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 십성과 용신 그것이 문제로다!

작성일
2012-07-1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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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3화] 십성(十星)과 용신(用神) 그것이 문제로다!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장맛비 덕분에 조금은 시원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요즘은 낭월이 뭔 일을 하나 싶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용신에 대해서 고민을 하시는 독자들을 위해서 『用神』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초고는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는데 또 교정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아마도 산천에 아름다운 빛깔이 나타날 때쯤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만 해 봅니다. 그러니까 희망사항으로는 가을이 깊어가기 전에 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지요. 그리고 용신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 생각이 일어나서 한담의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1. 개인지도를 해 보니 딱 걸리는 것!


  개인적인 수준에 맞춰서 강의를 하기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느끼게 된 소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름대로 공부를 제법 한 다음에 인연이 된다고 말은 했습니다만 그래도 조바심이 많은 학인은 서두르는 마음에 성급하게 기회를 제공해 달라고 재촉하기도 하네요. 여하튼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시작을 하고 진행하는 과정은 대동소이 한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곳에서 공부를 했던 경험이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지우느라고 또 하나의 수고로움이 더해진다는 것이 있겠습니다. 물론 지우는 것이 아니라 잠시 덮어두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나중에 공부가 잘 마무리 된 다음에는 다시 나름대로 활용을 할 방법을 찾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하는 것들로 인해서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공부가 많이 되었든 적게 되었든 관계없이 음양, 오행, 천간, 지지에 대해서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지도를 해 보면, 처음에는 그 정도야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머리에 딱지가 앉도록 외웠으니 괜한 것으로 시간을 끌지 말라는 투의 표정이 보이기도 합니다만 막상 그렇게 잘 이해를 했으면 어디 답을 해 보라고 하면서 툭툭 던지면 한 마디도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알기는 알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낭월의 기초공사에 대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만 보면서 공부하는 경우에는 제대로 정리하여 익히지 못하고 허둥지둥 넘어가기 쉬운 것이 이 부분이기도 하지요. 스스로 음양오행과 간지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깊이 파고 들어가 보려는 생각조차도 못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선생이 그러한 것을 물고 늘어지니 처음에는 과민반응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10분만 설명을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앉아있는 자세부터 달라집니다. '이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알고 있었던 음양오행은 그야말로 수박의 겉도 아니라고 해야 할 정도로 허술한 거품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는 표정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이 달라지고 자세가 달라지면서 수업받는 태도부터 달라지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물론 그 정도의 마음 준비는 되어 있어야 공부를 시작할 수가 있겠지만 말이지요. 


  물론 이러한 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쓴 책이 바로 '시시콜콜 명리학시리즈'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섯 권의 이 책을 잘 이해하게 된다면 기초공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낭월의 속 마음은 '확신한다'고 하고 싶지만 그래도 조금은 겸손한 듯한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요. 하하~


  여하튼 이 과정은 어떻게 저떻게 해서 넘어갑니다. 그리고 나서 벽에 부닥치게 되는 것이 바로 십성입니다. 십성도 나름대로는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대입을 해서 적용시켜보라고 하면 그것이 입 안에서는 뱅뱅 도는데 말로 되기는 어려운 그런 기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앞에 계시니까 알고 있었던 생각이 다 사라져버렸네요.'라는 탄식을 합니다. 과연 그렇다면 더욱 큰 문제지요. 자신이 수업료를 내고서 공부를 하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생만 앞에 있어도 생각의 고리가 증발되어 버리는데 막상 개업을 해서 손님을 받았다고 생각해 본다면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리는 것은 고사하고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흐를테니 말이지요. 하하~


2. 십성과 용신 그놈을 정복하라~!


  처음에는 매주마다 약속한 시간에 공부하러 온다고 약속을 한 선생님들도 십성에 대해서 강의를 듣고 나서는 두어 주를 건너뛰는 것은 기본입니다. 심지어는 4주를 넘어서 오기도 하니까요. 여기에서 바로 낭월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스스로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 그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가끔 있는 일입니다만, 열심히 기초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게 되면, 시큰둥 합니다. 그러면서 이미 책에 나와 있는 것은 다 보고 왔으니 책에 없는 이야기를 해 줘야 개인지도 답지 않겠느냐는 항의아닌 항의도 하곤 하지요. 물론 이해합니다. 그 마음이야 왜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쩌나요. 책에 있다는 것만 알고 있지 그것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는 모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책에서 본 것이 얼마나 허망한 신기루였는지를 다시 알려주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 책에서 본 것에 대해서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를 파악하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 명리학의 수준은 쑥쑥 자리게 됩니다. 그야말로 장마 중에 대나무 순이 자라듯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그만큼 스스로 간절했던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책에 있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이야기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만 되면 가르치는 낭월은 참으로 고맙기만 하지요.


  십성은 명리학의 꽃입니다. 꽃이 피면 자연이 아름답듯이 십성을 알고 나면 사주의 설명이 아름다워집니다. 흔히 통변술이라는 말을 합니다만 그것은 결국 십성의 상징성을 사물이나 삶에 얼마나 유연하게 적용시키는 것이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연구하시는 방향에 따라서 십성보다 신살의 활용이 더 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아시다시피 낭월은 신살의 설명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십성에서 그 설명의 코드를 찾아서 이야기하게 됩니다.


  십성이라고 해봐야 단지 열 가지의 기본형에 불과합니다. 그것으로 인생사의 제백사(諸百事)를 대입하여 설명해야 하며 그것도 어색하지 않게 합당한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간단히 활용을 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고 보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진춘익 선생의 팔자명리신해에 들어있는 내용이 생각의 꼬투리를 제공하는 힌트가 많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들(대부분의 독자님들) 마음만 급해서 용신을 찾느라고 혈안(血眼)이 되시지요. 그렇게 해서 성공적으로 용신을 찾았다고 한들 이번에는 설명의 길이 막혀버렸다면 어떻게 상대방(그것도 전혀 음양오행을 모르는)에게 설명을 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좌절감을 맛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좋다' 혹은 '나쁘다'는 말은 할 수가 있습니다만 그러한 것을 숨긴 채로 교묘하게 설명을 하면서 풀어서 질문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느냐는 것은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아마추어적인 시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십성에서 머뭇거리면서 다음 공부를 하러 오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수강생의 마음이 백번 이해 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지요. 물론 머리에 불이 붙은 듯이 하는 공부이니 반드시 진척이 있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공부하러 오면 당연히 앞의 공부는 잘 되었는지를 질문하게 될 것이고, 여기에 대해서 답변이 신통치 않으면 몇 시간을 달려왔더라도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 가야 하는 비극(!)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3. 십성은 꽃이라면 용신은 열매이다.


  며칠 전에는 십성의 강의를 듣고 간 후로 3주간 소식이 없는 수강생이 왔습니다. 희색이 만면해서 말이지요. 그래 공부가 좀 되었구나 싶었는데 십성을 배운 다음에 시콜시리즈를 다시 읽었더니 그 속에 있는 이야기들이 모두 십성을 대입하게 하는 암호였다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비로소 꽃을 감상하는 능력을 터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축하해 줬습니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다시 새롭게 깨달은 내용을 설명해 주니까 그들의 반응에서 벌써 이전과는 급이 다르다는 것을 그들이 먼저 알아주더라면서 기뻐하면서 선생님의 덕분이라고 하였지만 실은 스스로 노력을 한 결실을 거둔 것에 불과하지요. 적어도 공부에 대해서는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물론 사업은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이 있지만 말이지요.


  열매만 논하는 것은 곡물전이나 과일가게에서 열매를 보고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촌놈은 벼를 보면서 쌀나무라고 한다는 말도 있는 것이겠지요.  사실 쌀을 보고 쌀만 생각하는 것과 벼가 논에서 자라서 꽃을 피우는 과정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의 이야기를 모두 생략해 버리고 쌀이 몸에 좋다는 말만 하는 것은 뭔가 좀 허술할 가능성이 많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용신만 찾는 것은, 배가 고프면 곡물전에 가서 쌀과 콩을 사야만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주를 풀이하려면 용신이 있어야 무슨 말이라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렇게 해서 용신을 찾고 난 다음에 비로소 그 열매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정을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다시 십성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간지에 대해서도 다시 새롭게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의 시시콜콜명리학시리즈는 당연히 고급자를 위한 강의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라고 봐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네요. 자화자찬입니다. 하하~!


  결론은 십성과 용신에 대해서 얼마나 잘 연결시켜서 설명을 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십성을 거론하더라도 그 바닥에는 용신이냐 기신이냐에 대한 기준이 서 있어야만 제대로 대입하고 응용을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싸리버섯처럼 생긴 것이 비슷하게 있습니다만 하나는 식용이고 하나는 독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자칫 독버섯을 먹고 복통과 설사를 만나거나 입원을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버섯인줄 아는 것은 십성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식용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용신인지 기신인지를 아는 것과 같다고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자신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빨리 찾아내어서 그것에 대한 보완을 해 나가는지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을 언급해 봤습니다. 이 공부에 서두름은 나쁘지 않겠지만 발은 땅에 닿아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공중에 떠있는 마음으로는 절대로 자신의 연장으로 만들 방법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 차근차근 내공을 쌓아간다면


  "자평명리학, 그거 암것두 아녀~~!!"


  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올 수도 있는 날이 다가오는 것은 예약되어 있다고 말씀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화인에게 삼명쇼핑몰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보통 여름에는 비수기인데 어쩐 일인지 임진년의 여름에는 책을 구입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네요. 아마도 임수(壬水)의 작용으로 궁리를 하게 된 까닭이 아닌가 싶다면서 나름대로 분석하기에 그렇겠다고 하고 마주보고 웃었습니다. 모쪼록 알찬 땀을 흘리셔서 가을에는 굵고 탐스러운 결실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7월 12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