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 방금과 금방의 사이에.

작성일
2010-10-2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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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8

[제494화] 방금과 금방의 사이에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아침은 잘 드셨습니까? 모쪼록 상쾌한 하루가 시작되시기 바랍니다. 계룡산에는 안개가 너무 자욱하네요. 맑은 아침이 되지 못해서 조금은 섭섭합니다만 그런 때에는 밖을 보지 말고 안을 보면 된다고 생각하네요.


오늘 아침에 시간(時間)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한마디 남기고 싶어서 컴퓨터를 켰습니다. '시간'이라는 말을 풀이해보면, '때와 때의 사이'가 되겠네요. 그냥 '때의 사이'가 맞겠는데, '사이'가 있으려면 뭔가 두 개가 있어야 그 사이가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때와 때의 사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 사이는 도대체 뭘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때와 때의 사이에는 무엇이 있거나 어떻게 생겼거나 여하튼 뭔가 감이 잡혔으면 좋겠는데, 그냥 텅 빈 '공간(空間)'만 존재하는 것 같아서 아침 햇살을 맞으면서 그 사이에서 서성거려 봤습니다. 벗님도 한 번 생각해 보시지요. 때의 사이가 무엇일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금방'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이것은 매우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고 봐도 되겠네요. 우리가 일상 늘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네요. 그러다가 또 반대말이 떠올랐습니다. 금방의 반대말은 '한참'일까요? 아니면 '방금'일까요? 이렇게 해서 합의를 보게 된다면 음양으로 대입을 시킬 참입니다.


결론은 금방의 반대말은 방금이 되는 것으로 내리고자 합니다. 그러다가 한자는 어떻게 표기가 되는지를 알고 싶어서 네이버사전을 찾아 봤습니다. 그랬더니 '금방(今方)'과 '방금(方今)'으로 한자가 나오네요. 문득 '호상(互相)'이 떠오르네요. 북한에서는 호상이라고 하고 남한에서는 상호라고 하더군요. 이것은 별 다른 뜻으로 나누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금방과 방금도 같은 말이거나 비슷한 말처럼 들리지요? 풀이를 해 보겠습니다.


금방 - 이제 바야흐로
방금 - 바야흐로 이제


바야흐로가 아마로 '무엇무엇'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낭월은 권위가 있는 국어학자도 아닙니다. 그냥 글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실리도 없겠지만 그냥 재미로 읽으시면 됩니다. 方은 산지사방으로 전개되거나 뻗어나가거나 그런 느낌이 되기도 하거든요. 여하튼 이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양으로 삼아야 할까를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바로 직업병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어떻게 느껴지시는지요?


금방은 양(陽)입니다. 그렇게 되면 방금은 당연히 음(陰)이 되겠군요. 왜 그렇게 봤는지를 써 놓지 않으면 또 괜한 고민을 하실까봐 바로 답을 안내하겠습니다.


방금 - 과거 - 지나간 시간 - 음,   예) 방금 갔다.
금방 - 미래 - 다가올 시간 - 양,   예) 금방 온다.


하나는 죽었고 하나는 살았네요. 그 참 이상하네요. 똑 같은 글자인데 서로 붙여놓는 위치가 바뀌는 것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로 읽어진다는 것이 말이지요. 사실 사전에서는 서로 구분없이 사용하고 있네요. 그야 그렇게 해도 별 탈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 정도의 이해력은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렇지만 철학자의 생각에는 이렇게 소소한 것도 걸고 넘어져서 음양으로 나눠놔야 속이 편하군요. 하하~


어느 학자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과학자의 책은 출판되는 그날로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일리가 있을까요? 사실은 책이 출판되는 그 날도 너무 멀리 잡은 것이겠지요? 원고가 작자의 손을 떠난 순간이 될 것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펜이 글자를 만든 순간 이미 오류가 되어버린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천년이 지난 다음에도 가치가 있는 글은 참으로 위대한 글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주로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적어 놓은 글들은 세월이 흘러가도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겠습니다.


<시시콜콜명리학시리즈>를 엊그제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 원고는 화인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제 교정보고 책을 만드는 것은 낭월의 소관이 아니니까 큰 일이 다 끝난 것처럼 한가로워진 낭월입니다. 물론 잠시 그렇겠지만 말이지요. 이렇게 방금까지 생각한 이야기들이 또 금방 후회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이 살아서 역동하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금방의 생각이 방금의 생각이 되어버리는 순간, 또 뭔가 새로운 생각으로 수정이 되어버리는 것을 떠올려 봤습니다. 거의 1분 전후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짧은 시간에도 학자의 생각은 쉬지않고 움직이는 모양이네요.


그렇다면 벗님의 생각은 방금에 있으신가요? 아니면 금방에 있으신가요? 아마도 방금에 생각을 두게 된다면 재미없는 삶이 될 것이고, 금방에 생각을 둔다면 재미있는 삶이 될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침소봉대일까요? 아마도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삶은 이렇게 금방이 방금으로 변하여 이뤄지는 긴 엮음과 같은 것이니까 말이지요.


앞의 글에서 소개한 랜디 포시와 같은 사람은 항상 금방에 머물러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나간 일은 즐거운 일이든 힘든 일이든 그 순간 잊혀지는 것이 아마도 '지금 현재, 여기에'가 되는 것이라고 이해를 해도 되겠습니다. 췌장암은 방금의 상황이었고, 강연은 금방 다가올 일들이기에 설레고 흥분될 수가 있겠다는 것으로 연결시켜 봤습니다.


벗님의 삶은 어떠신지 지금 한 생각 돌이켜 살펴보시면 되겠네요. 답은 스스로에게서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벗님께서도 어제 본 갑목이 오늘 보니 달라져 보이지 않던가요? 아마도 그렇다고 한다면 분명히 깨어있는 학자이십니다. 그런데 백날을 봐도 그냥 갑목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예. 죄송하지만 죽어있는.... 예, 그렇습니다. 생명력이 없는 박제된 두뇌의 소유자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비난이 아니라 자극을 드리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시시각각의 변화를 읽어보시라고 권하는 것이지요.


방금 했던 생각은 모두 쓰레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또 금방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거든요. 그리고 방금과 금방의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도 낭월의 소견으로는 주인공이 머무는 공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어떠신가요? 방금과 금방을 생각하면서도 철학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읽을 수가 있으셨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2010년 10월 21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