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 교감(交感)과 소통(疎通)

작성일
2010-09-2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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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1화] 교감(交感)과 소통(疎通)


 


 


안녕하세요. 추석날 저녁에 낭월입니다. 송편도 드시고 오붓하게 가족들과 만남의 시간들 보내셨겠습니다. 계룡산은 궂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조용한 추석을 보냈습니다.


저녁을 먹다가 문득 두 개의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데, 늦은 시간이 되어도 떠나질 않고 있어서 잠시 정리를 해 볼까 싶었습니다. 그것은 제목에서도 보이듯이 교감과 소통이라는 단어입니다. 뜻에 대해서야 낭월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그래도 조금은 들여다 보면서 생각의 고리를 붙잡고 싶어서 한마음을 일으켜 봅니다.


 


문득 교감과 소통을 음양으로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 둘은 서로 무슨 연관을 갖고 있길래 함께 생각이 났을지에 대해서 곰곰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힌트는 두 단어는 음양으로 결합이 되어있어야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원래 음양이 어느 한쪽만으로는 제 기능을 하기가 어려우니까 말이지요. 아마도 교감은 음이고 소통은 양이겠지요?


교감만 있고 소통이 없으면 쓸모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니까 교감은 느낌이라고 한다면 소통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말을 해야 알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아마도 소통에 서투른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님은 품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다'는 의미도 같은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느낌만 있고 말을 하지 않으면 그 뜻을 전달받지 못한 상대방은 말을 하도록 요구하고자 하는 것이겠습니다. 그냥 내 마음을 잘 알겠거니..... 하고 있다가 오해가 쌓여서 돌이킬 수가 없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특히 요즘 저녁드라마로 나오는 '바람불어 좋은날'을 보면서 그러한 생각을 해 보게 되네요. 어쩌면 이 드라마 때문에 앞의 두 단어가 머릿가를 맴돌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두 사람, 장대한과 권오복의 교감과 소통에는 참 답답한 상황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지요.


미란은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낳은 아들인 독립이나 혹은 대한의 가족들과도 소통을 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만 참으로 어려운 모양이네요.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아서 애를 쓰고 있으면서도 진전이 없으니 그것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교감만 있고 소통이 없는 것도 답답하지만, 교감이 없는데 소통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를 쪄서 밥을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하튼 교감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저자와 독자가 서로 느낌을 나눌 수가 있다면 교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부부사이에서도 느낌을 나눌 수가 있는 것은 오랜 시간을 함께 하였기 때문이겠습니다. 눈빛만 봐도 안다는 것은 소통과 교감이 동시에 이뤄진 것이라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요.


대통령과 국민이 교감이 잘 이뤄진다면 또 얼마나 좋을지도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교감이 되지 않는다면 방송에서 아무리 눈물을 흘리면서 진솔한 대화를 시도하더라도 아마도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득 나는 주변의 인연이 있는 사람들과 메아리가 없는 소통을 하려고 헛된 노력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생각을 해 보게 되고, 교감을 원하는 주변 사람에게 문을 닫고 있는 것은 아닌가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낭월에게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는 '참 냉정합니다.'라는 말이 들립니다.


원래 사문(沙門)은 냉정해야 한다고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아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인정이 많으면 도는 엉성해 진다'는 글을 늘 외워야 했거든요. 아마도 그래서 몸에 밴 행동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내심 생각을 해 보면, 교감이 되지 않으면 소통을 원하지 않는 본질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기는 싫다는 식이지요. 싫으면 그만이고, 좋으면 좋은 것이지 마음에 없는데 헛 웃음을 웃는 것도 내키지 않고 그래서 아마도 다정한 표현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섭섭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감이 되지 않아도 소통을 하는 것은 헛된 일일까요? 아니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르네요. 그 말은 교감이 되지 않아도 소통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상대를 감동시켜서 교감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뜻일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교감이 없어도 소통을 위해서 노력을 할 필요는 있다고 하겠네요.


아마도 외향적인 사람은 소통을 위해서 노력을 할 것이고, 내성적인 사람은 교감을 위해서 마음을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 두가지는 모두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벗님의 스타일은 어떠신지요?


 


오늘은 모처럼 가족들이 다 모였습니다. 연지님의 여섯 동생들이 모두 모여서 시끌벅적한 추석의 저녁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노환에 힘드신 장모님께서도 잠시나마 함박웃음을 웃으면서 행복해 하시는 표정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좋아보였지요.


보이차 공부를 하면서 차에 관심을 보이는 처제들에게 나름대로 약간의 상식을 설명해 주면서 차를 나눠주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다섯 명의 처제는 모두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처제는 보이차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낭월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평소에도 소위 교감이 잘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생각해 봤습니다.


마침 며칠 전에 중국에서 주문했던 자사호가 들어왔습니다. 먼저 들어온 일부분으로 약 30여개가 감로사에 도착되었습니다. 그래서 추석에 오면 두 개씩만 선물로 고르라고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 자사호들은 나중에 판매를 할 목적으로 화인이 주문을 한 것인데, 믿을만 한 재료로 잘 만든 것이어서 앞으로 오래도록 사용을 할 차호들이기도 합니다.


공짜인데 싫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특히 모양이 참 예쁘다고 하면서 다들 함박웃음을 웃는 것을 보니까 구입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이미 그 값을 하고도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또 즐거웠지요.


맨 나중에 문제의 그 처제가 도착했습니다. 그렇잖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비록 교감은 잘 되지 않더라도 물어보기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소통을 시도했습니다.


"보이차는 좀 마셔봤나?"
"예, 먼저 한 잔 마셨는데 마실만 하던데요."
"그럼 앞으로도 좀 마셔 볼 생각이 있나?"
"그럼요. 바빠서 그렇지 틈만 나면 커피보다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반갑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면서 좀 미안했습니다. 잔작에 물어볼 것을 그냥 스스로 교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만 하면서 서로 오가면서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던 것 같아서 말이지요. 노력도 해봐야 하는데, 그러한 것을 하지 않고 그는 낭월이 어렵고 낭월은 뭔가 그의 마음에 내가 못마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만 했더랬습니다.


"실은 차호를 두 개씩 선물을 했는데, 마지막으로 의향을 물어보는 거야. 마음이 있으면 주려고 말이지."


물론 더 긴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자신도 차를 좀 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낭월이 주겠다고 하지 않으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먼저 달라고 하는 말을 못했던 것으로 느낌이 왔습니다. 그녀는 신유(辛酉)일주거든요. 그래서 골라보라고 하고 원하는 차호와 함께 3년 쯤 된 숙차도 한 편 함께 선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선물의 금전적인 값어치와는 비교가 되지 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연구한다는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아무리 생긴대로 사는 산골화상의 생활방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항상 만나야 하는 가족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반성했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계속 교감과 소통이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이러한 상황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풀렸습니다. 그러니까 교감이 이뤄지고 소통이 되면 가장 아름다운 인연이 되겠지만, 혹 교감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소통을 해서 지성이면 감천이니까 노력은 해 보야 하겠다는 생각을 얻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널어놓고서 마음대로 골라가라고 했더니 제각각 자기 마음대로 집었는데도 골고루 가져가네요. 그런데 전혀 손이 가지 않는 차호도 한 종류가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바닥이 나는 것은 역시 미인인 서시호였습니다. 사람은 달라도 느끼는 기본적인 미감(美感)이 비슷한 것은 있는가 봅니다.]


 


벗님께서는 어떻신가요? 소통을 위해서 노력하시는 것도 좋고 교감이 되지 않으면 소통은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것도 좋기는 합니다. 그래도 혹 상대방은 교감의 안테나를 뽑아놓고 있는데, 너무 냉정하게 닫아놓고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 생각을 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하긴 그럴리가 없겠지요? 낭월같은 사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하하~


 


 


상담을 하다가 보면 교감이 바로 이뤄지는 방문자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경우가 대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가끔은 교감이 되지 않는 방문자도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삼담을 하고 싶지 않아지지요. 특히 지나가다가 들어와서 점보는 곳이냐고 물어보는 경우에는 거의 90%가 교감이 되지 않더군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교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소통을 시도합니다. 방문자가 마음의 문을 열고 교감이 될 때까지는 인내심으로 기다려야 하는 것 같더라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오행을 설명하고 주변의 풍경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교감의 주파수가 연결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대략 5분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예! 맞아요 선생님~!"


이 말이 나오게 되면 일단 교감이 성공을 한 것으로 보겠습니다. 그것은 마치, "여기는 백두산 여기는 백두산~!"' 하면서 신호를 보내면 상대방에서 그 신호를 받았다고 회신이 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물론 아주 가끔은 그것이 잘 되지 않아서 그냥 사무적인 만남의 시간으로 마무리가 되는 경우도 없진 않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아서 좀 미안하기도 하고, 뭔가를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떠나는 그 사람은 상처가 많을 것이라는 위로의 마음도 들기는 합니다.


 


추석의 날이 지났습니다. 자정이 넘었네요. 며칠 사이에 엄청난 물난리를 겪은 분들은 어떻게 이 밤을 보내고 계실지 안타까운 마음이 잠시 감도네요. 그래서 풍수지리를 조금은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어쩌면 주변을 잘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자리는 피할 수가 있을 것도 같습니다만, 그런 의미에서 감로사는 북극의 얼음이 다 녹아서 해수면이 100m 이상으로 솟아오르기 전에는 안전하겠다는 괜한 안도의 마음도 든답니다. 하하~


편안하신 시간 되시고 교감과 소통으로 아름다운 나날이 되시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0년 9월 23일 새벽에 낭월 두손모음