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제1장 화산의 노도인/ 3. 자오검(子午劍)의 내력

작성일
2017-01-0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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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제1장 화산(華山)의 노도인(老道人) 


3. 자오검(子午劍)의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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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검(子午劍)이라는 호로 불리는 오혜량(吳慧樑)의 내력은 이러했다. 오혜량의 검법은 수화(水火)의 기운으로 응집된 상극(相剋)의 기운을 품게 되는 특이한 검법이었는데, 그는 서로 상반된 두 가지의 극냉(極冷)한 살기가 가득한 음기(陰氣)와, 극렬(極烈)한 폭발력(爆發力)을 갖고 있는 양기(陽氣)가 완전히 상반된 기운이 넘치는 검법이었다.

이러한 검법으로 인해 광활한 중원천하에서 그와 대적해서 이긴 사람이 없을 즈음에 그는 너무도 당연한 호칭인 천하제일(天下第一)의 검성(劍聖)이 되었던 것이다. 불과 10여 년 만에 그렇게도 선망(羨望)의 대상이었고 무림인으로써는 최상의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그러한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또 그에 상응해서 그가 도전했던 수없이 많은 무림의 흑백(黑白) 양도의 모든 무림인들도 그가 휘두르는 자오검법의 기운 앞에서는 하나같이 자신의 비전(秘傳)의 절학(絶學)조차도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인가? 그가 세상의 고수들을 다 꺾고 날 즈음에 자신의 몸에서는 이상한 신호가 발생하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잠시 그러다가 말겠거니 하면서 더욱 열심히 무공(武功)을 익혔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고통은 더욱 치열(熾烈)하게 심장과 머리를 파고들어서 이를 악물고 치를 떨었던 것이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맹렬하고도 강력한 냉기와 열기가 몸의 좌우를 휘감아 돌아 도저히 자오검을 손에 쥘 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이 극심(極甚)했던 것이다. 이렇게 강한 한열(寒熱)의 기운을 자신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몸의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고래(古來)로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위험함에 눌려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게 많기 때문이다.

오혜량도 처음에는 자신이 상승무공으로 가는 길목에서 주화입마에 걸려든 것이라는 생각으로 내공을 통해서 역류하는 서로 다른 두 기운을 결합시켜보려고 무진 애를 썼던 것인데 번번이 실패를 하고 나서는 아예 자포자기에 빠진 상태가 되었다.

심지어 어떤 때에는 잠을 자고 싶은 생각과 잠을 이룰 수가 없는 비몽사몽(非夢似夢)의 상태에서 하루를 온전히 허비한 나날들도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천하제일검의 명성도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허무감(虛無感)에 사로잡힐 즈음에 동정호의 넓은 물이라도 보면서 마음을 달래고자 하여 걸음을 멈췄던 것이기도 했다.

오늘도 오혜량은 자신의 마음을 달래면서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면 몸에 좋은 변화가 오려나 싶은 마음에 악양루(岳陽樓)에서 심신을 쉬어보려는 마음으로 동정호반에 여장을 풀고서 저녁노을이 감도는 주루에서 술로 마음을 달래면서 석양을 바라다보고 있는 그 무렵이었다. 그렇게 석양을 바라다보고 있자니까 몸에 감돌고 있던 기운들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지 내장을 찢어놓을 듯이 고통이 밀려들었다.

스스로 냉기류와 열기류가 점차로 기승을 부리면서 온몸을 두 쪽으로 찢어놓으려고 요동을 치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애써 내공으로 짓누르면서 석양을 응시하면서 자포자기의 마음을 처절하게 달래던 그 장소에서였다.

‘그래. 이 모두는 나의 자오검에 죽어간 원혼들이 내게 복수를 하는 거다. 그들도 아마 나처럼 이렇게 처절한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나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원한이 사무쳐서 눈도 감지 못했겠지. 나는 지금 그 고통을 하나하나 온몸으로 음미하면서 죗값을 치르고 있는 거다. 이것은 치료가 될 수도 없는 것일 테고, 내가 죽는 순간까지 고통을 느끼다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가겠지.’

이렇게 온갖 상념들로 마음이 고통스러워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가 문득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화들짝 들었다. 무림인은 항상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다반사이다. 언제라도 한가하게 다리를 뻗고 허리띠를 풀어놓은 채로 휴식을 취할 수가 없는 순간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니까 삶의 나날들은 은원(恩怨)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서 어느 복수의 칼날에 목숨을 버려야 할지 모르는 숨 막히는 상황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이라고 하더라고 경계의 마음을 늦출 수는 없는 터였다.

더구나 오혜량이 이렇게도 민감해진 자신의 정신력에 호수가의 개구리라도 그를 바라본다면 순식간에 칼을 뽑게 될 정도로 긴장이 되어있는 상태였으므로 사람이 그를 응시한다는 것을 처음에는 고통과 싸우느라고 못 느꼈다는 것을 알면서 내심 화들짝 놀랐다. 잠깐의 방심은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할 순간을 너무도 많이 넘긴 검객의 육감(六感)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지그시 바라다보는 시선을 의식한 자오검은 흠칫 놀랐다. 천하의 제일인 자신이 미처 자신을 바라다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평소 같았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고, 그랬다면 아마도 천하제일검이라는 명성은 그에게서 사라진 지도 오래되었을 것이다.

오혜량은 경계심(警戒心)이 본능적으로 살아나서 조용히 그러나 치밀하게 그 사람을 살폈다. 차림새는 수수하고 학자의 풍모까지 엿보여서 늠름한 모습이었다. 나이는 50대 초반 정도로 보였으며, 언뜻 봐서는 시인(詩人)이나 묵객(墨客)으로 명승지(名勝地)를 유람(遊覽)하는 서생(書生)인 듯했으나 무림의 인물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단 마음은 놓였으나 무슨 연유로 자신을 그렇게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었는지는 까닭을 모르겠기에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그 선비 차림의 남자가 다가왔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진상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대략 그러한 정황일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인자한 그의 심성으로 본다면 너무도 당연했다.

말을 마친 오혜량이 입이 마른 듯이, 이미 식어버린 찻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키고는 궁금한 점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그런데 소제가 궁금한 마음이 있습니다. 좀 전에 저의 모습을 보시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그게 알고 싶습니다.”

어느 사이에 진상도에게 친밀(親密)한 마음이 생긴 오혜량은 자신을 소제(小弟)라고 칭하는 말이 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흠칫 놀랐다. 일찍이 이러한 언행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그였기에 더욱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어색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것이 오래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그것은 아까도 말했듯이 그대의 얼굴을 보고서 알게 되었소이다. 현금(現今)의 강호에는 천하제일검이 있는데 호를 자오검(子午劍)이라고 부른다고 들었소. 그런데 신기하게도 물을 의미하는 수(水)의 가장 핵심인 자(子)와, 불의 핵심이라고 할 수가 있는 오(午)를 묶어서 호로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었는데 그렇소?”

“흠. 역시 진 선생의 안목은 예리하시군요. 맞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과 저의 병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

오혜량은 그 정도는 상식이라는 듯이 건성으로 대답을 하면서 ‘실제로 말을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듯이 다음에 나올 이야기를 재촉했다. 옛날 같았으면 아마도 진상도는 이미 동정호의 물귀신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바라봤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었을 오만한 시절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같이 극심한 고통으로 매일 매 순간이 힘들어지자 남에게 살상을 가할 마음도 나지 않는 상태였으므로 특별한 은원 관계가 아니라면 살수(殺手)를 쓰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라도 마음을 조금이나마 고친 덕택에 이러한 귀인을 만나서 어쩌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조차도 품어볼 정도로 절박한 순간이기도 했다.

“혜암의 천성이 호기심이 많은 까닭이었던지 관상학(觀相學)에 대한 약간의 식견이 있어서 대략 단순한 것은 어렵지 않게 파악을 할 정도는 되었는데, 그대의 면상(面相)을 보자, 온몸의 기혈이 중화(中和)를 이루지 못하고서 극에서 극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구려.

“그렇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음에도 눈이 밝으신 진 선생을 속일 수는 없었나 봅니다. 마음의 고통이 너무나 극심한 까닭인가 싶습니다.”

“그것은 그대의 몸을 돌고 있는 기경팔맥(奇經八脈)이 이미 수화기제(水火旣濟)를 이루지 못한 까닭에, 청기(淸氣)가 맹독(猛毒)으로 변해서 온몸의 기운을 극한 곳으로 몰아가는 상태라고 생각이 되오. 그래서 이렇게 무공이 고강한 사람이 열기와 냉기의 엉킴에서 고생하고 있다면 혹시 자오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오.”

“얼굴의 표정을 보고서 내력을 추론(推論)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안목이십니다. 그동안 세상을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진 선생과 같은 고인(高人)은 뵌 적이 없었습니다.”

“예전에 무림을 휩쓸고 다니는 자오검이라는 검객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느 벗에게 듣고서 그 호를 보면서 필시 이러한 상황이 생길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소이다. 이름이 괜히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 속에는 이러한 연유(緣由)도 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니 또한 하늘의 뜻인가 싶소이다. 허허허~”

오혜량은 다시 한번 흠칫 놀랐다.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고선 자신의 내력까지도 줄줄이 엮어내는 이가 아무래도 보통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속으로는 아무리 창자를 끊는 고통이 있다고 해도 겉으로는 절대로 그 표정을 나타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진 선생, 실로 놀랍습니다. 이럴 것이 아니라 제가 머무는 주루(酒樓)로 들어가서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이렇게 앞장을 서서 걷던 오혜량은 호반 옆의 객잔으로 들어갔다. 이미 보름 전부터 묵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주인도 자신을 편안하게 대해줬기 때문에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자신의 숙소로도 쓰고 있는 곳으로 그 선비를 데리고 오자, 그가 낯선 손님과 들어오는 것을 본 점원이 반겨 맞았다.

“외출하고 돌아오십니까요. 나리~! 저녁이라 공기가 쌀랑합니다. 오늘은 늦으셨구먼입쇼. 방을 따뜻하게 해 뒀습니다.”

점원의 입에 발린 인사가 싫지 않은 오혜량은 미소를 지으면서 부탁했다.

“그래 우선 마실 것 좀 준비해 주게.”

“그러문입쇼~! 어서 올라가시면 번개같이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오혜량은 그 주루에서 일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고서는 자신이 묵는 방으로 진상도를 안내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객실이었다. 마침 해가 넘어간 동정호는 어둠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하늘의 붉은 노을을 그대로 반사(反射)시키면서 영롱한 빛으로 물들었던 수면(水面)에 검은 어둠이 내리자 자신의 몸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연(悽然)한 마음이 들어서 잠시 우울한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풍경이 아주 좋소이다.”

“예, 아침은 아침대로 저녁은 저녁대로 변화가 즐길 만합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그럼 실례를 하겠소이다.”

“참으로 진 선생의 안목에 탄복(歎服)했습니다. 좀 전에는 끓어오르는 고통으로 인해서 혼신(渾身)의 힘을 다해서 버티느라고 미쳐 예의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시 예를 갖춥니다.”

허리를 숙여서 경의(敬意)를 표하자 진상도는 손을 저어서 만류했다.

“새삼스럽게 왜 이러시오~! 자 그만 그만~! 그런데 괜찮다면 호형호제(呼兄呼弟)를 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러는 사이에 점원이 준비한 술과 안주를 가져 왔다. 마침 목이 컬컬하던 진상도는 권하는 술잔을 사양하지 않고 연거푸 석 잔을 들이켰다. 독한 홍고량의 기운이 목에 불을 댕기는 듯이 뜨거운 기운을 전하면서 몸으로 퍼져나가는 나른하고도 상쾌한 기분에 취했다.

“이제부터 오혜량은 형님으로 모시고 따르겠습니다. 뛰어난 혜안으로 이 우제(愚弟)의 몸과 마음에 낀 번뇌를 모두 말끔히 씻어주실 때까지 손발이 되어서 편안히 모시도록 하고자 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나도 기꺼이 허락함세. 허허허~!”

“그럼 아우가 형님께 올리는 술을 받으십시오.”

그렇게 아우의 예를 갖추는 오혜량을 바라보면서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이 젊은이의 고뇌에 어떻게라도 도움이 될 길이 있을 것 같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의제(義弟)의 예를 받았다.

깊어 가는 호반의 객사(客舍)에서는 이렇게 형제의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그렇게 하는 사이에 이미 두 사람은 십년지기(十年知己)가 된 듯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또한 인연의 끈이 이미 오래전부터 엮어 놓은 까닭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