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 간지(干支)를 찍는 사진가

작성일
2010-09-11 06:43
조회
5863

 


[제489화] 간지(干支)를 찍는 사진가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원고를 쓰다가 천둥번개가 몰아치기에 얼른 인터넷을 뽑아놓고는 차를 마시면서 예전에 사진수업을 받으면서 구입했던 사진 책을 하나 뽑았습니다.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냄새가  풍기는 제목을 갖고 있는 책이 손에 잡혔습니다. 수업을 받으면서 대충 읽어봤습니다만 이렇게 천둥번개가 휘날릴 때에는 글쓰는 일이 불가능하므로 사진보는 재미에 빠질 수가 있답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낭월도 사진가잖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난 뭘 찍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차호를 다섯 번 우리는 동안에 계속 비가 내리는 밖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행복했습니다. 낭월에게 이렇게 내리는 비를 보면서 찻잔을 쥐고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지요.


  연꽃도 찍고, 하늘도 찍고, 가족도 찍었습니다만, 그것이 본분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세바스티앙 살가도라는 사진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해 본 생각입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에 빠졌다가 문득 '간지를 찍는 것이 내 사진이로구만~!'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래서 또 생각의 조각을 잡고 빠져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 간지(干支)에 필이 꽂혀서......


  살가도는 갈라파고스의 이구아나에 필이 꽂혀서 몇 달을 이구아나를 보면서 작업했다고 하는 말이 가슴을 찡~하게 때렸습니다. 그랬군요. 그것이 사진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낭월은 간지에 필이 꽂혀서 수십년을 이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진가는 소나무에 필이 꽂혀서 작업을 하고, 또 어떤 사진가는 난민에 필이 꽂혀서 작업을 하지요. 또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에, 또 무속인들에게, 또는 여성에게.


  제각기 자신의 관심사에 매달려서 삶의 전부를 바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데에는 그만한 즐거움이 있기에 가능하겠지요? 만약에 전혀 재미가 없는 일을 단지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에 의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보다 힘든 노동이 또 있겠는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한 가지의 주제를 놓고서 적어도 10년 이상을 몰두 한 사람들은 그 속에서 뭔가를 본 사람들이라고 짐작을 해 봐도 되겠습니다.


  낭월을 생각해 보니까 간지에 매달려서 즐겁게 살아온 나날들이 떠올랐습니다. 언제나 간지 속으로 빠져들어가면 무한히 넓은 놀이터가 있고, 생각을 할 소스가 무궁무진하게 넘치는 것을 마음껏 즐길 수가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책에서 인상적인 글귀가 보였습니다.'나는 사진을 찍었지만 보려고 했던 것은 사진이 아니라 사진에 투영된 나의 마음이었다.'는 구절이었습니다. 낭월도 간지를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쩌면 간지를 통해서 자신을 읽으려고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2. 간지를 찍은 사진 한 장


  간지를 찍는 사진가라고 생각을 하다가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진짜로 간지를 찍었지요. 지금 바로 간지사진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낭월이 20년이 넘도록 찍은 사진입니다만 또 볼때마다 새롭네요.


 


 



  이것이 간지 사진입니다. 하하~ 좀 허망하셨을까요? 아니면 황당?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여하튼 틀림없는 간지사진은 맞지요? 하하~


 


  다 웃으셨으면 이제 사진을 봅시다. 사진에 무엇이 찍혔습니까? 숫자, 간지 절기 그렇군요. 주로 이러한 것들이 나열된 어느 해의 10월 달력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사진입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나날을 찍고 또 찍었던 사진이기도 합니다. 갑목을 수만컷, 자수를 수백만컷 찍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건진 것들은 글로 저장이 되었겠지요. 그 외의 무수한 사진들은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작업들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지요. 1천장의 사진 가운데에서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 것이니까요.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벗님께서나 낭월이나 보고 있는 것은 같습니다만, 그 느낌도 같을까요? 아마도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기에는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체를 다 보면 눈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한 부분만 확대해서 감상해 보실까요? 기왕이면 색다른 부분이 좋겠습니다. 다음의 부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우선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설명을 보기 전에 말이지요.


 


 


 


                                     


 


 


 


3. 사진을 보는 방법


  이렇게 한 부분을 확대했습니다. 집중해서 감상하자는 의미입니다. 하나를 볼 줄 알면 또 다른 것도 볼 수가 있을 테니까요.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요? 8, 辛, 卯, 寒露, 18:26, 이러한 것이 보이는 것은 누구나 같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사진은 다 본 것일까요? 물론 수없이 많은 전시장에서 사진을 감상할 적에도 대략 이렇게 진행이 되는 경우가 많겠습니다. 그것은 사진을 관광한 것이지 감상을 한 것은 아닙니다. 감상은 느낌을 받아야 할 것이니까요. 그럼 우리는 이 한 조각의 사진을 감상해 볼까요? 어디 사진을 볼 줄 아시는지 메모지에 느낌이 드는대로 적어 보시지요. 낭월의 눈에 보이는 것을 생각이 나는대로 단어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음금, 가을, 낙엽, 흡수력, 경쟁자, 도둑, 칼, 나무, 토끼, 왕목, 시든나무, 아침저녁의 쌀쌀함, 술토, 빛을 잃음, 어두워짐, 뿌리가 없음, 머지않아 다가올 추운 겨울, 내년 봄, 등등이 겹쳐서 명멸하네요. 어떠셨어요?


  물론 이것은 일차적인 것입니다. 이차적으로는 어느 젊은 시절에 대합실에서 막차가 끊어지는 바람에 추위에 떨면서 밤을 새웠던 초가을의 쌀쌀함이 떠올라서 새삼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또 어느 해 단풍을 보겠다고 설악산에 들렸다가 신흥사에서 일박을 하는데 객들이 미워서인지 이불도 여름이불 한 장 던져주고 가버린 지객스님의 냉랭한 표정도 떠오릅니다. 이것은 경험에 의한 2차적인 생각들이겠군요. 벗님의 생각도 모두 다 다를 것입니다.


  단지 많은 날 중의 하루를 이렇게 감상해 봤습니다. 사진 한 장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제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적어도 30일 중의 한 부분을 본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전체를 놓고 본다면 또 무엇이 어떻게 보일까요? 낭월은 이런 사진을 매일매일 수천장씩 찍고 있습니다.


  소나무만 찍는 배병우 작가님이 왜 소나무만 찍을까요? 그리고 어제 찍은 것도 소나무, 오늘 찍은 것도 소나무이니 보는 사람은 맨날 그것이 그것이라고 투덜대겠지만 작가의 생각도 과연 그럴까요? 만약에 작가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카메라를 팽개치던지 다른 대상을 찾아나섰겠지요. 줄기차게 소나무만 찍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눈치를 챘어야 했습니다. 그는 소나무를 통해서 세상만물을 다 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낭월은 간지만 찍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어제 본 간지와 작년에 본 간지가 또 다르니 말이지요. 그래서 자꾸 찍습니다. 찍고 또 찍습니다. 만약에 어제 본 것과 같은 것이라면 찍을까요? 절대로 셔터가 눌러지지 않습니다. 뭔가 달라보여야 카메라를 들게 되는 것이잖아요? 그 정도는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어떤 벗님들께는 낭월의 글들이 여느 사진가의 소나무만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도 소나무이야기, 저기에도 소나무이야기, 작년에도 소나무 이야기, 10년 전에도 소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겠습니다. 여하튼 그러한 벗님은 낭월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소나무 이야기만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동안 해 온 것으로 봐서 앞으로도 그렇지 싶습니다.


  여하튼 낭월의 간지이야기가 볼때마다 새롭다고 생각되시는 벗님은 궁합이 천생연분이고, 지겨워서 못보겠다고 한다면 아마도 궁합이 맞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하겠네요. 그런 경우에는 간결하고 단촐한 시집과 같은 간지요약을 권해드리는 것이 좋은 안내가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사주정설과 같은 형식이 되겠습니다.


  간지의 사진을 찍다가 보니까 의외로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어제 알았던 것이 잘못 되었던 것일 수도 있고,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지요. 가령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늙어서는 자식보다 손자 손녀가 더 예뻐 보인다.'는 말을 쓰고 싶은데, 손자 손녀를 줄여서 손주라고 하면 어떨까 싶어서 손주라고 써놓고 보니까 이것이 옳은 표기법인지 궁금해 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확인해 보면 잘못 쓰여진 것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배워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진가들이 대상을 촬영하다가 나중에는 대상과 동화가 되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감동을 주는 사진이 나온다는 것이지요. 피상적으로 찍히는 자와 찍는 자로 나눠져서는 아무 것도 되지 않고 그야말로 그냥 관광하는 정도의 표면적인 사진만 담긴다고 하네요. 그러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낭월도 어느 사이에 간지와 동화가 되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사실, 그렇게 되어야 하겠지요. 그래야 책에서 보지 못한, 오로지 간지가 직접 전해주는 간지만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마음이야 급하지만 그럴수록 다시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고 다시 간지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느낌이 올때마다 셔터를 누릅니다. 그러면서 배움은 깊어지는 것이겠지요. 이것이 사진감상법이라고 하면 말이 될까요?


 


5. 사진은 만드는 것이다.


  '사진은 짝는 것이냐 만드는 것이냐'를 생각해 봣는데, 결국은 찍는 것이 아니고 만드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군요.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주입해서 뭔가 그럴싸 한 것으로 만들어 탄생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냥 단순하게 찍는 것이라고 한다면 모델을 앞에 세워놓고 그냥 한 장 '찰칵~!'하고 찍으면 될 일을 부산하게 누워라 한쪽 다리를 세워라, 상체를 앞으로 숙여라 머리카락을 옆으로 모아라 등등의 많은 주문은 필요가 없는 것이겠네요.


  그렇게 주문을 한다는 것은 사진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사진을 만드는 기술 중에서 'HDR기법'이 있어서 관심을 두고 있기도 합니다만, 여하튼 사진은 만드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간지는 어떨까요? 원래 있는 간지를 어떻게 만들 수가 있느냐는 생각이 드시나요? 그렇다면 창의력이 조금은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원래 있는 것을 갖고 만들어야지 원래 없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만들 수가 없잖아요?


  간지를 만드는 법도 모델을 놓고 사진을 찍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포트레이트로 정면사진을 찍고 범죄자처럼 측면사진을 찍었으니 다 되었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만, 조금 지나다가 보면 그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래서 앉아있는 갑목도 찍어보고, 공중에 떠다니는 갑목도 찍어보고, 또 뿌리가 뽑힌 경금도 찍어보고, 수증기가 된 병화도 찍어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슬슬 미쳐간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해서 다양한 작품이 만들어 집니다.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로 대하소설을 만들듯이, 천간 10개와 지지 12개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조금도 다를 것이 없지요. 그렇게 만들어놓으면 어떤 감상자는 명작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찬탄을 하고, 또 어떤 감상자는 천하의 몹쓸 쓰레기라고 비난도 하는 것입니다만 그것이 작품에 어떤 영형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작가는 그렇게 느껴서 작업을 했으니 예술이고, 감상자가 어떻게 감상평을 하든 그것은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져야 하니까 말이지요.


  오늘 새벽에는 유금에 대해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한 대목 옮겨놓으면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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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전성기(全盛期)


 


묘월(卯月)이 목()의 전성기로 만물을 성장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유월(酉月)은 금의 전성기로 만물을 숙살(肅殺)하는 것이 본래(本來)의 목적(目的)이다. 그래서 묘유(卯酉)는 서로 뜻을 달리 하는 성향(性向)을 띠게 되므로 직접 만나게 된다면 서로는 충돌(衝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는 봄에 있고 또 하나는 가을에 있으니 만날 일이 없는 고로 이러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마이다스는 무엇이든 만지기만 하면 황금(黃金)으로 변했다고 하는데, 유그므다스는 무엇이든지 입김만 불면 다 죽어버리는 잿빛으로 변한다. 묘모그다스는 무엇이든지 바라만 보면 초록빛으로 생생한 생명력(生命力)을 띄었겠는데 말이다. 만약에 신월(申月)에 정리를 하지 못한 식물이라면 결실도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말라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유금(酉金)은 왕금(旺金)이다. 이것을 왕금(王金)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왕금(王金)이 독재적(獨裁的)인 느낌을 갖고 있다면 왕금(旺金)은 세력(勢力)이 왕성(旺盛)하여 힘이 넘치는 느낌이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고 있으면 된다.


유금(酉金)이 결실(結實)을 부추기는 역할이 있다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다시 생각을 해보니까 그 결실을 부추기는 내공(內功)은 신금(辛金)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알겠다. 결국은 신()과 유()는 같은 성질(性質)의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다른 간지(干支)의 관계(關係)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관점(觀點)으로 이해를 하고 살펴보면 또 많은 것이 보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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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몇 장 찍어 봤습니다만, 사진이 잘 나올지는 나중에 봐야 합니다. 지금은 그냥 느낌이 오는대로 셔터를 눌러놓고 보는 중이거든요. 낭월은 천재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독자보다는 잘 알지는 못해도 꾸준히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벗님을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쉽게 이해가 될 방법으로 간지의 사진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늘 머리속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셈이지요. 결국 알고 나면 내가 간지이고 간지나 나였다는 것으로 답이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설정은 하고 있습니다만 확인작업을 하는 과정이 이렇게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벗님의 사진은 어떻습니까? 여하튼 대상은 찾으셨는지요? 빨리 찾으셨기를 바라고, 축하드립니다.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해도 별로 나쁠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유람하면서 자신의 뇌리에 팍! 꽂히는 무엇인가를 만나게 될 거시니까요. 그때를 놓치지 말고 셔터를 누르기 위해서 항상 카메라의 전원은 켜놓고 있으시기 바랍니다.


  멍~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버리게 되면 카메라의 전원을 켜는 사이에 그 대상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된다면 이미 땅을 치고 아쉬워해도 엎질러진 물입니다.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아시겠지요? 바짝 긴장하고 카메라의 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말고 주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대상을 발견하신 벗님은 완미하면서 하나가 되도록 녹아들 일만 남았으니 긴장은 간 곳이 없겠지요.


  그럭저럭 비가 그쳤습니다. 마당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맑은 공기를 느껴보면서 또 사진 찍을 꺼리를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고, 항상 찾아주셔서 더 고맙습니다. 행복하신 사진을 많이 얻으시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2010년 9월 11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