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제1장 화산의 노도인/ 6. 노숙(路宿)

작성일
2017-01-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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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제1장 화산(華山)의 노도인(老道人) 


6. 노숙(路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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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덜덜덜..”

수레는 두 사람을 옆에 데리고서 계속 험준한 산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오혜량은 아까부터 뭔가 말을 꺼내고 싶었으나 골똘하게 생각에 잠긴 진상도에게 감히 말을 꺼낼 수가 없어서 그냥 눈치만 보면서 소를 몰았다.

얼마를 그렇게 가는데 해가 저물었다.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고 이미 해가 저문 늦가을의 싸늘한 기온이 전해져왔다. 자신은 무공으로 단련이 되어있어서 이 정도의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무공도 없어 보이는 진상도는 추위를 느낄 것도 같아서 말을 꺼냈다.

“스승님, 오늘은 이쯤에서 유숙(留宿)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곧 어둠이 찾아오겠는데 더 가면 쉴 곳이 마땅치 않아 보여서 여기에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겠네. 그럼 오늘은 이 나무 아래에서 하룻밤을 신세 지도록 하세.”

“그럼 제자가 저녁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게 나는 주변을 둘러보겠네.”

오혜량이 그 장원에서 얻어온 음식을 준비하고 불을 피우는 사이에 진상도는 주변을 돌면서 뭔가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돌아온 진상도에게 물었다.

“지금 뭘 하고 계셨는지요?”

“아.. 별것은 아니고, 짐승들이나 심보가 고약한 머리 검은 짐승이 혹시라도 다른 맘을 품고 못 들어오게 약간의 기문진법(奇門陣法)을 장치했네, 잠은 편안하게 자야 하지 않겠는가? 허허허~”

기관에 대해서라면 오혜량도 익히 듣고 본 바가 있어서 바로 이해했다. 진법(陣法)에도 능통한 것으로 보이는 진상도는 도대체 모르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아마도 기문(奇門)에도 정통(精通)하고 있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봤다. 그러다가 문득 아까의 일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장원에서 얻어 온 떡과 고기를 안주 삼아서 술잔을 비우고서 장작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분위기는 조용하여 저 멀리서 들개들이 짖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런데 스승님.”

“그래 뭔가?”

“아까 낮에 말입니다.”

“그래.”

“그 장원에서 아들에게 우환(憂患)이 있을 거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참으로 신기합니다. 어떻게 그러한 것을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까? 그게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인지 막상 두 눈으로 보고서도 믿어지지 않아서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아, 그랬을 만도 하구먼. 그것이 조짐(兆朕)을 읽는 요령을 터득하면 모두가 가능한 간단한 방법일세. 한 번 배워 보려나?”

“아닙니다. 감히 제자같은 속인이 어찌 그러한 세계에 범접(犯接)이나 하겠습니까? 다만 마치 맷돌을 맞추듯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스승님께서 낭패라도 당하게 되실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했었고요. 그래도 잘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오혜령은 긴장된 그 순간을 떠올리자 다시 등줄기에서 땀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한 것을 마치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척척 풀어가는 모습에서 사람의 능력을 벗어난 선인(仙人)의 경지에서 노니는 분이 아닐까 싶은 생각조차 들었다.

“아까의 그 나무는 표정이 있던가?”

“없지요. 나무에 무슨 표정이 있겠습니까? 동물이라면 또 몰라도 말이지요.”

“아닐세... 나무에도 표정이 있다네. 마치 그날 동정호에서 표정을 감추려고 하였지만 나는 알아보았듯이 나무에도 그 표정이 있어서 나는 읽을 수가 있다네.”

“그렇다면 그 대추나무의 표정을 읽었다는 말입니까?”

“그런 셈이지... 더 자세히 말한다면 그 대추나무에 있는 신(神) 기운을 읽었다고 해야 할 것이네만...”

“그러니까 그 나무에서 괴이(怪異)한 기운이 나와서 그 집안에 우환을 일으켰다는 것을 파악하셨다는 말씀이군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참으로 신기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하고요. 어떻게 그러한 것을 미리 알 수가 있는지 그것은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럴 만도 하겠군. 그렇게 궁금해 하니 심심풀이 삼아서 그 이야기를 들려줌세.”

오혜량은 저녁밥을 데우고 남은 불길이 사그라지기 전에 차를 한 덩어리 넣고 끓였다. 그렇게 해서 밥을 먹은 그릇에 차를 따라서 앞에 놓고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정중고목(庭中高木)은 백해무익(百害無益)’이라는 말을 들어 봤는가? 그러니까 담장 안에 높은 나무 그것도 오래된 나무가 있으면 가족들에게 해롭다는 말이 있단 뜻이네.”

“그야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입지요. 그렇지만 그 집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며, 그 집에 오래된 대추나무가 있을 것이라는 건 길을 가다가 문득 바라보고 알 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그것을 미리 아셨습니까?”

“그것은 미리 알아 뒀던 것이라고 실토를 해야 하겠네. 허허허~!”

“아, 그러셨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뭔가 척척 맞아떨어지는 듯한 상황들이 너무도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무겁게 싣고 산을 오르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인지도 궁금하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수레에 실린 대추나무 토막을 바라다봤다. 무거운 것이야 소가 싣고 간다지만 산중에는 쌓이고 쌓인 것이 나무들인데 이것을 멀찍이 버려주려고 갖고 가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다른 뜻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들면서 참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2년 전쯤이었네. 화산에서 좋은 자리를 발견하고 3년 동안 학문을 연마하다가 갑갑한 마음에 강호를 유람하려고 하산을 하였었다네. 그러다가 우리가 올라가던 길을 내려가고 있었지. 도중에 시장기를 느껴서 주변에서 해결할 만한 주막이 있을까 하여 두리번거리던 차에 그곳까지 가보게 되었던 것이네. 그리고 괴이하게도 거대한 대추나무가 정원에 있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는데 참으로 좋지 않은 기운을 품고 있었지.”

“그러니까 예전에 봐 뒀던 것을 필요에 따라서 다시 찾아가게 되셨던 것이로군요. 그렇다면 그 당시에 그러한 것을 알려주지 않으셨습니까?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지를 생각하니 딱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계기(契機)라는 것이네. 뭔가 문제는 있어 보이는데 지금은 딱히 그 문제를 해결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래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던 것이네.”

“뭔가 알쏭달쏭합니다만 그래도 느낌으로는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나무를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나무가 그 자리에 있던 것인지 다른 곳에 있던 나무를 옮겨온 것인지를 알 수도 있단 말인가요? 그것조차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야 관찰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스승님께서는 기본이라고 하시는 것을 우둔한 제자는 도무지 짐작조차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알기 쉽게 설명을 좀 해 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럼세,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허허~”

“우둔하지만 귀를 씻고서 열심히 듣겠습니다. 하하~”

“그럼 잘 생각해 보게, 그 나무의 생긴 형상은 어떻게 생겼던가? 길게 생겼던가? 아니면 넓게 생겼던가?”

“보자... 그러니까 키가 삐쭉하게 큰 모습이었지요.”

그러면서 수레에 실린 채로 끌려오고 있는 대추나무 다발을 바라다봤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볼까? 그 주변에는 많은 나무가 있던가?”

“아니지요... 가만, 그렇다면 주변의 상황에서는 그 상황에 어울리는 나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가요?”

“맞네. 허허, 이제 자네도 반 도사는 되었네 그려, 바로 그런 의미라네.”

“원, 세상에 그렇게 간단한 방법을 이 제자는 생각도 못 했군요. 알고 보면 누구나 알 수가 있는 것이었네요.”

“다 그런 거라네, 그러한 것을 누구나 보지만 그 바라다보는 눈의 주인이 각기 다른 고로 저마다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나기 마련이라네.”

“흠... 그런 것이로군요...”

“세상에는 무엇 하나라도 우연으로 생긴 것이 없다네, 그러니까 나는 그러한 형상을 살펴봄으로써 그 원인을 찾아가는 것이라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도 신기한 것이 아니라고 해야지. 다만 관찰력이 약간 있다고 하면 정확할 것이네만.”

“스승님의 말씀은...... 그렇다면, 저 같은 우둔한 사람도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요?”

“우둔하다니, 겸손이 지나치구먼 그려. 자네의 명성은 당금 무림계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인 것을 말일세.”

“제자도 처음에는 그러한 말에 우쭐하기도 했었지만 요즈음 스승님과 동행하면서 그 생각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공명심이었는지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비로소 삶을 위해서 칼을 썼다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항상 남을 죽이는 데에만 칼을 휘둘렀지요.”

잠시 회한의 기색으로 자오검은 하늘을 응시했다.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동안 항상 천하제일(天下第一)이 되겠다는 생각 하나로 얼마나 많은 사람과 피를 흘리면서 대결을 해왔는가를 생각하니 새삼 몸서리가 쳐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검은 달랐다. 병든 자식을 살리겠다고 애쓰는 한 가장의 소원에 이끌려서 자신도 모르게 칼을 뽑았는데, 결국 그 칼은 예상 밖에도 사람을 살려낸 꼴이 되어버렸으니 참으로 기분이 기묘하였다. 원래 칼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무공이 높은 절정의 고수가 아닌, 일개의 고목 한 그루와 싸웠다는 것이 만약 1년 전만 같았어도 자오검 오혜량의 명성에는 먹칠하는 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완전히 생각이 달라져서 사람을 살리는 검도 될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뭘 그리 생각하는가?”

갑자기 적막을 깨고서 진상도가 말을 던졌다.

“스승님의 그 심오한 말씀은 제자의 뼛속 깊이 파고드는군요. 정말 그동안 뭘 생각하면서 살아왔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사람 무인답지 않게 그 무슨 소린가. 이제 그런 말 그만하시게. 그만 쉬어야 내일은 산을 오르지. 그만 주무시게.”

“그런데...”

“더 물어볼 말이 있는가?”

“예, 실은 그렇게 단칼에 나무를 잘라야 할 이유라도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혹 거기에서 무슨 까닭이 있었을 것만 같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스승님은 무엇이든지 그냥 보아 지나치는 것이 없기에 혹 무슨 이야기가 그 속에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궁금해집니다. 이 마음이 풀리기 전에는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기도 하겠군.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이지만, 또 생각을 해 보니 그 속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는 것은 그대의 상당한 관찰력이 생긴 것으로 보겠군. 좋은 현상이네.”

“그동안 동정호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승님을 보면서 늘 눈에 보이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 낸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항상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일을 보면서 문득 제자도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고서 열심히 수련을 한다면 혹 깊은 이치를 관찰하는 안목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 욕심이 문득 드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것은 자네의 몸에 얽혀있는 문제를 제거하는 것이네. 그다음에도 여전히 이러한 것에 대해서 마음이 쓰인다면 그때 가서 물어도 늦지 않을 것이네. 당장 궁금한 것이나 설명해 줌세. 허허~”

차를 다시 한 잔 마신 진상도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 나무를 단칼에 잘라야 하는 것도 생각해 보면 그만한 이치가 있다네. 혹 자네가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음, 제자가 생각하기에는 혹 그 나무에 붙어있었다는 귀신이 난동을 부리기 전에 나무를 잘라야 한다는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은데... 아무래도 천박한 생각이겠지요?”

“아니네. 그럴만한 의미도 있다네, 그런데 또 다른 의미도 있지.”

“그러니까 그것을 듣고 싶습니다.”

“우선 나무의 기(氣)가 흩어지기 전에 알뜰하게 모아둘 필요가 있었지. 그러니까 신속하게 나무의 기운을 그 안에다가 담아두는 것이 목적이었다네. 마치 단오절(端午節)에 약쑥의 기운이 잎으로 다 모여서 절정의 약효를 갖고 있을 적에 재빨리 잘라서 건조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겠네. 그때가 지나면 다시 쑥의 약 기운이 뿌리로 서서히 내려가게 되면 효력이 떨어지는 까닭이지.”

“그렇다면 지금 이 나무들은 또 달리 쓸 곳이 있다는 의미인가요?”

“물론이지. 그것도 아주 중요한 곳에 쓰일 것이라네. 그러니까 대추나무의 목기운이 흩어지지 않도록 자네의 칼 솜씨가 필요했던 것이기도 하지.”

“그렇게 나무에 깃들어 있는 나무의 기운까지도 쓸데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세상에는 원래가 쓸모가 없는 것이 없다고 보면 가장 옳을 것이네. 그러니까 사람들이 쓸모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쓰일 곳을 제대로 찾지 못했을 뿐이라네. 막상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참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얼마나 정밀하게 움직이고 있는지. 항상 감탄할 뿐이네.”

오혜량은 문득 장검 한 자루에 생명을 걸고 천하를 종횡(縱橫)하던 자신의 지난날들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볼품없이 느껴졌다. 개미 한 마리에도 쓸모가 있음을 생각하고, 나무 한 그루에서도 그 기운을 생각하는 법이 있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회한(悔恨)이 엄습했다. 무슨 이야기든 스승과 나누다가 보면 자책(自責)하는 것으로 결말이 돌아가는 것조차도 심히 부담스러웠다.

“새삼 모든 사물이 다시 보입니다. 과연 그렇게 대충대충 봐온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한 가지도 우연히 이뤄지고 진행되는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놀라울 뿐입니다. 진리라고 하는 것도 과연 그러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네, 그리고 내가 어째서 그렇게 느릿느릿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나중에 알게 될 걸세.”

“그것에도 이유가 있었단 말입니까? 그런 이야기를 진즉에 해 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랬습니다. 제자는 그 깊은 뜻도 모르고 뭉그적거리며 빙빙 둘러서 이동하는 스승님의 행보를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스스로 느끼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네. 항상 사물을 보고서 깨닫는 것은 자신이 느낀 만큼뿐이지. 벌레가 기어가는 것도 그 자체가 진리이고, 잡초가 자라고 있는 것도 그 자체가 완전한 자연의 이치이지만 사람은 자기가 느낀 만큼만 그 눈으로 사물을 보고 또 그만큼만 얻는다고 볼 수가 있다네. 그래서 예전의 스승들은 제자들이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기다려준 것이라고 볼 수가 있겠네.”

“음....”

“아니, 잠을 자지 않을 텐가? 그만 쉬어야 또 내일 산을 오르지. 난 이만 자려네.”

“예, 스승님 편히 쉬십시오. 제자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지키다니? 누굴 지킨단 말인가? 자네 자신이나 지키게.”

“그래도 혹 들짐승이라도 올지 모르니까...”

문득 아까 기관을 설치하던 장면이 떠올랐던 오혜량이 머쓱하게 웃었다. 이미 사전에 모든 조치를 해 뒀는데 괜한 걱정을 했다는 것이 어색했다.

“자네는 참 번뇌도 많군. 나는 산에서 살면서 온갖 짐승들과 함께 생활했다네. 그리고 나를 해칠 짐승은 없지. 자네처럼 남을 해친 적도 없으니까 사람인들 나를 해롭게 할 리도 없고, 그러니 나는 언제 어디서나 맘이 편하다네. 허허허~!”

“......”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오혜량은 조용히 누워서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해 봤다. 스승님이 그 나무의 귀신을 위로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 나무에는 귀신이 붙어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괜히 헛된 모습을 함으로써 그들에게 마음으로 그렇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였을까...?

이러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상도는 이내 깊은 잠이 빠져들어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 곳에서나 거리낌 없이 편안하게 잠에 빠져드는 진상도를 보면서 오혜량은 왠지 모를 한줄기의 시원한 기운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어오는 것만 같아서 모처럼 편안한 기분으로 잠 속으로 빠져들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