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8] 달리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

작성일
2012-08-14 09:2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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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8화] 달리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오늘은 한가로운 아침입니다. 찾아오기로 한 방문자도 없고 당장 시급하게 처리를 해야 할 일도 생각나지 않으니 아마도 잠시 쉬어서 가는 날이 아닌가 싶어서 이것저것 재미있는 글을 읽으면서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엇저녁에 방송에서 본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이것을 정리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1. 마라톤에 매달리는 사람


  달리기를 하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힘은 들지만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스스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서 더욱 노력의 가치가 크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이야기가 등장을 하네요. 그래서 관심을 갖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봤습니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서 달린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가게 되면 달리기를 위해서 달린다고 하는 이야기를 해 주네요. 더구나 그 시점이 무릎의 연골이 다 닳아서 없어지게 된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다면 이것은 분명 뭔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지요. 그것은 상식이니까 말이지요.


  희열을 느끼게 되면 무아지경에서 움직이게 된답니다. 그 무엇으로도 그 황홀한 순간을 대신 할 수가 없다는군요. 어느 여성은 성적인 오르가즘은 잠시 느끼고 사라지는 것이라면 달리기에서의 희열은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더욱 매달리게 된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생물학적으로 조사를 한 자료에 의하면 약 40km쯤에서 희열의 순간이 온답니다. 그렇게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난 다음에 느껴지는 그 순간을 한 번 맛보고 나면 이제부터는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는 단계에 접어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100km도 달리고, 1500km도 달리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뭔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황홀한 순간의 뇌파를 조시해 보면 베타엔돌핀이라는 물질이 생성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앙귀비에서 추출한 몰핀보다 10배 이상의 강력한 진통작용이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모든 고통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고 희열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엑스레이 상으로 보이는 그 사람의 무릎상태는 참으로 안타까운 장면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달리기를 멈춰야 한다는 것이 의학적인 소견인데 그는 멈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극심한 고통으로 달리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서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못내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달리는 이유가 건강을 위해서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또 좋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달리기만 그렇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달리기가 아닌 곳에서도 만날 수 있는 것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오래 전에 기도를 했던 낭월을 떠올려 봤습니다. 그 당시에는 시력이 상실되어서 그야말로 죽기살기로 기도에 전념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하루에 법당에서 기도를 하면서 보낸 시간은 16시간이었는데 무슨 힘으로 그렇게 버텼는지를 생각해 보면 지금은 상상을 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최소 2시간을 서서 움직이지 않고 목탁을 치면서 기도를 하는데 처음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는 온 몸이 비비꼬이는 현상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90분 정도가 경과하게 되면 무감각해지는 것으로 인해서 힘이 들지 않는 상태가 있었는데 어제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그러한 순간이 아마도 베타엔돌핀이 생성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삼매경(三昧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무런 잡념이 없이 몰입이 된 채로 시간이 흘러갔던가 봅니다.


  주변의 스님들께서 항상 걱정을 해 주셨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미안했던 생각이 납니다만 여하튼 그렇게 몰입을 하는 과정에서 시력이 회복되었고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느낄 수가 있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만 비단 달리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라도 그러한 현상은 항상 일어날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몰입이 되다가 보면 영감도 발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3. 글공부에서도 그런 경지가 있습니다.


  예전에 기도하러 다닐 적에 남해 보리암에서도 몇 주를 머물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조선말기의 괴승으로 알려진 경허선사께서 보리암에서 기거하셨던가 봅니다. 보리암의 오른쪽에 거대하게 돌출된 바위가 있는데 이름하여 화엄봉입니다. 경허선사께서 그 바위에 올라서 화엄경을 읽었다고 하네요. 열심히 몰입해서 경을 읽다가 문득 눈을 들어서 앞을 보니 온통 캄캄한 밤중이 되었더랍니다.


  그래서 흠칫 놀라면서 경이 어떻게 보였을까를 생각하며 다시 경을 들여다 보는데 갑자기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는군요. 오히려 절로 돌아오는 길이 깜깜해져서 더듬더듬 돌아왔다고 합니다만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글을 읽는 과정에서도 그렇게 몰입이 되어서 자연의 흐름도 잊어버리는 경지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의 제목에서 '있었답니다'가 아니고 '있습니다'라고 쓴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가 있느냐고 한다면 당연히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라고 해야 하겠네요. 왜냐하면 글을 공부하다가도 그렇게 시공(時空)을 잊어버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낭월은 참선을 통해서는 그러한 경험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만 글을 읽으면서는 종종 체험을 했었습니다. 특히 정묘(1987)년의 적천수징의를 보던 무렵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환경에서 허용하는 것은 단지 의식주가 해결되었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먹고 살았다는 것이지 내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비책이 없었던 시절이었지요. 아이도 있었지만 그 아이의 미래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시절로 참 답답했을 환경이라고만 해야 하겠습니다.


  비록 환경은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잡으면 밤이 되는지 날이 새는지도 모르고 몰입이 되었었는데 대략 1년 정도는 그렇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원문을 달달 외워서 새벽에 도량석을 할 적에도 그것을 외우면서 도량을 돌았습니다. 그러한 효과는 지금도 누리고 있으니 세월이 오래 흘렀음에도 그 당시의 느낌은 여전히 살아있어서 적천수를 생각하면 베타엔돌핀의 여운이 솟아나는 느낌이 들거든요. 참 묘한 글공부의 공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냥 글을 읽다가 보면 그렇게 되는가보다 했는데 어제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느껴가는 과정을 들어보면서 갑자기 '아하~!'하는 벗갯불이 머리속을 치고 지나가더군요. 말하자면 나에게는 일상인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기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한번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되면 다음부터는 적은 노력으로도 그러한 느낌에 몰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벗님의 독서경험은 어떠셨는지요? 아마도 글에 빠져보셨다면 낭월의 이야기가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헤아리실 것으로 생각되네요. 물론 '에이~! 그런게 어딨어!!'라고 하셔도 할 수는 없습니다. 천상 후일로 확인을 보류해야 하겠네요. 하하~~


  가끔은 나름대로의 인연이 되어서 개인지도를 받겠다고 찾아오는 고마운 학자님들이 있습니다. 일단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사주공부에 얼마나 몰입을 해 봤었는지를 느낄 수가 있는 것 같거든요. 놀랍게도 요즘에 와서 그러한 인연이 자꾸만 늘어가는 것 같아서 내심 흐뭇한 낭월입니다. 질문을 던져보면 어디에 떨어지는 말인지도 모르고 허둥대는 방문자를 대하면서 무미건조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는 문득 찾아온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군데군데 함정을 파놓고 빠지지 말기를 열망하는 낭월의 질문에 산뜻하게 의미를 파악하고 함정을 피해가면서 혀를 날름~ 내미는 것같은 느낌이드는 제자를 볼때면 어떤 희망의 빛이 속에서 피어오르는 것 같거든요. 이런 느낌 이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문자의 틈사이에 나 있는 4차원의 세계를 체험한 사람은 웬만한 함정에는 빠져들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견(智見)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말씀드리는 지견이라는 것은 글이나 경험으로 체험하지는 않았지만 문득 느낄 수가 있는 영감(靈感)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한 사람은 이미 나름대로 느낌이 있어 봤기 때문에 그것은 다시 느낌과 통하는 것인지, 낭월의 느낌을 바로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가르치는데 힘이 절반도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서 인연이 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해 보게 되네요. 그렇지만 그러한 경우만 인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그러한 경험을 못했더라도 앞으로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도 또한 좋은 인연이 될 것은 분명하다고 보는 까닭입니다.


 4. 겪어본 사람만 안다는 말이 있지요.


  벗님께서는 요즘 뭘 하면서 지내고 계신지요? 어쩌면 달리기를 하실 수도 있겠고, 기도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음양오행의 이치를 궁구하는 책을 읽으실 수도 있겠지요. 물론 책을 보고 계신다면 이렇게 드리는 한 말씀이 아마도 참고가 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니까 기왕 오행공부를 하시고 있다면 이러한 글맛을 좀 보셨으면 하는 마음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아마도 간지의 22글자는 단순문자가 아닐 것입니다. 22분의 천신(天神)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보게 되는 순간이 자주 있다가 보니 이러한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잔꾀를 써서 소유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을 할 적에 비로소 접근을 허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어느 경지에 도달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깊은 소식을 보여주지 않는 것 같고, 그것을 보기 전에는 사주의 여덟 글자를 들여다 보면서 미로를 헤매게 되는 나날은 끊임없이 이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 낭월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들도 어느 순간에는 하찮은 것이 되어버릴 만큼의 강렬한 '베타엔돌핀2'가 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열심히 간지(干支)만 궁구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있으면 언젠가는 본색을 드러내겠거니 하면서 말이지요. 미련한 쥐가 항아리를 뚫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고 또 가다가 보면 알게 될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훨씬 높은 선험자(先驗者)가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글이나 말로 전할 수가 없는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과학관련 프로그램을 보니까 생체공학자들이 영혼이 육신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을 느끼고 확인하는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낭월도 증명은 할 수가 없겠지만 그러한 것은 사실이라고 '거의' 확신합니다. 세살이 된 미국의 아이가 자신이 1943년인가 태평양에서 비행기에 불이 붙어서 죽은 공군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부친이 직접 그 자료를 찾아서 확인하고는 영혼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더군요.


  여하튼 독서삼매는 그냥 열심히 책을 읽는다는 의미 외에도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번 그 맛을 보시게 되면 그야말로 몰핀의 10배에 해당하는 강력한 마취작용을 경험하시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누가 책을 읽지 말라고 뜯어말려도 항상 손에는 책이 떠나지 않게 되는 나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넘치는 책들로 인해서 책장을 사면 처음에는 책들이 서있습니다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점점 복잡해지다가는 급기야 서있을 공간이 없어서 책들이 드러누워버리게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분발하시기 바랍니다. 다섯 수레의 책이 있다고 자랑을 할 일은 아니지만 그 정도의 책이 있다는 말은 여하튼 글자에 대해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삼매경을 맛봤을 가능성이 있을 것은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맛으로 낭월은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읽어도 즐겁고 써도 즐거운 것은 글인 것 같습니다. 도박을 하게 되면 잠시는 즐겁지만 두고두고 빚을 갚느라고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고, 술을 마셔도 당장은 흐뭇하지만 또한 후유증은 만만치 않은데 글에 대한 후유증은 일정한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머리가 아플 수도 있겠으나 일단 그 경지에 가고 나서는 비행기를 탄 듯이 자유로운 해방감을 만끽할 수가 있을 테니 밀입니다.


  어제는 문득 '여기 공자가 간다'라고 하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드라마로 된 공자를 자꾸 떠올리게 되는 내용들로 인해서 25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열국하는 공자의 무리에 동참한 듯한 느낌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또한 어쩌면 험한 중국의 여정을 과감하게 헤집고 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했던 학자에게 경의(敬意)를 표하게 되네요. 책값이야 이미 오래 전에 지불했지만 구석에 박혀 있다가 문득 손에 집히면서 이제는 글값을 드리게 되는 것이지요.


  낭월의 책을 읽으시면서 글값을 많이 주신 독자님들의 미래에 반드시 글과 하나가 되는 문아일여(文我一如)의 경지가 보장될 것임을 축원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된 다음에는 더욱 자유로운 간지의 궁리와 통찰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은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 뿐이라고 하겠습니다. 모쪼록 알찬 나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8월 14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