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3] 인성(印星)의 음양(陰陽)

작성일
2012-01-09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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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3화] 인성(印星)의 음양(陰陽)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날씨가 꽤 쌀쌀하네요. 오늘 새벽의 계룡산은 영하 5도입니다. 근래의 며칠 보다는 다소 높은 기온입니다만 새벽공기의 싸아함이 생각을 자극시키는 것 같습니다.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는 두한족열(頭寒足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1. 인성(印星)과 직관(直觀)




낭월문답실에 가끔 들려서 인성(印星)의 심리상태(心理狀態)에 대해서 질문을 하시는 회원님이 계십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을 한 질문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하면서 나중에는 낭월도 답을 드리기 애매(曖昧)한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니까 결국은 명료(明瞭)한 답을 드리지 못해서 미안했습니다만 ‘낭월의 능력이 여기까지가 한계(限界)이겠거니……’라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낭월의 사주에서 편인(偏印)만 있고 정인(正印)이 없는 관계로 이 부분에 대한 느낌이 명확(明確)하게 구분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좀 일찍 잠이 깨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보다가 문득 ‘소리의 안과 밖’에 대해서 한 생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소리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므로 입력(入力)에 해당한다고 보면 인성(印星)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무기토(戊己土)의 본질(本質)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 봤습니다. 기(己)의 본질은 정인(正印)이고 무(戊)의 본질은 편인(偏印)인데 이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내면(內面)의 소리가 될까? 싶은 생각이 퍼뜩 들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당연히 음적(陰的)인 것이 내면(內面)이 된다면 기(己)가 담당하는 것이라야 하겠고, 상대적(相對的)으로 무(戊)는 외부(外部)가 되는 것으로 대입하는 것은 어려울 일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보기로 생각을 했습니다.




2. 내면(內面)의 소리는 정인(正印)




내면에서 무슨 소리가 나겠습니까? 만약 소리가 난다면 소화(消化)가 되느라고 나는 소리거나 아니면 심장(心臟)이 뛰는 소리 정도가 되겠지요. 어쩌면 굉장히 조용한 곳에서 귀를 기울인다면 혈관(血管)을 타고 흐르는 피가 내는 소리가 졸졸졸 들려 올 수는 있겠습니다. 혹 맥박이 뛰는 소리도 들릴 수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러한 소리는 정인(正印)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히려 정재(正財)의 소리라고 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생명력(生命力)의 공장이 돌아가는 소리라고 봐야 하겠으니 말이지요. 어쩌면 재극인(財剋印)으로 인해서 이들의 소리 때문에 정작 듣고 싶은 정인(正印)의 소리는 묻혀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인의 소리로 대입하기에는 소크라테스가 늘 들었다던 그 내면의 소리를 생각하면 적당할 듯싶습니다. 혹 양심(良心)의 소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정인의 영역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 봅니다. 맹자(孟子)의 사단론(四端論)에서 언급한 ‘측은지심(惻隱之心)’도 내면의 소리라고 할 수가 있을 것도 같습니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은 측은지심은 외부의 상황에 의해서 주어진 조건에 반응하는 현상이라고 한다면 순수한 정인의 소리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살짝 드네요.


그리고 기토(己土)가 땅이라고 할 적에는 땅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땅 속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겠네요. 가끔 지진(地震)이 일어날 적에 들리는 소리정도만 겨우 들릴 뿐이겠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귀로 들으려고 하니까 그 소리밖에 안 들릴 뿐이지 영혼(靈魂)의 귀로 듣는다면 땅이 내는 많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서는 ‘땅이 내는 거대한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라는 남곽자기의 말이 문득 생각납니다. 땅의 퉁소소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인간의 귀로는 20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사이에 해당하는 소리만 들을 수가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니까 아마도 남곽자기가 말하는 땅의 퉁소소리는 2만 헤르츠 이상의 소리였을 것이라고 짐작을 해 보는 것입니다.


여하튼 기(己)에 해당하는 땅에서 그렇게 거대한 소리가 들리는 것은 인체로 보면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고 소화기에서 나는 소리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므로 실제로 땅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와는 또 다르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득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를 땅에서도 들을 수가 있다면 비로소 대지(大地)와 대화(對話)가 가능한 상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땅 속을 훤히 들여다봤다는 풍수가(風水家)의 이야기가 또 연결이 되기도 하네요. 적어도 그 정도로 땅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어야 비로소 풍수라고 할 만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말입니다. 생각을 해 보세요. 땅 속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면,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성공적인 물 찾기를 할 수가 있을지 말이지요. 물론 그 소리조차도 땅이 내는 정인(正印)의 소리와는 거리가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3. 외부(外部)의 소리는 편인(偏印)




이번에는 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그야말로 우주(宇宙)의 소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지구가 허공을 초속 30km로 내달리면서 들리는 소리일 수도 있겠습니다. 정확한 계산을 좋아하시는 벗님이라면 왜 29.79km라고 하지 않느냐고 하시겠습니다만 대략 그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조그만 승용차가 초속 30m(시속110km)로 달려도 소리가 꽤 나는데 이 거대한 땅덩어리가 저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데 얼마나 큰 소리가 나겠느냐는 상상을 해 봐도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주에서 나는 소리이겠습니다만 또한 그것조차도 물질에서 나는 소리이므로 편인(偏印)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편인의 소리는 무엇일까? 아마도 짐작을 하기로는 신(神)의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신계(神界)와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을 떠올려 봤습니다. 가까이는 무속인(巫俗人)이 될 것이고 멀리는 선지자(先知者)들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들이 듣는 소리는 내면의 소리가 아니라 외부의 소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우주 밖에서 들어오는 영파(靈波)가 될 것이고 그것을 감지하려면 영감(靈感)의 안테나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는 상상을 해 봅니다. 그러니까 영감(靈感)의 안테나가 없는 사람들은 외부의 그 소리를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하게 될 것이고 오로지 진화론(進化論)에서 근원(根源)을 추적(追跡)하고자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토(戊土)의 영역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기토(己土)라고 대입하는 것과 비교를 해 보면 논리적(論理的)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네요. 그렇다면 다시 인간의 심리(心理)로 돌아와서 생각을 해 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위 ‘마음의 소리’는 정인이 내는 음성이고 외부에서 들려오는 메시지는 편인이 내는 음성이라고 정리를 할 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면 되겠습니다.




4. 내면의 울림




외부의 어떤 원인도 없이 내부에서 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을 정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조건에 의해서 들리는 소리를 편인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렇게 정의를 내려놓고서 다시 직관(直觀)이라는 용어(用語)를 그 자리에 집어넣어 봅니다. ‘인성(印星)은 직관(直觀)’이라는 것에 의해서 그 회원님도 혼란스러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구분을 해 보니까 직관의 영역(領域)은 정인(正印)이라는 것으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어차피 인성(印星)은 직관(直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시 세분하여 들어간다면 ‘문득 들리는 소리’는 순수직관(純粹直觀)이라고 할 적에, 어떤 ‘외부의 조건에 반응해서 들리는 소리’의 직관은 조건직관(條件直觀)이라고 이름을 붙여 볼 수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유(思惟)를 하다가 문득 한 생각의 울림이 있어서 깨달음으로 안내를 한다면 그것은 정인(正印)의 소리가 되겠지요. 외부에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순수(純粹)한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로 인해서 느낌을 받았을 경우를 정인의 직관이라고 이해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조건도 없었던 것이지요.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어떤 에너지에 몰입해서 무아지경(無我之境)으로 들어간다면 그 순간은 삼매(三昧)라고 할 것이고 내면의 세계로 몰입(沒入)한 것이므로 정인의 세계가 될 것이며 깨달음의 순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객(禪客)들은 모두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좌선(坐禪)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이해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외부의 모든 조건에 대해서 감관(感官)을 닫아걸고서 내면을 응시(凝視)하고 있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전기에 감전(感電)이 된 것처럼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에 휩싸일 적에 산천(山川)이 방광(放光)을 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내부의 정인이 깨달음을 줄 적에 외부의 편인이 동조(同調)하여 축하(祝賀)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이러한 것을 ‘정인(正印)의 직관(直觀)’이라고 정의(定義)해 봅니다.




5. 외부의 소리




외부라고 하면 내면의 직관을 제외한 것이므로 하늘의 소리와 땅의 소리가 모두 편인(偏印)의 소리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소망이 있어서 기도를 했을 적에 허공에서 ‘너의 소원을 이뤄주마’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면 이것은 편인의 소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맨 정신인 상태에서는 이러한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면 꿈속에서나 비몽사몽(非夢似夢)에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만 결론은 같다고 하겠습니다. 스스로 간절히 원한 것에 대한 외부의 메시지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저의 올해 신수(身數)가 어떻습니까?”




이렇게 누군가 나에게 물었을 적에 들어오는 느낌이 있다면 그것도 편인일 것입니다. 물론 이때에 용신을 찾아서 답을 구하는 것은 편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것은 내부적으로 분석(分析)을 한 것이니까 말이지요. 그럼에도 마지막의 어느 부분에서 들어온 느낌이 있었다면 그것은 편인의 영역으로 봐도 될 것입니다.


어제는 서울에 산다는 어느 분이 전화상담을 의뢰했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어떻게 전화를 받게 되었던 모양인데 급하다는 간청으로 인해서 시간을 잡게 되었습니다. 오주괘를 보면 몇 시였는지 알 수 있겠네요.




壬癸戊辛辛    동지기준 壬癸戊辛壬


子亥辰丑卯             子亥辰丑辰




점괘(占卦)를 뽑을 적에는 동지(冬至)를 기준으로 살피기도 하므로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오주괘를 적어놓고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한 마음이 동해서 오쇼타로를 꺼내어서 세 장을 뽑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그림입니다.






이렇게 준비를 하고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지요. 마침내 시간이 되어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궁금한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보니까 내일 나무를 사러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살아있는 소나무라고 했습니다. 아주 멋진 나무인데 세 그루에 1억을 주기로 했는데 그 계약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1천만 원을 들고 가야 할 상황에서 아는 동생이 낭월에게 문의를 해 보고서 결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부랴부랴 의뢰를 했었다고 합니다. 사실 급하긴 하셨겠습니다.


그런데, ‘나무 세 그루’라는 말을 듣는 순간 두 번째의 타로에 눈이 확 꽂히는 겁니다. 세 명의 여자가 춤을 추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비가 억수로 내리고 있는 것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그런데 카드의 이름은 경축입니다. 한글판에서는 축제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순간에 낭월의 편인(偏印)이 발동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축제가 아니다.’라는 것이지요.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다시 오주괘를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무진(戊辰)이 너무나 무력한데 시주(時柱)와 분주(分柱)에서 넘치는 물결의 파도가 일간(日干)을 집어 삼킬 듯이 몰려들고 있는 장면이 다시 확~!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에 느낌은 ‘하지 말라고 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주괘의 어디에서도 살아서 숨 쉬는 나무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연주(年柱)를 임진(壬辰)으로 보면 모두가 지장간(支藏干)에 들어가는 나무가 될 것이고, 신묘(辛卯)로 보면 도끼에 잘려나가는 한그루와 땅에 묻히는 두 그루가 될 것입니다. 물론 대동소이(大同小異)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결국 1억을 투자해서 나무를 사다가 옮겨 심는다고 하더라도 그만큼의 가치를 보장받기는 어렵겠다는 것이 이 점괘의 요지라는 것을 타로카드로 인해서 명료하게 해석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만약에 갑진(甲辰)이 세 개 있었더라면 해석은 달라져서 세 여인의 춤은 축제였다고 해도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나무들은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카드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돈을 투자하는 문제를 물었으므로 재성(財星)의 결실이 보이지 않으니까 하지 말라고 했을 것은 당연하겠습니다. 여하튼 결론은 안 되는 것인데 그것에 대해서 좀 더 명료하게 판단을 할 수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6. 종교와 철학은 편인(偏印)




시간(時干)은 편인궁(偏印宮)입니다. 그리고 종교(宗敎)와 철학(哲學)을 아우르고 있지요. 그렇다면 운명을 판단하고 점괘(占卦)를 풀이하는 것은 모두 편인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겠습니다. 질문을 받았을 적에 답이 떠오르는 것은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얻어진 소리이기 때문으로 정리를 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립문자(不立文字)하고 언어도단(言語道斷)하는 단계에서 느껴지는 내면의 소리만이 정인(正印)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이렇게 여러 가지의 상황을 대입하여 판단을 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인(正印)의 직관(直觀)은 글자나 혀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말로 할 수가 있는 모든 것은 편인이라고 이해를 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리를 하면 적당하겠다는 것까지는 설명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과연, 내면의 소리와 외부의 소리가 둘일까요? 이것이 또 궁금해지는 낭월입니다. 하하~




어둡던 바깥이 어느 사이에 밝아졌네요. 어둠이 사라진 곳에는 여전에 어제 봤던 그 풍경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기사(己巳)일이었군요. 사화(巳火)는 낭월에게 정인(正印)입니다. 그래서 이른 새벽에 약간의 느낌을 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즐거운 생각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또 설렘으로 다가오는 계룡산의 새벽입니다. 벗님께서도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1월 9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