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 아니, 왜 들어오지 않고?

작성일
2011-04-03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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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아니, 왜 들어오지 않고?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계룡산입니다. 이른 새벽에 문득 잠이 깨어서 빗소리를 듣다가 책장에서 책을 한 권 뽑았습니다. <선문염송>이라는 책입니다. 이렇게 문득 손이 가는대로 뽑아서 또 손이 가는대로 펴고 읽으면 그 속에서는 장강이 도도히 흐르는 것처럼 제불보살들의 지혜뭉치들이 잔치를 벌이는 풍경에 동참을 하는 것 같은 즐거움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1. 염송9화 문외문답(門外問答)


제목이 문외문답이네요. 문밖에서 문답을 나눈 이야기라는 뜻인가 싶습니다.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부처님께서 하루는 문수보살이 문밖에 있는 것을 보시고
"문수 문수여, 왜 문안으로 들어오지 않는가?"물었다.
문수가 대답하기를
"부처님이시여, 저는 한 법도 문밖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데
어찌 문안으로 들어오라 하시나이까?" 하였다.


이것이 다입니다. 참 간단하기도 하네요. 부처님이 한 번 묻고, 문수보살이 한 번 대답한 내용을 <입법계체성경>이라는 경전에서 뽑아내어 적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구성인 선문염송이란 의미도 이러한 내용들로 이뤄져 있다는 뜻인가 싶습니다.


벗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위대한 대각세존과 지혜의 덩어리라고 하는 문수보살의 대화에서 무슨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한 대목을 뽑아서 후학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일까요? 풀이를 보니까, 부처는 세속적으로 물었는데, 문수는 탈속적으로 대답을 하여 표리가 없다고 하였네요. 그러니까 문수를 칭찬하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짤막한 글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과연 일리가 있겠습니다. 진리에는 문이 없어서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고 하던가요? 그런데 문밖에 있는 문수에게 문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으니 부처도 야단을 맞을 말씀을 하셨지 싶기도 합니다. 즉, 부처는 안밖의 구분을 지었으니 우리 역학인의 말로 한다면, 음양이 둘이라고 생각을 했다는 비난을 받아서 마땅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물론 멋진 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만 멋지다고 손뼉만 치고 있어서는 얻을 것이 별로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뭔가 뒤적거리면서 먹다가 남긴 땅콩 부스러기라도 찾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슬그머니 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노력도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니 부처님이라고 하더라도 과히 심하게 나무라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할 요량입니다. 하하~


2. 대화가 진행된 상황의 이해


그러니까 짧은 대화를 실제로 눈 앞에서 전개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 늘어벌려보려고 합니다. 원래 이것이 낭월의 주특기이기도 하니까 같이 생각을 해 보십시다.


부처님께서 전각에서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밖을 내다보니까 마침 문수보살이 문 밖에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고 서 있었겠네요. 그것을 보고서 '아니 왜 들어오지 않고 밖에 서 있느냐?'고 물어봤을 것입니다.


그러자 문수보살께서는 앞의 그 말씀으로 답을 하셨겠지요. '진리에는 문의 안과 바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라도 항상 실제하는 것인데 부처님께서는 뭘 생각하셨길래 이 문수에게 들어오라고 하시는 겁니까?'라고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보통의 제자라면 좀 건방진 답변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상대는 문수입니다. 대지문수(大智文殊)가 아닙니까? 지혜로 으뜸이 되는 자타공인의 대사이신데, 이러한 분이 부처의 말씀을 받았으니 사건이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해를 한 해설자는 이 장면에서 부처가 문수에게 한 방 맞았다는 느낌이 드는 풀이를 해 놓으셨네요. 문수의 편을 들었다는 말도 가능하겠습니다. 물론 날카로운 수행의 직관으로 풀이를 한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풀이에 대해서는 낭월과 같은 범부가 중언부언할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말이 머리를 흔들면서 주인의 손길만 따라서 움직이는 것도 멋이 없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건방진 한 생각을 일으켜서 살짝 비틀어 보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슬거머니 드는 것이지요.


괜히 미리부터 떨 것은 없습니다. 말이 안 되면 '이거, 쑥스럽구만~!'하면 되는 것이고, 어쩌다가 말이 되면 기특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말이지요. 가장 나쁜 것은 어정쩡한 자세로 서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는 것이고,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질러놓고 보는 것이지요. 좌충우돌하다가 보면 뭔가 얻을 것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3. 고승의 말씀도 비틀어 보자.


낭월이 이 내용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풍경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어졌던 것이지요. 부처가 하시는 말씀은 일상적인 대화입니다. 벗님이나 낭월이나 늘상 그렇게 말을 하지요. '추운데 안 들어오고 왜 밖에 있어?'라는 말은 겨우 내 사용했던 말이기도 하네요. 어제오늘은 조금 포근했습니다만 유난히 추운 날이 많았던 3월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수보살의 답변은 의외입니다.


사실 이러한 답이 나올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생각을 해 보고 싶습니다. 부처가 법좌에 앉아서 금강경을 설법하던 자리였다면 또 모르겠으나 문득 밖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서 던진 말에 대한 답변으로는 좀 당돌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싶네요.


그래서 왜 그러한 답을 했을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낭월이 누굽니까? 심리분석에 목숨걸고 달려드는 돈키호테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문수의 미음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그랬더니 심사가 비틀어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수의 답변에서 느껴지는 표정은 '볼멘소리'의 톤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아마도 아침에 부처님께 무슨 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존심이 있었다면 대중이 모여있는 가운데에서 한소리 들었을 적에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요. 아, 이것은 순전히 범부중생인 낭월의 지어낸 개그라는 점을 밝혀둡니다. 혹 다 믿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부처가 진리의 존재란 문의 안과 밖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몰라서 그렇게 말을 했더라면 이미 부처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고, 천하의 문수보살이 그러한 의도가 아닌 마음으로 그냥 일상적인 말을 한 부처에게 정색을 하고 덤빈 것을 보면 분명히 뭔가 뒤틀려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말이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어쩌면, 천하의 문수가 어떻게 그것도 모르느냐는 핀잔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소리를 듣고서 기분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고, 아무리 보살의 지위에 올라갔더라도 최소한 오욕칠정의 생명체라고 한다면 구박을 받아서 기분좋을 부처는 없겠기에 해본 생각입니다.


문수보살을 좋아하시는 불자님께서 이러한 글을 보시게 된다면 샐쪽한 계집아이를 만들어 놨다고 뭐라카실 수도 있겠습니다. 천하의 문수를 갖고 놀아도 적당히 놀아야지 너무 심하다고 하실 수도 있겠네요. 하하~


4. 상도(常道)와 비상도(非常道)


문득 일상적인 대화와, 진리를 사이에 놓고 전광석화같이 불꽃이 튀는 긴장감이 도는 대화를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글자로만 봐서는 구분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눈빛을 보게 된다면 바로 확인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로,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빈다'고 하잖아요. 지금 문수의 반응을 보면서 슬며시 미소가 번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들어오라는 부처의 말은 일상적인 말이니 상도라고 하겠는데, "세상의 이치에 문안과 문밖의 구분이 없고 자신은 한 번도 문밖에 있어 본 적이 없는데 무슨 말도 되지 않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껴?"라고 정색을 하고 덤비는 것은 그 속담을 떠올리기에 과히 부족함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출입을 하면서 대부분은 비상구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봅니다. 보통 때에는 그냥 출입문을 사용합니다. 그러다가 특별한 경우가 되면 비로소 비상구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부처가 문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문수는 비상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면 뭔가 심리적으로 봤을 적에 문수는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는 추리를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생각을 해 봅니다.


가끔은 대화를 하다가 보면, 어디에 떨어지는 말인지도 모르고 엉뚱한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를 접하기도 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못 이해하였다면 낭월도 엉뚱한 답변을 할 수 밖에 없겠네요. 그래서 사오정이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습니다. 귀가 어둡느냐는 말이겠지요.


가끔은 전화를 해 주시는 독자의 경우도 있습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양념을 뿌려놓은 대목을 갖고서 타당하지 않다는 둥의 이야기로 바쁜 낭월에게 전화를 하여 따지는 경우에는 참 난감하기도 합니다. 그냥 웃으면서 읽으면 편안할 이야기를 너무 깊이 생각하셨던 것이지요.


물른 그러한 빌미를 제공한 것에 대한 책임도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전후의 맥락을 보게 되면 그냥 웃으면서 지나갈 수도 있는 이야기거든요. 그런 전화를 받고 나면 갑갑해 지기도 합니다. 핵심을 놓치고서 엉뚱한 놈을 붙잡고 신경을 쓰고 있어서는 공부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짤막한 이야기 한 토막을 놓고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 가는 말과 오는 말의 무게가 달라지면 서로 먼산을 바라볼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대화나 상담이 그런 것이겠지요?


가령 '올해는 돈을 좀 모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 상담자에게 '돈은 번뇌의 씨앗이니 있는 것도 갖다 버리시오!'라고 한다면 이게 어디 말이 되는 소리냐는 것이지요. 물론 이치적으로 답을 했다고 할 수도 있으니 틀렸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만 질문자의 마음은 상도를 물었는데, 답변해주는 사람이 비상도로 말을 한다면 두 사람의 대화는 소통불능증에 빠지게 될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겠지요?


오늘도 누군가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시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잠시 생각을 해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 상대방이 무심고 '건강하시네요.'라고 했는데, '그럼 병들었으면 좋겠수?'로 받지는 않았는지를 말입니다. 하하~! 오늘하루 즐거우면 하루동안 신선이랍니다. 고맙습니다.


                2011년 4월 3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