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6. 무극자(無極子)의 조언(助言)
작성일
2017-01-0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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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6. 무극자(無極子)의 조언(助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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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도는 우창의 궁금증이야말로 깨달음으로 가는 도화선(導火線)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짝 달아올라도 좋다고 봤다. 그 불을 꺼트리는 것은 도움이 안 되기에 이렇게 자꾸 궁금증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알 턱이 없는 우창은 내심 서운함이 들었다.
“또 같은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그만 여쭙겠습니다.”
비슷한 말을 자꾸 하자 우창은 그만 심기가 뒤틀렸다. 그래서 그만 이야기를 끝내고서 혼자서 더 생각을 해 보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줄이려고 했다. 그러한 모습을 본 진상도는 궁금해서 잠도 못 자게 생긴 제자를 차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마음을 고쳤다.
“실은 자네를 시험 삼아 보내 본 것이니 너무 속상하지 말게. 이미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허허허.”
“사부님, 송구합니다. 그래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그대의 매력이기도 하네. 열정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가 있으니 말이지. 자네를 찾아왔던 영감에 대해서는 육효(六爻)로 풀이를 해 본 것이었네.”
“예? 금시초문입니다. 육효가 무엇입니까?”
“그래서 내가 말을 해 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라네. 그렇지만 자네가 이해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궁금증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서 간단히 설명이나 해 주려네. 그래도 들어보려나?”
“당연합니다. 사부님. 이해는 오늘 못하면 내일 할 수도 있겠으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아무런 궁리도 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도 하겠군. 그럼 알아서 판단하기로 하고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 주겠네.”
“예, 흥미진진합니다. 무슨 말씀을 해 주실까 싶어서입니다.”
“오늘 오후에 자네에게 뭘 가르칠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득괘(得卦)를 했다네. 그랬더니 상괘(上卦)는 화(火)가 되고 하괘(下卦)는 수(水)가 나왔다네. 이것을 역경(易經)에서는 화수미제(火水未濟)라고 한다네.”
“괘는 몰라도 미제(未濟)라고 하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까?”
“신시(申時)가 되면 아버지를 나타내는 효사(爻辭)가 요동(搖動)을 치게 되네. 그래서 자네가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자식의 일로 궁금한 사람이 찾아오게 될 것이라는 해석을 했다네. 물론 기본적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일이라는 것도 괘명(卦名)에 나와 있네.”
“음... 좀 복잡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흥미는 동합니다. 어려울수록 파고들 만한 것이 그 속에 있을 테니까요.”
“리궁(離宮)의 미제괘(未濟卦)에 초효(初爻)가 요동(搖動)을 치니 아버지의 머리에 불이 붙은 형국인데 이것은 목생화(木生火)로 자식을 의미한단 말이지. 그리고 신시(申時)가 되면 인신충(寅申沖)이 일어나서 아버지가 집에 앉아 있지를 못하고 밖으로 나와서 해결책을 구하게 되지. 그러다가 자네를 만나게 된단 말이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 자리에 자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준비해야 하는 일이고.”
우창은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켰다. 그래도 소중한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력을 집중했다.
“다음에는 장소가 문제인데, 이것을 해결하려면 수(水)를 만나야 하고, 그 사람의 기준으로는 북방(北方)이 되므로 장안의 북쪽에 앉아 있으면 그가 찾아올 것으로 판단을 한 것이었지.”
“그러니까.... 수생목(水生木)으로 아버지의 마음이 안정되고, 수극화(水剋火)로 불을 끄게 되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오행의 생극에 대해서는 예전에 가르침을 주셔서 조금 이해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본괘(本卦)가 어차피 화수미제(火水未濟)인지라 아무리 노력을 해도 원인을 제거할 수는 없기에 그냥 자네에게 망신을 한 번 당하는 체험을 시켜주고 싶었던 것이라네. 아마도 그 경험은 오래도록 그대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예방책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네.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네.”
“그런 경험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네. 남들과 더불어 술법(術法)을 논하려면 맨 처음 벗어나야 할 것은 두려움이라네. 내가 판단을 한 것이 맞을 수도 있고 빗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두려움이지. 손님이 두려우면 첫걸음도 떼어 놓을 수가 없거든.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게. 허허허.”
“아하~! 이제 우둔한 제자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경험도 필요하겠습니다. 오늘 큰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하고 분발하겠습니다. 그리고 육효(六爻)는 언제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만 가세. 오늘은 천생 이슬을 맞고 자야 할 모양이구먼.”
“송구하옵니다. 사부님. 제자가 어리석어서 사부님을 편안히 모시지 못했습니다.”
“아닐세. 나에게 생각이 있으니 따라오게.”
“예? 그럼 이슬을 맞지 않아도 될 방법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네. 내가 어찌 어수룩한 자네를 믿고서 그냥 있을 수가 있는가 말이네. 허허허.”
“그럼 따르겠습니다.”
진상도의 뒤를 묵묵히 따르면서 생각해 보니 오늘의 일은 완전히 알 수가 없는 일투성이다. 그런데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서야 자세한 이치는 몰라도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되어서 원망하던 마음이 고마움으로 바뀌어서 뒤를 따르면서도 경외(敬畏)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우창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휘적휘적 걷던 진상도는 어느 저택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생각에 잠겨 묵묵히 뒤를 따르던 우창이 하마터면 스승과 부딪칠 뻔했다.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저택 앞은 깨끗하고 주변의 풍경이 제법 살아가는 권세가들의 집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는 괜히 약간 주눅이 들었다. 들판을 벗 삼아서 다니다가 이런 우람한 풍경은 왠지 낯설고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문간에서 진상도가 헛기침을 두어 번 하자, 안에서는 청지기가 나타났다.
“어인 일이시온지요?”
“주인장 계신가?”
“예. 주인나리는 지금 서재에 계시옵니다만, 어인 일로 그러시는지요?”
“들어가서 진상도가 찾아왔다고 좀 전해주게나.”
“예.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안으로 들어간 청지기는 이내 다시 나왔다.
“주인나리께서 어서 안으로 드시라고 합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우창아 들어가자.”
“예, 사부님.”
우창은 어리둥절한 채로 그 청지기를 따라서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매우 맑아 보이는 선비가 서책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진상도가 왔다는 알림이 있자, 얼른 손을 놓고서 나왔다.
“이게 누구인가? 어인 일로 이렇게 먼 걸음을 다 했는가! 어서 오게. 그동안 즐거운 나날을 보내셨겠지?”
“여전히 잘 지내시는군. 도서관의 일은 할 만한가? 오래도록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재미가 있나 보네. 허허허.”
“말도 말게, 일보다는 잿밥이지. 천하의 모든 자료가 내 손으로 들어오니 그 매력으로 인해서 아직도 그 자리를 못 떠나고 있는 것이네. 그렇지만 이제 머지않아서 그만두고 나도 조용하게 쉬려고 하는 중이네.”
그렇게 반가운 인사를 나눈 진상도는 문득 우창을 돌아다보면서 소개를 했다.
“참, 우창아 인사해라, 너의 사숙님이시다.”
그러면서 노인에게 소개를 했다.
“이 녀석은 타고난 총기가 좀 있는 듯해서 내가 거둔 제자라네.”
“평안하셨습니까? 조카 문안 여쭈옵니다.”
“흠... 젊은 사람이 영민해 보이는구나. 진형은 사람을 보는 눈이 있구먼. 누추한 곳에 오시느라고 노고가 많으셨네. 편히 앉으시게나. 하하하.”
“잘만 가르치면 자기 밥값은 할 것 같지 않은가?”
“밥값뿐이겠는가. 참으로 인재를 얻었네그려.”
“그렇게 후하게 보아주니 고맙네. 허허허.”
진상도는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흐뭇한 듯이 우창을 바라다봤다.
“그런데 자네는 영리한 제자를 바보로 만들 모양인 게군. 쯧쯧...”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 저 현질(賢姪)의 얼굴을 보니 그렇게 씌어 있구먼 뭘...”
“사람들이 그대에게 무극자(無極子)라고 한다더니 이제 혜안이라도 열리셨나? 제대로 보는 안목을 보면 괜히 무극자가 아니었던 거야. 허허허”
“칭호는 과분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진전은 있었던 모양이네. 그렇다고 너무 빈정거리지 말게나.”
“그래 무슨 비급을 얻었기에 그리 아는 체를 한단 말인가? 나는 그게 궁금하구먼.”
“아, 근래에 그럴싸한 것을 입수했다네. 그것을 들여다보노라면 저절로 감탄이 나오거든. 그래서 이 제자를 보는 순간 자네를 따라다닐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게 되었던 것이라네. 하하하.”
“아니, 그렇게 좋은 것을 얻었으면서 혼자서만 갖고 있었는가? 욕심도 많은 늙은이로구먼.”
“그게 아니라, 이 비서(秘書)는 최근에 얻었는데 태산에서 나온 것이라네.”
“태산이면 심곡자의 수중(手中)에서 나왔단 말인가?”
“그렇다네.”
“심곡자라면 다 알만 한데 뭘 새삼스럽게 그러는가?”
“그게 아닐세.”
“그럼 뭔가 특출한 것이 있었던 모양이로군. 그게 뭔지 나도 궁금해지는걸. 어서 꺼내 보시게.”
“실은 상법(相法)에 대한 기막힌 비서(秘書)를 한 권 얻었다네.”
“상법? 상법은 심곡문의 절예(絶藝)가 아닌 것으로 아는데? 그 늙은이가 노망이라도 들었단 말인가?”
“그렇다네, 이미 오래전에 입적(入寂)했다는 달마존자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다 믿을 것은 없지만 내용을 볼 적에 참으로 보통 사람의 안목으로는 범접(犯接)하지 못할 영역이라는 생각이 드네.”
무극자의 입에서 ‘달마’라는 말이 나오자, 진상도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이미 4년여 전에 화산석실에서 둘이서 토론을 하였던 기억이 나서였다. 그러나 그 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시치미를 떼고서 짐짓 물었다.
“달마존자라면 소림의 그 달마겠지? 이미 황제에게서 사약을 받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이전에 연구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묘한 책이 하나 나타났네. 이름은 『달마상법(達磨相法)』이라고 되어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필시 범인의 안목은 아닐세. 참으로 대단하거든.”
“자네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것을 보니 보통은 아닌 모양이로군.”
“아, 그러고 보니 자네가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관상이 아니던가?”
“그렇다네. 그런데 왜 달마상법이 태산에서 나오는가? 그 이유를 모르겠구먼. 소림에서 나온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일세. 원래 심곡자는 수리학(數理學)의 전문가가 아니었던가?”
“그렇지. 그런데 그 노인네가 달마상법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소림으로 서찰을 보내서 구했다는 말이 있다고 하더군. 그리고 태산의 제자 중에는 조정에서 벼슬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자연히 내 손에 그 필사본이 들어올 수가 있었네. 실은 아직도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는 이야기이네. 그러니 자네도 모를 수밖에 없지.”
무극자의 흥분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상도는 웃음이 나왔지만, 모르는 척 했다. 우창도 이 노인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번 그 책을 봤으면 하는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렇지만 말석에서 감히 어른들이 말씀을 나누는데 끼어들 수가 없어서 잠자코 있었다.
“나도 이 책을 보고 나서는 벼슬살이가 하기 싫어져서 그만두려고 지금 정리를 하는 와중이네. 내 관상을 봐하니 이제 은둔을 해야 할 시기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겠더란 말이지.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이런, 큰일 났군. 자네가 단단히 병이 들었나 보군. 허허허.”
“자네도 그 책을 한 번 구경하지 않으려나?”
“아닐세, 이제 늙어서 그런지 신기한 이야기를 들어도 예전 같지가 않아서 관심 없네. 허허허.”
“아니, 자네답지 않게 왜 그러나? 이것은 예전에 내가 보여주던 것들과는 다른 것이란 말일세. 나는 우선 이 보서(寶書)를 구한 다음에 먼저 자네를 떠올렸는걸.”
“허허허, 세상 사람들이 자네를 박학다식(博學多識)의 일인자라고 하는지 알겠네. 허허허.”
“참, 우리 이야기만 하느라고 자네 제자의 이야기를 못했군. 이름이 뭐랬더라?”
“예, 진하경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우창이라 부르십니다.”
“그래 우창이었군, 자네는 뭘 배웠는가?”
“사부님께서는 항상 열정적으로 가르침을 주셔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만, 불초가 어리석어서 다 이해를 하지 못하고서 항상 사부님을 염려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흠... 자네 상을 보니 관상보다는 간지(干支)를 공부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만 자네 사부가 욕심을 내고서 그냥 붙잡고 있는 모양일세그려. 그렇다면 나쁜 스승이지.”
“아니옵니다. 제자는 스승님의 발치에도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사부님을 걱정스럽게 합니다.”
“이보게 친구, 내가 보기에 이 조카는 심곡자에게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네.”
“글쎄,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인지가 중요해서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것이네.”
“시기는 무슨... 그냥 보내게. 다 제가 알아서 공부할 것이네.”
“하긴, 그렇기도 허이.”
우창은 예전에 심곡자라고 하는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언젠가 진상도가 강호의 도인들을 이야기하면서 현재 천하를 통틀어서 도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다섯 명이라고 했다. 그 도인들의 이름은 첫째가 심곡자(深谷子)요, 둘째가 달마(達磨)이며, 셋째는 무극자(無極子)라고 했다. 그리고 동방삭(東方朔)과 자신이 그 마지막으로 낄 수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중에서 아직 동방삭과 심곡자는 만나지 못했으나, 가끔 무극자와 달마 이야기는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중의 한 분인 무극자를 앞에 놓고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꿈만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묻고 싶었지만, 꾸욱 참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분이 현재 천하에서 가장 높은 성인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심곡자에게 자신을 보내도록 하라는 말은 참으로 난감했다. 자신은 사부님의 법력을 1할이라도 얻을 수만 있으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나도 제자 하나를 지금 심곡자의 문하에 보내서 공부를 시키고 있는데 수업이 잘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네. 그러니 자네도 얼른 보내게.”
“무극자의 권유를 받으니 더 망설일 일이 아니라고 해야 하겠네. 바로 실행하도록 해야겠네.”
“그것도 그것이지만, 또한 우창의 관상을 보아하니 여난(女難)이 있을 상인데, 태산으로 간다면 그러한 액난으로부터 피신도 될 것이니 금상첨화(錦上添花)로세 그려. 하하하.”
“아니, 세간에 있어서 다가올 액난이 태산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피해진다고 생각하나?”
“그럼 피해지고말고. 이것은 마치 ‘상한 밥을 먹지 않으면 배탈이 날 일이 없는 것’과 같다고 보네.”
“그게 아닐세. 자신의 마음을 고치지 않으면 아무리 깊은 굴속으로 피한다고 해도 숨을 수가 없는 거네. 그러니까 마음의 뿌리부터 제거하지 않으면 잡초처럼 솟아나서 농사를 망치게 되고 말 것이야.”
“엇!”
“왜 그러는가? 내가 무슨 틀린 말이라도 했나?”
“그게 아니라 그 말이 어디에선가 본 듯한 글이라서 그러네. 가만... 어디서 봤더라...”
“아마도 자네가 그렇게 극찬을 하는 달마상법에 있는 이야기겠지.”
“아, 맞네. 바로 그 책에서 그러한 말로 마무리를 하였었네. 그런데 자네의 입에서 그러한 말이 나오다니 놀랍네. 자네도 그 책을 얻어서 본 모양인가?”
“누구나 연구를 하다가 보면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알 수도 있겠지. 달마라고 해서 이 늙은이가 생각한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말일세. 허허허.”
“하긴 그렇구먼. 어쨌든 말은 맞는 말이네만, 그렇다고 한다면 타고난 운명은 고칠 수가 없다는 말인가?”
“고칠 방법은 있지. 그렇지만 그 방법이 문제이네. 부적을 써서 붙여놓고 기도를 하거나 몸에 지닌다고 해서 해결이 될 일이 아니고, 불공(佛供)을 한다고 해서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게야.”
“그럼 마음을 고치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다네. 마음을 고친 사람은 액운(厄運)이든 길운(吉運)이든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네. 들어보지도 못했는가, 새옹지마(塞翁之馬)말일세. 그 영감도 마음을 고쳤기 때문에 어느 곳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그래서 액운이든 복운이든 별문제가 없었던 것이네. 그런데 단순히 그 마음은 그냥 둔 채로 태산으로 들어가기만 한다고 해서 그 액을 면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바로 미신(迷信)이 되고 마네.”
평소에 조용하던 진상도 답지 않게 오늘은 상당히 강경한 어조로 열변을 토하였다. 아마도 뜻이 맞는 지기를 만나서 모처럼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럼 부적이 전혀 쓸모가 없다는 의미인가?”
“그러한 것들은 모두 눈가리개일 뿐이라네. 눈가리개도 전혀 쓸모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실체는 아니라는 이야기네. 여태까지 공부를 해온 것이 이러한 결론으로 돌아간다네.”
“참으로 대단허이. 달마상법의 흐름과 완전히 같군.”
“실은 그 달마와 함께 화산에서 며칠을 함께 보내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열정적인 토론을 했었다네.”
“그랬었나? 그래서 자네가 짐짓 모르는 체했군. 그럼 그렇지. 세상에서 자네의 식견을 빼놓고서 감히 상법(相法)에 대해서 논할 수는 없을 것이네. 하하하.”
“아니네, 달마존자도 참으로 도승이었네. 그의 안목은 나와 견주어서 조금도 손색이 없었네, 아니 어쩌면 오히려 나보다 한 수 위일 것이네. 그는 활동하는 성인이었네. 나는 이렇게 연구만 하고 있을 시간에 그는 소림에서 이 상법을 활용해서 제자들에게서 실효를 거두고 있으니 말이네. 원래 그 책의 이름이 어찌 달마상법이었겠나.”
“그러하면 처음의 이름은 무엇이었던가?”
“처음에 달마존자가 적어 온 이름은 『물형심법(物形心法)』이었다네. 그런데 그 내용을 보고서야 과연 달마존자의 관심법(觀心法)은 천하제일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네. 그러니 당연히 그것이 강호에 전해진다면 달마상법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허허허~!”
무극자와 진상도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고, 그 이야기에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빠져들어 가는 우창이었다. 그렇게 도담(道談)과 함께 밤은 깊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