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7. 각자 인연(因緣)의 학문세계

작성일
2017-01-0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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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0]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7. 각자 인연(因緣)의 학문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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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따라다닌 이후로 우창은 흥미진진한 당금(當今) 양대거두(兩大巨頭)인 두 도인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역학(易學)의 세계에 대해서 소중한 귀동냥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다.

무극자도 흥이 나서 이야기의 소재를 마구 풀어 놓았다.

“과연 중원천하에서 저마다 각기 도법의 문파들을 거느리는 쟁쟁한 고수들의 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군.”

“역시 그중에서도 달마존자가 으뜸이 아닐까 싶은걸.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그야 누가 아니라고 하겠는가만, 내 생각에는 그대를 제외하고 제일좌(第一座)에 앉을 사람이 없지 싶은 걸.”

무극자의 이 말에 진상도는 손을 저었다.

“그런 말은 아예 하지 말게나. 역시 다들 대단하지만 그중에서도 심곡자의 도제양성(徒弟養成)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봐야 하겠지?”

“사람들이 문하에 모이는 것도 다 복이 아니겠는가. 그의 복은 제자를 거둬들여서 인물로 만들어 내는 내공에 있다고 봐야지. 모두가 심곡자에게 입문하는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무극자가 이렇게 묻자 진상도는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말을 받았다.

“그야 인덕과 학풍이겠지. 온후한 성품에다가 해박한 지식은 그대와 견줄 만할 테니 말이지.”

“그것도 있겠지만, 사람이 몰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네. 즉 심곡자는 다양한 술법(術法)에 정통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그 술법을 배우려고 모여드는 것이라네. 역시 세상에서 빛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도법(道法)보다는 술법(術法)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은가?”

무극자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 흥미가 발동한 우창이 끼어들었다.

“사숙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술법을 배우려고 모여든다면 그 술법이 가장 높은 도라는 의미라는 뜻인지요?”

“아닐세, 사람들이 원한다는 의미이지. 사람들은 무미건조한 수행을 위주로 하는 법에는 관심이 적고, 세간에서 벼슬하고 공명을 얻는 데에는 관심이 많다네. 그러니까 모두 심곡자에게로 가서 술법을 배우는 것이라네. 그의 술법은 벼슬하고 공명을 이루는데 참으로 요긴하거든. 그래서 하는 이야기가 ‘꿩 잡는 게 매’라고 하지 않는가 하하하~!”

잠시 생각하던 진상도가 말을 받았다.

“기실(其實), 심곡자는 자신의 학문이 술법이라고 하지만 그 술법은 도술(道術)이라고 해야 할 것이니, 함부로 낮춰서 말할 수가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봐야 하네. 그래서 도를 향해서 가는 길은 다 각각이지만 결국은 한곳에서 만난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라네. 그러니 기왕이면 재미있게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허허허.”

일생을 자연을 관조하면서 조용하게 살아온 진상도는 재미있게 산다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생소한 기분이었다. 세간에서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서는 별로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런, 그만 쉬어야 한다는 것을 잊었군. 멀리서 오느라고 고단할 테니 좀 쉬시게. 손님을 받아 놓고서 결례를 하고 말았구먼.”

그렇게 해서 날이 다 밝은 다음에서야 서로 작별을 하고서 각기 마련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우창은 참으로 오랜만에 포근하고 화려한 침상에서 잠을 자려고 누웠으나, 피곤한 몸과는 달리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저런 생각들과 그동안 진상도로부터 배운 여러 가지 자연의 법칙들이 생각이 나기도 했다. 오늘 두 분의 이야기로 봐서는 자신이 어쩌면 심곡자에게 공부하게 될 것도 같은데, 그분은 또 어떤 사람일는지도 궁금하기도 하고, 그동안 스승님과 정이 들었는데 헤어진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가 겨우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미 하루해가 기울어져서 어둠이 깃들고 있었다. 고단한 김에 늦잠을 푹 잤던 모양이다.

두 분 어르신들은 이미 저녁을 먹었다고 하면서 심부름을 하는 아이가 저녁밥을 날라다 준다. 그래서 별로 생각은 없었으나 간단히 한술 뜨고 내어보냈다. 그리고는 장원을 거닐면서 가벼운 운동 겸으로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고, 배워야 할 학문은 넓기만 한데 자신은 겨우 한 좁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 멋지게 삶을 누린다는 것에 대한 동경도 들고, 여태 살아온 날들이 의미 없었다는 것과 진상도를 만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서 약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두어 시진(時辰)을 배회하다가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밤을 보내고 나자 진상도가 찾는다. 그래서 어제 이야기를 나누던 그 방으로 갔다. 이미 두 도인은 간밤에 휴식을 잘 취했는지 모두 거뜬한 모습이었는데 오히려 젊은 우창만이 피로가 풀리지 않은 기색을 했다. 우창의 모습을 본 무극자가 말했다.

“오호~, 젊은 조카는 잠을 이루지 못했나 보군. 안색이 안 좋아. 하하하.”

그의 말소리는 중년의 사람처럼 힘차고 맑았다.

“예, 아닙니다. 잠자리가 너무 호사스러워서 그랬나 봅니다. 편안하셨습니까? 문안이 늦었습니다.”

“그래 모처럼 좋은 침상에서 잘 잤네.”

진상도도 상쾌한 듯 밝은 얼굴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우창을 보면서 곁에 앉으라고 눈짓을 한다. 우창은 스승님의 곁으로 가서 앉았다. 아무래도 분위기를 보아하니 자신을 심곡자에게 보내는 문제로 이야기를 나눴던 모양이다.

“여보게 우창.”

“예, 사부님.”

“어제도 우리가 이야기를 나눴지만, 자네의 앞날에 대해서 곰곰 생각을 해봤다네. 그런데 역시 심곡자를 찾아가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을 하였다네. 그러니 그동안 나를 시중드느라고 고생이 많았는데, 내가 그대의 수업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방법 중에서 최선이라고 생각을 했네.”

“......”

우창은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가고 싶은 마음과 자애로우신 사부님을 모시고 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겹쳐서이다.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심곡자의 문하로 가서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진상도의 제자라는 것을 잊지는 말게. 우선 세상의 공부도 할 겸 해서 넓은 안목을 기른다고 생각하고 한번 가보시려나?”

“우창은 뭐라고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사부님께서 지시해 주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구태여 그곳으로 가야 공부가 더 잘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면 잘 알겠네. 내가 서찰을 하나 줄테이니 이 길로 태산을 찾아가도록 하게. 세상에서 공부하는 방법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직접 가는 방법과 옆길로 돌아서 가는 방법이 있다네. 그리고 그 두 가지 방법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잘 가는 것이라고는 말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되네. 다만 자신에게 편안한 길이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뿐이네.”

“사부님께서 그동안 애써서 보살펴 주셨는데, 이렇게 떠나려니까 마음이 허전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공부를 위해서라고 하시니 달게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실은 나도 이제 다시 화산으로 돌아가려고 하네. 그동안 강호를 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 화산으로 돌아가서 폐문(閉門)을 하고 정진해야 할 것 같네. 그러니 자네가 정진하는 것에는 심곡자에게 가서 열심히 배우고 후일에 다시 만나도록 하세.”

이렇게 말하자, 곁에 있던 무극자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곳에 가거든 장안에서 온 장무(張茂)라는 사람을 찾아보게. 내가 데리고 있다가 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목을 넓히라고 보냈는데, 아마도 자네와 더불어서 좋은 말동무가 될 것이네. 그럼 열심히 정진해서 속히 자연의 참소식을 얻게 되기를 빌어줌세.”

“그럼 두 분의 어르신께서는 옥체보중 하시옵고 후일에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물러가옵니다.”

“그래 몸조심하시게나.”

우창은 진상도가 건네준 서찰을 몸에 간직하고 무극자의 집을 나섰다. 벌써 도회지(都會地)의 사람들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친절하게 태산까지 가도록 여비까지 마련해 준 무극자의 정성을 느끼면서 발길을 재촉했다.

한편 우창을 태산으로 보낸 진상도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무극자의 집에서 한 달 정도를 머무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화산의 석실로 돌아갔다. 그동안 실험했던 자료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한동안 속세에는 나타나지 않을 요량이었다.

“이번에 들어가면 언제 나올는지 모르겠구먼?”

“아마 5년은 걸릴 걸세. 혹 그대가 벼슬을 그만두거든 화산으로 오시게. 내가 자네와 함께 지낼 공간을 비워두겠네.”

“흠. 고마운 이야기네. 그렇다면 내년 봄쯤에 내가 화산을 찾도록 하겠네. 그때쯤이면 이 일도 그만둘 수가 있을 것 같으이.”

“그럼 그때 만나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헤어지세나.”

“부디 건강한 몸으로 만나도록 하세.”

두 도인은 각기 가지고 있는 정신세계를 서로 사랑해서인지 이렇게 몸의 건강을 각별히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도 실은 몸이 없으면 깨달은 도를 후학에게 전해 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무극자와 작별을 하고서 다시 화산을 찾은 진상도는 모처럼 맞이해 보는 홀가분한 마음을 즐기면서 석실에서 명상하기도 하고, 달마상법의 요지를 살펴보면서 자신보다 앞서간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연구를 하면서 겨울을 보낼 생각을 하니 신명이 절로 났다.

그리고 가끔은 우창의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 때에는 그냥 데리고 왔더라면 심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역시 물고기는 큰물에서 놀아야 배우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하기도 했다.

다시 깊은 화산에서는 정적이 감돌면서 겨울을 맞이하는 나무들의 단풍이 서서히 떨어져 갔다. 진상도는 본격적으로 달마상법(麻衣相法)에 대해서 정리하기로 하고서 차근차근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