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11. 구류(九流)중의 음양가(陰陽家)

작성일
2017-01-04 15:07
조회
2953

[024]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11. 구류(九流)중의 음양가(陰陽家) 


==========================

추문성은 여러 학파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는 그중에서도 역시 음양가에 대한 것이 가장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저는 오늘 들은 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을 만나면 바로 활용을 하지 싶습니다. 얼렁뚱땅 넘기는 수단은 있어서 말이지요. 하하~!”

“그것도 큰 능력입니다. 잘 연마하면 멋진 도사가 되실 것은 틀림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모두 관심이 없고, 음양가에 대해서 관심이 가는 것을 보니까 이미 자신의 방향은 정해진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아마도 그렇지 싶습니다. 하하~!”

“그나저나 아까부터 관심이 가는 것은 진형의 그 놀라운 점술입니다. 당장 써먹을 수도 있는 것에만 관심이 가는 것도 근본 바탕이 천박해서겠지요? 하하~!”

“원, 그럴 리가 있습니까. 관심이 가는 것부터 공부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실로 언제 쓰일지도 모르는 것을 공부하는 것은 나중에 심심해서 못 견딜 때쯤에 살펴봐도 되는 것이니까요.”

우창이 보기에 이 사람은 참으로 감동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시원시원하고 거침이 없고 솔직하여 속진(俗塵)에 찌들지 않은 성품의 소유자였다. 이렇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은근히 정이 들기도 했다.

“진형, 수고스럽겠지만 음양가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왕지사 배우게 될 것이지만 그 속에서도 다양한 갈림길이 나오지 싶은데 대략적이나마 이해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분야를 잡고 들어가더라도 입구는 좁은데 막상 발을 들여놓게 되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세상이 열리는 것은 무엇이나 같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러니 우창이 설명을 한다고 해도 매우 얕은 상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먼저 이해하시고 앞으로 기회가 오면 완전하게 갖춘다는 마음으로 들어주신다면 해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요. 너무 겸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떤 내용이 될지 기대가 됩니다. 어서 말씀해 주시지요.”

“음양가(陰陽家)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을 바탕에 놓고 연구하는 부류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음양만 연구하거나, 혹은 오행만 연구하기도 하고, 이것을 서로 섞어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이나 오행음양(五行陰陽)으로 대입해서 관찰을 하기도 합니다.”

“예? 음양오행과 오행음양이 다릅니까? 제가 듣기에는 같은 말로 들리는데....”

“다릅니다. 음양이 주가 되어서 오행을 응용하는 것과, 오행이 주가 되어서 음양을 응용하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는 음양을 주로 삼고 연구하는 것부터 생각하면 됩니다.”

“잘 알겠습니다. 음양부터 공부하겠습니다.”

“추형은 음양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음양이 뭐냐고 물으시면..... 남녀? 낮과 밤?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말을 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음양은 상대적(相對的)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가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적용을 시킬 수가 있습니다. 밝고 어두운 것이나, 크고 작은 것이나, 빠르고 느린 것이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야 만고에 쉽구먼요. 그것을 더 연구해서 무엇이 나온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걸로 다 된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원래 기본은 쉽습니다. 다만 변화가 전개되었을 적에 점차로 복잡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기본적인 개념이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되면 혼란이 발생하게 되고 그야말로 엉킨 실타래가 됩니다. 그래서 기초적인 개념을 잘 정리해야 하고, 천리 길도 한 걸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호~! 또 가벼운 생각으로 헛소리를 했습니다. 이렇게 단순해서 학문의 문을 열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음양은 『역경(易經)』을 조종(祖宗)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1차의 음양은 음양(陰陽)이지만, 2차로 확장(擴張)하면 사상(四象)이 되고, 3차로 확장하면, 팔괘(八卦)가 되고, 4차로 확장하면 육십사괘(六十四卦)가 됩니다. 64괘에서 세상의 오만가지 풍경이 모두 드러나기 때문에 1차로 여기까지만 연구해도 됩니다.”

“64괘가 전부가 아닙니까? 다시 추가로 5차로 확장을 하기도 한다는 말씀이신지요?”

추문성은 자신의 상식이 개미의 발바닥만큼이나 좁다는 것을 탄식하면서 우창에게 물었다. 우창도 그 마음을 이해하게 빙긋이 웃으면서 답했다.

“5차로 확장하는 것은 지괘(之卦)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다만 이것은 기본적인 4차의 확장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이라고 할 수도 있으므로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고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지괘 뿐만이 아니라, 호괘(互卦)와 도전괘(倒顚卦), 착종괘(錯綜卦)도 모두 5차로 확장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64괘의 의미를 연결시켜서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따로 공부할 것은 없습니다.”

“처음 듣습니다. 하긴, 모두가 처음 듣는 말씀이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음양으로 보는 세계는 모두가 상대적이므로 비교(比較)해서 판단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지요. 어제보다 오늘이 재미있으십니까?”

“예? 아, 물론이지요. 어제는 바보처럼 살았고, 오늘은 그것을 깨달았으니 당연히 재미있고 말고입니다.”

“그러면 어제는 음이고 오늘은 양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반대의 상황도 얼마든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음양의 이치는 매우 가까이에 있는 것이로군요. 사람은 누구나 음에서 양으로 옮겨가기를 희망하지 않습니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부유하고 즐거운 날이 되기를 바랄 테니까요.”

“맞습니다.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모두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오늘보다 내일이 절대로 좋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마도 우울증(憂鬱症)에 걸린다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가령 빚을 많이 지게 되어서 아무리 요동치고 발광을 해도 갚을 길이 없다면 희망의 빛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어둠이 자리를 잡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나 내일이 오늘보다 밝아지는 것은 아니로군요. 놀랍습니다.”

“실은 추형과 동행하기로 한 것도 바로 그 놀라움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놀라움을 발견했을 적에 사람들은 두 가지의 현상으로 반응을 합니다. 하나는 의혹(疑惑)이고, 하나는 감탄(感歎)입니다. 의혹을 갖는 사람은 그러한 현상을 보고서도 믿지 않거나 의심하게 됩니다. 반면에 감탄하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동하게 되지요.”

“아, 알겠습니다. 의혹을 갖는 사람은 음적(陰的)인 사람이고, 감탄하는 사람은 양적(陽的)입니다. 맞습니까?”

“훌륭하십니다. 정확하게 판단하셨습니다.”

“에구~! 그걸로 훌륭하다니요. 너무 띄우시면 우쭐거립니다. 하하~!”

“처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한 것입니다. 앞으로 한 달이 자니고 나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책상 모서리를 잡고 일어날 때는 훌륭하다고 하지만 마당을 뛰어다닐 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하~!”

“저는 또, 놀리는 말씀인 줄 알았습니다. 오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감탄을 잘 하는 사람도 음에 해당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가 되겠습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진형의 말은 모순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텐데 말입니다.”

“감탄을 잘 하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잘 속을 수도 있습니다. 사기꾼은 의혹에 찬 눈초리를 한 사람은 포기합니다. 대신에 감탄하고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사람을 노리지요. 이것이 그 반작용(反作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양으로 파고 들어가면 잠시도 긴장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야~! 정말 간단치가 않습니다.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단순하지가 않다는 것을 바로 보여주십니다. 과연 학문의 깊이란 진형을 두고 말하는 것을 알겠습니다.”

“지척(咫尺)이 천리(千里)리라는 것도 모두 음양의 소식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가깝기로 하면 코끝이 되지만 멀기로 하면 천리 밖이기도 하니까요. 점점 파고 들어가면 그 미묘한 차이는 길흉(吉凶)을 갈라놓기도 하고, 생사로 나뉘기도 하지요.”

“새삼 놀랐습니다. 정말 아는 만큼만 보인다더니 오늘 제가 딱 그 짝입니다. 이렇게 무지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마네요.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것은 진형의 가르침이 스승님의 풍모가 있어서인가 싶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이제부터 스승님으로 호칭해야 되겠습니다.”

“아아~! 그러지 마시고, 그냥 처음대로 하세요. 태산에 가면 진정으로 스승이라고 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를 판단하게 될 겁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래야 진형이 편안하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음양의 이치로 알아낼 수가 있는 것이 그렇게도 많은데 왜 또 오행이 존재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이치에는 상대적인 것도 있지만 절대적(絶對的)인 것도 있습니다. 상대적인 것으로 절대적인 것을 가늠할 수가 없으므로 오행이 존재하게 된 것은 필수적(必須的)이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행은 절대적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가 있다는 뜻이겠군요? 그런 것이 있습니까? 전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본성(本性)입니다.”

“예? 본성이라니요? 마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추형의 본성은 비교를 할 상대가 있습니까?”

“그야 진형이 있지 않습니다. 진형은 밝으니 양이고 저는 어두우니 음으로 보면 딱 맞아떨어지겠구먼요.”

“예? 하하~! 그렇게 본다면 음양관(陰陽觀)입니다. 오행관(五行觀)으로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는 자신만의 존재(存在)가 있습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이게 무엇입니까?”

우창이 길바닥을 툭툭 차면서 물었다.

“땅이지요. 길인가요? 흙일 수도 있겠습니다. 무엇을 물으신 것인지 말씀하지 않으셔서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땅입니다. 오행(五行)은 아시지요?”

“그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가 아닙니까?”

“땅은 그중에서 어디에 속하지요?”

“토라고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하~!”

“화(火)가 아닙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금(金)은 아닙니까?”

“곤란하겠는데요?”

“그렇다면 수(水)나 목(木)은 어떻습니까?”

“아하~! 이제 알겠습니다. 땅은 오직 땅일 뿐이라는 이야기지요? 오리는 오리일뿐이고, 소는 소일 뿐 다른 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는 말씀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 맞습니까?”

“잘 이해하셨습니다. 그래서 음양만 알면 절반(折半)을 이해한 것이고, 오행만 알아도 절반만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의 가르침은 음양오행과 오행음양이 함께 움직여서 분리가 되지 않는 것이려니 싶습니다.”

“그렇다면, 음양을 배우려면 역경을 보면 된다고 하셨으니 오행을 배우려면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무엇을 배우든 모두 그 안에는 음양과 오행이 뒤섞여 있으므로 구분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오행을 공부하는 것에는 간지(干支)가 비교적 핵심(核心)을 드러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간지(干支)야 알지 않습니까? 갑을병정(甲乙丙丁)과 자축인묘(子丑寅卯)를 말하는 것이잖아요? 그것만으로 오행의 이치를 알 수가 있다면 저는 이미 오행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고 봐도 되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이미 오행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셨습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마무리를 한다면 소학(小學)이라고 할 것입니다.”

“작은 공부라고 한다면 중학(中學)은 어떤 것입니까?”

“중학은 육십갑자(六十甲子)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남이 하는 오행의 이야기를 옆에서 귀동냥으로라도 알아들을 수준은 된다고 하겠습니다.”

“예? 그럼 대학(大學)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것은 또 어떤 경지입니까?”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볼 줄 아는 것입니다.”

“간지만 알아서는 길흉화복을 모릅니까?”

“아무래도 부족하다고 하겠습니다.”

“과연 학문의 세계는 심오하네요. 점점 머리가 지끈거리려고 합니다. 좀 쉽게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꾸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만...”

“아닙니다. 질문하는 이가 있어야 답하는 사람도 공부의 진전이 있는 법이니까요. 이것은 음양법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답하는 것도 공부가 됩니까?”

“당연하지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은 들어보셨습니까? 가르치고 배우다가 보면 서로 같이 성장한다는 이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놀랍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문자(文字)를 잘 끌어다 붙이십니까? 듣고 보면 아는 말인데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으니 이것은 아무래도 멍청해서 그런 것이려니 싶습니다.”

“하하~! 멍청해서가 아니라 가르쳐 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속에 담아두기만 하면 밖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넣었다 꺼냈다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더욱 곱게 연마(鍊磨)되고 광택이 나서 세련(洗鍊)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앞으로 추형의 학문이 이렇게 발전이 될 것은 틀림없다고 단정(斷定)하겠습니다.”

“오늘 정말 많이 배웁니다.”

“원래 허공은 막힘이 없는데 지식이 부족하여 통할 줄을 모를 뿐입니다. 그래서 항상 허공을 보면서 그 막힘이 없는 것을 생각하고 궁리를 할 적에도 끝까지 추적하다가 보면 어딘가에서는 서로 다시 만나게 되고, 답답한 것이 줄어드는 그 자리에서 기쁨의 춤을 추게 되는 것이랍니다.”

“음양가(陰陽家)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생각했는데 단지 이름만 이해하는데도 이미 뭔가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공부하면 되는데 왜 또 많은 학파가 그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인지요?”

“음양과 오행은 요리로 말하면 쌀, 보리, 콩, 고기, 소금, 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재료가 되는 것이지요. 재료만 있어도 뭔가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한 끼를 해결하는 멋진 요리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하, 그러니까 그 재료를 갖고서 국밥을 만들 수도 있고, 만한전석(滿漢全席)의 궁중 요리상도 차릴 수가 있다는 뜻이지요?”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 재료만 모아놓고 만족하거나,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만들어 내고서도 더 맛있는 것을 찾거나 그것은 저마다의 역량에 따른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학인(學人)은 항상 더 멋진 잔칫상을 생각하면서 잠을 줄이고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창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또 감탄하면서 그렇게 길을 걷다가 보니 어느 사이 산마루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추형, 잠시 쉬었다 가십시다.”

“그렇잖아도 목이 컬컬했는데 저기 객잔이 있습니다. 들어가서 요기도 하고 쉬어서 가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들어가시지요.”

두 사람은 객잔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시장한 밥통과 끌고 오느라고 고생한 두 발을 달래면서도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러니까 무슨 요리를 하더라도 그 재료는 소금과 밀가루라는 의미로군요. 그렇다면 그 재료로 만든 요리는 어떤 것이 되는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오행과 음양으로 산천경계를 만들면 풍수지리(風水地理)가 됩니다.”

“풍수도 그 뿌리에는 음양과 오행이란 말입니까?”

“물론이지요. 양지는 양이고 음지는 음입니다. 산이 있으면 토, 물이 있으면 수, 바위가 있으면 금, 수목이 있으면 목이 되니 조금도 음양과 오행의 이치를 벗어나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쉬운 것이 풍수학입니까? 아니지, 쉬운 것이 아니라 또 풍수의 문을 열고 들어가며 그곳에도 열두 대문이 있을 것은 틀림없지 싶습니다. 그렇습니까?”

“하하~! 눈치는 대왕이십니다. 틀림없습니다.”

“하늘을 향해서 저울질하면 이십팔수(二十八宿)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이 그 안에서 요동치면서 길흉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이것은 천문(天文)이라고 하지요. 하늘에 새겨진 무늬[文]를 보면서 오행음양으로 연구하는 것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하, 그래서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한다는 말이 나오는군요? 이것을 다 잘 알아야 통달(通達)인 것인가요?”

“그렇게 말을 해도 되겠습니다. 하하~!”

“천지(天地)의 이치를 알면 다 안 것이 아닙니까? 여기에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까?”

“삼재(三才)가 무엇인지는 들어보셨겠지요?”

“삼재라면 천지인(天地人)을 말씀하시는 것이잖습니까? 그야 들어봤습니다. 아, 그러니까 통천(通天)하고 달지(達地)하는데 사람이 빠졌네요. 사람에 대한 것은 또 무엇이 있습니까?”

“물론 천문지리(天文地理)도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므로 그 안에서 사람을 찾아도 됩니다. 통달하게 되면 중지인사(中知人事)가 가능해집니다. 다만, 천문지리를 몰라도 인사를 알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학문의 진화라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천문이나 지리를 보고서 길흉을 판단했다면 나중에는 그것이 아니라도 인사(人事)를 알아 볼 방법이 출현했다고 보면 틀림이 없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이나 땅은 보지 않아도 됩니까? 보면 좋지만 몰라도 가능한 방법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맞습니다. 알면 더 좋습니다. 다만 몰라도 찾아 낼 방법이 있다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것이 궁금합니다. 무엇입니까?”

“주역(周易)으로 육효점(六爻占)을 통해서 알아내는 방법도 있고, 기문(奇門)으로 둔갑(遁甲)을 찾아내어서 알아보는 방법도 있고, 육임(六壬)으로 삼전사과(三專四課)를 조성(造成)해서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니 싶었습니다만, 벌써 뭔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마구 엄습합니다. 그 정도만 알면 되겠습니까?”

“물론 또 있습니다. 간지(干支)로 팔자(八字)를 통해서 알아내는 방법도 있고, 구궁수(九宮數)로 자백(紫白)을 통해서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사람의 일을 알고자 하는 것이 모든 인류의 열망인지라 그 방법도 생각보다 대단히 많다고 합니다. 그나마 우창의 소견으로 얻어들은 것이 이 정도입니다.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술법(術法)이 있을 것은 당연하다고 보겠습니다.”

“진형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오로지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急先務)라고 하는 것만 어렴풋이 느끼겠습니다. 진작에 진형을 만나지 못한 것이 애석할 따름입니다.”

“아니지요. 지금이라도 안내자를 만나서 다행인 것이 아닐까요?”

“아, 맞습니다. 긍정적인 사유로 바라봐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그건 음양법이 틀림없겠습니다. 하하~!”

이렇게 두 사람은 밤이 되면 객잔에서 쉬고, 해가 뜨면 다시 길을 걸어서 점점 태산을 향해서 다가가고 있었다. 그 여정(旅程)에 나눈 이야기들은 힘든 여행길을 즐겁게 바꿔주는 양념이 되기에 충분했다. 추문성이 살아온 이야기도 들어보니 장강(長江)의 길이만큼이나 푸짐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창을 만난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하는 것도 공감이 되었다.

“진형, 이제 내일이면 태산 기슭에 도달하겠습니다.”

“이렇게 데려다준 육신(肉身)에게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