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 제4장 술수종횡/ 1. 태산을 향한 저마다의 인연

작성일
2017-01-0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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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1. 태산을 향한 저마다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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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은 천천히 자신이 겪게 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창도 궁금했던 일인지라 귀를 기울여서 이야기에 몰입했다. 낙안이 들려주는 말이었다.

 

홀로 중얼중얼하던 노인은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자네의 그 용모가 아깝네 그려...”

“저의 꼴이 어때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요?”

“천하의 혼란을 구할 영웅호걸(英雄豪傑)의 상인데 소나 몰고 있으니...”

“영웅호걸이라니요. 무슨 가당치도 않은 말씀이신가요?”

“자네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난다는 말이네.”

“저도 이 농사일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만 영웅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제가 무슨 영웅이 되겠습니까요?”

“그러게 말이네. 자네는 그 아무나 되는 게 아닌 호걸이 될 자질이 있단 말이야.”

“어르신의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아, 지나가던 늙은이의 말을 뭘 근거로 믿을 수가 있겠느냐는 뜻이렷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저의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믿으란 말씀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노인은 조금 전까지 낙안이 부리고 있던 소를 가리켰다. 주인이 길 가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검은 소와 붉은 소는 편안하게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노인이 말했다.

“저 두 마리의 소가 있는데. 자네가 보기에 어느 소가 먼저 일어날 것 같은가? 어디 판단을 해보시게.”

“아니 그건 노인장에게 불리한 시험인데요? 저는 저 두 마리의 소의 성품을 저는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소가 먼저 일어날 것인지를 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야 상관이 없네. 중요한 것은 지금 저 두 마리의 소 중에서 어느 소가 먼저 일어날 것인지를 나는 알 수가 있단 말이네.”

“그럼 맞춰 보시지요. 어느 소가 먼저 일어나겠습니까?”

“검은 소~!”

그 말을 듣고서 낙안은 큰 소리로 웃었다.

“아이구~! 이 일을 어쩝니까? 완전히 빗나가게 생겼습니다. 평소에도 저 붉은 소는 성격이 괄괄해서 잠시도 뒤지는 것을 싫어하고, 검은 소는 반대로 성격이 느긋해서 언제나 붉은 소가 움직여야 따라서 행동하는 것을 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단 말입니다. 하하하~”

그러나 노인은 무덤덤하게 소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뜨거운 차 한 잔을 식혀서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흘러갔고, 낙안도 그만 노인장과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얼른 하던 일이나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놀랍게도 검은 소가 머리를 부스스 흔들더니만 바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본 낙안은 깜짝 놀랐다. 일찍이 볼 수가 없었던 장면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놀라서 노인을 바라봤다.

“허허허~ 어떤가? 이래도 늙은이를 의심할 텐가?”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런 일이 없었는데 노인장께서는 어떻게 이것을 미리 알 수가 있으셨습니까? 무슨 술수를 부리신 것은 아닙니까?”

“여보게 젊은이, 내가 뭐가 답답해서 젊은이와 이런 짓을 하고 있겠는가? 그냥 단순히 자연의 흐름에 대한 조짐을 약간 보여 줬을 뿐이라네. 허허허~!”

“그걸 미리 알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하늘에서 눈이 올지 비가 올지도 미리 알 수가 있습니까? 더불어서 눈이 온다면 언제 올 것이며 그 분량은 또 얼마나 올 것인지도 알 수가 있고, 비가 온다면 얼마나 내린 다음에 언제 그치는 것도 알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야 너무나 쉬운 일이지. 손바닥을 뒤집는 만큼이나 말이네. 허허허~!”

“그렇다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검은 소가 먼저 일어날 것인지를 알 수가 있는지 그 까닭을 알고 싶습니다.”

“그야 간단하네. 점괘에 불 화(火)가 나왔기 때문이라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불이라면 붉은색인데 당연히 붉은 소가 먼저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말이 안 되는 말씀이십니다.”

“원 성급하기는. 불이 일어나기 전에 무슨 현상이 생기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예? 불이 일어나기 전에요? 음.... 연기가 먼저 피어오르네요. 그렇다면.... 아하~! 이제 알겠습니다. 그래서 검은색의 연기에 해당하는 검은 소가 먼저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되는군요.”

“사실 이렇게 자연의 모습에 약간의 점기(占幾)가 추가된다면 잠시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아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네.”

“그렇다면 제가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따르겠습니까? 안 따르겠습니까?”

“당연히 따르고말고.”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자네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라네. ‘이 노인을 따라가서 도술을 배운다면 평소에 품고 있었던 꿈을 이룰 수가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맞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까? 사람을 보고서 미리 그러한 생각을 알 수가 있다면 전장(戰場)의 막사에서도 휘하 장군들의 마음을 미리 살펴서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럼 이 늙은이의 말을 믿고 시키는 대로 할 텐가?”

“예, 그렇잖아도 이 혼란한 세상을 구할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그 길을 몰라서 이렇게 속으로만 울분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이제 하늘에서 스승님을 보내주셔서 길을 열어 주시니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야 나를 따라가면 되지.”

“그럼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낙안은 낙록자를 따라서 괭이를 팽개쳐버리고는 그 손에 붓과 책을 잡고 열심히 기문둔갑을 배우게 되었다. 그 낙록자는 기문둔갑의 명인이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그냥 배우기만 한 낙안은 어느 사이 기문에 대해서는 상당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낙록자를 따라나선지도 3년여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부모처럼 의지하던 낙록자는 연로하여 숙환(宿患)이 발생하였는데,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간호했지만, 효과가 없었기에 안타까움만 가득했다. 그 무렵에 낙록자는 자신의 떠나야 할 시기가 임박했음을 알고서는 낙안을 불러내 서찰을 내밀었다. 그는 밝은 어조로 말을 천천히 했다.

“여보게... 자네는 참으로 내가 잘 본 제자였네. 이제 나와 이번 생에서의 인연은 끝일세, 그러나 또 다음에 인연이 된다면 어디선가 만나게 될 것이네. 물론 서로는 몰라보겠지만 큰 뜻을 품고 있으니 열심히 정진하게.”

낙안은 오로지 하늘같이 의지하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 임종을 맞이하게 되는 사부님을 보면서 왈칵 눈물이 흐르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사부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낙록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 서찰은 태산의 심곡자에게 보내는 편지라네, 그는 나와 인연이 많은데 항상 주변에 재사(才士)들이 모여 있네. 자네도 그곳에서 더욱 깊은 학문을 연마하게 될 것이네. 그럼 좋은 도반(道伴)들 많이 사귀고 더욱 정진해서 반드시 그대가 뜻한 바대로 혼탁한 세상을 구하기 바라네.”

“예, 사부님 반드시 태산으로 심곡자 어른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그래 나도 안심이네. 자리를 편안하게 해주고 오늘부터는 곡기(穀氣)를 끊겠네. 그리 알고 자네도 물만 좀 떠다 주게. 그동안 이 늙은이를 시중드느라고 고생이 많았네. 허허허...”

낙안은 스승 낙록자가 임종하는 것을 지켜보고서는 시신을 거둬서 장사 지내고 그길로 태산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형학(形學)을 공부하고, 다시 명학(命學)도 공부를 했다. 의학(醫學)분야도 많은 공부를 하였고, 그리고는 수학(數學)까지도 공부하고 있었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마친 낙안은 빙그레 웃었다.

“인연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하~!”

“축하드립니다. 전생의 선근(善根)이 있으셨네요. 하하~!”

우창은 그렇게 낙안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해박한 지혜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자신을 인도해주는 스승이 있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일 것이다. 요즘 들어서 더욱 자주 하게 되는 생각이었다. 자신도 그날 진상도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심오한 이치를 어찌 생각이나 할 수가 있으랴 싶었다. 요행히도 사부님을 만난 관계로 해서 이렇게 깊은 도리(道理)를 배울 수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참으로 이렇게 자연의 이치를 궁리하는 것이 요즘처럼 재미가 있다면 머지않아서 도인이 될 것도 같았다.

깊은 생각으로 잠도 오지 않자 다시 구궁도(九宮圖)의 기본적인 이치를 생각하면서 연구에 골몰하였다. 숫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암기하고 나자 이번에는 숫자를 따라서 선을 그어 보았다. 일정한 규칙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어떤 이치가 숨어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산에 머문 지도 그리 오래지 않은데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적지 않은 수리학의 상식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마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나날이 깊어만 갔다. 그렇게 날이 가고 달이 가고 또 세월이 흘러갔다.

 

점차로 구궁(九宮)에 대한 이해도 깊어져 갔다. 처음에는 고정되어 있던 숫자들이 점차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이동을 하는 이치도 배웠다. 더구나 봄과 여름에는 그 숫자들이 옮기는 방향이 순행(順行)으로 이동을 하다가 하지(夏至)가 지나게 되면 다시 반대로 역행(逆行)으로 이동하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이것이 매년, 매월, 매일, 매시간마다 계속해서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나자 비로소 뭔가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이제 기본적인 수리(數理)에 대해서 공부가 되었다고 판단한 낙안은 비로소 역경(易經) 공부를 시작하자는 말을 했다.

“우창 선생의 열정으로 인해서 학문이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역경을 공부해도 될 기초가 완성되었다고 봐서 구궁(九宮)의 이치는 잠시 덮어놔도 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뭔가 공부에 진전이 있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아무리 해도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것만 같았는데 말이지요. 하하.”

나름 노력을 한 대접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우창의 마음도 싫지 않았다. 모든 학문의 조종(祖宗)이라고 할 수 있는 역경을 공부할 기초가 되었다니 더욱 분발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