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4. 사제(師弟)의 인연(因緣)
작성일
2017-01-0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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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4. 사제(師弟)의 인연(因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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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도가 밥을 먹으면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까부터 문밖에서 기웃거리는 눈초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서 등이 근질거렸다. 그 시선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진상도는 일어나서 밖을 살폈다. 밖에는 나이가 30여 세는 되어 보이는 남자가 자신과 눈길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고서 불렀다.
“내게 무슨 볼 일이라도 있으신가? 이리 좀 오시구랴.”
“아...예...”
“아까부터 나를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들어오지 않으시구 어째 밖에 계시우?”
“예... 실은 말씀을 좀 드리고 싶었는데, 초면에 송구한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소생은 이름을 진하경(陳河鏡)라고 합니다만, 놀라우신 안목을 처음부터 지켜보고서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아, 진형이셨구랴. 우선 함께 음식을 들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여보시게 주인장, 여기 잔 좀 하나 갖다 주시오.”
“예, 도사어른!”
심부름하는 아이가 잔들 들고 오자 자신을 진하경라고 소개한 젊은 사람은 황급히 일어나서 잔을 한잔 따라 올린다. 연배도 있고 해서 진상도는 말없이 잔을 받았다. 그리고 그 젊은이에게도 한잔 따라주고서 조용히 관상을 살펴봤다.
관운(官運)은 깨진 상이었다. 아마도 일찌감치 벼슬길에 뜻을 두고서 공부를 하였으나 인연이 없어서 번번이 낙방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간은 좋았으나 이마에 가로지른 주름이 맘에 걸렸다. 이러한 상은 윗사람의 분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개혁적인 사람의 상이다.
또 식록(食祿)은 과히 넉넉하지 못한 상을 탄 것으로 봐서 가정도 그리 부유한 형편이 아닐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냥 빈농에서 태어나서 미관말직이라도 하나 얻어서 벼슬을 해보려고 생각하고 공부를 하다가 실패를 하고서 마음을 잡지 못하여 천하를 유람하고 있는 와중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얼굴에서는 여독도 약간은 묻어나 있었다.
“흠... 젊은이는 보아하니 유람하고 있는 듯싶은데 공부를 해봐야 뜻대로 되지 않으니 바람이나 쏘이자고 산천을 찾아서 나왔소?”
“실로 놀라우신 안목이십니다. 소생은 빈가에서 출생한 관계로 벼슬이라도 약간 해볼까 싶어서 10여 년간 공부했습니다만 불운한 관계였던지 저보다 못했던 동문수학의 벗은 벼슬길로 나아가는데 소생은 그렇지를 못해서 마음이 어지러워서 바람이나 쏘이자고 나온 길에 우연히 도사님의 아까 그 사건을 목격하고서 반드시 한번 뵙고 소생의 나아갈 길을 여쭙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송구하옵게도 이렇게 친히 불러주시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흠... 관상을 보아하니 관운은 없소. 아예 생각을 마시오. 허허허.”
“그럼 뭣을 해서 일생을 꾸려가야 할런지요...?”
“글쎄... 세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상이라서 무엇을 한다 해도 아마 그대의 마음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소이다.”
“그게 무슨 의미신지요?”
“그대도 필시 도사의 공부가 인연이 아닐까 싶소이다. 일찌감치 이 학문의 길을 밟아보시는 것도 좋을법하니 잘 생각해보구려. 허허허.”
진하경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까부터 이 노인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는 동안에 대단히 놀라움과 함께 자신도 이러한 공부를 해서 마음껏 지혜를 나눠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자신도 모르게 이 노인의 뒤를 따르게 되었던 것인데, 지금 자신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대로 옮겨놓지 않는가?
“저같이 미천한 것이 어찌 그렇게 대단한 법력을 배우겠습니까? 천분의 일이라도 배울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습니다만, 너무나 놀라운 지혜라서 감히 배운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허허허. 그렇지 않소이다. 봐하니 급한 일도 없는 듯한데 나랑 같이 한번 다녀보려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옵니다. 그럼 이놈을 제자로 거둬주시는 것이지요?”
“그렇소. 그대는 비록 공명에 운은 없다고 하지만 타고난 영민함과 열심히 이 오행의 원리를 궁구한다면 이 방면에서 아마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위인이 될 듯싶소. 열심히 공부를 해보도록 하오.”
“그러면 정식으로 스승님께 제자의 예를 올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진하경은 바닥에 그대로 스승의 예를 갖춰서 절을 올렸다. 그러자 진상도는 흐뭇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문득 자신이 고쳐준 자오검 오혜량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사제의 인연을 맺었으니 말도 편하게 하겠네. 혹 강호를 돌아다니면서 자오검이라고 하는 검객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했는가?”
“예 사부님 언젠가 지나는 길에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원래 무림인이 아니기 때문에 잘은 모릅니다만, 현재 자오검이라고 하는 천하무적의 검객이 있는데, 원래는 자신의 무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서 대결을 하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성품이 도덕군자가 되어서 한량없는 자비의 검을 베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만, 그 사람이 그인지는 제자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가 맞을 것이네. 허허허.”
진상도는 내심 흐뭇했다. 말대로라면 아마도 잘살고 있는 모양인 듯하니 언제 한번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웃었다.
“참, 내가 제자의 나이도 묻지 않았구나. 그대는 올해 몇인고?”
“예, 사부님 저는 올해 32세입니다.”
“그렇다면 호도 있겠구나. 뭐라고 부르는고?”
“공부하여 입신을 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도 못했으니 호는 무슨 호가 있겠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내가 호를 하나 지어줘야 하겠구나.”
“그렇다면 기꺼이 받아 지니겠습니다.”
“흠... 백성과 친구처럼 더불어 밝은 지혜의 빛을 나눠주라고 우창(友暢)이라고 하면 좋겠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좋은 호입니다. 제자 우창이 열심히 정진하여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어리석음을 많이 꾸짖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 그동안 배운 학문은 어떤 것인고?”
“예, 천자문, 소학 대학 동몽선습, 중용까지는 읽었습니다. 그리고 주역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허이. 앞으로 내가 잘 이끌어 줄 모양이니 열심히 배워보게.”
“예 사부님 분골쇄신(粉骨碎身)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뜻하지 않은 제자를 거두게 된 진상도는 자리를 일어나서 다시 길을 나섰다. 말동무가 있으니 혼자서 다닐 적보다 훨씬 재미가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가지씩 일러주면 총명하게 기억을 하고 잘 풀이를 해서 날이 갈수록 마음에 들게 되자, 더욱 아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었다.
진상도는 우창과 함께 다니면서 우창의 심성을 분석해 보았는데, 우창은 항상 직접적인 형상(形象)에 대한 개념보다는 문자에 깃들어 있는 상징(象徵)에 대한 개념이 더욱 탁월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자신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보내면 더욱 크게 발전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상에 대한 것보다도 오행(五行)에 대해서 가르침을 많이 주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구하는 틈틈이 재미있는 잡술도 한두 가지 정도 일러주었다. 그래서 때로는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할 수도 있도록 가르쳤다.
상수(象數)라는 것은 관상이나 주역이나, 어떤 형상을 위주로 해서 연구를 해 들어가는 역학을 말한다. 문자(文字)도 상학(象學)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할 수가 있겠는데 유독 우창은 문자를 해석하는 방면에서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대략 어느 방향으로 가르치면 될 것인지를 가늠하게 된 것이다. 문자라면 간지(干支)가 대표적인 분야이다.
먼지가 흩날리는 길을 걷다가 고개에 올라서 땀을 들이면서 휴식을 취하던 진상도는 우창에게 뭔가 재미있는 잡술을 하나 일러줘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말을 꺼냈다.
“우창.”
“예, 사부님 무슨 분부신지요?”
“이제 나랑 다닌 지 얼마나 되었던가?”
“예, 반년 정도의 시간이 되었는가 싶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벌써 그렇게 많이 되었나? 허허허.”
“참으로 안목을 갈고 닦는 값진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잡술을 한 가지 일러줄까 하는데 한번 배워보려나?”
“잡술이라니요? 사부님이 일러주신다면 어느 것 하나라도 진리의 실마리가 되지 않는 것이 없었는걸요. 하하하.”
“그렇던가? 그럼 한번 잘 배워보시게.”
“예, 제자 귀를 씻고 경청하겠습니다.”
“저 아래를 보게. 저기 광주리를 짊어지고 오는 남자가 보이지?”
“예, 사부님.”
“그 광주리 속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알아내 보게나.”
“예,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무엇이 있다고 하면 그다음엔 어찌하면 됩니까?”
“아니, 가보란 것이 아니고, 점쳐서 알아내 보란 말이네. 허허허.”
“제가 어찌 감히 그러한 안목이 되겠습니까? 아마도 그 방법을 일러주실 듯싶군요. 기대가 큽니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저 광주리 속에는 새끼 오리가 들어있을 것이네.”
“예? 어떻게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까?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뿐 아니라 아마도 오리는 열세 마리가 될 공산이 크네. 어디 내 말이 맞는지 한번 기다려 보자꾸나.”
“예, 사부님 재미있겠습니다. 하하하.”
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리자 그 광주리를 짊어진 남자가 나타났다. 고개를 오르느라고 한참 힘들었던지 그도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두 사람의 옆에다가 광주리를 내려놓고서는 앉아서 땀을 씻었다. 진상도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하겠소이다. 그 광주리 속에는 뭐가 들었기에 그렇게 정성스럽게 짊어지고 다니시오?”
“아 예, 이것은 새끼 오리입니다. 마침 내일이 이웃에 장이 서는 날인지라 몇 마리 팔아서 쌀이나 좀 사볼까 하고 나섰는데 여간 짐스럽지 않구먼요. 헤헤.”
“오리라. 혹 그 속에 있는 오리는 모두 열세 마리가 아니오?”
“오호~! 도사어른이시군요. 바로 맞추셨습니다. 집에서 나오면서 열다섯 마리를 갖고 나왔는데, 중간에서 광주리의 뚜껑이 열리는 바람에 그만 두 마리를 놓쳐버렸지 뭡니까요.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알아낼 수가 있습니까요? 하긴... 도사님이 뭐는 모르실까. 헤헤.”
“그냥 재미로 한번 농담을 해본 것인데 어쩌다가 맞았구먼 허허허. 그런데 집에서 처음에는 20마리를 가지고 나오려고 했을 것 같은걸...”
“와~! 맞습니다. 너무 무거워서 다시 다섯 마리를 내려놓고 이놈들만 데리고 오게 되었습지요. 하여튼 재미있는 도사시네요. 저는 이만 또 일어나서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그럼 쉬었다가 가시지요. 헤헤.”
“그러시구려 재미보시우. 아마도 좋은 값에 팔게 될 것이외다. 허허허.”
“에구 고마우신 말씀이십니다. 그럼 편안히 가십시오.”
이러한 스승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창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스승의 안목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잠자코 멍하니 생각만 하고 있었다.
“여보게 우창, 어떤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스승님 재미가 다 뭡니까. 기가 막힌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것까지 알 수가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내가 장담을 하건대, 자네는 나보다 이 방면에 더욱 놀라운 재능이 있을 것이네, 그러니 나중에 내 재주를 비웃지나 말게나. 허허허.”
“원, 스승님도 참... 제자는 도저히 그러한 그릇이 못 됩니다.”
“잘 들으시게, 내가 일러주겠네.”
“예,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이 점술(占術)의 이름은 단시(斷時)라고만 부른다네. 그만큼 하찮은 점이라는 뜻도 되는 셈이라네. 우선 이 점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선천수(先天數)를 이용하는데 잘 기억하고 있겠지?”
“예,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갑기자오9, 을경축미8, 병신인신7, 정임묘유6, 무계진술5, 사해속지4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바로 그것이네, 그러니까 점을 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점괘를 뽑을 적에 이 선천수를 응용해서 괘를 뽑는 것이라네. 가령 아까 그 사람의 통 속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문제를 가지고서 점을 한다고 하세. 그러면 우선 오늘의 일진(日辰)을 보는 것이네, 즉 오늘은 병술(丙戌)이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병술은 그 숫자가 얼마인가?”
“병술이라면 병(丙)은 7, 술(戌)은 5, 합은 12가 됩니다.“
“그리고 그 숫자에다가 시간을 더하는 것이네. 지금은 미시(未時)이니 또한 얼마인가?”
“미시라면 을경축미는 8이 되는군요. 그럼 합은 20이 됩니다.”
“그렇다네. 그러면 20은 파리괘가 되는 것이라네. 파리라고 하는 것은 떼로 몰려드는 것이니 저 속에는 뭔가 많은 숫자가 있다고 보는 것이라네. 그리고 파리는 날개가 있는 것이니 날짐승이라고 보는 것이네, 그리고 병술이라고 하는 것에는 병신합수(丙辛合水)가 되는 기운이 있으니 물과 연관이 되어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물과 연관이 되어있는 날짐승이 들어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니까 그 속에는 오리가 있는 것이라네.”
“이야! 그렇게 되는군요. 그것 참 오묘한 풀이입니다. 파리가 오리로 되는 이유라...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래서 자연의 이치를 알게 되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한둘이 아니라네.”
“그런데 열세 마리라고 하는 숫자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지금의 숫자를 보면 20인데...”
“그런가? 원래 저 사람은 20마리를 통 안에다가 담아서 짊어지고 나왔을 것이네. 그런데 날이 더워지고 또 무겁다는 생각이 들어서 5마리를 꺼내 놓고 집을 나섰다고 생각이 되네.”
“맞습니다. 그렇게 말을 했지요. 그 이유는 또 왜 그럴까요?”
“그야 당연하지. 진술(辰戌)은 충돌하는데 양토(陽土)이니 그 숫자가 5란 말일세. 그러니 진술의 충을 만나서 5가 줄어든 것이네. 그래서 15마리만 갖고 나온 것이라네.”
“아하~! 그렇게 되는 것이었군요. 그것 참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오묘합니다.”
“그런데 오다가 또 두 마리를 잃었다고 하지 않던가?”
“예, 그랬습니다.”
“그것은 원래 욕심으로 들고 오던 것이었네, 실은 열세 마리만 들고 왔어야 하네. 그런데 무리하게 두 마리를 더 들고 나왔는데, 파리괘라고 하는 것이 손해를 본다는 의미일세. 파리는 먹을 것을 보고서 달려드는 암시가 있는 것인데, 삼팔(三八)은 목이 되고 그중에도 오늘은 양일(陽日)인 병에 해당하니까 3인데, 그냥 3은 아니고 13인 것이네, 더 이상은 욕심이라고 할밖에 허허허.”
“흠... 그것 참 듣고 보니 한번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납니다. 좀 자세하게 말씀을 해 주시면 알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3은 아니고 13인지요?”
“그야 눈치라네, 이미 오리라고 판명을 내렸다면 그 속에는 과연 몇 마리가 들어있을 것 같은가? 만약에 세 마리라고 한다면 파리라고 하는 중생들이 얼마나 서운타고 하겠는가? 떼로 몰려다니는데 3마리라는 말은 어울리겠는가? 그리고 23마리는 너무 많아서 담을 수가 없지. 허허허~!”
“아, 그렇군요. 하하하.”
진상도는 이렇게 한번 우창을 놀라게 해놓고서는 차근차근 설명해나갔다. 우선 선천수를 이해한 다음에는 괘로써 나타나는 동물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동물은 숫자에 따라서 달라진다.
13-뱀, 14-지렁이, 15-거미,
16-비둘기, 17-달팽이, 18-산(山)쥐,
19-묶인 원숭이, 20-파리, 21-묶인 돼지,
22-제비, 23-집쥐, 24-박쥐,
25-까치, 26-매미, 27-용(龍),
이렇게 15개의 숫자에 의한 동물을 짝지어 놓고서 여기에다가 어떤 문제든지 집어넣고서 답을 찾으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말이네.”
진상도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아내가 지금 병이 들었다고 하면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물었다고 하세. 그러면 그 사람의 나이의 간지가 뭣인가를 물어보게. 몇 살인지만 알고 태어난 해의 간지를 모른다면 그때는 그 태어난 간지가 무슨 해인가 정도는 알고 있어야겠지?”
“예, 그렇겠습니다.”
“그렇게 물어서 생년의 천간이 무슨 자인가를 확인하는데, 가령 갑자생이라고 한다면 갑자년에 태어났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갑(甲)이라고 하는 글자를 취하네.”
“그야 어려운 일이 아니네요...”
“그렇다네, 또 여자라면 이번에는 갑이 아니라 자(子)를 취하네, 남자는 천간(天干)이요 여자는 지지(地支)라는 이치에 합당한 이치라네.”
“근데, 아까 그 사람의 경우에는 왜 나이를 묻지 않으시고 점괘를 뽑았지요?”
“아, 이 사람아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이를 물어보나?”
“그야 그렇기는 합니다만...”
“자네의 그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결국 자네를 큰 학자로 만들 것이네. 결과를 물으면 술사(術士)가 되고, 과정을 물으면 학자(學者)가 되는 까닭이지. 하긴 나도 그러한 생각 때문에 아직도 여기에서 못 벗어나고 있지만 말이네, 허허허~!”
“에구... 죄송합니다. 사부님.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항상 기본이 있고 나서는 또 변화가 있는 법이네. 기본이라는 것에 충실한 후에는 변화를 알아야지 항상 기본에서만 매달려 있다면 그 사람은 살아있는 역학자의 안목을 갖추기가 불가능하지 나중에 이러한 기본 요령에 익숙해지면 그때는 그 기본 요령을 응용해서 또 다른 변화를 깨닫게 될 것이네. 조금도 걱정 말게.”
“잘 알겠습니다. 사부님의 가르침 명심하겠습니다.”
“주의를 할 것은 묻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서 한 글자를 취하되 남자인가 여자인가를 구분해야 하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당일(當日)의 일간을 취하네, 여기서는 남녀가 같으니까 구분을 할 필요가 없네. 오늘의 일진이 뭐였는가?”
“병술입니다.”
“그렇다면 병(丙)을 취하면 되는 것이네.”
“그럼 다음으로는 시를 취할 것 같은데요. 맞습니까요?”
어느덧 마음이 급해진 우창이 묻는다.
“그렇다네, 다음으로는 현재의 시지(時支)를 찾아서 쓰게 되지. 지금은 무슨 시인가?”
“예, 지금은 신시(申時)가 되었습니다.”
“그럼 신(申)을 취하면 되는 것이네. 이것이 그 결과라네. 어디 무슨 괘가 되었는지 한번 찾아보게나.”
“그럼... 갑-9, 병-7, 신-7 이니까 합이 23이네요. 그러면 집쥐의 괘가 되는데 맞습니까?”
“그렇다네. 이 사람이 자신의 아내가 병이 들어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물었다면 그 결과가 어떻다고 말하면 되겠는가?”
“집쥐라... 먹을 것이 많으니까 좋다고 해야 할까요?”
“허허허 그런가?”
“음... 틀렸나 봅니다. 깨우쳐 주십시오.”
“잘 생각했네. 집쥐는 항상 먹을 것이 많네, 그러니까 먹을 것이 많다는 것은 그리 좋은 것이라고는 할 수가 없네. 오히려 먹고살면서 항상 마음이 불안하지 않겠는가?”
“그렇겠지요. 언제나 고양이나 주인댁 식구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경계를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마음이 늘 불안한 것이네.”
“으음~~ 그렇군요.”
“그래서 이 부인의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알 수가 있네. 그리고 지금이 사월 아닌가. 초여름인데 이때의 집쥐들은 여름을 맞이하느라고 그 마음이 활발하네. 어디든지 움직일 수가 있으니 말일세. 또 창고는 점차로 줄어들고 있는 보릿고개가 아니던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스승님의 안목은...”
“그래서 마음이 불안하고, 또 한가하게 안정이 되지를 않고 있다네. 이러한 경우에는 잠시 집을 떠나서 절간에라도 가서 요양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이네. 그러면 병세는 차츰차츰 호전이 되어서 삼칠일 또는 사칠일이 지나면 나을 것이네.”
“그것은 또 왜 그렇지요?”
“23이라는 숫자는 그러한 암시가 있네. 그러니까 정확히는 23일 동안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약간의 변수는 있다고 보고 21일에서 28일 사이에는 쾌차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네.”
“그럼 집쥐괘는 모두 병이 낫는다고 보면 되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겠지만, 오늘 일진이 좋지 않은가? 병(丙)이라는 것은 태양의 불로써 온갖 어둠을 몰아내고 밝은 광명을 주는 암시가 있는 글자이니 틀림없이 병이 나을 것으로 보는 것이라네. 어떤가?”
“사부님, 어렵기는 해도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어째서 처음에 잡술(雜術)이라는 말씀을 하셨는지요?”
“아, 아무리 사소한 방법이라도 도인이 쓰면 도술이 되고 잡인이 쓴다면 잡술이 되는 것이네. 그러니까 잡인은 심오한 진리를 사용해도 잡술이 될밖에 없는 것이지. 그런데 자네는 아직 도안(道眼)이 갖춰지지 않았으니 잡술이 되고 말걸세. 허허허.”
“사부님. 부지런히 정진해서 반드시 사부님의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능히 그럴 걸세. 허허허.”
진상도은 흐뭇했다. 우창이 하나하나를 생각하는 것이 꼭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만 같아서였다. 그래서 더욱 정이 가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재미있으라고 단시를 하나 일러주려고 했는데, 이러한 것도 그 깊은 이치를 따져서 궁구를 하니 그야말로 망외소득이었던 것이다.
“사부님. 고견을 듣는 사이에 어느덧 유시가 되어옵니다. 어디 유숙할 곳을 찾아야 하겠는걸요.”
진상도는 그제서야 하루해가 또 기우는 것을 생각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렇게 얼마를 걷다가 뒤돌아다보니, 우창은 아까 들려준 공식을 부지런히 외우는지 입술이 달싹달싹하면서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달마와의 약속을 떠올렸다. 그래도 뜻이 통하는 지기(知己)였는데 잘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함께 토론하기로 한 관상법은 얼마나 연구를 했는지도 궁금했다. 대충 따져보니 헤어진 지도 어느덧 3년여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