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제1장 화산의 노도인/ 13. 호상이불여심상(好相而不如心相)

작성일
2017-01-04 14:48
조회
2210

[013] 제1장 화산(華山)의 노도인(老道人) 


13. 호상이불여심상(好相而不如心相) 


=============================

진상도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였다. 사실 누구든지 자신에게 길들여진 몸을 남에게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달마는 거침없이 자신의 몸도 줘버리는 고승(高僧)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관상법이 뭔가 빗나간다고 해도 크게 속상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한편 자신이 연구해온 학문의 내용이 허사가 아니었다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그러시오. 뭡니까?”

“그렇게 옷이 바뀐 뒤로는 새로운 몸에 적응이 잘 되었는지 궁금하군요. 왜냐면 몸이 바뀌면 그 몸의 형상에 따라서 역시 운명도 달라져야 하는데 과연 그러했는지 아니면 워낙 고승이신지라 그러한 것에는 구애를 받지 않으셨는지 그 점에 궁금합니다. 상세한 가르침을 주시면 더없이 고맙겠습니다.”

“왜 아니었겠소. 나름대로 수행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불가의 수행과는 다른지라 길을 들이는데 애먹을 수밖에 없었소이다.”

“예를 들면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되셨는지요?”

“원래 불가의 수행에서는 육신을 하찮게 생각하고 정신에만 비중을 두고 수행의 목표로 삼으니 마음에 치중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외다. 그래서 고승들도 ‘심외무일물(心外無一物)’이라고까지 하면서 마음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라오.”

“당연히 그런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인(仙人)의 수행은 또 달라서 육신에 모든 것을 의지하여 수행한단 말이오. 그들의 최대 목적은 ‘영생불사(永生不死)’인 것만 봐도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인지 명료하게 알 수가 있는 일이지요.”

“그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제일주의가 되어서는 언제라도 마음보다 몸이 우선하는 바람에 마음과 몸이 싸우느라고 극심한 고통을 맞이하곤 했지요. 특히 고통스러웠던 것은 여색에 대한 문제였소. 특히 이 몸의 주인이 좌도(左道)의 방중술(房中術)을 하였던지 성욕이 너무나 왕성해서 여인이 치마만 둘렀다 하면 범하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거요. 마치 한 마리의 들소와 같았더란 말이오.”

“하하하~ 참으로 난감하셨겠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힘들었으나 그럭저럭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니까 어느 정도 내 맘을 따르더군요. 그래서 문득 사나운 들소를 길들이는 과정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소이다.”

“과연 불심으로 욕망을 제압하셨다고 하겠습니다.”

“참말로 빈승이 불타 28대 조사의 신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필시 그러한 여인들의 유혹을 견뎌내지 못하고 음계(婬戒)를 범하고야 말았을 것이외다. 그래서 마음이 몸의 유혹을 극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계기가 되었으니 어찌 불행한 일이라고만 할 수도 없겠더이다.”

“그러셨군요. 참으로 기묘한 일입니다.”

“그래서 항상 생각하기를 마음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오. 만약 마음이 전부였다면 실제로는 몸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전혀 상관이 없어야 하는데 빈승은 실로 이 녀석을 길들이는데 적어도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소이다. 실은 소림굴에서 9년간을 면벽만 하고 있었던 것도 이 녀석과 싸움이 더 컸을는지도 모르오. 껄껄껄.”

“그랬겠습니다. 허허허~!”

“그럼 이제 혜암도인의 궁금증은 다 풀린 것이오?”

“예, 물론입니다.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여서 정신없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형상과 마음은 서로 연관을 가지면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형상이 타오르는 불처럼 생긴 산에서는 해마다 산불이 잘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니까 몸이 주인인가 마음이 주인인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부질없는 공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심신불이(心身不二)’라고 하신 부처의 가르침에서 결국은 몸은 마음을 따른다는 해석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부처님도 정신만 중요하다고 한 것은 아니란 말입니까?”

“그렇고말고요. ‘몸과 마음은 거문고 줄 고르듯이 다루라.’는 말씀이 있었던 것을 보면 후대에서 유심론(唯心論)으로 기운 편중 현상이 있었다고 봐도 되지 싶구려. 원래 부처의 가르침은 마음제일주의가 아니었는데 그 후의 제자들이 육신을 하찮게 여기고 마음을 존중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일어난 오류라고 봐야 할 것이오이다.”

“그런데 역시 또 한 가지의 고민이 생기는군요...”

“엉? 또 뭐가 고민이란 말이오?”

“만약 존자님과 같은 분을 또 만난다면 과연 관상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상대를 해야 할는지가 참으로 난감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흠... 딴은... 그렇게도 하겠소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어디 만분지일(萬分之一)인들 가능하겠소이까? 그냥 그런가보다 해도 되지 않을까 싶으오만. 껄껄껄.”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깊은 명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언제라도 생각에 몰두하면 주변에 누가 있든지, 밤낮이 바뀌든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명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달마도 입정(入定)하고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 살폈다. 그렇게 해서 또 나흘째의 새벽이 흘러갔다.

 

화산의 깊어가는 가을밤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사흘째의 새벽이 찾아왔다. 갑자기 야명주에서 밝은 빛이 한번 번득이는 듯했다. 그 순간, 명상에 잠겼던 두 도인은 동시에 눈을 떴다.

“바로 그거다!”

“바로 그것이구나!

거의 동시에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를 질렀으므로 얼핏 보면 마치 그림자와 물체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 같았고, 미리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는 것과도 같았다. 그렇게 일어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다보면서 미소를 머금은 후에 각기 자신의 앞에 있던 천에다가 글귀를 적었다.

「호상(好相)은 불여심상(不如心相)」

“흠...”

진상도는 달마가 써놓은 글귀가 자신이 쓴 것과 같은 것을 흡족하게 바라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였고, 달마도 글귀를 한참 보고 있더니 앙천대소를 했다.

“껄껄껄! 혜암도인. 이것이 정답이었소이다.”

“역시 달마존자의 깊은 지혜는 당금 천하에 당할 자가 없소이다. 허허허.”

“무슨 말씀을, 혜암도인이야말로 진실로 형상 밖의 형상을 볼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으뜸이 될 거외다. 껄껄껄.”

“그러니까 아무리 생긴 모습이 거룩하고 복록(福祿)을 타고 난 것으로 태어났더라도 심상(心相)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로군요. 과연 아무리 몸과 마음이 음양의 이치로서 균형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역시 결국 주인공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오.”

“결국 생긴 외양(外樣)이 흉하다고 해도 그 마음을 잘 쓴다면 좋은 상을 갖고서 살아가는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점을 헤아리게 되었군요. 실은 달마존자의 모습은 산적의 형상인데 그 이면에 흐르는 청기(淸氣)는 도저히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니거든요. 이것만 봐도 역시 심상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보는 것이 한 수 위라는 결론이 나온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소. 불타께서도 처음에는 왕궁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으로 몸을 감싸고 위하다가, 나중에는 또 몸을 버리고 정신만을 위해서 고행(苦行)을 하셨는데, 결국은 몸과 마음이 모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시고 나서야 비로소 확철대오(確徹大悟)를 깨닫게 되었다고 하오.”

“참으로 대단한 현인들이십니다. 그렇게 몸소 연구하고 실행하시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는 가르침은 천추만대의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그야 혜암도인도 같은 의미일게요. 이렇게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 정미(精微)로운 탐구(探究)를 하는 도인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닐 것이외다.”

“별말씀을요. 빈도는 천성이 우둔하여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노루의 꼬리만큼도 안 되는 지식으로 만족하고 으스댔을 것입니다.”

“참, 그 허접한 두루마리는 두고 볼 가치가 있겠소? 아니면 그냥 갖고 갈까 싶어서 하는 말씀이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보다 훌륭하고 심오한 가르침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습니까? 괜찮으시다면 빈도가 좀 더 찬찬히 살펴보고 연구를 했으면 합니다. 이미 존자께서는 다 깨닫고 난 나머지이니 별로 소용이 되지 않으실 것으로 봐서 저에게 맡겨 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러시다면 뭐 잘 맡아서 엉성한 곳은 정밀하게 다듬어 주시고, 군더더기는 깎아내어서 그럴싸하게 만들어 주시오.”

“어찌 감히 그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약간의 견해가 생긴다면 추가해서 군살이라도 붙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나게 될지는 기약을 할 수가 없겠지만 모쪼록 보중하시고 후진을 기르는데 많이 애써 주시오. 빈승은 숭산에서 부족한 힘이나마 제자들을 위해서 더 펼치고자 하겠소이다.”

“소림사는 날이 갈수록 선가(禪家)의 명찰로 이름을 떨치게 될 것입니다. 언제 지나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오. 언제든지 환영이외다. 그럼 이만 작별을 고하리다. 보중하시오~!”

“존자님도 편안하신 귀로되시기 바랍니다. 감사드립니다.”

두 도인과 고승은 그렇게 합장을 하고서는 작별했다. 깊은 산곡(山谷)에서는 여전히 낙엽이 지는 소리만 고요의 적막을 깨뜨리고 있었다.

진상도는 다시 한 달을 더 석실에 머물면서 달마가 주고 간 심법에 대해서 골몰하고 있었다. 사람의 외형을 보고서 길흉을 판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법기(法器)인지 속물(俗物)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이며, 수명(壽命)의 장단(長短)이며 가족의 인연이며, 어느 것 하나 빠트리지 않고 꼼꼼하게 기록을 한 자료를 보면서 연신 무릎을 치면서 탄복(歎服)을 했다.

그렇게 탐독(耽讀)을 한 다음에는 깨끗한 항아리에 고이 담아서 겉에다가는 조그마하게 「달마상법(達磨相法)」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석실의 선반에 올려놓고는 다시 석실을 나와서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