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 복(福)과 덕(德)의 관계

작성일
2010-11-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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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6화] 복(福)과 덕(德)의 관계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가을이 깊어가니 주변의 풍광들이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르는 것이 보이네요. 오늘 아침의 주변은 이렇습니다.


 


(1)


 


 


(2)


 


 


(3)


 


 


(4)  


 


 


가을이 깊어가니 낙엽이 지고 국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그대로 자연풍경이 질서를 지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네요.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상쾌한 시간에는 이렇게 마당가를 서성이면서 생각하는 일들이 즐겁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복덕(福德)으로 삼아놓고서 생각을 해 보고 있습니다. 복과 덕에 대해서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나이를 먹어가기는 하는 모양입니다. 벗님이 생각하시는 복과 덕은 어떤 것인지요?


마당가에서 네 장의 사진을 주웠습니다. 1,2,3,4로 번호를 붙여봤습니다. 이상하게 오늘은 사진이 모두 세로로 만들어졌네요. 그것도 하나의 흐름이려니 하겠습니다. 아마도 나무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겠지요. 대상에 따라서 사진이 눕기도 하고 서기도 하니까요.


이 네 장의 그림에서 가장 복이 많은 것은 어느 것일까요? 또 가장 덕이 많은 것은요? 모두가 그것이 그것같습니다만 또 여기에 생각을 한 조각 덧칠하게 되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그림으로 탈바꿈하는 것 같습니다.


1번은 복의 개념으로 만들어봤습니다. 복은 누리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빛고운 단풍이라고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사랑을 받을 것이니 과연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단 덕은 없습니다. 왜 그런지는 다음 사진을 보면 이해가 될 수 있겠습니다.


2번은 복과 덕이 절반씩입니다. 보여주는 것도 절반이고 베풀어주는 것도 절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3번은 완전덕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홀랑 벗어버리고 모두 자연으로 돌려줘버렸으니까 말이지요.


4번은요? 예, 이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이 꽃처럼 아름답게 오래도록 살 수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느라고 한 장 담아본 것입니다. 그렇지만 복덕이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우겨도 될 것 같기는 하네요. 자고이래로 꽃 싫다는 사람은 알레르기 비염환자를 제외하고는 없을테니까 말이지요.


 


1. 누림(福)과 베품(德)


생각을 정리해 보니까 복덕의 의미는 음양이라는 것을 알겠네요. 그러니까 복은 마음껏 누리는 것이고, 덕은 한껏 베푸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기준으로 삼라만상을 살펴보게 되면 덕이 많은 것과 복이 많은 것을 구분하는데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해 봅니다. 이렇게 놓고서 살펴보세요.


소는 덕이 많을까요? 복이 많을까요? 소가 누리는 것은 얼마 없고, 베풀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면 필시 덕이 많은 짐승인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어떨까요? 그 녀석은 받아먹고 사랑만 받았지 아무 것도 해 주는 것이 없으니 필시 복이 많은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그러고보니까 복이 많은 것은 편하고 덕이 많은 것은 고단하군요. 아마도 그게 맞을 겁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지요. 어떤 사람이 있을 적에 그 사람은 덕이 많은 사람인지 혹은 복이 많은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면 이러한 기준이 해결책이 될 것으로 봅니다. 간단히 생각하면 아버지는 복이 많고 어머니는 덕이 많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아버지는 대접을 받고 누리기만 하는데 어머니는 새벽부터 밤까지 쉬임없이 봉사를 해야 하니 말이지요.


 


2. 정치가에게도 해당하는 공식


우리 주변에서 국민을 잘 살게 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하는 정치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옷갖 죄악을 지으면서도 유유자적하면서 누리는 사람들이 있지요. 인과법으로 본다면 도저히 답이 없어보이는 경우를 생각해도 되겠습니다. 즉,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고는 하는데, 현실은 과연 그렇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상황이냐는 것이지요.


가령 정치를 하는 책임자가 그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면 복이 많은 것입니다. 주변에 사람복이 많아야 가능하거든요. 그것을 인복(人福)이라고도 하겠습니다. 물론 재복(財福)도 그만큼 있어야지요. 적어도 복이 없다면 대통령의 자리를 얻을 수는 없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대통령 정도가 되려면 상당히 큰 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짐작해도 되겠네요.


예전에 대선에 몇차례 출마했다가 거지가 되어버린 정치인이 문득 떠오르네요. 인복과 재복이 없이 나서게 되면 그렇게 되지 않기도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참으로 복은 좋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 찾아먹는 물건임에는 틀림이 없겠네요.


그리고 그의 통치가 전 국민에게 골고루 미쳐서 모두가 칭송을 한다면 그것은 또 복과는 다른 부분입니다. 그야말로 '덕'에 해당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이 있어서 당선이 되었는데, 그 다음에는 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칭송을 받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고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통치자가 덕이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베풀고 있느냐는 것으로 기준을 삼으면 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밀고가는 사람과 남의 의견을 수용하여 취사선택을 하는 경우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국민의 종이 되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주려는 사람은 덕이 높은 사람이고,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키려고 국민을 억압한다면 덕이 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3. 마음 속의 복덕


이렇게 해서 복과 덕의 개념이 잡히셨다면 이제 그 기준을 그대로 자신의 마음 속으로 가져다가 비춰보시기 바랍니다. 내 자신은 덕이 있는가 아니면 복이 있는가를 말이지요. 어쩌면 그 둘이 모두 없을 수도 있고, 모두 넘칠 수도 있겠습니다. 남의 허물은 잘 보여도 자신의 허물은 잘 보이지 않는 법이잖아요. 그래서 자신을 비춰보는 기준으로 삼을 수가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선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 좋으면 복이 없고 덕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덕은 베푸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받는 것은 좋은데 주는 것은 싫다면 그것은 복이 있는지는 몰라도 덕은 없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빈민국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복을 뭉텡이로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여간 마음으로는 할 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낭월도 사실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부모를 잘 만나서 호의호식하는 사람은 복이 많은 것이겠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자신은 복이 많으므로 언제까지나 영원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남의 입장을 고려해 주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서야 복은 많지만 덕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덕의 씨앗이라고 한다면 부럽게 여기는 마음은 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습니다. 혹 부러운 것이 많으신가요? 그렇다면 복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복을 만들어야 할 모양이네요. 부러운 것이 아무 것도 없으세요? 그렇다면 복이 넉넉한 것입니다. 그 넉넉하고 부족한 기준은 액면가에 있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기준선에 의해서 결정이 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재테크에 대한 서적들은 복을 찾아먹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고, 수양도서는 덕을 쌓는 방법을 설명한 책이 되겠습니다. 무슨 책이 주변에 꽂혀있는지를 본다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대략 파악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잠시 둘러보시지요. 어떤 책들이 나를 보고 있는지 말이지요.


 


4. 식재는 복, 관인은 덕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상황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사주팔자를 타고 나기를 그렇게 타고 났으면 생긴대로 그렇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가게 될 것이니까 말이지요. 물론 모두가 다 생긴대로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만 최소한의 교화가 되려고 해도 그러한 인자가 내부에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는 낭월입니다.


사주에 식재가 있으면 까칠합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봐서 손해가 되는 짓은 하지 않으려고 하고, 괜한 일꺼리를 떠 안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일을 하면 마냥 즐겁지요. 그래서 유흥이나 오락의 방면으로 발달하기 쉽고, 재물을 쌓으려고 하는 것에도 인연이 되기 쉽다고 하겠습니다.


반면에 관인이 있으면 항상 망설이고 남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언행을 삼가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전생부터 덕을 쌓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복을 찾아먹는 일에는 서투르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어찌보면 고지식하다고도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선악을 십성으로 대입하게 된다면 관인은 선으로 놓고 식재는 악으로 놓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발대발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에 자신을 향해서 욕하는 것으로 읽혀졌다면 이미 스스로 그 마음에 찔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그냥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정도로만 생각하시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렇겠지요? 아니, 좀 그런가요? 그러면 품격이 있는 어휘를 찾아야지요. 어디........


예, 이러한 것이 있네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로 대입하면 좀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넌 나쁜  놈이잖아~!'하고 직접 대놓고 욕을 하는 것같은 느낌은 받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지요. 여하튼 이기적인 사람은 식상과 재성에서 찾아보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타적인 사람은 관살과 인성에서 발견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겠지요?


물론, 만사는 정도문제가 있습니다. 베푸는 것도 정도껏 하고, 욕심을 부리는 것도 정도껏 한다면 아무도 비난을 하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과 덕이 5:5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삶의 풍경이라고 생각을 해 볼 수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 오늘 아침의 낭월 생각입니다.


벗님의 복과 덕은 어떤 상황인지 잠시 점검을 해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서 복이 부족하면 복을 만들고, 덕이 부족하면 덕을 쌓아서 균형을 이루게 된다면 가장 아름다운 도인의 삶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네요.


 


5. 복덕(福德)의 관계


정작 제목에다가는 관계를 써놓고서 뭔가 마무리가 덜 된 것으로 보여서 추가합니다. 복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누구는 복이 많고 누구는 복이 적고, 또 누구는 아예 복이 없는데 왜 그러한 일이 생겨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도대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억울해서 말이지요. 그래서 관계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복이 오는 곳은 일정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을 해 보면 납득이 되고도 남거든요. 그 인과는 바로 덕이 씨앗이 되고 복이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간단히 이야기를 하면,


'덕(德)이 익으면 복(福)이 된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조상이 음덕을 쌓으면 자손이 복을 받는다는 옛 어른의 말씀이 다시 증명이 되는 셈이기도 하네요. 그러니까 음양이 서로 분리가 될 수가 없듯이, 복따로 덕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는 음양의 양면처럼 함께 붙어다닌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명료해 지네요. 오늘의 복은 어제의 덕에 대한 결실이라는 것이 말이지요. 그렇다면 벗님이 지금 누리고 있는 복은 과거에 지은 덕의 결과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자원봉사를 많이 쌓는 분들이 무슨 복을 쌓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은 결국 나중에 자신에게 복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부처는 '복을 바라고 덕을 쌓는 것은 헛된 일이다.'라고 했으니 미리 보답을 바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손실이 크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보시를 하더라도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가장 크다고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에고~! 이렇게 되면 점점 일이 복잡해지네요. 그만 줄이겠습니다. 여하튼 오늘 복이 없어서 끼니를 걱정하는 것은 누구 탓이 아니라 자신의 탓이라는 것만 생각해도 양식걱정을 하지 않고 하루를 잘 살 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福은 陽이고 德은 陰이라는 것은 익히 아시겠지요?


 


                 2010년 11월 13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