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5] 머리로 배우고(學) 몸으로 익힌다(習)

작성일
2012-07-3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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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5화] 머리로 배우고(學) 몸으로 익힌다(習)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어지간히 삶아 대지요? 전국이 펄펄끓는 가마솥인가 싶을 정도로 이글거리는 모양입니다. 감로사에서도 하루 종일 에어컨에 의지하고 보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네요. 보통은 잠시 켰다가 끄면 하루가 지나간 것 같았는데 말이지요. 참 대단합니다.


  날씨가 이렇다 보니 열심히 쓰고 있던 글도 잠시 뜸 해지고, 촬영하던 오주괘강의도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은 자연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더울 적에는 쉬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자꾸 떠오르니 말이지요. 그 바람에 올림픽 이야기는 심심풀이로 딱 그만이네요. 뭐 본인들은 죽을 힘을 다 해서 노력을 하겠지만 아무리 애국심이 넘친다고 해도 현장에서 뛰는 사람만큼이야 하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면서 그래도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어느 드라마에서 이야기를 하는 대사가 귓가를 맴돌아서 컴퓨터를 켰습니다. '기술자는 몸으로 익히는 거야'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비슷한 뜻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중요한 것은 몸으로 익힌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퍼뜩 스치고 지나가면서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서 연결시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무슨 공부나 다 그렇겠습니다만 우선은 머리로 배우는 것이 필수라고 해야 하겠네요. 그렇게 하는 것이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겠습니다. 우선은 방법을 배우고 나서 그 다음에 그것을 응용하고 활용하는 것이 가능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요리사가 되려고 하면 우선 요리학원에서 이론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음식점에서 주방장을 모시고 실습을 해야겠지요. 그렇게 하면서 경력이 붙으면 비로소 한 사람의 요리사가 되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1. 배움(學)에 대해서


  어디까지나 배움의 과정은 이론(理論)을 통해서 구조를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평명리학을 공부한다고 할 경우에도 이러한 원칙은 그대로 적용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그러니까 명리학은 이론적으로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배우는 것에 대한 전문가를 뭐라고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니까 학자(學者)라고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학자는 항상 배움에 대해서 목적을 삼고 힘써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정리를 하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 본다면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서 연구하고 궁리하는 사람이라고 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배움을 쌓는 것은 학교(學校)나 학원(學院)이 되겠네요. 한국에서는 학원과 학교의 의미가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만 중국에서는 같은 말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최고의 정점에 가 있으면 대학원이라고 하니까 아무래도 학교보다는 학원이 더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봐도 될런지 모르겠네요.


  이러한 곳에서는 이론적인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야말로 학자들의 진수(眞髓)를 전해 받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정을 받으면 그 학문을 논하는 것으로 자신의 기준을 세우는 논문이 작성되는 것으로 봐도 되겠네요. 그러니까 논문을 쓰는 사람은 분명히 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항상 느끼는 것은 이론적인 것은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그래서 완성된 것으로 본다면, '이론과 실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론적으로 공부를 한 것에 대해서 그것을 실제의 상황에 접목시켜서 해석을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론적으로 궁리만 하고 실제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힘쓰지 않는다면 그러한 경우를 이론가(理論家)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평명리학을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선생이 전수를 해 주는 것은 이론이라고 할 수 있겠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임상하는 것은 실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여기에서 비로소 '습(習)'이라는 글자가 등장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의 과정이라고 봐도 좋을 듯 싶습니다.


2. 익힘(習)에 대해서


  '익힌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어려서 기술을 배우겠다고 인쇄소에서 일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누가 말하기를 '인쇄하는 기술자가 되면 보수가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기에도 기술을 배워서 보수가 좋다는 것은 희망이 될 수 있겠고 특히 인쇄소라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참으로 소박한 생각으로 몇 개월을 다녔던 것이지요.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은 인쇄가 된 판을 닦아내는 것부터 주어졌습니다. 신나나 휘발유를 사용했던 것 같네요. 판에 묻은 잉크를 닦아내는 것인데 그야말로 배움(學)은 없고 익힘(習)만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선배가 하는 것을 보고서 그대로 익히면 되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모든 과정을 다 익히고 나면 비로소 기술자(技術者)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낭월의 심성에는 그 일이 시간이 경과할수록 재미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이론이고 뭐고 없이 그냥 시키는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일은 아무리 어린 나이였지만 시큰둥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몇 달을 하지 못하고 집어치웠습니다만 문득 생각을 해 보니까 그렇게 해서 전문가가 되는 것을 기술자라고 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학과 습은 제각기 따로 존재를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학으로 가면 학자이고 실습으로 가면 기술자가 되는 것이지요. 옛날에 장인을 따라서 익히고 배웠던 것은 모두 실습이었습니다. 이론이라고 할 것이 따로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최종적으로 얻을 수가 있는 것은 학자가 아니라 기술자였다는 것도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그럴싸 합니다. 하하~


3. 학습(學習)의 음양(陰陽)


  학습에 대한 의미를 정리해 보면, 학은 배움이고 습은 익힘이므로 배우고 익히는 것을 학습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수레바퀴와 같다는 것을 생각하는 순간 음양으로 대입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리를 해 보면 학은 바탕이 되므로 음(陰)에 해당하고 습은 활용이 되므로 양陽)에 해당한다는 것을 찾아내는 것은 별로 어려울 것이 없겠습니다.


  그러므로 학이 없이 습만 있다면 기초적인 이론을 갖추지 못한 것이 된다고 하겠고 학만 있고 습이 없다면 이번에는 실행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므로 음양의 균형을 논하는 관점에서는 절름발이가 될 수 밖에 없겠고 풍수로 본다면 반풍수가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해도 되겠습니다. 물론 어느 것이라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틀림 없겠습니다.


  아침에 본 드라마에서 말한 '몸으로 익힌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몸으로 익힌다는 것은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몸이 먼저 알아서 반응을 한다'는 것으로 정리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반응을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처음에는 이론적으로 이해를 하기 때문에 몸은 전혀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론으로 기초를 다진 다음에는 이제 몸으로 익히는 과정이 뒤따르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도 처음에는 이론과 잘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서 혼란의 터널을 배회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분야에서 생각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바둑을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잠시 언급을 해 봅니다.


  바둑도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이론과 실기가 겸해져 있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정석이나 포석을 배우고 사활을 배우는 것은 이론적으로 바둑을 배우는 것이므로 기학(棋學)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전에서 상대와 바둑을 두게 되는 것은 기술(棋術)이라고 하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기학을 배우지 않고 기술만 익히게 되면 이번에는 '동네바둑'이라는 말을 듣거나 싸움바둑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원래 바둑에 어떤 이론이 있었던 것은 아닐테니까 말이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을 두고 연마를 한 전문가들이 이론적으로 갈고 다듬어서 정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뒤에 바둑을 배우는 사람은 우선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기본기를 연마한 다음에 실제로 바둑을 두면서 감각을 익혀 갈 수 있을 것으로 보면 매우 합당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오로지 내기바둑과 같은 형식으로 싸워서 경험을 쌓은 사람의 경우에는 기리(棋理)는 중요하지 않음을 넘어서 오히려 거리적거리는 것이 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최후에 한 집을 더 남기는 것만 중요할 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어쩌면 '이론을 배웠더니 두 급수가 줄었다'고 투덜대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그렇게 되었을 적에도 생각을 해 보면 학습으로 공부를 했다면 같은 노력을 투자하였을 적에 아무래도 습만 익힌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해 보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커가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이론적으로 기본기를 다지게 되면 적어도 시간적으로 절약의 효과가 있을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일리가 있겠지요?


  4. 현장에서의 실습(實習)으로 마무리 짓는다.


  학습을 통해서 이론과 경험이 쌓인다면 그 다음부터는 이론은 뼈 속으로 녹아들고 경험은 살 속으로 스며들어서 온 몸으로 그 의미를 기억하게 될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총을 쏘는 사람이 겨냥을 하여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감각적으로 몸이 알아서 발사를 하게 되지만 결국은 명중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자평명리학을 공부하는 학인들을 옆에서 돕다가 보니까 특히 이론과 실기에 대해서 늘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열정적인 학인들은 이론적으로는 거의 다 갖춰져 있다고 봐도 될 것이라는 점과, 그럼에도 경험이 부족해서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같이 생각하게 되네요. 그로 인해서 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마무리를 하게 되면 스스로 뭔가 감을 잡게 되는 것 같고, 그 다음에는 반복적으로 내공을 쌓아서 마침내 아무런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용신을 찾고 풀이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벗님도 아마 그 어느 부분에선가 계속해서 여행을 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간지의 22글자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루를 쉬어버리면 내 마음이 알고 이틀을 쉬게 되면 내 몸이 알고 사흘을 쉬게 되면 선생이 안다는 말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연마한다는 것은 그래서 꾸준히라는 말이 앞에 붙어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비록 날은 덥고 정신은 늘어집니다만 그럼에도 찬 물에 머리를 식히면서 이 폭염 속을 정진함으로 보낸다고 하면, 그 결실은 찬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날에 반드시 누리게 될 기쁨으로 주어질 것은 당연하다고 하는 점을 보증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르치는 선생을 땀나게 한다면 또한 기쁘지 않겠느냔 말이지요. 하하~


  선생을 땀나게 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얼마 전에 새로 공부를 시작한 한 사람이 떠오르네요. 나이는 이미 50을 넘겼습니다만 스스로 음양오행을 궁리하는 것이 좋아서 열심히 책을 보다가 인연이 되셨다고 하는데, 첫 시간에 '음양'을 강의하면서 함정을 파 놨습니다만 세 개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두 시간의 강의를 마쳤습니다. 이렇게 되기도 참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오호~! 이거 까딱하면 땀 좀 나게 하겠는걸~~!'하고 감탄을 했습니다. 선생이 파 놓은 함정을 피해갈 정도로 기본기가 잘 닦여 있다면 아마도 공부의 진도는 일취월장으로 발전을 할 것이고 나중에는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못하고 쩔쩔 매는 낭월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기대를 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반드시 함정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하~ 이러한 즐거움을 이해 하시려는지요?


  한담을 작성하는 도중에 방문자와 학인들로 인해서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그리고 알찬 결실을 위해서 한 여름의 시간도 지혜롭게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7월 30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