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제3장 심곡자(深谷子)의 문하(門下)/ 1. 심곡자와 상면(相面)

작성일
2017-01-0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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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 제3장 심곡자(深谷子)의 문하(門下) 


1. 심곡자와 상면(相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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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과 추문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도달한 태산은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대단히 많았다. 그래서 온갖 차림새를 한 남녀노소의 군중(群衆)들이 서로 오가면서 스쳐갔다. 우창 일행은 우선 안내관으로 찾아가서 방문자를 접견하는 지객(知客)도사에게 연유를 말하면서 서찰을 전달했다. 그 서찰을 받아 든 방문자를 접견하는 지객(知客)도사에게 연유를 말하면서 혜암 사부님 서찰을 전달했다. 서찰에 적힌 수결(手決)을 보고서 잠시 놀라는 기색을 하더니 특별히 마련된 고급 객사로 안내를 했다. 역시 오나가나 유명 인사의 수결(手決)은 위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편안하고 깨끗한 숙소에서 하루를 쉬었다.

추문성은 이미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렇게 으리으리한 궁전도 위력적인데 우창과 함께 왔다는 이유만으로 귀인의 대접을 받아본다는 것이 여간 흥겨운 것이 아니었다.

“이야~, 이거 진형의 신세를 톡톡히 지는구먼요. 이렇게 도도한 도사들이 특별대우를 해주니 기분이 그저 그만입니다. 하하하.”

“좋아할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심곡자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쫓겨난다는 것도 당면한 현실이 될 수가 있습니다.”

흡사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우창도 덩달아서 유쾌해졌다. 그래서 혹시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만큼 실망이 커지면 어쩔까 싶어서 미리 한마디 했다.

“아니? 감히 누가 우리를 안 받아들여요, 혜암도인의 친서를 들고 왔는데 말이야.”

“그래도 어지간히 우쭐대세요. 하하하.”

“내가 좀 그렇기는 하지요? 하하하.”

다소 멋쩍은지 그렇게 얼버무리면서 약간 조용해졌다. 차려주는 밥을 얻어먹으면서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였다. 그렇지만 하도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니 당장에 자신들의 차례가 오리라고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평소에 진상도가 일러준 몇 가지의 오행(五行)의 원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기다린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비로소 지객도사가 찾아와서는 따라오라고 하면서 둘을 안내한다. 이제야 심곡자를 뵙게 되나 보다 하고서는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설렘으로 그 도사를 따라갔다. 한참을 따라간 곳은 넓은 장원이었다. 아마도 공부를 하러 오는 사람들만 기거하는 특별한 장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속인들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로지 각기 지위에 따라서 구분이 다른 도포를 입고 오락가락하는 분위기뿐이었다.

잠시 따라가면서 그들의 관상을 살폈지만 모두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모습의 인물들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가 있었다. 천하에서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이 도장에 모여서 수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벌써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도사가 걸음을 멈춘 곳은 삼청궁(三淸宮)의 접객실이었다. 안으로부터 동자가 나오더니 두 사람을 인도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안내한 도사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도사는 돌아가고 우창과 추문성은 동자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일사불란한 질서가 있었다.

그 안에는 7, 8명의 도사가 앉아있고, 그 중앙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위엄 있게 담소를 나누다가 시선을 일제히 이쪽으로 돌렸다. 우창은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서 주눅이 들었지만, 그래도 명문가의 제자답게 의젓한 자세를 지켰으나 추문성은 이미 오금이 저려서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다.

“먼 길에 노고가 많았겠군. 어서 오게, 나는 심곡자라네.”

“평소에 흠모하던 고인(高人)을 이렇게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옥체 평안하셨는지요?”

“그렇다네. 그대의 스승인 혜임도인이 보낸 서찰은 잘 읽어봤네, 역시 눈이 밝으신 분이라서 사람은 잘 골랐네그려. 허허허.”

“감사합니다. 사부님께서도 어르신께 안부를 여쭙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알겠네. 그대는 일단 우리 도관에서 수행하도록 허락하겠네. 그런데... 함께 온 사람은 누구인가?”

“예, 실은 우연히 인연이 있어서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직접 보시고 그릇이 된다면 거둬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되돌려 보낸다고 해도 아무 불만이 없기로 약조를 먼저 하고서 동행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함께 공부했으면 합니다만, 선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흠... 그대의 안목도 아마 상당한 모양이구먼, 어디 한번 시험을 해볼까. 여보게, 주기(周崎)가 어디 한 수 살펴보게.”

주기라고 불린 남자는 대략 나이가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이였다. 준수한 용모에 재기(才氣)가 넘쳐 보이는 활달한 모습이었는데, 심곡자에게 공수를 하고는 추문성에게도 포권의 예를 차렸다. 추문성도 마주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켕기는 기분이 들어서 괜히 우창을 살펴봤다.

우창도 가만히 상황을 주시하면서 추문성과 마주친 눈길에서 ‘당당하게 응하도록 하십시오.’ 하는 듯이 눈길을 주었다. 그 표정을 보고서야 추문성도 무슨 뜻인지 알아챘는지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지금 사부님으로부터 선배님을 시험하라는 분부를 받았으니 분부에 따라서 몇 가지를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례함을 양해하십시오.”

“전혀 염려 마시고 마음대로 물어주시오.”

역시 타고난 천성은 있는 법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위축이 되어서 움츠러들었지만 이제 우창이 따스한 마음으로 눈길을 보내주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과 기왕에 이 자리까지 왔으니까 인연에 맡긴다는 두둑한 천성대로 오히려 당당해진 모습이었다.

“선배님은 자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나이는 젊어 보이는데, 묻는 자세가 자못 당당하다. 자신은 자연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위압적으로 물어왔다. 추문성은 그러한 물음에 역시 당당하게 말했다.

“자연이란 것이 어디 무엇이라고 말을 해서 답이 나오는 것이오?”

“그래도 가능하면 말로써 논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만약 말로만 논한다고 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자연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소이다.”

추문성은 일부러 모두 들으라는 듯이 당당하게 말을 했기 때문에 지금 도관에 들어와서 시험을 치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어째서 불가사의하다고 말씀을 하시는지요?”

“어제는 자연을 알았던 것 같았는데 다시 하루를 지나고 나면 과연 내가 알았던 것이 자연이었는지 모호해지더란 말이오. 그래서 안다고도 못 하겠단 말이외다.”

“그렇다면 선배님은 자연에 대해서는 참으로 아는 것이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주기라는 사람은 참으로 당당했다. 마구 파고드는 품세가 여간 날카로운 것이 아니었다. 우창은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알고 모르고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담력이나 그런 것을 시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데리고 온 사람이 기왕이면 시험을 통과해서 공부할 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자신이 조바심이 났다.

“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소. 나도 내 딴에는 상당히 알고 있는가 보다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저 우창을 만나고 나서는 참으로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소이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저 사람을 사부님으로 모시려고 했소. 그런데 그도 공부하러 이 태산으로 간다고 하기에 그를 귀찮게 하면서 따라나섰던 것이라오.”

“그렇다면 자신은 좀 모자라는 사람이로군요. 저렇게 어리숙한 사람을 사부님으로 모시려고 했다니 말입니다. 하하하~!”

그냥 애써서 참고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던 추문성이 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듯한 어투로 추문성의 비위를 거슬렀다. 물론 일부러 그러는 것이겠지만, 모두는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내가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나이가 많고 적음에 구애를 받지 않는 것이오. 자칫 나이에 끌려서 지혜로운 사람을 놓친다면 이보다 더 억울하고 아까운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소.”

“그럼 내게도 사부라고 할 수가 있겠소? 나는 적어도 저 우창이라는 자보다는 지혜가 높을 텐데 말입니다.”

“예끼! 보자 보자 하니까 참으로 무례하구나.”

참고 있던 추문성은 이 주기라는 친구가 이렇게까지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웬만하면 그냥 응대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막돼먹은 놈이라면 욕이라도 해 주고 싶어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불쑥 한마디 뱉어 버렸다. 속으로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래서 내친김에 한마디 더 해버렸다.

“그대가 훌륭하신 사부님 문하에서 약간의 공부는 한 것 같지만 실은 공부는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지 그렇게 스승님의 그늘만 의지해서 오만하다면 오히려 스승을 욕되게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이렇게 내친김에 말을 하고서는 될 대로 되라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저런 녀석이랑 함께 공부한다면 열통이 끓어서 제명만큼 못 살 것 같았다. 추문성이 이렇게 나오자 모두를 ‘와~!’ 하고 웃는다. 그리고 주기는 정색을 하고서 심곡자에게 공수를 하고서 말했다.

“사부님, 주기가 생각하기에는 이 정도면 되었다고 여겨지옵니다만, 어떠셨는지요?”

주기가 좌중을 한 바퀴 둘러보자 모두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심곡자도 웃으면서 손을 들어서 그만 앉으라고 신호를 했다. 그리고서 추문성을 바라보면서 말을 건넸다.

“너무 노여워 말게나, 그대의 기백을 보니 이 도장에서 공부해도 자신의 이름값은 할 듯싶네. 공부하도록 하게나. 허허허.”

심곡자가 추문성의 입산을 허락한다는 말을 듣자, 우창이 사례했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실망은 시켜드리지 않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기 선배님께서는 추형을 잘 지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뭘요. 사부님이 알고 싶으신 것을 약간 보여드리도록 했을 뿐인걸요.”

아까와는 다른 말투로 겸손하게 나오는데 자칫 다른 사람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연기하는 모습이 이렇게 다양할 줄은 몰랐다. 역시 태산에는 술법(術法)의 대가들이 많이 나온다는 말에 실감이 가는 우창이었다.

“아까는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했습니다. 참으로 그 수완이 일품이었습니다. 경의를 표합니다.”

추문성도 금세 화를 풀고서 웃으면서 포권(包拳)을 했다.

“젊은 선배, 참으로 감사드리오. 잠시 화를 냈던 것에 대해서 사과하리다. 나도 그대의 노련한 연기에 그만 깜빡했소이다. 하하하.”

“아닙니다. 열심히 정진하셔서 목적하신 바를 성취하시기 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시험에 통과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말한 주기는 다시 심곡자에게 말했다.

“사부님 제가 이들이 머물 숙소를 안내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게나, 그대들은 공부를 잘하게. 그럼 나가보도록 하여라.”

두 사람은 주기를 따라서 그 방을 나왔다. 긴 낭하를 지나서 제자들이 머무는 곳에 당도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방은 나란히 있었는데, 모두에게 한 칸씩의 방을 주는지 따로따로 되어있는 조그마하고 깔끔한 방이었다. 주기는 방을 안내한 다음에,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두 분께서는 이제 심곡문하에 입실을 하였으니 같은 집안 식구입니다. 서로 양보를 하고 공부를 도와서 멋진 세상을 가꿔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그럼.”

“고맙습니다. 또 뵙지요.”

“오늘 고마웠소.”

이렇게 작별을 하고서 각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긴장을 한 탓이었는지 피로가 스며들어왔다. 잠시 누워서 쉰다는 것이 그만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갑자가 종소리가 들려서 놀라 일어나 보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는지 모두 식당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우창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우두커니 서 있으니까 마침 방에서 추문성이 나왔다. 그리고는 우창을 보고는 식당으로 가보자고 했다. 그는 덩치가 큰 만큼 배가 고픈 것은 못 참는 성미가 있는 사람이다. 마침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니까 벌써 식욕이 넘치는지 안내를 해줄 사람이 찾아오기도 전에 먼저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창도 웃으면서 그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