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 읽으면서 화 나는 책 [신문읽기의 혁명]
작성일
2011-09-13 13:55
조회
5870

[제528화] 읽으면서 화 나는 책 <신문읽기의 혁명>


 


읽으면서 화나고,
읽고나도 화나고,
생각해도 화나는 책.


 


갑자기 '낭월이 추석 송편을 먹고 체했나?' 하셨겠습니다. 쇼파에 앉아서 편안하게 책장을 훑다가 눈에 걸리는 책의 제목이 있어서 뽑아 본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무슨 책이라도 모두 그만한 가치는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대합니다만 이 책은 아무리 기억을 해 봐도 구입했던 기억이 도무지 나질 않는 것입니다. 그런 책이 왜 여기에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여하튼 인연이 있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으려니 하고 읽게 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을 본 금휘가, 읽을만 하시냐고 하기에 누가 여기 놔뒀느냐고 했더니 자신이 구입했다더군요. 왜 읽지도 않았느냐고 했더니 처음에는 신문 보는 법을 알 수 있으려나 보다 싶어서 구입했는데 막상 책을 보면서 흥이 나지 않아서 그냥 놔뒀답니다.


《신문 읽기의 혁명》 손석춘 지음


책 이름입니다. 신문을 읽는 것에도 방법이 있나보다 싶어서 펼쳤던 것이지요. 그런데 한 장, 두 장 넘기는 과정에서 자꾸만 화가 나는 것입니다. 넘길 수록 더욱 더 화가 나다가 끝 장을 보게 되었는데,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화가 나서 찻 물만 마시고 있습니다. 나~원~ 참.......


물론 글을 쓴 사람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한국의 신문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편집이 되고 독자에게 전달이 되는지를 알아가면 그럴수록 자꾸만 '이런~ 주리를 헐~'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 문제지요. 하긴..... 이러한 현실을 낭월보다 모르시는 벗님이 어디 계실 것이라고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 어딘가에서 시간을 때울 일이 있을 적에 먹이를 찾아서 두리번거리게 되지요. 그리고 눈끝에서 신문이 얻어걸리면 반가움에 펼쳐들고 읽기에 바빴습니다. 대부분 여행 중에 식당에 들리게 되었을 경우가 그렇겠습니다만, 새로운 정보로 빡빡하게 채워진 내용을 읽으면서 마음의 배가 부르고, 그 다음에 냉면으로 배를 불리게 되면 뭔가 수지가 맞았다는 느낌이 들곤 했었던 것에 대한 배신감일 수도 있겠습니다.


'기자들이 썪었나보다...'라고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그 들도 참 억울했겠다는 동정심이 일어나기도 하네요. 기자는 그야말로 먹이를 물어오는 사냥개의 역할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조직의 구조를 생각해 보면서 얼마나 힘든 나날을 살아가야 할 직업군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집장의 재량으로 외곡된 보도를 찍어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지요. 물론 그러한 것도 사실이기는 합니다만 더 높은 꼭대기에서는 사주(社主)의 손끝이 더욱 매섭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읽으면서 신문사에서 종합방송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사주의 꼭대기에는 광고주가 앉아서 내용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보면서 살살 끓어오르던 화는 절정에 치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권의 총칼과 몽둥이 앞에서 힘들어했을 기자들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기도 했습니다만, 광고주의 횡포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지는 것은 그 차원을 달리하고 있는, 생존보다도 더 치열한 자본시장에서의 힘싸움이라는 것을 보고나니까 왜 이리 허탈한지요......


그런데 이 장면에서 떠오르는 책이 있었습니다. 바로 《장자 》입니다. 왜 그렇게도 장자는 사회를 부정하고 자신의 소요유(逍遙遊)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현실을 도피하는 사람의 모델로 삼으면서도 그로부터 수 천년이 지난 다음에도 그의 글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지를 이해할 새로운 의미를 떠올려 본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의 현실은 한 사람으로써 어떻게 해볼 단계를 훨씬 지나있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총체적 절망감'을 생각해야 할 수도 있는 막강한 위력을 보면서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개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겹쳐듭니다.


세상은 그렇게 삼등분이 되겠지요? 뛰어 들거나, 물러나거나, 혹은 방관자가 되거나 말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한다고 해도 모두가 소중한 판단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세 종류로 나눠져서 유지가 되어야 할 세상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신문의 사설과 편집자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신문을 펴놓고 내용을 다시 편집해서 읽어야 한다'는 글쓴이의 당부까지는 실행을 할 마음이 생기지 않네요. 그러한 것은 또한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 이러한 책의 저자와 같은 사람에게 맡기고 그냥 숲속을 거니는 것이 더 즐겁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이런 내용의 신문이라면 읽지 않아도 될 것 같고, 그래서 즐거울 책을 찾아서 읽는 것이 신문을 조각내면서 편집자의 의도를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오늘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영웅담은 힘이 나고, 철학서는 지혜가 생기고, 과학서는 상상의 힌트를 담뿍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만, 이러한 책은 읽을수록 화만 돋구게 되니......... 또 한 번. 허허허~ 입니다.


                 2011년 9월 13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