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5. 관상(觀相)보다 심상(心相)

작성일
2017-01-0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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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5. 관상(觀相)보다 심상(心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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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저 앞에 주막이 보입니다.”

우창이 일러주는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이 어둑어둑한데 주막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장 계십니까?”

“예,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안에서는 여인이 나그네를 반겨 맞았다. 둘은 마침 비어있는 방으로 안내가 되어서 들어갔고, 얼른 저녁을 지어 올린다는 말과 함께 주모는 나갔다. 호롱불을 마주하고서 앉은 스승과 제자는 각기 생각을 하느라고 조용했다. 진상도는 얼핏 우창을 보면서 장난기가 동함을 느꼈다.

“여보게 우창.”

“예? 사부님 부르셨습니까?”

“우리 내기 한 번 해보려나?”

“감히 내기라뇨. 사부님께서 놀리려고 하시는군요.”

“재미로 하잔 말이네. 오늘 배운 것도 활용해 볼 겸 말이네.”

“아,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알아보지요?”

갑자기 단시를 활용해 보는 내기를 하자니까 마음이 동한 우창이 반색을 하면서 반긴다.

“오늘 저녁에 우리는 무엇을 먹을 것 같은가?”

“아, 그러니까 이것을 단시로 알아보라는 말씀이셨군요.”

“그렇지. 어디 한번 따져보게.”

“예, 그럼... 음... 오늘 저녁에는...”

“그래 답이 나왔는가?”

“예, 오늘 저녁은 틀림없이 국수를 먹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 나는 수제비를 먹게 될 것 같으이.”

“예. 그럼 내기를 하신 겁니다?”

“그럼세.”

우창도 사부님이 장난기가 섞인 말을 하자 그에 응해서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우창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으면서 속으로 은근히 노래가 나왔다. 그렇게 기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지금 괘를 찾아보니 뱀괘가 나왔기 때문이다. 뱀이라면 딴 것은 몰라도 국수라고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일이니 모처럼 스승을 한번 이겨보려고 희심의 미소를 머금고 저녁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손님들 저녁 들어갑니다~”

주모가 차려온 저녁상을 반갑게 받아든 우창의 얼굴을 묘하게 변했다. 애석하게도 저녁상에는 국수 대신 수제비가 차려져 있었던 것이다. 우창은 기분이 꺾였지만 어쩔 수 없이 수제비를 먹을 도리밖에 없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진상도는 우창이에게 한마디 했다.

“아무리 눈이 발바닥이라고는 한다지만, 그래 반시진 후에 있을 일도 모른단 말인가. 허허허~!”

“...”

“우창은 마음이 상했지만 저녁을 먹고는 상을 들고 부엌으로 나가서는 주모에게 다그치듯이 물었다.

“주모, 어째서 국수를 하지 않고서 수제비를 했단 말이오?”

“이야, 손님은 도사인가보다. 내가 저녁에 국수를 하려고 한 것을 어떻게 알고서~!”

우창은 주모의 감탄을 듣고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오늘 사부님과 내기를 했는데 내가 국수를 먹게 될 거라고 점을 쳤단 말이오. 그런데 국수가 아니고 수제비가 나왔으니 이거 여영 망했단 말입니다.”

“에구 젊은 도사님 그렇게 노여워하지 마시구랴. 사실은 그 정도라도 대단한 도사님이 틀림없구먼 뭘...”

“근데 국수를 만들려고 했다면서 왜 수제비가 되었습니까?”

“아 글쎄.. 나참... 국수를 반죽하는데 지나가던 고양이가 물그릇을 엎지르는 바람에 그만 반죽 속으로 물이 쏟아졌지 뭐유. 그러니 반죽이 질어서 국수가 되어야 말이지. 어쩔 수없이 수제비를 만들어 드린 것이라오. 그참 그 사부양반은 참으로 진짜 도사네...”

우창은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진상도에게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사부님은 제가 못 당하겠습니다.”

“벌써 나를 당하려고 했던감? 그럼 내가 살아온 세월이 섭하지. 허허허.”

“에구~ 그런 게 아니옵고...”

“그래 나도 그런 게 아닌 줄은 알겠네.”

“사부님...”

“그래 어째서 국수가 수제비로 둔갑을 했느냐는 뜻이렸다?”

벌써 우창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진상도는 앞질러서 우창이 묻고자 하는 것을 꺼냈다.

“그렇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도저히 그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지금 시간이 무엇인가?”

“술시는 되었겠습니다.”

“그래 술시에는 뱀이 어떻게 하고 있던가?”

“그야... 동그랗게 몸을 틀고서... 아하~! 이제 알겠습니다.”

“그런가? 알겠다니 다행이구먼. 허허허.”

“그럼 아까 제가 점괘를 잘못 뽑은 것은 아니로군요?”

“당연하지, 나도 똑같은 뱀괘가 나왔다네. 그렇지만 자신의 안목에 따라서 해석은 차이가 나기 마련이네, 자네도 어서 연마해서 안목만 기른다면 아마도 밥값은 할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아까 자네는 체(體)만 생각했지 용(用)은 몰랐을 뿐이네. 도(道)라는 것은 항상 체와 용이 있는 법이네. 그 체와 용을 구분할 정도만 되면 적어도 남에게 욕은 먹지 않을 것이네.”

“흠... 체와 용이라...”

“자, 그만 궁리하고 쉬게, 또 내일은 낙양을 가보도록 하세나.”

“예 사부님 편히 쉬시옵소서.”

스승과 제자는 이렇게 또 하나의 매듭을 만들면서 고단했던 하루의 여정을 멈추고 깊은 잠 속으로 녹아들어 갔다. 가끔 멀리서 늑대가 우는소리가 들렸으나 아무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간간이 코 고는 소리가 울렸을 뿐이다. 멀리서 닭이 소리 높여 노래하는 것이 들린 다음에서야 우창은 잠이 깼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는 다시 장안을 향해서 열심히 길을 걸었다.

스승을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자연의 도를 공부하던 우창(友暢)은 어느 사이 반년이 지나간 세월 속에서 약간의 이치를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하여 가끔 희열감에 온몸의 신경이 짜릿해지는 경지를 맛보곤 했다.

“사부님 장안(長安)이 보입니다.”

“오랜만에 장안에 왔구나. 장안에서는 너에게 소개해 줄 사람이 있으니 오늘은 이 부근에서 쉬고 내일 한번 만나 보자.”

“그분은 어떤 분이신지요?”

“만나보면 아네. 허허허. 그보다도 저녁 잠자리를 마련해 와야지.”

“예, 사부님 저기 주루(酒樓)에서 좀 기다리시지요. 제자가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그러시게. 내가 일러준 대로만 하게.”

“예, 사부님 명심하겠습니다. 염려 말고 편히 기다리십시오.”

진상도를 주루에서 기다리게 한 우창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로 나가 한쪽 모퉁이에다가 들고 온 돗자리를 펴고, ‘점복(占卜)’이라고 쓴 깃발을 걸었다. 그리고서 앉은 자세로 조용하게 고객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오가는 행인이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지나갔지만, 우창은 전혀 개의치 않고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흠, 아직 미시(未時)를 벗어나지 않았구나... 사부님이 알려 주시기를 신시(申時)가 되어야 답답한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셨으니까 그때까지 장안 분위기나 익혀두자.’

이렇게 생각하고서 그동안 보내온 반년의 세월을 되짚어 보았다. 비록 길지는 않았지만 진상도를 만난 후로는 하루하루가 벅차고 감동스러운 나날이었다. 특히 사부님의 절묘한 관상법은 아무리 연구를 해도 자신의 머리로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언제나 한발 늦은 자신의 지혜였다. 그래서 또한 의욕을 불태우지만, 그러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일취월장(日就月將)을 하였다.

‘이렇게 거리에서 당당하게 깃발을 내걸고 손님을 청할 수가 있는 것도 좋은 사부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힘이 있을 때까지 분골쇄신해서 사부님을 봉양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다.’

우창은 관상에 대해서 이제 겨우 눈에 보이는 형상은 읽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스승님처럼 보이지 않는 것까지 읽으려면 아마도 50년은 공부를 더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어쩌면 50년을 더 한다고 해도 영원히 역부족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솔직히 들기도 한다. 그만큼 진상도의 지혜는 그야말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지금도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노인이 찾아올 것이라는 그 말만 믿고서 이렇게 당당하게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것이다. 과연 그 노인이 나타날 것인가? 하는 호기심도 생기고, 또 그동안 빈말을 하신 적이 없던 사부님인지라 당연히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신시(申時)가 되기을 기다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서 신시로 접어들자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앉아서 손님을 맞이했다가 과연 예측이 틀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긴장이 되기도 하고, 또 떨리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사부님의 가르침만 믿고서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조용히 앉아서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런 일은 처음 하는 것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긴장이 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에구, 될 대로 되라.’ 하는 심경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과 싸우고 있는데 한 노인이 돗자리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다가 앞에 앉았다.

‘흠... 올 것이 왔구나.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눈을 떴다. 그랬더니 앞에는 텁수룩한 차림의 노인이 앉아서 자신에게 뭔가 볼 일이 있다는 듯이 쭈뼛거리고 있다. 우창은 직감적으로 오늘 사부님이 이야기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오호, 젊은 양반이구먼. 뭣 좀 물어봐도 되려나?”

“이리 편히 앉으시고 얼굴을 들어 보시지요.”

“잘 좀 봐주시우.”

“흠...”

우창은 순간 갈등이 생겼다. 사부님의 말대로라면 오늘 찾아오는 영감은 자식이 감옥에 들어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 자식을 감옥에서 나오게 하는 방법을 일러주고서 오늘 저녁 잠자리를 살 돈을 마련하기로 했는데....

‘이 노인이 아닌가...? 아니면 사부님이 실수하셨나? 아니면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것인가.’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온갖 생각들이 화살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리 사부님의 가르침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의 관상에서는 도저히 자식이 감옥에 있다는 말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우창은 아무리 살펴봐도 자식의 도움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을 그런 관상이었다. 하관이 넉넉한 품세가 자식의 세력도 상당히 당당할 것으로 보였다.

“영감님은 자식도 잘되고 있겠고, 관상이 좋으셔서 조금도 걱정할 일이 없는데 뭘 보시려고 합니까?”

“그러지 말고 잘 좀 봐주쇼. 복채(卜債)는 넉넉히 드릴 테니.”

“글쎄 그게 말이지요. 아무리 살펴봐도 문제가 없는 상이라니까요. 괜히 일없이 놀리지 말고 돌아가시지요.”

그러자 갑자기 영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면서 화를 냈다. 뭔가 심상치 않게 되어간다는 것을 느꼈지만 기왕에 내친걸음인지라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도망치듯이 자리를 걷어서는 일어났다. 그 영감은 이러한 우창의 뒤에다가 대고서 냅다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이 빌어먹을 사기꾼아! 어디를 가서도 자신이 관상을 본다는 말은 하지를 말아라. 그렇게 엉터리의 실력으로 뭘 본다고 이렇게 뻔뻔하게 앉아 있느냔 말이다.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 별 빌어먹을 관상쟁이를 다 만나서 기분 잡치는군. 에이~!”

우창은 그 말을 들으면서 뒤통수가 화끈거렸지만, 자신이 뭘 잘못 봤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도망을 치듯이 주루로 돌아왔더니 그때까지 진상도는 책을 읽으면서 깊은 생각을 하는 표정이었다. 우창이 옆에 와도 모르고 궁리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궁리에 몰두하는 사부님을 깨우기도 뭣하고 해서 그냥 옆에 앉아서 그 사람의 관상을 다시 뜯어봤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자신이 사부님으로부터 배운 대로 설명을 해 준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사부님이 잘못 가르쳐 주셨단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답이 없는 물음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해도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느덧 초가을의 땅거미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창은 저녁에 숙소를 마련할 돈을 벌지 못한 처지인지라 마음이 편안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부득이 사부님을 깨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사부님 우창입니다.”

“어? 아, 우창이었구먼. 일은 잘 보고 왔겠지?”

“예, 사부님. 진작 들어왔으나 열심히 몰두하고 계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내가 말해준 그 노인은 만났는가?”

“예, 한 노인장을 만나기는 했습니다.”

“그래, 그럼 숙소를 찾아야지 이 주루에도 묵을 방이 있을 것이네. 한번 알아보게.”

“저, 그런데 사부님...”

“왜? 뭐가 뜻대로 안 되었던가?”

“그게 아니라...”

“흠... 아무래도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자네 생각대로 뭔가를 말한 모양이군?”

“예, 그것이... 좀...”

“내가 시킨 대로 하지 않았지?”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 사람의 관상을 봐도 도무지 자식이 감옥에 있을 관상이 아니라서 말이지요...”

“그래서 ‘당신은 지금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라고 했겠구먼?”

진상도는 이미 보지 않아도 훤하게 알 것 같았다. 천성이 선량하고 솔직한 우창이 그동안 나름대로 배운 것을 바탕으로 길흉을 봐 준다고 나섰지만, 겉모양은 본다고 하더라도 그 속의 깊은 것까지는 아직 역부족이라서 당연히 실패할 것이라는 짐작을 이미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신신당부해서 보냈지 않은가?”

“예,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동안 제자가 배운 것을 생각해 보건대 도저히 그 관상은 자식의 화가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자식의 화(禍)가 있다고 해야 할는지를 도무지 모르겠기에 사부님께서 실수를...”

“그러니까 그대가 보기에는 도무지 일러준 것과 달라서 아무래도 이 늙은이가 실수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단 말이지?”

“예, 그럴 리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만중지일(萬中之一)이라도 빗나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네, 어디까지나 자네의 의견이니까 나도 사람이니 틀릴 수도 있지 뭘.. 허허허.”

“그게 아니라...”

“그럼 자네가 본대로 이야기를 해줘서 답을 찾아줬겠구먼?”

“그런데, 그 영감은 버럭 화를 내기만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이유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아니? 자네가 본대로 이야기를 했다면서? 그런데 왜 화를 냈을까?”

“저는 그의 노복궁(奴僕宮)인 턱을 보면서 그러한 관상은 자식에 대한 문제는 전혀 없는 것으로 배웠는데, 그는 저를 사기꾼이라느니, 가짜라느니 하면서 마구 화를 내는 바람에 허겁지겁 도망을 쳤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러니까 그 사람의 노복궁에는 광택이 흐르고 있었겠구먼?”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신을 가지고 말을 했던 것인데, 그렇게 나올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애초에 일러 보내지 않던가? 그러한 사람이 오면 자식으로 고민이 있을 거라고 하라 했는데 어째서 내가 일러준 말은 생각이 나지 않았단 말인가?”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스승님께 참으로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도 참으로 난감한 문제이오니 너무 탓하지만 마시옵고 그 연유를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긴 그렇군. 자네가 그렇게 곤란을 겪은 것도 무리는 아닐세, 허허허.”

“말도 마십시오. 그 황당함이란.... 휴~~”

우창은 아직도 아까의 그 영감이 화를 내던 모습을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사부님의 이야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동안 함께 다니면서 보고 들은 대로 관찰을 했고, 그대로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이 어긋나서 봉변을 당했으니 일면으로는 진상도에 대한 의심도 없지 않았다.

여태까지는 한 번도 그러한 일이 없었는데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반드시 해결을 봐야 마음속의 의혹이 풀릴 것으로 생각하고 사부님의 설명을 들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우창은 조용히 스승의 말씀을 기다렸다.

 

잠시 우창의 표정을 지그시 바라보던 진상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그 사람의 형상만 살핀 것이네. 내가 일러준 것은 마음을 살피라고 했던 것인데 아직 공부가 그곳까지는 미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번에는 우창이 항의를 하듯이 진상도에게 따졌다. 사실 관상이라는 것이 형상을 보고 예언하는 것인데 지금 말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불쑥 들어서 한마디 던졌다.

“말씀은 그렇게 하셨습니다만, 제자가 그 말의 뜻을 잘못 이해한 것인지는 몰라도 어차피 얼굴의 생김과 찰색(察色)에서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보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원래 관상은 형상을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약간 투덜대는 마음이 말속에 실려 있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부의 가르침이 이렇게 빗나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실망감이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하긴...”

“......”

“그렇기도 하지...”

“......”

“내가 이 도리를 깨닫는데 50년도 더 걸렸는데 자네같이 한참 팔팔한 젊은 나이에 그 도리를 깨닫게 하고 싶었던 것이 지나친 과욕이었는지도 모르겠네...”

“무슨 말씀이시온지...”

“나도 자네와 같은 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했었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할 마음이 나지 않았었네. 하물며 나무나 돌이나 물 같은 무정물(無情物)들은 마음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 또 무엇이 있는 것인지 좀 막연합니다.”

“자네의 나이 적에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지. 그런데 이렇게 나이를 좀 더 먹어가고 시간이 흐르니까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네.”

“그러시면...”

“물질을 다스리는 이면에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다스리는 또 그 무엇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이해하기에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제자가 무엇을 잘못 보고 실수를 한 것인지에 대해서 명쾌한 설명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럴 것이네, 그렇지만 일단 이야기는 해 보겠네. 자네는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육안(肉眼)의 한계를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가 말이네.”

“지금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눈이란, 얼굴에 붙어있는 두 개의 눈 말고 또 다른 눈이 있다는 뜻은 아니시겠지요?”

“왜 아니겠나. 허허허~!”

“예? 그러시다면 어떤 눈이 또 있단 말씀이신지요? 오늘의 가르침은 종전의 말씀과는 또 다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눈을 의미하는 글자를 생각해 보게. 안(眼)이라는 글자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네. 자네가 생각하기에는 그 두 가지란 무엇일까?”

“우선 눈 목(目)과 그칠 간(艮)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음.... 이상합니다. 눈목자는 알겠는데 왜 눈에 그칠간, 어긋날간의 뜻이 포함된 것일까요?”

“그럼 붙여서 의미를 생각해 보게. ‘눈으로는 모든 것을 다 보지만, 한계의 장애가 있다.’는 뜻은 뭘 의미할까?”

“그냥 무심코 사용한 글자일 뿐이니 그렇게 분석을 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뭔가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가르침을 청합니다.”

“사람 몸에 붙어있는 눈은 육안(肉眼)이라고 하네. 그리고 보통 눈을 의미할 적에는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런데 심안(心眼)이라는 눈도 있고 도안(道眼)이라는 눈도 있다네. 법안(法眼)도 있고, 혜안(慧眼)도 영안(靈眼)도 있으니 이렇게 다양한 눈이 있다는 말을 어찌 들어봤으랴 싶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눈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今始初聞)입니다. 그게 모두 의미하는 것이 있겠지요?”

“그렇다네. 육안은 종이 한 장도 뚫을 수가 없지.”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겠습니다.”

“심안이 되면 마음을 볼 수가 있다네. 삼라만상의 마음을 보는 것에는 장애물이 없다네. 가령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부모님이 보이게 된다네. 이것을 심안이라고 한다네.”

“그렇다면 천리안(千里眼)이라는 말과 같은 뜻인지요?”

“맞아, 그리고 심안의 최고 경지는 천안통(天眼通)이라네. 천리안 정도는 어린아이의 장난이라고 봐도 좋을 차이라네.”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사부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갖추셨습니까?”

“어찌 그렇다고 말을 하랴만 가끔 사용할 정도는 된다고 하는 것은 틀림이 없지. 허허허~!”

“아, 그래서 오늘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할 것인지도 미리 알 수가 있는 것입니까? 원래 눈이란 지금 당장 전개되는 현상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본다는 것도 가능한 것입니까? 어리석은 제자는 그러한 것에 대해서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런가? 그것도 무리는 아니네.”

“다만 사부님을 믿는 것은, 허언(虛言)을 하실 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는 것이지 솔직한 마음으로는 놀라울 뿐입니다.”

“물론 가끔은 돌발적인 변수도 없는 것은 아니지. 그러나 대부분은 정수(正數)대로 결과가 나타나더란 말이지. 그래서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네.”

“그러한 모든 것이 다 정해진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를 해도 됩니까? 그것을 알아내는 것도 놀랍습니다만 모든 것이 정해졌다는 것은 더욱 놀랍기만 합니다. 그것은 무슨 도리(道理)입니까?”

“천지자연의 도라네.”

“예? 천지자연을 지배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까? 자연도 알지 못하는데 천지자연의 위에 또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음...”

진상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우창에게 이 도리를 이야기해주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릇이 성숙하지 않아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니, 이야기해 준다고 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더 나아가는 설명을 해봐야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판단하고서 이만 끝을 맺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또 이야기할 때가 있을 걸세.”

“사부님 저는 아직도 그 영감님이 왜 화를 냈는지가 알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고서 엉뚱한 말씀만 하시니 제자는 참으로 난감합니다.”

“딴은 그렇구나... 흠... 그러니까 그 영감은 자신의 마음은 살피지도 않고서 오로지 눈에 보이는 형상만 집착하는 자네가 미웠던 게지. 허허허.”

“그럼 실제로 그 영감의 자식은 감옥에 있었습니까?”

한번 궁금증이 생기면 해결을 보지 않고는 그만두지 못하는 우창인지라 이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도대체 사부님은 어떻게 그 사람을 만나보지도 않고서 오시(午時)부터 신시(申時)에 생길 일을 알 수가 있단 말인가 과연 사람이 아니라 신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그 연유와 그렇게 미리 생길 일을 알 수가 있는 비법을 배우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냥 포기할 수가 없었다.

“스승님, 이 제자의 궁금한 점을 꼭 일러주시기 바랍니다.”

“허허허. 간단하지 않느니라. 우선 세상 만물은 모두 조짐이 있느니라.”

“조짐이요?”

“그렇다네. 비가 오려고 하면 다리가 쑤시기 때문에 늙은이들은 비가 올 건지를 미리 알 수가 있다네. 그 조짐은 어디서 우연히 온 것이겠는가?”

“그렇지는 않겠지요.”

“그래. 세상의 이치는 모두 필연적인 법칙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라네, 그러므로 그 조짐을 알면 결과는 거울을 보듯이 알아낼 수도 있다네.”

“그럼 제자도 그 조짐을 알 수가 있는 비법을 알고 싶습니다. 참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간단하네.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하다가 보면 점점 혜안(慧眼)이 열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보기가 싫어도 손바닥을 보듯이 훤하게 보인다네.”

우창은 지금 진상도가 자신에게 뭔가를 일러주지 않으려고 빙빙 돌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어렵고 알쏭달쏭한 말을 하면 자신이 알아들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걸 능히 알고도 남으실 분인데,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은 아무래도 가르쳐 주시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니 더 물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심상을 알면 조짐이 보이고, 조짐을 알면 형상의 뒤편에 있는 도리가 보이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