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 성명학의 81획수 길흉 출처

작성일
2012-04-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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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3화] 성명학의 81획수 길흉 출처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화창한 봄날에 이름타령이나 좀 하려고 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누구나 관심이 있으실 것이므로 약간이나마 이해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낭월은 언제부턴가 작명은 하지 않는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이름을 지어 달라고 보채는(!) 고객들로 인해서 가끔은 귀찮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라도 마음놓고 사용을 할 이름을 얻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냥 부르기 좋은 이름이면 된다고 해도 또 그렇지가 않은가 봅니다.


 


1. 성명학의 수리법


  작명을 하게 되면 반드시 등장을 하는 것이 한자의 획수를 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리법이라고 하게 되면 수학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산수의 수준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말이지요. 그래서 더욱 정감이 덜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옥편의 부수를 원형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제가 획수인데 글씨는 필획대로 헤아리면 될 것을 사용하지도 않는 글자들을 대입해서 획수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논리적으로 보나 정서적으로 보나 도무지 타당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鄭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순수하게 글씨를 쓴다고 생각하면 15획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쓸 수 밖에 없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부방( 阝)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이 글자의 원형은 읍(邑)이거든요. 그래서 7획으로 따져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그렇게 되면 19획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현실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이름인데 획수는 사용하지 않는 옛날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당연하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중국사람은 이 글자를 어떻게 쓸까요? 소위 말하는 간체(簡體)에서 보게 되면 郑이 됩니다만 이 글자의 획수는 9획이네요. 그러니까 鄭은 9획도 되고 15획도 되고 또 19획도 되니, 같은 글자를 놓고서 이렇게 보면 흉하고 저렇게 보면 길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자칫하면 허무맹랑하다는 말을 듣기 딱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글자가 한 둘이 아닌데 水가 4획이라서 氵도 4획으로 봐야 한다든지, 心이 4획이므로 忄도 4획으로 봐야 한다는 식의 대입법을 적용시켜서 이름자의 길흉을 논하게 된다는 것은 잘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낭월의 소견으로는 지금 이 시대에서 쓰는 획수를 갖고 대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 아닙니다. 81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드리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하든 저럭게 하든 획수가 나왔다고 한다면 그대로 사용을 해야 할 겁니다. 누가 감히 그것을 함부로 바꿀 용기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해 버리면 참 곤란해 지는 것입니다.


2. 81획의 뿌리를 찾아서


  이름을 작성하는데 반드시 몰라서는 안 되는 것으로 81획의 수리에 의한 획수의 길흉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원형이정으로 분류해서 획수의 길흉을 풀이하게 되지요. 아마도 조금만 관심이 있으셨다면 그 의미는 살펴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사실은 낭월학당에서 간단한 작명법의 교재를 하나 만들려고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낭월은 작명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낭월에게 와서 개인지도를 받으시는 경우에는 나름대로 생업에 종사해야 하기 때문에 손님이 찾아와서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면 그냥 보낼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물론 본인이 낭월이 의도하는 바를 잘 이해하고서 작명에 대해서는 거부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겠습니다만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그렇게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고 산다는 것도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간단하게나마 사용을 할 책을 하나 만들려고 81획의 자료를 찾아보니까 모두가 들쭉날쭉이라서 정확한 통일감이 없는 겁니다. 아무래도 이래서는 뭔가 비난을 받을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중국의 사이트를 뒤져보게 되었습니다. 대만에서는 아무래도 81획의 원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검색어를 넣고 뒤져보는데 왠지 대만에서는 81획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학자들이 많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있구나 싶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3. 81획의 창시자


  뭐든지 뒤지면 나오는 법인가 봅니다. 그렇게 뒤져서 얻은 자료 중에서 그럴싸 한 문서를 발견했습니다. 참고가 될만 하겠다 싶어서 자세히 읽어 봤지요. 그랬더니 81획을 창시한 사람은 중국 사람이 아니라 일본의 구마시키 겐오(熊崎健翁)씨라고 하는 것이 나오네요. 이러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아서 잠시 놀랐습니다. 다시 그 사람에 대해서 추적을 해 봤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대만에 구마시키의 이론이 들어오게 된 것은 1929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백혜문(白惠文)이라는 역학자가 갖고 온 것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중국 남송때의 채침(蔡沈)이라는 사람이 홍범황극에서 나오는 81수를 갖고 길흉을 설명했었다고 하네요. 그것은 주역의 8*8=64와 대응하는 9*9=81의 수리를 갖고서 적용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1부터 9+9까지는 나오지만 '0'에 해당하는 숫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구마시키 씨가 뜯어고쳐서 연속된 숫자로 81개를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뭐, 그렇거나 말거나 맞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오랜 역학계에서의 관습이기도 합니다. 결국 쥐만 잘 잡으면 되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홍범황극의 의미를 살린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경시를 당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그러한 것에 대해서 별로 고려를 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81획수의 길흉을 논하지 않으면 작명가의 자질이 없는 것으로 봐버린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한 가지의 의문이 풀렸습니다. 대만에서의 작명법(명정재 성명학은 제외)에서는 맨 위에 1획을 만들어 놓고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 글자의 이름 위에 가상의 1획을 놓고 풀이를 한다는 것이지요. 왜 그러한 이치가 있는지를 뒤져봐도 원유를 찾을 수가 없어서 또 버렸습니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구마시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보는 순간, 오호~! 왜 네 글자로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를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이름이 대부분 네 글자인데 그것을 기준으로 만들어 놓은 작명법이므로 세 글자의 이름을 사용하는 곳에서는 방법이 없어서 맨 앞에 1획을 넣어서 편법으로 사용을 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원형이정을 대입해 보면 원격-초년운, 형격-중년운, 리격-말년운, 정격-평생운으로 네 가지의 격이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묘한 황당함이 존재하지요. 초중말의 세 격은 알겠는데 다시 평생운이 추가되는 것은 뭘 의미하느냐는 것이지요. 이것도 일본의 네 글자에 하나씩 부여했다면 딱 부합이 되었을 것을 그랬네요.


3. 81획이 한국에서 뿌리를 내린 이유


  어쩌다가 한국에서 이 작명수리법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는 인터넷의 자료에 조금 드러나 보였습니다. 김만태 선생이라는 분의 블로그에서 발견한 것으로는 창씨개명과 더불어서 붐을 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리가 있어 보이는 설멍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본의 잔재라고 하면 다들 치를 떨면서도 이러한 근거도 없는 획수에 대한 해석을 자기 멋대로 만들어서 길흉을 붙인 길흉판단법이 작명학계를 주름잡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획수법이 타당성이 있는지는 잘 알려진 명사들의 이름을 놓고 풀이해 보시면 바로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병철씨의 이름이 대부분 회자되지요. 여하튼 이것은 낭월이 설명하기 싫으므로 관심이 조금 더 있으신 벗님께서는 스스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4. 결론은 "내다 버려~!"


  이렇게 전후의 사정을 살펴보면서 평소에 해 왔던 생각들을 얹어보니까 그 문제점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더욱 명료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명법에 대한 책을 편집하던 것은 중지했습니다. 괜한 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럼 이름은 어떻게 지어야 하느냐고 걱정하시는 벗님도 계실 것 같네요.


  항상 말씀드립니다. '이름은 이름일 뿐'이라고 말이지요. 이름이 바뀌면 생각도 달라지면 좋겠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개명을 의뢰한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이름만 바꾸고 이름의 주인이 바뀌지 않는다면 과연 살림살이가 나아질까요?


  그래서 그냥 부르고 싶은 이름을 사용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때문에 고생한다는 생각도 같이 버려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낭월이 이름을 지어 줄 수가 없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나중에 잘 풀리지 않으면 어딘가에서 물어보게 될 것이고, 이름이 잘못되었다고 할 것이고, 그로 인해서 또 욕을 먹고 의심을 사야 하겠지요. 그게 싫은 겁니다. 제가 싫어서 안 하겠다는데 누가 어쩌겠냔 말이지요. 하하~


5. 그냥 부르면 이름이 됩니다.


  사람의 이름만 바꾸는 것이 아니지요. 정치하는 사람들 보세요. 참으로 별별 이름들로 항상 바꾸고 있습니다. 이름은 자꾸 바꾸는데 달라진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눈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철학자의 생각입니다. 스스로 바뀐다면 이름은 그냥 둬도 운명은 이미 좋아지기 시작할 것이고,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면 이름을 백 번 바꿔도 될 일이 없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마무리를 합니다. 현재 한국에 만연하고 있는 작명법에서 획수를 81로 놓고 길흉을 논하는 것은 버려야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더불어서 소리의 오행도 왠지 그렇습니다. 그것은 과연 믿을만 할 것인지도 언젠가 시간이 되면 생각을 해 봐야 하겠네요. 지금은 81획수의 실체에 대해서만 생각을 해 보려고 하는 것이니 그 나머지는 관심이 있으신 경우에 살펴보시라고 넌지시 떠넘기고 줄이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작명을 해 주는 선생의 입장에서는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하는 것이 좋겠고, 작명을 의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듣기 좋고 부르기 좋은 이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야지 이름으로 인해서 큰 수지가 맞거나 무서운 재앙이라도 당할 것처럼 두려워해서도 안 되겠지요. 이러한 의식이 되는데 반딧불이만큼이라도 동참을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살펴본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 해 봤습니다.


  문득 노자가 옳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름은 서로의 소통을 위해서 정해진 것일 뿐이라는 의미로만 생각을 한다면 더 이상 이 문제로 머리를 시끄럽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상 간단한 소견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4월 14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