기본적인 이치는 모두가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때론 확장되고, 때론 축소되고, 또 때론 심오하고, 또 때론 가볍지만 결국 그 속에 흐르고 있는 이치의 진리는 하나라는 것을 알면 소중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겠지요.”

“대뜸 이렇게도 탁견(卓見)을 피력(披瀝)해 주시니 오늘 자휴 선생을 뵈러 나들이를 참으로 잘한 것 같습니다. 진정 그러한 가르침에 목이 마르던 참이었습니다. 왜냐면 너무 한 가지로만 공부를 하다가 보니 주변의 학문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무척이나 궁금했었거든요.”

이렇게 현광과 우창의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빙그레 웃으면서 듣고 있던 자휴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아니, 현광 선생은 수학 중에서도 주역에 특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시잖소? 이런 기회에 우창 선생을 위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나 한두 가지 들려주시구려. 처음에 공부하는 사람은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말이오.”

“장형(張兄)도 그런 허언(虛言)을 하시면 어쩌십니까. 약간의 지식으로 잔재주를 부리다가 망신을 당할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하하하~”

눈치가 빠른 우창이 이렇게 깔아주는 자리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렇습니다. 무슨 말씀이라도 좋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면 공부에 새로운 활력이 되지 싶습니다. 그렇잖아도 지난번에 팔괘(八卦)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을 배워서 어떻게 활용이 되는지도 무척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혹 그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면 후학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지 싶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공자님으로부터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나 한담 삼아 꺼내 보겠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더욱 고맙지요. 경청하겠습니다.”

“공자께서 제자들과 머물러 계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하여 제자들이 갖고 온 얼마간의 금액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다가 가뭄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먹을 식량이 부족하여 더러는 함께 머물지를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될 상황이 되었던가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흉년이 들면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어려운 일이지요.”

“그중에 자공(子貢)이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분이기도 합니다. 그는 상술(商術)과 언변(言辯)이 능해서 공자님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재능을 발휘하여 위기를 극복하곤 했지요. 이때에도 나서서 식량을 구해보겠다고 하자 모두 성공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환송을 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다 급한 것입니다만, 식량을 구해 올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은 더욱 조바심이 났겠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보름 이상을 기다려도 자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조바심이 난 제자들이 스승에게 배운 주역으로 점괘(占卦)를 뽑아보기로 했지요. 강당에 모인 제자 중에서 누군가 득괘(得卦)를 해야 하는데 서로 미루기만 하고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성미가 급한 자로(子路)가 나섰습니다.”

“원래 험한 일은 성급한 사람의 몫이겠습니다. 하하~”

“자로가 배운 대로 시초(蓍草)를 쥐고 득괘를 하니 화풍정(火風鼎)의 괘가 나왔고 동효(動爻)는 사효(四爻)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지고(鼎之蠱)가 되는 것이지요.”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얼른 못 알아듣겠습니다. 다만 제대로 기억을 해 뒀다가 다음에 공부하면 제대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상괘(上卦)는 리괘(離卦☲)이고 하괘(下卦)는 손괘(巽卦☴)가 나왔다는 뜻이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까 위는 불이고 아래는 바람이라는 뜻이네요.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불의 아래에서 바람이 불면 불이 잘 타오르지 않을까요?”

그러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휴가 거들었다.

“오호~! 원래 우창 선생은 역리(易理)의 소질을 타고나셨군요. 과연 대단하십니다. 저는 공부할 적에 그러한 생각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자휴 선생, 왜 이러십니까. 여하튼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말이 된다는 뜻입니까? 그런데 솥정(鼎)은 왜 붙어 있는 것입니까?”

“정괘(鼎卦)는 괘의 이름입니다. 64개의 괘 중에 하나지요. 그리고 네 번째의 효, 그러니까 상괘의 리괘(離卦)에서 1효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리괘의 1효는 양효(⚊)가 되므로 바뀐다는 것은 음효가 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간괘(艮卦☶)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정괘(鼎卦)가 변해서 고괘(蠱卦)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상괘가 간이고 하괘가 손이면 이 괘의 이름은 고괘(蠱卦)라는 뜻이란 것이지요? 그런데 고(蠱)는 벌레를 의미하지 않습니까? 뭔가 느낌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드셨습니까?”

“아니, 솥에 벌레가 생겼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해석이로군요. 그것도 말이 됩니다. 그러나 역경의 해석은 또 좀 다르게 되어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활용을 하는 법으로 발전을 했습니다만 그 당시로는 오로지 역경에 의거(依據)해서 풀이해야 하거든요. 학문은 세월 따라서 늘 변하기 마련입니다. 하하~”

“원래 주역은 변하는 학문이라고 하더니만 오늘 현광 선생의 말씀을 들어보니 과연 실감이 납니다. 그 변화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궁금합니다. 자로가 얻은 점괘를 보고 다른 제자들은 어떤 해석을 하셨습니까? 아니 역경에는 어떻게 해석이 되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역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九四(구사) 鼎(정) 折足(절족) 覆公曺(복공조) 其形(기형) 渥(악) 凶(흉)」

(밥솥의 다리가 부러져서 엎어지니 흉하다.)

 

“저런~ 그걸 어떻게 합니까? 자로가 대중들 볼 낯이 없었겠습니다.”

“그러나 점괘는 점괘입니다. 처음 점괘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고 해서 다시 점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모두는 한숨을 쉬면서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 더 할 말이 없었던 것은 당연하지요. 강당이 조용하자 산책을 나갔던 공자님이 뭣들 하느라고 조용한가 싶어서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점괘는 이미 나왔으니 공자님이 오신들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제자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질 생각으로 마음이 아팠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공자님께 연유(緣由)를 고하고 그래서 다들 이렇게 실망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공자님은 잠시 그 점괘를 바라보고 계시더니 크게 웃으시는 겁니다.”

“어쩌면 웃으신 것이 아니라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웃으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재물은 왜 필요한 곳에는 늘 부족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창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음 이야기를 채근했다.

“제자들이 의아해서 스승님을 바라봤습니다. 그러자 공자님께서 웃으신 이유를 말씀하셨지요.”

“그렇다면 실망이 아니라 희망을 보신 걸까요?”

“공자님의 말씀인즉, ‘이 점괘가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죽어있는 주역의 문자만 본 것이니라.’라고 하셨지요. 제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여태 배운 주역의 해석법이 또 따로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당연하겠습니다. 같은 점괘를 상황에 따라서 맘대로 해석한다면 어찌 혼란스럽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제자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계신다는 듯이 말씀하셨지요. ‘그대들이 이 점괘를 죽어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살아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느니라. 그대들이 솥이 엎어져서 밥을 굶겠다고 해석한 것은 죽은 해석이고, 이 구(丘)가 밥을 먹겠다고 해석한 것은 살아있는 해석이니라.’고 하면서 제자들을 둘러봤습니다.”

“우창도 공자님께서 어떤 설명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공자님이 말씀을 이었습니다. ‘제자들아 자공은 배를 타고 올 것이니라, 그러니 배는 다리가 필요 없고 비록 밥이 쏟아지더라도 배이기 때문에 먹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까닭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도 제자들은 반신반의(半信半疑)할 수밖에 없었지요.”

“당연하겠습니다. 실망하고 있는 제자들을 위로해 주느라고 나쁜 점괘를 좋게 해석한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말이지요.”

“그러자 공자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자공이 양식을 가득 싣고 돌아오고 있구나. 어서 마중 가자.’라고 해서 다들 스승을 따라 강변에 가보니까 과연 자공이 배 위에서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습니다. 물론 식량을 가득 싣고 온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지요.”

“이야~ 참으로 신기하고도 오묘합니다. 어찌 그러한 혜안을 얻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현광 선생도 이러한 풀이를 하실 수가 있다는 것이로군요. 정말로 주역의 이치는 상상불허(想像不許)의 변화막측(變化莫測)한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습니다. 어찌 그러한 것을 배워서 깨달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우창은 감탄도 되지만 그러한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지에 대한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할까 싶은 두려움도 들어서 탄식을 섞어서 말했다. 그 말을 듣고는 현광이 빙그레 웃었다. 문득 자휴를 보니 그도 같이 마주 보면서 아는 자들만이 아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