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전라도 음식이 다양한 이유

작성일
2011-06-2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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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8화] 전라도 음식이 다양한 이유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온다던 장마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대신에 불볕이 작열(灼熱)하네요. 많이 더우시지요? 계룡산의 하루도 대단하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하지(夏至)가 모래이니 여름의 끝에 와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며칠 전에 ‘오주괘관법(五柱卦觀法)’의 원고를 화인에게 넘겨줬더니 계속 꿍시렁거리는 것입니다. 왜 글이 자꾸 씹히느냐는 둥, 이전의 글체가 아니라는 둥 이런저런 시비를 해서 슬그머니 화기(火氣)를 받았지 뭡니까.


그렇지만 뭐 별 수가 없지요. 화인의 의견이 독자의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겸허히(!) 수용을 해야 하거든요. 여하튼 다시 손을 봐야 하겠는데, 우선 마음을 청소해야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정돈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청소하는 중이랍니다. 아마도 2~3일은 들여다봐야 할까 봅니다. 혹, 이 책을 기다리셨다면 아무리 급하셔도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하겠네요. 조금만 청소를 하면 이내 정돈이 되겠지요.




1. 차의 맛을 모른다?



차를 마시게 되면서 느낀 점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다가 전라도 음식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던 것이지요. 낭월도 나름대로 미각(味覺)이 꽤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차를 마시게 되면서 그것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맛있는 차라고 해서 일껏 우려주면 화인이나 금휘가 기가 막히게도 차가 바뀐 것을 알아내거든요. 흔히 블라인드테스트라고하나요?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그냥 차를 만들어서 따라주면서 반응을 살펴봅니다. 그러면 용케도 구분해서 알아내니 그것이 또 신기한 낭월입니다.


낭월의 느낌으로는 그것이나 저것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느끼는데도 그들은 기가 막히게도 구분해 내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필시 신체적으로 뭔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김치가 시거나, 된장국이 짜다는 것이야 누구나 쉽게 알아내겠습니다만 차의 미묘한 맛의 차이를 단박에 구분하는 것이 참 신기하거든요. 그런데 차는 어디에서 발달했는지 생각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바로 전라도지요. 보성, 강진, 지리산, 해남이 모두 전라도지역입니다. 물론 경상도 지역에서도 있기는 합니다만 본거지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남해안의 동부지역보다는 서부지역에 밀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네요.


5년이 된 차와 6년이 된 차의 맛은 그게 그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알아내는 사람은 맛의 차이가 다르니까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면서 낭월은 괜히 오래 묵은 차를 사서 마시느라고 비싼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위로 아닌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기왕이면 그 오묘(奧妙)한 맛도 느끼면 더 좋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나름대로 괜찮은 차라고 하는 샘플이 있길래 우렸습니다만 화인은 바로 거부를 하네요. 떫은맛이 비쳐서 전에 먹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낭월의 미각에는 원래 차가 조금 떱떠름한 맛도 있는 것이지 뭘 그러나..... 싶거든요. 지금은 편찮으신 어머님을 모시고 논산에 나갔습니다.


다시 생각을 해 봐도 미각의 차이가 확연히 난다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자주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일이 생기네요. 그냥 마셔도 되는데, 혹 그 차이를 쉽게 알아내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지가 궁금한 것이지요. 벗님의 미각은 어떠세요? 커피를 마셔도 네팔산과 콜롬비아산을 구분하실 수 있으신가요? 요즘은 또 이것이 궁금해진 낭월입니다. 하하~




2. 크레파스와 물감



크레파스는 24색이었지요. 왕자표 크레파스가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것을 갖고 싶어서 어머니를 졸랐던 기억이 문득 납니다. 그러다가 48색의 크레파스를 들고 나타난 서울에서 전학을 온 녀석을 부러워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색을 쓸 수가 있다는 것이 부러웠던 것을 보면 색감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조금 발달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포로스름한 것과 파로스름한 것의 차이도 느낄 수가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거든요.


그렇게 크레파스의 색이 많은 것을 부러워하다가 그림물감을 알게 되면서 그 생각이 얼마나 협소한 것이었는지를 바로 알게 되었지요. 물감으로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색을 만들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바로 크레파스는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그 생각이 나는 것은 낭월의 미각이 바로 12색의 크레파스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남들은 16만 가지의 맛을 구분할 기준이 있는데, 낭월은 12가지의 맛을 구분하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도 조금은 슬플 수가 있겠지요?


아니, 슬픈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맛의 색깔도 사람에 따라서 보유하고 있는 기준이 다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치를 담아도 맛을 보는 사람은 따로 있잖아요? 그러한 것은 교육을 통한 학습으로 이뤄지는 거이 아니라 타고 나는 본능에서 주어진 것이므로 신의 작품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와인의 맛을 감별하는 사람도 아마 그렇게 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겠지요?




3. 전라도 음식과 경상도 음식



전라도 음식은 어떻고 경상도 음식은 어떻다고 말들을 하시지요? 벗님께서는 어떤 기준을 갖고 있으신지요? 보통 경상도 음식은 짜고 맵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간 고등어가 경상도에서 생겨난 것을 봐도 대략 짐작이 되기는 하네요. 전에는 그냥 경상도 사람들은 음식을 하는 솜씨가 없어서 그런가보다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솜씨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밖에 느낄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맛을 낼 수가 없다는 쪽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아내는 전라도 여성을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올 법하네요. 하하~


 물론 전라도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겠습니다. 그래서 그냥 평균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해놓겠습니다. 그런데 음식에 따라서 사람도 달라진다고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짜고 매운 음식을 먹고 사는 경상도 사람은 흑백이 분명하고 호불호가 나눠진다고 하면 전라도의 경우에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전라도에서는 ‘거시기~!’라고 하는 세 글자를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할 수가 있는지를 한국 사람은 다 알고 있지요. 어쩌면 시인(詩人)도 전라도에서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고 화가나 음악가도 호남에서 나오는 것이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즉, 미세한 표현일수록 전라도 사람들이 유리하다는 것을 생각하다가 보니까 그런 부분도 느껴지네요.


선(線)으로 말하면 굵고 단순한 것이 영남(嶺南) 사람들이고, 가늘고 복잡한 것이 호남(湖南)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거(긁적긁적) 차 맛을 이야기하다가 이야기의 방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네요. 그래도 본질은 벗어나지 않고 있으려니 하고 계속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경상도 사람들을 왜 영남사람들이라고 하는지도 공감이 됩니다. 영(嶺)이 뭔가요? 그것은 준령(峻嶺)을 말하는 것이고 산의 큰 고개를 말하잖아요? 산맥의 줄기는 태백산맥(太白山脈)처럼 그렇게 쭈욱 내 달리는 굵은 선이 되겠습니다. 그러한 지형의 남쪽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이해를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반면에 호남(湖南)의 호(湖)는 호수(湖水)입니다. 온갖 지류(支流)에서 흘러온 물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이니 그야말로 다양하기가 이루 말을 할 수도 없을 정도의 각처에서 모인 물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색다른 각종각양의 모습들이 나타나겠는지를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말이 되나요? 이름을 뜯어봐도 재미있는 것이 가끔 발견되곤 하네요.


다시 음식으로 돌아가 봅니다. 산중에서는 재료도 간단합니다. 나물과 뿌리들이지요. 가끔은 사냥을 한다면 노루나 토끼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물가에서는 먹을거리가 참으로 다양합니다. 온갖 풀들과 해산물이 넘쳐나지요. 그러니 수만 년 전부터 그러한 먹거리로 훈련이 되었다면 조상의 유전인자에 그대로 기록이 되어서 대대손손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생존과 연관이 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유전인자에서 이미 맛을 식별하는 능력이 제각기 다르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4. 학문의 경계에서도 통할까?



이제야말로 확장의 끝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유전인자에 박혀서 전해지는 것 중에서는 글자의 의미를 분석하는 능력도 포함이 되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글공부를 하는 낭월인 까닭인가 싶습니다. 문자는 전라도보다 경상도에서 더 진보되었다고 하면 억지일 수도 있겠습니다. 문득 생각이 난 것은 방구대의 암각화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역으로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요. 여하튼 방구대는 울산에 있으니 경상도인 것은 확실합니다. 하하~


문득, 뇌각(惱覺)이라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 미각(味覺)도 있고, 시각(視覺)도 있는 마당에 뇌각이라고 해서 없을 수는 없겠지 싶어서 말이지요. 그리고 그 뇌각이 또 사람에 따라서 12색의 크레파스와 16만 색의 그림물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전개해 봅니다. 그러니까 천(天)이라는 글자를 놓고서도 ‘하늘천’하고서 하늘에 대해서만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하늘, 자연, 천연, 천성, 무한대, 넓음, 양(陽) 갑을병정(甲乙丙丁) 등등의 이치를 모두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도 낭월의 뇌각이 갖고 있는 크레파스 12색으로만 나타낼 뿐이지요. 대단히 총명한 16만 색의 뇌각(惱覺)으로 표현하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상상도 할 수가 없는 다양한 모습으로 읽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타고 난다고 한다면 아마도 전생부터 글을 많이 읽고 외운 결과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단색(單色)의 검정볼펜은 아닌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생에서는 공부가 되지 않더라도 뇌각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죽자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도 되나요? 결국 무슨 이야기로 시작을 하더라도 결론은 공부해야 한다는 것으로 내리게 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도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그만 줄이고 마무리를 해야 할까 봅니다.


날씨는 덥더라도 시원한 마음으로 상쾌한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낭월도 마음을 가다듬고서 다시 원고를 들여다 봐야 하겠습니다. 또 다음에 뵙지요. 고맙습니다.




              2011년 6월 20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