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제1장 화산의 노도인/ 7. 화산(華山)의 암벽

작성일
2017-01-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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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제1장 화산(華山)의 노도인(老道人) 


7. 화산(華山)의 암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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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혜령이 잠에서 깨어나니 진상도는 이미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거닐고 있었다. 소에게도 이미 풀을 뜯어다 줘서 열심히 되새김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스승님께서는 편히 쉬셨습니까? 제자가 늦잠이 들었네요.”

“잘 쉬었네. 생각이 많아서 잠도 제대로 못 이루셨지?”

그제야 일어나서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서 차를 끓였다. 싸늘한 공기와 함께 마시는 차의 향이 밤새도록 쌓였던 냉기를 몰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원기를 회복한 다음에 다시 목적지를 향해서 출발했다.

그렇게 점심때까지 오르던 수레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벼랑의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천 길 벼랑의 암벽을 타고 올라야 한다. 오혜령은 경공술을 발휘해서 오를 수가 있지만 진상도는 그냥 걸어야 하니, 오혜령도 답답했으나 묵묵히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레의 대추나무를 내려놓고 소를 풀어줬다. 험한 길을 대추나무를 옮기느라고 힘들었을 텐데도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고는 오던 길을 되돌아서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오혜령이 묻는다.

“스승님, 소는 어떻게 합니까? 저렇게 어슬렁거리면서 가는 것이 걱정됩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가긴 어딜 가겠나? 자기 집에 가는 거지.”

“예? 소와 같은 미련한 동물이 자기 집을 찾아간다고요?”

“소가 미련하다고 누가 그래? 동물에게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군. 그래서 어디로 끌고 가더라도 고삐만 풀어주면 자기가 살던 집을 찾아가는 능력을 타고나는 거지. 동물에게는 다 있는 것인데 인간이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니 유일하게 영혼이 있다느니 하면서 오만한 생각을 하는 까닭에 다른 생명들과 소통을 하지 않으니 오해와 무지가 쌓여있는 것뿐이라네.”

“하긴, 스승님께서는 초목과도 소통하시잖습니까? 그것은 참으로 범인(凡人)의 접근 영역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될 일도 아니고 말이지요. 진심으로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이제야 느끼고 있습니다.”

“자, 어서 걸음을 재촉하세. 갈 길이 아직도 남았으니.”

진상도는 오혜량에게 대추나무를 짊어지게 하고서 먼저 벼랑을 올랐다. 원래가 험준한 산이었지만 진상도에게는 크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힘이라면 오혜량도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는 있었기에 그 대추나무를 진상도가 알려준 대로 화산의 중턱 약간 번번한 장소까지 이동시키는데 한나절 정도가 걸렸다.

오혜령이 경공술을 발휘해서 휙휙 나는 듯이 오르내리는 모습은 흡사 한 마리의 노루와도 같아 보였다. 어둠이 내리기 전까지 모두 이동을 시킨 다음에서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진상도를 바라보니 먼 산을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긴 모습이 흡사 신선의 모습 그대로였다.

“스승님 모두 다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뭘 하려고 이 산속까지 끌고 옵니까? 혹 땔 나무가 필요하다면 산속에도 지천으로 널린 것이 나무인데 그것은 아닐 것이고.”

“다 쓸 곳이 있어서 그런다네.”

“글쎄요. 이걸로 뭘 하시려고 그러는지 우둔한 제자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를 않습니다.”

“그대는 벌써 잊었나?”

“예? 뭘 말입니까?”

“아, 내가 자네의 병을 고쳐주기로 하지 않았는가 말일세.”

“제가 그 말씀을 어찌 잊겠습니까요. 그렇다면 제 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 나무가 무슨 연관이 있는가 보군요? 삶아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하하~!”

“실은 이제 말이네만 내가 필요한 것은 그 댁 아들을 구하는 것도 구하는 것이지만 그 오백 년 묵은 대추나무가 더 필요했다네. 예전에 지나면서 봤을 적에는 언젠가 필요한 곳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연(偶然) 같은 필연(必然)으로 자네를 만났지 뭔가.”

“원, 설마하니 이 나무를 얻자고 그 일을 했단 말인가요?”

“자네의 증세를 보는 순간, 이 대추나무가 떠올랐고 그래서 자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라네. 세상을 살아가는 도인도 이렇게 인연에 따라서 흘러가는 배와 같다네. 어찌 이러한 조짐이 없다면 미래를 안다고 하겠는가.”

오혜량은 의아해서 진상도를 바라다보았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서 마치 관음보살과도 같은 자비의 미소를 느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제자는 참으로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 대추나무가 도대체 저와 무슨 연관이 있기에 구해 오신 건지 참으로 요령부득(要領不得)입니다. 속 시원하게 설명이나 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 때문인가요?”

“세상만사는 다 때가 있고 시기가 있는 것이라네.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도 곤란하니 일 년만 기다리게. 그럼 내가 상세하게 그대에게 설명해 줌세. 그리고 그때쯤이면 그대도 아마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예전의 기운을 되찾게 될 것이고, 그러나 만에 하나.”

“만에 하나라뇨? 무슨 뜻이지요?”

“만에 하나라도 일이 잘못되면 말일세.”

“그럴 리가 있나요. 이 제자는 그동안 스승님과 동행을 하면서 모든 것에 대해서 분명한 마음으로 다 믿을 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실수를 할 분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데 일이 잘못되다니요.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비록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다시 그 몸서리치는 고통이 다시 생겨난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두 번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광경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번에 성공을 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나도 잘 되면 좋겠지만, 혹 일이라는 것이 사람은 최선(最善)을 다하지만 천지신명(天地神明)은 그러한 것을 거부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네. 더구나 자네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살생을 했는가 말일세. 그 살생한 과보(果報)를 그냥 넘길 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게. 그 과보가 우리의 노력보다 더 앞선다면 아마도...”

“알겠습니다. 스승님께서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도 같습니다. 그러니까 천지신명께 진심으로 참회의 마음으로 정진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래, 바로 그것이네. 과연 자네가 그러한 업장(業障)을 모두 소멸(消滅)시킬 만큼의 참회(懺悔)와 노력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에 성사의 여부가 달렸다고 하겠네. 그러니까 내가 안내를 할 수가 있는 것은 여기까지라네. 이제부터는 자네의 염원과 열정이 필요할 뿐.”

“잘 알아듣겠습니다. 진심으로 천지신명께서 용서를 해 주실 수가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난 일단 인연 따라서 아우에게 길을 인도해 주겠네. 여기에서 성공하고서 건강한 몸으로 내려가든지, 아니면 다시 원래의 그대 몸으로 돌아가던지 그 부분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세.”

“스승님 각골명심(刻骨銘心)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부디 그러길 바라네. 그럼 이제부터 내가 방법을 일러줌세.”

“예, 하나하나 가르침에 따르겠습니다.”

진상도는 벼랑의 거대한 바위벽을 가리켰다.

“오늘은 여기에서 밤을 새우고 내일 새벽 인시(寅時)가 되거든 이 벽에다가 나랑 약속한 대로 석실(石室)을 만들게, 전후로 열 걸음 좌우로 열두 걸음이 되고 높이는 10척이 되는 크기라야 하네. 또한 이제부터 자네의 그 보검은 전혀 필요가 없네. 아니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보검에는 절대로 손을 대면 안 되네.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이 대추나무를 휘둘러서 바위를 쪼아내도록 하게 아마 1년이 걸릴 걸세.”

“예, 시키는 대로만 하겠습니다. 팔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참회와 반성의 일념으로 시행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오혜령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서 목이 메고 코끝이 찡했다. 진정으로 자신의 몸을 고쳐주기 위해서 이렇게 정성을 기울이는 진상도에 대해서 감격스러움과 자신의 모습이 옛적에는 그렇게도 자랑스러웠다는 것이 이렇게 비참함으로 느껴진다는 것에 대한 울컥함이었다.

“저 삼백예순 개의 대추나무 몽둥이는 하루에 하나씩 없어질 것이네. 그러면 마지막의 몽둥이가 없어지는 날이 바로 1년이 되는 거지. 그날까지는 절대로 하산을 해서도 안 되고, 이 자리를 떠나도 안 되네. 오로지 손에는 이 몽둥이를 들고서 저 바위벽하고 싸우게.”

“예, 잘 알겠습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절대로 칼은 잡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분부하신 대로만 수행하는 마음으로 전심전력(全心全力)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대가 바위를 잘라내기 위해서 칼을 잡는 순간 나와의 약속은 깨어지는 것이네. 그럼 그대의 의지력으로 한번 생사의 고해(苦海)를 건너서 자유로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보시게 나는 가끔 식량을 갖고 오겠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시니 이 제자는 각심(刻心)하고 약속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네.”

“예, 스승님. 옥체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당부의 말을 거듭 남기고는 한 조각의 구름이 움직이는 듯이 어둠이 내리는 계곡 속으로 표연(飄然)히 사라져 갔다.

진상도가 사라져간 어둠 속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되는 오혜량은 한참을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유도 모른 채로 암벽과 싸워야 할 대추나무 몽둥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내일 인시(寅時)가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고 싶은데 신신당부를 하던 말씀을 생각하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내일이면 중양절(重陽節)이구나. 이러한 것도 모두 스승님의 계획에 포함된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일까? 아,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떠오르는구나.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 것일까? 그것을 알 수 있는 스승님과 봐도 모르는 나는 과연 무슨 차이인가.”

벌렁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다. 장백산을 떠나서 강호를 유람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고, 누군가 고수라는 풍문이 들리면 기어이 찾아가서 대결을 청하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즐겼던 희열감, 비통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괴로워하던 무림 인물들을 향해서 비웃어주던 오만함, 흑백의 양도를 가리지 않고 휘젓고 다닐 적에 느꼈던 자유로움이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러한 것은 모두가 한낱 철부지의 우쭐거림에 불과했다는 생각과 함께 그 모두에게 참회의 마음이 솟구쳤다. 그러다 다시 몸의 피가 끓어오르는지 격렬한 냉기(冷氣)로부터 얼어붙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이제 이러한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큼 익숙해졌다. 밤이 되면 냉기로부터의 고통이 다가오고, 낮이 되면 다시 열기로 인한 고통이 번갈아서 괴롭히기를 몇 해던가.

다시 멀지 않은 곳에서 올빼미의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구우우~~”

“우우구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