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3. 삼청궁(三淸宮)의 주인

작성일
2017-01-0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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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3. 삼청궁(三淸宮)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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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삼청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또 하나의 문을 통과해야 했다. 그렇게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면서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있는 궁전은 왕실의 위용과 견주어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달마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생각하는 심곡자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곳에서 무슨 수행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래도 먼 길을 왔으니 한번 만나보기나 하고 가자는 생각으로 안내하는 도사의 인도를 받아서 우선 객사(客舍)에 들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공양이 들어왔다. 정갈하게 차림 음식상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자신이 기거하는 소림굴에서 먹던 음식과는 물론 견줄 바가 아니었다. 시장한 김에 양껏 먹고 마셨다. 원래가 먹을 것을 보고서는 사양하지 않는 달마였다. 몸이 바뀐 뒤로는 더욱 먹을 것에 대한 식탐에 이끌리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먹을 적에는 닥치는 대로 마구 먹고, 또 굶을 적에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먹지 않아도 거뜬했다.

모처럼 진수성찬(珍羞盛饌)을 본 달마는 양껏 먹은 것이다. 그리고는 긴 여행에서 쌓인 피로를 풀 겸 안에서 부르는 소리가 있을 때까지 드러누워서 코를 골면서 잠이 들어버렸다.

“드르릉. 드르릉.”

얼마를 자고 있자니까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면서 자신을 찾는 소리에 잠을 깼다. 문을 열어보니 아까 안내를 하던 지객도사였다.

“손님 편히 쉬셨는지요?”

“그래 편안하구먼.”

“아까 보여주신 서찰을 주시면 제가 안으로 들어가서 왕림하셨노라고 여쭙겠습니다.”

“그러시려나? 그럼... 여기 있소이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으로 들어간 도사는 차 한 잔을 마실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함께 따라 나왔는데, 일견해서 도골선풍(道骨仙風)이었다. 달마는 직감적으로 이 사람이 심곡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달마가 심곡의 도인을 뵙습니다.”

“어서오시오, 먼 길을 수고롭게 나들이하셨소이다.”

“아니오. 마침 산천의 풍광도 유람할 겸 태산도 방문할 겸 길을 나셨습니다. 껄껄껄.”

“역시 소문대로 달마존자의 안목은 대단하신 경지로군요. 빈도의 일생에 영광이로소이다. 허허허.”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자, 그럼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시지요. 허허허.”

“예, 그럼.”

진객(珍客)이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나들이를 해 주셨으니 이례적으로 심곡자가 방문자를 직접 마중 나온 것이다. 그래서 지객도사도 뭔가 거물급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지금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년 전에 이미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달마라고 하지 않는가. 그는 내심 기절을 할 정도로 놀랐지만, 표면으로는 안정을 찾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심곡자가 지객에게 한 마디 일렀다.

“허튼소리는 하지 말도록 하라.”

달마가 막상 심곡자의 거처로 안내가 되어 가보니 오히려 소박한 것이 달마가 생각을 했던 대로였다. 그제서야 달마는 심곡자의 풍모를 헤아리게 되었고, 주변의 장식물들은 모두 제자들이 세상에서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했다는 표시로써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이에 비하면 숭산은 천년이 흘러가도 이러한 야단스러움은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 늙은이는 무한히 감사를 드리고 싶소이다.”

“무슨 말씀을요. 이 산골 화상이 심곡도장의 초청이 아니었더라면 이러한 산중에 대궐이 있다는 것을 어찌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안목을 높여주셔서 영광으로 생각하옵니다. 껄껄껄.”

“여기 차 좀 내오게나.”

“예, 곧 들여가겠습니다.”

대답하는 소리가 끝나자마자 곧 심부름하는 시동이 차를 들고 왔다.

“차나 드시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예, 고맙습니다. 같이 드시지요.”

달마가 차를 받아드니 알 수 없는 향기로운 진기가 온몸의 피로를 풀리게 하는 듯했다. 향기가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부드럽고 향긋했는데, 이러한 향은 어디선가 한번 맡아보았던 것도 같았으나 도무지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차가 참으로 향기롭소이다.”

“그렇습니다. 이 차는 우리 도관에서도 진객이 오시기라도 하면 대접하는 귀한 것이기는 합니다만, 허허허.”

“아, 거기에서였구나!”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아, 이 향을 어디선가 한번 맡아본 적이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바로 거기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이거 실례를 했소이다. 껄껄껄.”

“실례라뇨, 별말씀을. 근데 그곳이 어디인가요? 이 향을 맡아봤다면 그곳도 필시 고귀한 분이 계시는 곳일 듯싶습니다만...”

“예, 그곳은 바로 화산의 석실이었지요.”

“아하~! 혜암도인이었구먼.”

“서로 잘 아는 분인지요?”

“예, 그 친구는 바로 나의 의제(義弟)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 누추한 곳까지 왕림을 하셨습니까?”

“그러셨군요. 그래서 곡주께서도 소승의 잔재주에 관심을 보이셨군요.”

“잔재주라니요. 달마상법의 이야기를 대강 들었지만, 그 속에는 우주의 이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소이다. 그렇지 않다면 노납이 어찌 번거롭게 하였겠습니까? 허허허.”

“그게 진담이라면 참으로 영광이로소이다.”

“그 상법을 의지해서 천하를 다스린다면 불평을 가질 사람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이 도관에서도 그러한 법술(法術)이 필요하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늙은이가 매우 관심이 많아서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사온데 여쭤도 좋겠습니까?”

“아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소승에게 서한을 보내실 적에 수취인을 이미 이 땅에 없는 사람으로 하셨는데, 무슨 의중이셨는지...”

“이 세상에 없다면 어떻게 지금 여기 앉아있소이까? 허허허.”

“그러니 무슨 일인지를 다 알고 계셨다는 말씀이시군요.”

“실은 대사께서 사약을 받으셨다기에 이미 건곤대나이의 수법을 통달하고 계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서역의 승려로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서 말이지요.”

“그러셨군요. 참으로 견문이 넓으신 것에 새삼 탄복을 했습니다.”

“자,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궁금하니 그 달마상법의 원리를 들어보도록 합시다.”

“실은 잔재주에 불과합니다만, 그렇게 관심 가져주시니 간결하게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이야기를 해주시오.”

“이 상법은 원래 혜암도인이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던 것을 소승이 구체화시킨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오래전인가 봅니다만, 그때 화산에서 혜암도인을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도인은 이미 이 분야에 대해서 상당한 안목을 소유하고 계셨더군요.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서 소림굴에서 그 원리를 궁리하게 되었습니다.”

“오호, 그러셨군요.”

“그렇게 궁구하면서 느낀 것은,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다 제각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고서 그 원리를 생각했습니다만, 차차로 생각이 깊어지자 이번에는 산중에 뛰어놀던 짐승들의 마음도 들여다볼 수가 있었습니다.”

심곡자는 흥미가 동한다는 듯이 허리를 바짝 숙이고 눈에서는 광채가 발산되었다. 배움에 힘쓰는 자의 모습에서 풍기는 범접할 수가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달마는 그 모습에 감동하면서 말을 이어 갔다.

“그렇게 연구를 하다 보니까, 또 나무나 바위에서도 그 마음을 볼 수가 있겠더군요. 이렇게 되자, 이 방법이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겨서 소림의 제자들에게 활용한다면 자신의 부처를 찾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하나하나 정리를 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어쩌다가 존귀하신 분께서 풍문에 전해 들으셨던 것입니다.”

“흠... 놀랍군요. 바위나 나무등 무정물(無情物)의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는 경지가 되다니...”

“외람되오나 요즘은 형체가 없는 혼령들의 마음이 보이는 것도 같고, 또 땅이나 물의 마음도 보이는 것 같아서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이게 다 혜암도인의 가르침이 컸다고 생각됩니다.”

“역시 소림에서는 달마존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만, 사실이었군요. 허허허.”

“여기 초본(抄本)을 가져왔으니, 여가(餘暇)에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겠소. 달마존자의 공력이 참으로 만세의 복전이 될 것이외다.”

달마는 진가를 알아주는 이를 만난 것에 대한 기쁨으로 자신도 모르게 합장했다.

“이렇게 중요한 자료를 얻으면서 그냥 받을 수는 없고, 노납이 변변치 못한 안목으로 천지의 상(象)에 대해서 약간 적어둔 것이 있는데 나쁘지 않다면 한 벌 드리고 싶소이다. 답례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소이다.”

“이르다 뿐입니까. 감읍(感泣)할 따름입니다.”

“실은 이것은 보이지 않는 형체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 것이오. 즉 천지의 운기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외다.”

“그렇다면 소승의 연구에 비하면 하늘같은 보옥이로군요.”

“아니외다. 세상에 진리가 아닌 것이 없고, 또 진리가 있다면 짐승이나 인간이나 다를 게 뭐가 있겠소.”

“참으로 세상의 이치는 무소부재(無所不在)인 듯싶소이다. 소승이 불타의 교법에 의지해서 수행을 해왔고, 불조의 전등(傳燈)을 이었습니다만, 실은 불타의 가르침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우물 안에서 뛰어나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소. 정녕 그렇소. 진리는 어디에나 있으니 이 진리가 내 것 안에만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은 아직 진리를 다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오.”

“이제 존귀하신 심곡도인의 연구하신 정기까지 얻었으니 소승의 연구가 날로 도약하리라고 믿어집니다.”

“허허허. 겸양이 지나치시오. 실은 존자는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소이다. 오로지 말세의 중생들을 위해서 방편(方便)의 인연을 남기려는 것뿐이라는 것을 노납은 알고도 남습니다. 허허허.”

“껄껄껄. 그럼 이만 물러갑니다. 옥체 강령하옵시기 빕니다.”

“아마도 불원간에 또 만나게 되리라고 생각되는구려. 그럼 보중하시오.”

달마는 심곡자와 작별을 하고서 소림굴로 돌아와서는 심곡자가 전해 준 책을 살펴보면서 이치를 궁구하며 하나하나 확인해 나갔다. 그 책의 이름은 「무극진경(無極眞經)」이라고 되어있는데 천문(天文)의 이치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설명한 비결이었다. 자신이 연구한 것과 짝을 이루면 음양을 갖춘 멋진 이론으로 거듭 태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연구에 빠져들어 갔다.

 

한편 화산을 내려온 진상도는 자신이 연구한 자료들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실험해보기 위해서 예전처럼 다시 여행의 길에 올랐다. 그렇게 실험을 한 후에는 다시 달마존자와 만나서 의견을 모은 다음에 비로소 형상(形象)으로써 도를 찾는 그 비법이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형상이나 집의 형상, 또는 우마의 형상을 보면서 그 속에 들어있는 마음의 상태를 읽어냈는데 자신이 생각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하루는 주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밖이 시끌벅적하고 소란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가봤더니 어느 거한이 한 여인을 폭행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구경꾼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원래 사람이 모인 곳에는 구경거리가 있는 법이다. 진상도도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구나 싶어서 슬며시 그 소란의 틈바구니로 끼어들었다. 그리고서 전개되어가는 상황을 살펴봤다.

“이년아, 네가 서방을 두고서 지금 뭔 짓을 하느냐!”

그 거한은 분노로 인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한 여인을 금방이라도 쳐 죽일 듯이 채근하고 있었는데 여인은 아예 체념한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디서 감히 서방질을 해?”

“......”

여인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냥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식이었다.

“어서 가자 이년아, 동네가 창피해서 못 살겠다.”

“싫어요.”

“난 이제 집으로는 가지 않아요.”

“이게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그래요. 아무래도 좋으니까 집에만은 가기 싫으니 당신 맘대로 하세요. 난 이대로 자유롭게 집을 나가고 말겠어요.”

“그래 어느 놈이 널 꼬여냈느냐?”

“그런 적 없어요.”

“이게 그래도 거짓말을 하고 있네. 에잇~!”

거한이 내려친 솥뚜껑 같은 손은 여인의 가녀린 얼굴에 내리쳤고, 얼굴은 피가 터지고 선혈이 낭자했다. 그렇게 피를 보자 이 사내는 더욱더 미친 듯이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그 꼴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던 진상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서 분개하고 있는 남자의 손을 말리자, 그 남자는 난데없이 방해꾼이 끼어들자 잠시 얼떨떨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구경꾼은 더욱 모여들어서는 더욱 흥미가 동해서는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던 주책없는 나그네외다. 잠시 끼어들어 참견하는 것에 대해서 용서를 바라오.“

“남의 가정사에 참견하시지 말고 가시던 길이나 가슈~!”

남자가 잔뜩 퉁명스러운 소리로 말했다.

“난 산천의 경계를 유람하면서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에게 그 괴로움의 실체를 해결해 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과객(過客)이외다. 그런데 오늘 문득 이러한 장면을 보게 되어서 행여나 도움이 되겠다면 한번 해결을 해보려고 하니 과히 나무라지는 마시오.”

“괜히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어서 봉변당하지 말고 멀찌감치 물러나슈.”

그 사내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뱉어내는 말을 듣고 있던 진상도는 대갈일성 했다.

“이 양반아, 곱게 말하면 가만히 듣고 있지 뭘 잘했다고 그 야단인가!”

“어랍쇼..!”

“어랍쇼는 무슨 얼어 죽을 어랍쇼. 자네는 마누라를 내쫓으려고 자네 친구랑 작정하고서 아내에게 협박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못된 짓을 하면서 어찌 불쌍한 아내를 들들 볶는단 말인가.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여봐란 듯이 떼를 쓰는 이유는 또 뭔가. 그래 놓고서도 할 말이 있는가?”

“당신이 뭔데 끼어들어서 헛소리를 늘어놓으쇼?”

“네 친구는 지금 여기 어디선가 너를 보면서 계획대로 일이 잘되어간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보자, 어디 관상을 보면 어느 놈이 친구인지 알 수가 있다. 어디...”

이렇게 말을 한 진상도는 모인 군중을 쓰윽~ 훑어봤다. 관상으로 보더라도 이 정도의 마음은 읽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서다. 하물며 필부들이야 정신적 수련도 없는데 무슨 수로 자신의 마음을 감출 수가 있겠는가 싶어서 자신만만하게 한번 휘둘러보았는데 한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옳거니... 네 녀석이 틀림없으렸다...’

진상도는 그 녀석의 행색을 살폈다. 나이는 대략 40세 중반 정도, 약간 뚱뚱한 풍채에 탐욕스러운 눈알을 하고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품새가 대번에 알아볼 위인이었다.

진상도는 당당하게 그 사람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주변의 모였던 사람들이 삽시간에 길을 터주고는 다시 그 사람을 포함에서 둘러쌌다. 그에게 바짝 다가간 진상도는 그 사람의 코앞에서 호통을 쳤다.

“그대는 지금 이들의 일에 무슨 연루가 되어있는지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관리를 불러서 곤장을 치도록 할 테니 한 점도 거짓이 없이 이야기하시오.”

“저...”

“그래 솔직하게 말한다면 정상을 참작하도록 잘 말해주지만 행여 속임수를 쓸 생각일랑은 전혀 하지 마시오.”

머뭇거리던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예, 노인장 어르신, 소인은 저 사람의 친구입니다요. 자신의 아내를 내쫓기 위해서 저에게 밤마다 방문으로 찾아가서 놀라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그렇게 한 죄뿐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요.”

말하는 품새로 봐서 진상도가 좀 더 고압적으로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투도 바꿨다.

“그래. 다 알고 있다. 그럼 그렇게 한 대가로 뭣을 주겠다고 했는가?”

“그 대가로는... 처가로부터 이혼금을 받으면 1할을 주기로 했습지요. 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저 친구가 어찌나 꼬드기던지... 돈이 좀 아쉬워서 일을 저질렀습니다요.”

“흠... 노름빚이 많군?”

“옛?”

“뭘 그리 놀라는가? 자네 얼굴에 그렇게 씌어 있는걸.. 허허허.“

“예... 저 실은 약간의 돈이...”

진상도는 역시 하천한 인간들은 얼굴에 그 마음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에 잠겼다. 우선 부인의 의견을 물어야 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부인을 향했다. 그동안 주변의 사람들이 대강 정황을 이해했는지 부인의 편으로 마음이 기울어서 혈흔도 닦아 주고 위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진상도가 부인 곁으로 다가가자 모두 옆을 비켜주었다.

“부인의 관상을 보아하니 남편과의 인연이 없구랴.”

“예...”

“지금 집으로 가기는 틀린 것 같고 앞으로 어찌할 셈이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남편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생겨 먹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는지 참으로 난감하기만 하옵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신이 처량한지 목이 메어서 말을 잊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대략 정황이 읽혔다.

“그럴 것이오. 그러나 당신이 전생이 지어놓은 것이니 어쩌겠소. 다만 이제는 남편으로 인해서 그만큼 구박을 받았으므로 친정에 가서 두 해만 기다리고 있으면 좋은 인연이 생길 것인데 그리하겠소?”

“좋은 인연도 싫습니다. 지금은 오갈 곳도 없으니 당연히 친정으로 가야지요.”

“그럼 지금 당장 돌아가시오. 그리고 저 남편에게는 한 푼의 돈도 줄 것이 없소. 만약에 나중에라도 무슨 말이 있다면 이것을 관가에 보이시오. 그럼 저 사람을 잡아다가 볼기를 칠 것이오.”

그러면서 품속에서 조그마한 봉투를 내밀었다. 부인이 받으려고 다가오자, 조용하게 귀엣말을 했다.

‘실은 그냥 빈 봉투요. 하지만 저 친구는 이것이 두려워서 전혀 어떻게 하지 못할 위인이오. 그러니 안심하시오. 다만 절대로 보여줘서는 안 되오.’

“예, 어르신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 어찌 다 갚아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은혜는 무슨... 허허허.”

진상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휘적휘적 가던 길을 계속했다. 주변의 구경꾼들도 경이로운 눈빛으로 진상도를 바라보면서 수군거렸다.

“아마 신선이 내려오셨나 봐. 하도 못된 짓을 하니까 벌을 내리시러 오신 거야.”

“에이, 신선이 어디 있어. 저분은 암행어사이신 것 같네. 아까 준 봉투는 아마 그것을 증명하는 것임이 분명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귓가로 흘리면서 주막으로 향해서 컬컬하던 목을 축이려고 자리를 잡았다. 마침 주막 주인도 여태의 광경을 보고 있던 터라 존경스러운 마음에서 공손하게 다가와서 굽신거렸다.

“에구, 어르신의 일처리가 참으로 속이 시원합니다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것들을 다 알 수가 있남요? 소인은 참으로 신기하고도 오묘하게 생각되는구먼요.”

“그러시오? 허허허.”

“저도 좀 관상을 보아주실 수 있을는지요?”

진상도는 주인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 큰 재물복은 타고나지 못했지만, 부지런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기색을 살펴보니까 이마에서 약간의 탁기(濁氣)가 보였다. 그렇다면 관청이나 부모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관액은 붉은 기운을 띠게 되는데, 오히려 회색빛을 띠고 있는 것이 부모에게 무슨 걱정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부모님에게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모양이구랴.”

“예, 정말 용하십니다. 어머니께서 지금 의식을 잃고 계신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기운을 차리시려는지 걱정이 여간 아닙니다요.“

“과히 걱정을 마시오. 아마도 한 달 이내에 기운을 차리시고 예전처럼 활동을 하실 거외다.”

“예, 그래요. 그렇다면 이제 안심입니다요. 정말 고맙습니다.”

연신 굽신거리면서 감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상도는 이러한 일들이 전혀 무익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달마대사와 약속을 했듯이 정리를 해서는 뭔가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활용이 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자 마음이 약간은 흥분되기도 했다. 그리고 스스로만 생각을 정리할 것이 아니라 뭔가 좀 더 안목이 탁월한 선배가 있다면 찾아가서 좋은 토론을 해봤으면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무슨 자극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잠시 그렇게 생각에 잠긴 사이에 음식이 나왔다. 우선 요기를 하고서 길을 떠나야 하기에 든든하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