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 장자 읽고 마음 다스리기

작성일
2011-06-2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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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9화] 장자 읽고 마음 다스리기








장마 중에 태풍까지 겹친다는 날씨에도 안녕하시지요? 낭월입니다. 문득 태풍(颱風)을 생각하다가 보니까 흑풍(黑風)이 더 무섭다는 법화경(法華經)의 글이 생각나네요. 혹 벗님은 흑풍으로 마음고생을 하시진 않으시겠지요? 그저 이런 때에는 《莊子》 를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최선(最善)이 아니겠는가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장자의 잡편에 보면 32장에 ‘열어구(列禦寇)’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중의 한 단락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宋人有曹商者,為宋王使秦。其往也,
    송인유조상자,위송왕사진。기왕야,



得車數乘;王說之,益車百乘。反於宋,
   
득거수승;왕설지,익거백승。반어송,



見莊子,曰:「夫處窮閭阨巷,困窘織屨,槁項黃馘者,商之所短也;
    견장자,왈:「부처궁려액항,곤군직구,고항황괵자,상지소단야;



一悟萬乘之主而從車百乘者,商之所長也。」
   
일오만승지주이종거백승자,상지소장야。」



莊子曰:「秦王有病召醫,破癰潰痤者得車一乘,
   
장자왈:「진왕유병소의,파옹궤좌자득거일승,



舐痔者得車五乘,所治愈下,得車愈多。
    지치자득거오승,소치유하,득거유다。



子豈治其痔邪?何得車之多也?子行矣!」
   
자기치기치사?하득거지다야?자행의!」




때로는 뜻도 모를 글귀를 흥얼흥얼 읽다가 보면 시끄러운 속이 편안해 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독송(讀誦)의 공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조용히 읽으면 생각들이 마구 겹쳐 들어서 혼란스러워지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장자의 뜻이야 어떻든 간에 또 우리는 우리에게 맞도록 만들어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송나라에는 조상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왕이 부탁을 해서 진나라로 사자가 되어서 가게 되었을 적에 송나라의 왕은 수레를 몇 대 줬다. 그가 진나라에서 일을 보고서 다시 송나라로 떠나려고 하자 진나라의 왕은 그를 반갑게 대하면서 수레 100대를 추가로 붙여줬다. 그가 송나라로 돌아와서 장자를 만나자 이렇게 말했다.


“대체 이렇게 비좁고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짚신을 만들고 멀굴은 비쩍 말라서 누런색이 감돌고 있는 것들은 잘 모르오. 다만 한 나라의 왕을 깨우쳐주고 100대의 수레가 나를 따르게 하는 일은 잘 할 수가 있단 말이오.”


그 말을 듣고 있던 장자가 말했다.


“내가 들으니까 진나라 왕은 병이 나서 의사를 부르면 종기를 터뜨려서 고름을 빼 준 자에게는 수레 다섯 대를 준다더군요. 또 치료하는 곳이 더 더러운 곳이 되면 그럴수록 수레를 더 많이 준답디다. 선생은 그 왕의 치질이라도 치료해 줬습니까? 어떻게 이렇게도 많은 수레를 얻게 되었느냔 말이요. 그만하고 얼른 가시지요!”




대략 이러한 내용이 되겠습니다. 아마도 장자는 더럽게 호강하느니 깨끗하게 고생하겠다는 의미로 그 송나라 사람을 대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스타일이라고도 하겠습니다. 벼슬하러 오라고 하는 말을 들은 귀를 씻은 물을 자신의 소가 마시지 못하게 했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요. 어쩌면 능력이 되지 못하는 자가 남의 성공이나 출세를 비웃었다고 풀이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기에 따라서 해석은 각기 달라지는 것이겠지요.




이 시대에도 벼슬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은 벗님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뭐, 사람 살아가는 것이 다 그렇지요 별 수가 있겠습니까? 그 가운데에서 자신이 타고 난대로 복을 누리면서 연명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 KBS에서 6,25특집을 한 것에 대해서 말들이 많은가 봅니다. 전쟁 당시의 어느 장군을 조명했다고 하는데, 노조에서는 그 방송은 타당하지 않다고 걸고 넘어졌던 모양입니다만 그냥 강행하여 방송되었다고 합니다. 왜 타당하지 않느냐면 그 사람은 일정(日政)때에 독립군들을 찾아서 죽이던 일을 했던 사람이었다는 군요. 말하자면 친일행적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사람을 전쟁의 영웅으로 조명하겠다는 윗선의 명령을 거부 하였던가 봅니다.


그래서 관련 글들을 조곤조곤 찾아가면서 읽다가 문득 낭월의 뇌리(腦裡)에 스친 생각이 장자의 열어구에 나온 종기를 빨아주는 이야기였습니다. 뭐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마침 잘하려고 하다가 그렇게 맞닥트린 것이겠습니다만서도 어쩌면 아귀가 딱딱 맞는 것도 같아서 괜히 심사가 마당가의 초목들이 태풍에 흔들리는 모양으로 변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지 뭡니까.


그러다가 또 못 볼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의 트위터 계정이 폐쇄되고 ‘불량사이트’라고 안내문이 뜬다고 하기에 그것은 또 뭔가 싶어서 자꾸만 파고 들어가게 됩니다. 계정의 이름이 특정인을 모독하는 뜻으로 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2MB18nomA’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읽어보니까 과연 점잖은 뜻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아마도 특정인으로 지목된 본인이 이의를 제기하고 불쾌하므로 삭제해 달라고 했더라면 혹 이해가 되기도 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해당 본인이 심의하는 곳에 참석했더니 심의관이 말하기를, '이엠비 열여덟 엔오엠에이'라고 읽었다네요. 그렇다면 이것을 욕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말도 나올 법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위원장 자신이 보여줬으니 말입니다. 참 웃지도 못할 헤프닝이네요. 쇼도 아니고..... 쯧~! 


세계적으로도 실제로 내용에서 문제를 일으켜서 심의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단지 접속하는 이름이 문제가 되어서 사용을 못하게 되는 경우는 없다고도 합니다. 물론 낭월은 잘 모르지요. 그렇게 써 놨으니까 그런가보다 할 뿐입니다만 이치적으로 생각해 보면 즐거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률로 강행하는 것은 역시 더욱 큰 문제가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이 평범하던 회사원은 욕으로 만들어진 아이디조직을 결성한다고 나섰습니다. 그 바람에 이 특정 아이디에 접속하는 사람이 4천명이라나 뭐라나. 여하튼 하나를 제거하려고 벌인 일이 오히려 그것을 알려주게 된 꼴이니 홍보도 참 여러가지로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심의기관에서 절차도 무시하면서 막무가내로 사용금지로 결정을 했다고 하는 것에서 자꾸만 장자의 구절이 떠오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심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사람과 방송국의 최정상에 있는 사람들은 진나라에서 수레 100대를 받은 사람이 장자에게 욕을 먹은 것과 무슨 연관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라도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구심이 봄바람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이 살랑살랑 일어나면서 생각을 흔들고 있네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밉다’는 속담이 있지요? 요즘은 어떻게 된 일인지 소위 말하는 ‘알아서 기는’사람들이 득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가끔은 흑풍(黑風)이 몰아치곤 합니다. 이 흑풍은 나를 태우고 세상을 태우고도 남을 나쁜 에너지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수양이 아직도 새까맣게 멀었다는 것을 매일 느끼고 있는 낭월입니다.


왜냐하면 밖에서는 아무리 부조리와 권력의 소용돌이가 난무(亂舞)를 하더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치를 궁구하기에 여념이 없어야 할 것인데 말입니다. 아직도 이러한 것에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분명히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지요. 그래서 그 흑풍을 바라보다가 스스로 허탈하게 웃고 마네요.




이렇게라도 간단하게나마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흑풍을 적어놓는 것은, 낭월의 마음살이가 아직도 겨우 요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적어놓으면 나중에라도 분발해서 더욱 넉넉한 수준이 되도록 노력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리고 또 10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문득 이러한 글을 읽게 된다면, ‘아하~ 2011년에는 그러한 일들이 있었던가 보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웃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조금은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10년이 지나고 나서도 여전히 같은 상황의 재연을 보게 될런지도 모르겠지만요.




문득, 올해는 위에서 찍어 누르는 것이 정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묘(辛卯)니까요. 그렇다면 작년에도 그랬겠네요. 경인(庚寅)도 마찬가지로 위에서 찍어 누르는 것이지요. 그나마도 작년에는 인중병화(寅中丙火)를 의식해서 눈치라도 조금 봤다고 한다면 올해는 아예 그것도 없는 모양입니다.


나아가서 60년 전의 경인년에도 위(북쪽)에서 찍어 눌렀군요. 1950년은 틀림없는 경인(庚寅)이니까 말이지요. 어쩌면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이 되는지 생각을 하다가도 가끔 무릎을 칩니다. 그렇다면 내년에는 아래에서 치밀어 올라갈 것이 분명하겠습니다. 임진(壬辰)은 하극상(下剋上)의 토극수(土剋水)이니까 말이지요. 말이 길어지네요. 그만 흑풍을 잠재우기 위해서 향이라도 하나 피워야 할까 봅니다. 우야든둥 편안하신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1년 6월 26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