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2. 심곡(深谷)의 초청장(招請狀)

작성일
2017-01-0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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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2. 심곡(深谷)의 초청장(招請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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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제자를 아끼는 마음으로 세심한 보살핌에 힘을 입어서 숭산의 소림은 날이 갈수록 그 위용을 자랑하면서 중원의 제일가람으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그렇지만 소림굴에 달마대사가 은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함구(緘口)하고 있었서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소림의 제자들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으며 오로지 혜가를 비롯한 몇 명의 장로(長老)들만 알고 있는 극비사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황제으로부터 사약을 받아서 죽은 달마를 장사까지 지낸 마당에 또 하나의 달마가 소림에 있다고 하면 그것은 또 다른 재앙이 될 것이 너무나 자명하기에 이 비밀은 절대로 밖으로 알려질 수가 없었다. 물론 달마가 거처하는 소림굴은 사찰과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일반 대중은 그 존재 자체를 알 수도 없었다.

이 무렵부터 소림사에 머무는 대중이라면 이제 누구든지 형상심법에 근거해서 수행의 방법을 안내해 주고 정진을 하니, 그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혜가는 숭산의 암자에 거주하는 화상들에게도 이 방법으로 수행을 시켰다. 그래서 곰처럼 생긴 제자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시키고, 여우처럼 생긴 제자는 행선(行禪)을 수행하도록 하니 모두 얼굴에서는 생기가 돌고 활기가 넘쳤다.

이러한 혁신적인 지도자의 혜안으로 인해서 숭산의 소림사는 나날이 발전을 하게 되었고, 천하의 모든 사찰에서도 소림사의 수행법을 배우기 위해서 속속 숭산으로 모여들게 되었으며 그러한 영향으로 인해서 소림사는 중원의 제일가람으로써 그 면모를 자랑하게 된 것이다.

한편 달마대사는 여전히 소림굴에 은거하면서 상법을 근거로 하고 역근경을 토대로 해서 또 새로운 신체단련법을 연구하느라고 골몰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구가 되는 것은 즉시로 혜가를 통해서 시험이 되었고, 언제나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해서 소림사가 무림(武林)에 등장하게 될 인연을 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소림의 제자들은 신체가 건강해지고 힘이 넘치니까 자연히 무공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나라가 무질서해서 스스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관리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집을 떠나서는 산적이 되거나 도둑이 되어서 오히려 가혹한 세금으로 피폐한 백성을 괴롭히는 것이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니 힘도 없고 하염없는 자비문중(慈悲門中)인 사찰은 늘 그들의 놀이터가 되다시피 했으니 무공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렇게 수행도량을 망설임도 없이 수시로 침범하고 소란을 피웠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말로써만 다스린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혜가는 달마에게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무술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래서 달마는 수행도량을 침범당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으로 서둘러서 만들게 된 것이 오형권(五形拳)이다. 오형권은 다섯 가지의 동물을 한 팀으로 만들어서 누구든지 이 다섯 가지의 무술이 어우러지는 위력 앞에서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 다섯 가지의 동물은 용(龍), 호(虎), 표(豹), 원(猿), 학(鶴)이었다. 달마는 이러한 동물들의 움직임을 연구해서 그들이 품고 있는 성질과 행동을 관찰한 다음에 그 원리에 의해서 그들이 싸우는 그림을 그리고 설명을 써넣었던 것인데, 이것은 자연의 흐름에 기초한 것이었기 때문에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였다.

호랑이의 형태로 골(骨)을 연마하고[虎形练骨] 표범의 형태로 역(力)을 연마하고[豹形练力] 뱀의 형태로 기(氣)를 연마하고[蛇形练氣] 학의 형태로 정(精)을 연마하고[鹤形练精] 용의 형태로 신(神)을 연마한다[龙形练神]
비록 다섯 동물의 형상을 취해서 무예를 연마하도록 했지만 실은 오행(五行)이 그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연의 기운과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서 더욱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금(金)의 기운을 호랑이로 표현하고, 수(水)의 기운은 학으로 표현하며, 목(木)의 기운은 용으로 나타내고 화(火)의 기운은 표범으로 대표하여 익히도록 한 까닭이다.

여기에 다시 오행이 음양으로 나뉘면서 십형권(十形拳)으로 확장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연마 과정이 된다. 여기에는 사자[獅], 코끼리[象], 말[馬], 원숭이[猴], 곰[熊]을 추가하여 더욱 강력한 권법으로 연마를 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기본적인 소림권법이 완성된 다음에는 비로소 천하무적이 되었다.

무슨 공부든지 변화가 없으면 죽은 공부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달마는 항상 기본을 배운 다음에는 변화를 익히도록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그래서 소림의 기공(氣功)은 하나하나가 모두 세인들이 군침을 흘리는 실속 있는 무공이 되어갔다.

바로 이 오형권으로 말미암아서 소림사는 무림의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 오형권과 한번 겨뤄보려고 찾아오는 무림인들도 적지 않았으나, 소림사에서는 이 무술을 외부로 유출시키지 않고 오로지 내부의 호법용으로만 사용했기 때문에 세인들은 더욱 호기심이 발동해서 궁금하였을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루는 태산에서 손님이 찾아왔는데 서찰을 들고 와서는 주지승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지객(知客)은 그 손님을 일단 객실로 안내한 다음에 혜가에게 전갈을 했다. 그가 갖고 온 서찰에는 보낸 사람의 수결이 있었는데, '심곡자(深谷子)'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심곡자라고 하면 태산에 있는 신선과도 같은 사람으로서 당시에 수많은 인물을 거느리고 있는 당대(當代)의 일문 종사(宗師)이다.

이러한 사람이 인편에 서찰을 전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함부로 다룰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혜가에게 전달이 되었으나 혜가도 이 일을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조심스러워서 오랜만에 석실의 달마를 찾았다.

“스승님, 혜가 문안드리옵니다.”

“그래 들어오게.”

“그간 법체 평안하셨는지요?”

“그래. 무슨 일로 찾았는가?”

“실은 서찰을 받았습니다.”

“그래?”

“보낸 분이 심곡자라고 하는 사람으로 되어있는데, 태산에서 살고 있는 심곡도인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제자가 함부로 처리할 일이 아니다 싶어서 이렇게 스승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품에서 서찰을 내어놓았다. 달마는 그 서찰을 읽어봤다. 친히 자필로 글을 쓴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달마존자(達磨尊者)께 문안(問安) 드리오.

빈도는 태산(泰山)의 심곡(鬼谷)에 칩거(蟄居)하고 있는 심곡자(深谷子)입니다. 본래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여 산중에서 마음이나 다스리고자 노력하였으나, 워낙 천학비재인지라 더욱 깊어지는 의문을 풀 길이 막연하던 차 풍문으로 듣기에 조사께서 달마상법(達磨相法)이라는 묘법(妙法)을 깨우치셨다고 하니 빈도는 염치를 무릅쓰고 한번 친견하기 희망인고로 이렇게 결례(缺禮)를 무릅쓰고 서찰을 보냅니다. 하오니 가능하다면 그 달마상법이라는 비법의 사본을 한 벌 구했으면 좋겠고, 언제 한 번 뵙기를 청합니다. 그럼 이만 두서없는 난필을 거두옵니다. 내내 법체 강령하시옵기 축수 드리면서 물러갑니다.]
끝에는 ‘태산(泰山)에서 심곡자(深谷子) 배상(拜上)’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혀 뒀다. 그로 인해서 본인이 직접 뵙기를 원한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고 이것은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편지를 본 달마는 혼자 웃었다. 형상심법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 어느 사이에 달마상법으로 둔갑을 했다는 것을 짐작으로 알 수가 있었다. 문구로 봐서는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투인데, 이미 사약을 받고서 죽었다고 알려진 달마 앞으로 서신을 보낸 것을 보면 그는 달마가 거짓으로 죽은 척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또 그것이 아니라면 달마상법이라는 것을 듣고서 달마가 아니고서는 만들 수가 없는 심오한 것인데, 달마대사 생존 시에는 그러한 것에 대해서 듣지 못했기 때문에 어쩌면 아직 달마는 살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서 넘겨짚고서 미리 선수를 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마대사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혜가에게 분부를 내렸다.

“내가 태산을 한번 다녀와야겠다.”

“그러시겠습니까? 나들이 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다만 각별이 주의를 기우려 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혹시라도 계략이 없는 달마가 세인의 눈에 노출이라도 될까봐 그것이 걱정이 된 혜가였다.

“그러지, 이렇게 간곡하게 노인네가 글을 쓴 것을 보면 필시 뭔가 토론을 하고 싶은 것이지 그냥 달마상법만 구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네. 그러니 날이 어둡거든 하산을 해야겠네. 그리 알고 내가 없는 동안 소림사는 그대가 잘 관리하시게.”

“예, 스승님 잘 알겠습니다. 그럼 긴 여행에 법체보존하시기 바랍니다.”

달마가 문득 생각이 난 듯이 서책을 한 권 혜가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새롭게 연구한 진법이네. 십팔(十八) 명의 고수들로 한 조를 이뤄서 서로 치고 빠지는 방법인데 이것은 예상 밖의 고수를 만났을 때 써 볼 수가 있을 것이네. 수련에 게으르지 않도록 각별하게 신경을 써서 정진하도록 하게.”

“예, 염려말고 다녀오십시오. 제자가 이 진법에 대해서 무예원의 화상들과 수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진법의 이름은 뭐라고 하면 좋겠는지요?”

달마는 급한 마음에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름...? 그렇구나. 음... 나한진으로 하자꾸나. '십팔나한진(十八羅漢陣)'이 좋겠다. 그럼 그렇게 하고 내려가 보시게.”

“예, 사부님 그럼 제자 물러가옵니다.”

달마는 그렇게 소림사를 혜가에게 부탁하고서 자신도 행장을 챙겼다. 우선 자신의 신분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곤란하므로 머리와 수염을 길렀던 것은 이런 때에 편리하였다.

소림굴에서 그동안 항상 내공을 연마해서 길을 걷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보기에는 천천히 걷는 것 같았지만, 막상 따라가려고 해 보면 장정이라고 하더라도 이내 숨이 턱에 닿을 지경이 되는 것은 달마의 보법이 얼마나 신속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빠른 걸음을 익힐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천성적으로 방랑의 기질이 있는 달마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사항이었다. 오고 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참으로 아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산으로 혜암도인을 만나러 갔을 적에도 이 보법을 이용해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서 찾아갔다.

그리고 행인들도 별로 시비를 걸지 않았다. 속가의 머슴들 옷차림에 고슴도치의 수염과 왕방울 눈알은 누가 봐도 성질이 대단히 고약할 것이라고 짐작되기 때문인지 별로 어려움이 없이 여행할 수가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물론 머리가 기니 자신에게 소림의 조사인 달마라고 생각할 사람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 편안하게 대낮에도 활보를 할 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숭산에서 정주(鄭州)를 거쳐서 개봉(開封)을 지나 제녕(濟寧)을 지나면 이내 태산이다. 거리는 불과 1300여리이니 닷새면 도달할 것이나, 바쁜 일이 없으니 쉬엄쉬엄 명승지(名勝地)를 유람하면서 열흘이 걸려서야 태산에 도달했다.

태산의 입구는 도사들의 집합소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사들이 들끓었다. 과연 태산의 위력과 심곡자의 도력을 보는 것 같았다. 질서가 있도록 구별이 되는 색깔의 옷과 도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다들 품격이 당당하고 안색도 청수해서 역시 도를 닦는 선비들이라는 말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달마는 이렇게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태산의 심곡을 향해서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그렇게 얼마를 올라가자, 관문이 나타났다. 여기부터는 일반인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도사들만 출입이 가능했다. 달마도 관문을 지키는 도사에게 일단 저지를 당한 것은 물론이다.

“귀하는 무슨 용무로 어디를 가는 것이오?”

“난 이 골짜기의 주인 양반을 만나려고 왔소이다.”

“어허~! 말버릇이 좀 고약하시군요.”

“난 원래 배워먹지를 못해서 그러니 과히 탓하지 마시오.”

“그래도 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하문주의 확인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통행증을 보여주시든가 자하문주를 만나보시든가 선택을 하시기 바라오.”

“이 녀석아, 늙은이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그냥 좀 들어가자.”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하자 관문을 지키던 문지기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그리고는 여차하면 달려들 듯이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보던 달마는 갑자기 앙천대소했다.

“껄껄껄!”

“이 영감이 실성했나...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소란을 피운담.”

“이 눈깔이 빠진 녀석들아, 나는 이 고랑탱이의 주인장인 심곡자의 초청을 받고서 출두를 했거늘 감히 여기서 막겠단 말이냐?”

“예? 우리 조사님의 초청을 받으셨다면 그 초청장은 가지고 오셨겠지요?”

그래도 심곡자의 이름을 들먹거리자, 다소 고분고분해지면서 그래도 미심쩍다는 듯이 다시 확인하는 것이었다.

문지기들과 한참 실랑이를 하면서 사람 사는 재미를 맛본 달마는 그제야 품에 간직했던 서찰을 보여줬다. 그 서찰의 발신인은 분명히 태산의 심곡자였다. 문지기는 고분고분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소인이 어리석어서 큰 어르신을 몰라뵈었습니다. 부디 노여워 마시고 어서 저 지객도사를 따라서 삼청궁(三淸宮)으로 오르시지요.”

“아닐세. 나도 잠시 객기가 동해서 한번 그래 본 것이라네, 그럼 수고하시게.”

지객도사를 따라서 삼청궁으로 심곡자를 만나러 올라갔다. 삼청궁은 입구에서도 가장 멀리 있었고, 위풍도 당당하고 웅장하면서 으리으리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 도관의 출신들이 모두 일국을 손에 쥐고 흔드는 위력이 있다는 말이 실감 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자 비로소 은은한 향 내음과 음악소리가 들리면서 삼청궁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