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다중지능과 십성관계

작성일
2011-06-0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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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6화] 다중지능과 십성관계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목단이 시든 자리를 작약이 채워주더니 작약마저 시든 자리에는 이름 모를 여름 꽃들이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정원이 되어주고 있는 감로사입니다. 들판에는 모들을 심느라고 이양기 소리가 진동을 하더니 이제 다 심었는지 조용해 졌습니다. 이렇게 계절의 흐름을 직간접으로 느끼면서 아침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교육방송(EBS)에서 아이들의 다중지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봤습니다. 하워드 가드너(H. Gardner)라는 심리학자가 창안했다고 하는데, 여덟 가지로 나눠서 정리를 해 놓은 내용을 봐서는 통상 지능지수(知能指數)로 표시하는 아이큐(IQ)보다는 훨씬 진보한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롭게 지켜봤습니다. 신체적인 지능이 발달한 아이가 공간지능이 떨어지는 것이라든지, 자연친화지능이 발달한 아이는 언어표현능력이 부족하거나, 공간지능이 뛰어난 아이가 대인관계에서는 부족함을 나타내는 것과 대인관계지능은 발달했는데 자기이해기능은 부족한 것을 보면서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중지능의 극단적인 사례가 바보천재들이라고 하는 이야기에서 손뼉을 쳤습니다. 그들의 재능을 그렇게 표현한 가드너의 통찰력에 감탄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낭월의 소견으로는 그들의 특이한 능력을 궁리하다가 다중지능에 대해서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아무 것도 잘하는 것이 없는데, 유독 어느 한 가지에 대해서는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가 없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론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해서 나름대로 이해를 한 것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다만 이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꾸지람을 들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벗님께서 읽으시고서 말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 주시고 싶다면 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낭월도 심리분석에 대해서는 관심이 지대(至大)하므로 이러한 가르침이라면 얼마든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황당한 이야기가 된다면 또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를 하면 좋을까 싶은 생각에 문득 한 마음이 일어나서 정리를 해 본 것입니다. 어설픈 이야기가 다중지능의 이해에 약간의 참고가 되신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① 언어(linguistic)지능


언어지능은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기능을 말하는 것이겠습니다. 말을 잘한다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보겠습니다. 물론 말을 잘하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므로 세부적으로는 구분을 할 수가 있겠지만 여하튼 언어를 관장하는 뇌의 기관이 활성화가 되어있다면 이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은 틀림이 없겠습니다. 우리는 말을 잘하면 상관(傷官)의 기능으로 대입을 하기도 하지요. 문득 언어지능이 발달한 아이의 사주를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 아이의 사주에서 일간(日干) 주변에 상관(傷官)이 나타나 있을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지요.


낭월에게 말을 잘 못한다는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주에  상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지요. 사실 어려서부터 말주변이 없었습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항상 서투르기 때문에 심지어는 말을 더듬기조차 했으니까요. 그래서 말을 하기 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을 글로 쓰다가 보니까 글은 말보다 훨씬 나았던 모양입니다. 뭐라고 써놓으면 대체로 글은 읽어 줄만 하다는 이야기들을 해 주시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런 모양입니다. 그런데 여덟 가지의 지능 중에 글을 쓰는 지능이 없네요.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말하는 것과 글 쓰는 것을 같은 표현으로 묶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글 쓰는 것은 제외를 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네요.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편지를 쓰려고 밤을 새워서 썼지만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했다는 사람을 만났었거든요. 그런 것을 보면 글 쓰는 것도 재주이기는 한 모양인데 말입니다.




② 논리 수학(logical-mathematical)지능


논리성과 계산하는 능력을 묶어서 써놓은 것은 8가지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가드너는 같은 것으로 봤을 수도 있겠지만 낭월이 보기에는 논리와 수학은 같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논리는 식신(食神)이라고 할 수 있다면 수학은 정재(正財)가 될 것인데, 이것을 묶어놓은 것을 보면 식신생정재(食神生正財)의 모델을 놓고 궁리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 둘을 묶어놓은 것은 아무래도 좀 어색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낭월은 논리적인 면은 있는데, 수학적인 면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이미 아시는 벗님은 다 알고 계시겠습니다. 그래서 논리는 식신(食神)으로 본다면 파고 들어가서 궁리하는 것이므로 타당하다고 하겠고 수학은 치밀하게 계산을 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나눠야 한다고 봤을 적에 논리-식신, 수학-정재로 대입하여 이해하면 무난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의 재능은 논리적인 사람은 수학도 잘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논리적이거나 수학적인 지능을 묶어서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 학자의 저서를 읽어봐야 하겠네요.




③ 공간(spatial)지능


그림을 잘 그리는 모델을 놓고 공간지능이 발달한 사람으로 대입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빈 캔버스에 무엇인가를 채워가는 것은 공간지능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지도(地圖)를 보고 이해하는 것도 공간지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낭월에게는 공간지능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항상 이야기하는 것으로 공간성(空間性)은 편재(偏財)의 영역으로 대입을 하고 있지요. 이것은 가드너도 같이 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④ 신체 운동(bodily-kinesthetic)지능


운동신경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마도 그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히 다른 것은 못하지만 운동에 대해서는 밥을 먹지 않고 뛰어다녀도 즐거운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운동지능이 따로 있어서 몰입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낭월은 운동신경이 뒤져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시력에 의한 현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보는 것은, 예전에 운동신경이 좋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거든요. 서울의 남부순환도로에서 엄청나게 과속으로 달리던 택시에게 치었는데 앞에 붙은 백미러가 부러졌지만 낭월의 다리는 멀쩡했던 적이 있습니다. 기사가 놀라서 보니까 부딪히는 순간에 기가 막힌 방어를 하여 낙법을 했답니다. 거 참.......


여하튼  십성에서 신체운동은 겁재(劫財)로 대입을 해 봤습니다. 경쟁심이 우선한다고 봤고 그로 인해서 지지 않으려는 승부심이 발동하게 되어서 몰입이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낭월은 운동을 별로 즐겨하지 않습니다. 특히 먹지도 못하는 공을 쫒아서 사력을 다 하는 것을 보면 우습기도 하거든요. 축구 좋아하시는 분이 읽으시면 연기가 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하~ 그 겁재가 월지(月支)에 있으면서 갑목(甲木)에게 견제를 당해서 그런 것이라고 짐작을 해 보고 있습니다. 여하튼 겁재를 거론했다고 이해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⑤ 음악(musical)지능


확실히 음악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낭월이 노래방에서 한 곡조를 하면 다들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소리는 크지, 박자와 음정은 무시하지, 거기다가 2절까지 부르니 미칠 지경이겠지요. 그래서 노래방에 가자고 하는 말을 들은 지는 참으로 오래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낭월도 전혀 안타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직 콩나물대가리의 값에 대해서도 전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음악적인 지능이 확실히 없다고 봐야 하겠네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또 듣는 것은 좋아합니다. 한참 음악에 빠져있을 적에는 또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기는 합니다만 아마도 운의 흐름에 따라서 일시적인 현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기는 하겠네요. 여하튼 노래 부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또 듣는 것은 좋아하니까 이것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음악적인 소질을 어느 십성(十星)으로 대입해야 할 것인지가 좀 아리송합니다.


작곡을 한다면 정인(正印)의 영감(靈感)과 식신(食神)의 창의(創意)고, 연주(年柱)를 한다면 치밀하게 통제(統制)하는 정재(正財)라야 하고, 지휘(指揮)를 한다면 이번에는 악단을 관리해야 하는 편재(偏財)가 될 것이며, 성악을 인데 이러한 것을 모두 묶어서 음악지능이라고 해 놔서 어디까지를 대입하고 이해해야 할 것인지는 또 생각을 해 봐야 하겠습니다.




⑥ 대인 관계(interpersonal)지능


대인관계는 아무래도 사교성(社交性)으로 대입하여 이해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을 만나기 두려워하면 대인기피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사람을 만나서 수다를 떠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라면 우리는 사교성의 대표주자인 상관(傷官)에게 그 역할을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자폐아들은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네요.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대인관계의 지능이라고 부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만 대인관계도 여러 가지이기는 하지요. 일단 기족은 제외하고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보는 것은 타당할 것 같습니다.


아무하고나 잘 못 사귀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지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면 되겠네요. 그러고 보니까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는 것을 전제로 지능이라고 했지 싶습니다. 폭력적으로 대인관계를 한다면 그것은 지능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지요. 이렇게 되면 ①의 언어지능과 중복이 되어버리는 감이 있네요. 언어지능도 상관의 성향으로 대입을 할 수가 있으니까 말이지요. 여하튼 일단 이렇게 대입을 해 놓고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대인관계가 좋다는 아이의 행동을 보니까 남을 배려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네요. 그것은 편관으로 봐서 봉사(奉仕)하는 것이라고 이해를 해도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대인관계의 지능이라고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설명을 본다면 아마도 많이 혼란스럽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자칫 너무 포괄적으로 다루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이야기지요.




⑦ 자기 이해(intrapersonal)지능


이러한 말이 나온다는 것은 사실 좀 의아합니다. 자기를 이해하는 지능이라니...... 왜 이런 말을 생각해 냈을 지가 또 궁금하네요. 자기를 이해한다는 것을 설명한 내용을 이해해 본다면 아마도 자존감(自尊感)으로 풀이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존심(自尊心)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그것을 참으로 좋게 말해서 자기이해지능이라고 했네요. 그렇다면 우리는 비견(比肩)을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적어도 융의 성격구조에서 한 단계 나아가 봤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비겁(比劫)의 존재에 대해서 가드너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비견의 느낌과 조금 다른 것은 성찰(省察)이라는 느낌이 추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찰은 정관의 작용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겠는데, 그냥 비견만으로는 그것까지 논하기는 좀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십성에서 가장 근접한 성분으로 본다면 비견으로 대입하면 비슷하기는 하겠습니다.




⑧ 자연 탐구(natural)지능


그런데 이것은 좀 납득이 되지 않는 지능이네요. 자연을 탐구하는 지능은 어떤 것일까요? 왜 가드너는 이러한 항목을 만들게 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공간지능과 중복이 되었던 것도 같고, 설명으로 봐서는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이치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 같은데, 이것은 자연의 신비한 흐름을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하는 지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렇다면 편인(偏印)의 영역으로 대입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에서 조금 더 내다보면 초자연(超自然)이 되는데 이러한 것은 신계(神界)라고 보고 그 모두는 편인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궁리를 해야만 일정한 체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므로 여기에서도 식신(食神)의 협조가 절실(切實)하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뭔가 좀 엉성해 보이는 것은 낭월이 다중지능의 이론을 잘 몰라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이러한 것을 분류하여 희망하는 적성과 잘 할 수 있는 일을 가려나고 또 잘 못하는 것을 찾아내어서 개선을 시킬 수가 있는 방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논리로 재능을 설명하는데, 보통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즉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서로 상반된 개념은 아닌 모양이네요. 그리고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측정해 보면 타고 난 능력의 상위에 속하는 3가지 정도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고 싫어하는 것은 잘 못하는 것이라는 간단한 주먹구구도 먹혀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하튼 위에서 거론이 된 것을 십성으로 대입해 보면 대부분 포함이 되어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특히 잘하는 것의 세 가지라는 것을 들으면서 성격존의 세 글자가 겹쳤습니다. 일간(日干)을 위주로 해서 일지(日支), 월간(月干) 그리고 시간(時干)으로 생각이 되었던 것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사람에게는 선천적으로 타고 난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환경적으로 약간 변화를 줄 수는 있어도 평생 간다는 것에는 동의를 해야 할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주팔자의 이론과 서로 연결이 된다면 훨씬 더 심도가 있는 이론으로 정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낭월의 생각은 여기까지입니다. 더 이상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은 없네요. 그리고 시험문제지가 있는 것 같은데, 둘 중에 하나를 골라서 점수를 모아놓고 결과에 따라서 %로 판단을 하는 것은 과학적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지능을 그렇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또 하나의 IQ검사와 같은 우를 범하게 되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러한 검사를 받았던 사람들이 네이버에 질문을 한 것을 봐도 결과는 나왔는데 그것으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차라리 그것을 몰랐다면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하면 될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또 하나의 망상을 추가하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봤습니다. 왜 갑자기 지네의 우화(寓話)가 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우가 지네를 보면서 감탄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지네여 그대는 그 많은 발을 어쩌면 그렇게도 놀랍게 움직여서 전혀 꼬이지도 않고 부딪치지도 않으면서 절묘하게 길을 가는가? 그것은 무슨 시스템인가?’하고 물으니 지네가 답을 못했다지요? 그냥 그렇게 마음이 내키는대로 길을 갈 뿐인데 말입니다. 그러자 여우가 다시 나무랍니다. ‘자기 몸에 붙어있는 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모르고 바보처럼 살아간단 말이냐’라고요. 그 말을 듣고 지네는 그것도 그렇겠다 싶어서 그 순간부터 발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1번 발이 움직이면 2번 발이 뒤따르고 다시 3번 발은 꼼지락거리면서 움직일 준비를 하는군..... 하다가 마침내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발이 꼬여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던 것이지요.


문득, 지네는 자기성찰의 지능이 없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반면에 여우는 공간지능이 뛰어났던 모양입니다. 언어능력도 말이지요. 잘하는 것은 살리고 못하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 낭월입니다.


여하튼 심리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도 동서양의 심리학자들은 고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은 점차로 인간의 행복을 찾아주는데 좋은 안내자로 자리를 잡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지요. 어줍잖은 소견으로 간단히 다중지능의 구조에 대해서 생각을 적어 봤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 더 이해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1년 6월 4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